376화 월령안의 여덟 가지 죄
소 승상은 어두운 촛불 아래 앉아 있었다. 그는 눈꺼풀을 살짝 들어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문인들을 힐끗 훑어보고는 질책했다.
“됐다. 일개 여자 상인 때문에 당황할 필요까지 있겠느냐.”
세 사람은 울상을 했다.
“승상, 이 일은…….”
소 승상은 세 사람의 말을 끊고 느긋하게 말했다.
“내 아들이 사흘 뒤에 혼례를 올리게 됐네. 자네들은 그날 잔치에 참석하기만 하면 되네.”
‘무슨 일이 생기면 두려워하기만 하는구나. 이런 이들이 어찌 내 일파의 세력을 떠받칠 수 있겠는가? 소씨 일파의 세력은 보존할 수 없겠구나. 이젠 나를 챙길 때가 되었군.’
소 승상은 마음속으로는 계산을 마쳤다. 그러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승상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소 승상의 말을 듣자, 세 사람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조금 전의 당황을 털어 버리고, 잔칫날에 제시간에 오겠다고 연신 약속했다.
소 승상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 문인을 배웅하고 난 소 승상은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붓을 들어 먹물을 묻히고, 흰 종이 위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편지를 다 쓰고 나자, 먹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전에 편지를 단단히 봉했다. 그리고 늙은 하인을 불러 말했다.
“이 편지를 장씨 저택으로 보내라.”
“네, 나리.”
늙은 하인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가까스로 편지를 받았다.
소 승상은 그를 한번 힐끗 보고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그만 가 보거라.”
하인이 망설이는 이유를 알고 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는 이제 힘이 없었다. 그의 아들에게도 더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소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회를 쟁취해야만 했다.
그들 소씨 가문은 여러 세대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주나라 권력의 핵심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렇게 영영 쫓겨나기에는 억울했다.
늙은 하인은 소 승상을 뜻을 알아차리고 정중하게 말했다.
“나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꼭 직접 장 부승상께 전하겠습니다.”
소 승상은 말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하인은 편지를 가지고 한밤중에 장씨 가문을 찾아갔다. 그리고 장 부승상에게 편지를 전했다.
장 부승상은 편지를 보고 나더니 감개무량해서 한마디 했다.
“소 승상께서는 참 과감하게 취사선택(取捨選擇)하셨군. 감복할 따름일세.”
장 부승상은 소씨 가문의 늙은 하인을 난처하게 하지 않고, 즉각 대답해 주었다.
“돌아가 소 승상께 전하게. 나는 그분께 신세 진 걸 기억할 걸세.”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소씨 가문의 늙은 하인은 되돌아가서 보고했다.
이튿날 소씨 가문 하인들은 순천부로 찾아가 신문고를 울렸다.
순천부 관아 안. 순천부윤 유칙은 관졸들의 보고를 듣자,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은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못할 것 같구나.”
유칙은 등을 곧게 펴려 했지만, 살짝 굽어졌다. 걸음걸이도 평소보다 무거웠다.
뒤따르던 사야(師爺 – 옛 관리들의 고문)는 뭐라고 권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만 실룩였을 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 부승상이 직접 입을 열었고, 소씨 가문은 규칙대로 일을 처리했다. 유 대인이 이 자리에 앉은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칙이 공당으로 나오자, 소씨 가문에서는 고발장을 올렸다. 고발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거리에서 헛소문을 퍼뜨린 백성이 삼천육백여 명입니다.
둘째, 앞장서서 헛소문을 퍼뜨린 월씨 가문 하인이 열여섯 명입니다.
셋째, 월씨 령안이 백성을 선동하고 악의로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소 승상을 비방하였습니다.
넷째, 월씨 령안이 거금으로 민심을 매수하고 백성을 우롱하였습니다.
다섯째로 월씨 령안이 사람을 모아 도박을 하고 백성을 기만하여 재산을 차지하였습니다.
여섯째, 월씨 령안이 양갓집 여인을 기녀가 되게 핍박하고 사사로이 기루를 열었습니다.
일곱째, 월씨 령안이 사사로이 기계를 제작하고 병기를 소장하였습니다.
여덟째, 월씨 령안이 헐값에 재산을 팔아 조정의 대신을 매수하였습니다.
아홉째, 월씨 령안이 조정의 대신에게 뇌물을 먹이고 조정의 일품 대장군과 충돌하였습니다.
열째, 월씨 령안이 윗사람을 거스르고 황실 공주와 충돌하였습니다.
소씨 가문 하인들은 고발장뿐만 아니라 완벽한 명단과 증거도 제출했다.
이로써 거리에서 동전을 흩뿌리고 백성들에게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한 사람은 바로 월씨 가문 하인들로, 그들은 월령안의 명령에 따랐음을 증명했다.
또한 사 년 전, 월령안이 화신연에 참석하기 직전에 도박판을 짜 백성들을 유인하여 돈을 걸게 했음을 증명하는 증거도 제출했다. 그 증거에 따르면 그녀는 비열한 수단으로 백성들을 속여, 거의 구 할이나 되는 판돈을 독차지했다.
병기 소장이라는 이 죄명에 대해서는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고발장에 따르면 그 병기들은 월씨 저택에 있으므로, 수색하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월령안이 조정 관리들에게 헐값으로 가게를 팔고, 치안을 담당하는 무장에게 뇌물을 먹인 것도 있었다. 육 대장군이 입성하는 날, 치안을 담당한 무장들은 그녀가 저지선을 뚫고 거리에 나타나 육 대장군을 막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소씨 가문에서는 이에 대한 증거도 모두 찾아내었다.
윗사람을 거역한 죄명에 대해서는, 등요 공주가 나서서 월령안을 지목해 주기로 했다.
소씨 가문은 여덟 가지 죄명으로 월령안을 고발했다. 처음의 둘은 그저 사실을 나열한 것이었다. 월령안을 고발한 죄목 하나하나는 그다지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중 한 가지라도 확정되기만 하면, 월령안은 목숨을 잃지는 않더라도 반죽음당할 것이다.
유칙은 소씨 가문에서 올린 고발장을 펼쳐 보았다. 또 소씨 가문에서 올려 온 증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소씨 가문은 만반의 대비를 하고 왔다. 만약 이 증거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장 부승상이 뭐라고 한마디 할 필요도 없었다. 이 사건은 월령안에게 지극히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월령안이 그리 만만하던가?’
유칙은 월령안의 배후에 있는 육 대장군을 떠올렸다. 그는 미간을 문지르며 골치 아프다는 듯 말했다.
“순천부윤 노릇은 진짜 사람이 할 짓이 아니군.”
이 두 달 동안 들어온 골치 아픈 사건은 한두 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는 이 사건들은 모두 월령안과 연관되어 있었다.
* * *
월씨 저택이 봉쇄되었다.
월령안도 순천부의 관졸에게 끌려갔다.
“월 낭자, 소인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부디 마음에 두지 말아 주십시오.”
순천부 관졸은 사람을 잡으러 온 사람 특유의 거만함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쇠고랑과 봉인용 종이를 든 손을 떨고 있었다.
그들도 이번 일을 전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리들께서 명령을 받고 일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단지, 저희 집 사람들은 간이 작고,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습니다. 부디 그들을 괴롭히지만 말아 주십시오.”
이른 아침부터 하인이 순천부의 관졸이 사람을 잡아가려고 찾아왔다고 보고했다.
월령안도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러나 관졸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는 놀라지 않았다.
소 승상의 이번 수법은 무척 절묘했다.
소 승상은 이미 사직한 몸으로, 사람을 보내 그녀를 고발했다. 그렇다면 이건 평범한 백성 둘 사이의 다툼이었다. 덕분에 소 승상의 문인들은 이 일로부터 말끔히 배제되었다.
게다가 소 승상의 이번 행동은 설령 육장봉이 음으로 양으로 그녀를 보호하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소 승상이 쓴 방법은 공개적인 계략이었다. 모든 걸 겉으로 드러내고 조정의 율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황제조차도 그가 틀렸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일이 생기면 관아에 찾아가서 해결하는 것은 월령안이 애용하던 수법이었다. 예전에도 이 수법으로 소씨 가문, 육씨 가문을 꽤 괴롭혔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 수법에 당하는 날이 올 줄이야.
한순간 월령안은 웃고 싶었다. 그래도 관졸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참았다.
순천부의 사람들은 월령안과 자주 마주치다 보니, 그녀의 처지가 예전과는 다름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배후에는 육 대장군이 버티고 있었기에, 감히 고압적으로 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월령안이 저택의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일각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자, 관졸도 잠깐 망설이다가 승낙했다.
관졸이 부탁을 들어주자, 월령안도 그 답례로 그들을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집사에게 저택의 하인들을 모두 불러오게 한 다음, 관졸들 앞에서 일일이 일을 지시하며 전혀 숨기지 않았다.
관졸이 자세히 들어 보니 모두 일상적인 사소한 일이었다.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관졸은 월령안이 바로 그들 앞에서 이런 자질구레한 일상사를 이용해 집사에게 진짜 명령을 내렸음을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월령안은 저택의 일을 다 분부하고 나자, 고분고분 손을 내밀었다. 관졸이 쇠고랑을 채우게 내버려 두었다.
한편,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암위는 관졸이 월령안을 끌고 가는 걸 보자, 초조해서 어쩔 줄 몰랐다.
즉시 장군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월령안이 끌려가다가 사고가 날지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신호를 올려 장군부 사람들에게 통지했다.
* * *
육이는 한창 훈령장에서 훈련하던 중이었다. 문득, 월씨 저택 쪽에서 신호 연기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안색이 바뀌며 재빨리 밖으로 내달렸다.
반 시진 뒤, 육이는 땀투성이가 되어 장군부에 나타나 재빨리 서재로 걸어갔다.
“대장군, 소씨 가문이 오늘 아침 일찍 순천부에 가서 월 낭자를 고발했습니다. 월 낭자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인심을 매수하고, 무기를 소장하고, 관리에게 뇌물을 먹이고, 윗사람을 거역했다는 죄목입니다. 순천부윤은 이에 월씨 저택을 봉쇄하고, 월 낭자를 가뒀습니다.”
“소희!”
육장봉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육이는 깜짝 놀라 앞으로 달려가 육장봉을 막아 나섰다.
“대장군, 폐하께서 사흘간은 집에서 반성하라고 하셨습니다. 나가시면 안 됩니다.”
“비켜라!”
육장봉의 몸에서 강한 기세가 확 뿜어져 나왔다. 육이는 강한 위압감을 느끼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래도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대장군, 월 낭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장군께서 지금 나타나면 소 승상 무리에게 약점을 잡힙니다. 그러면 폐하께서는 월 낭자께 화풀이할 겁니다.”
육장봉의 눈이 어두워졌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
“네가 한 번 가 보거라.”
“네, 대장군.”
육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뒤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한발이라도 늦었다가는 장군이 생각을 바꿀까 걱정되었다.
육장봉은 육이를 파견했지만, 직접 보지 않고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가면을 썼다.
그는 아무 인기척도 내지 않고 장군부에서 사라졌다.
* * *
소씨 가문에서 월령안을 고발한 것은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유칙은 늘 신중하게 행동했다. 관졸을 월씨 저택에 파견해 월령안을 체포한 다음, 또 몰래 사람을 보내 황제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
황제는 모처럼 한가했다. 손불사의 조언에 따라 난각에 앉아 있는 대신 어화원을 산책하려 했다.
그러나 몇 걸음 걷지도 못했을 때였다. 아직 후궁 한 명과도 마주치지도 못했는데, 이반반이 울상을 하고 와서 보고했다.
“폐하, 소 승상이 월령안을 고발해서 일이 좀 시끄러워졌습니다.”
“소 승상이 월령안을 고발했다고? 어찌 된 영문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