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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71)화 (371/1,004)

371화 너무 거창한 거 아냐?

최일은 눈을 내리깔았다. 눈 속의 웃음기를 숨기고 진지하게 말했다.

“폐하, 신이 받은 소식에 의하면 소 승상의 문인들에게는 월령안이 금나라와 거래한 증거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 사실로 월령안을 공격하려 합니다. 만약 그들이 성공하면 장군부도 그 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월령안이 금나라와 거래할 때는 대장군 부인이었으니까요.”

“소 승상의 문인들이…… 미쳤단 말이냐?”

황제의 표정이 금세 변했다. 더는 육장봉이 자신의 체면을 깎은 일에 대해서 따질 겨를이 없었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지요. 그들이 미친 듯이 월령안을 물어뜯어 죽이면, 다른 사람들도 쥐를 때려잡다 그릇을 깰까 두려우니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지금 소 승상의 문인들은 미친 쥐 떼와 똑같았다. 그들은 이런 광적인 방법으로 조정의 대신들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안 되면 이판사판 물귀신 작전으로 물고 넘어질 테니까 자신들에게 손을 대지 말라는 뜻이다.

“이자들이…… 참으로 괘씸하구나.”

황제는 탁자를 세차게 내리쳤다. 분노한 나머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장봉이가 이렇게 하면 그들을 짓누를 수는 있겠지만, 본인이 번거롭게 될 텐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늘 일로 장봉이를 탄핵할지 짐도 상상이 되는구나.”

“폐하, 대장군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면 폐하께서도 금군을 거두실 수 있잖습니까.”

육장봉이 사전에 말해 주지 않아도, 최일은 그의 생각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

육장봉은 조정의 대신들에게 탄핵당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일부러 ‘잘못’을 저질러 탄핵할 기회를 주었다.

확실히 영리한 방법이기는 했다.

황제에게는 강력한 군대를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대장군은 필요 없었다. 잘못도 저지르고, 적도 있는 대장군이라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게다가 육장봉이 정치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단지 개인적인 처신을 잘못했을 뿐이다.

여인을 위해 휴가를 내고 조회도 참석하지 않았다. 소문이 나더라도 영웅과 미인의 미담으로 전해질 뿐, 육장봉의 명성을 더럽힐 수는 없었다.

“혹시 육장봉과 미리 의논했느냐?”

황제는 금세 누그러졌다. 다행히 육장봉은 자기가 물러날 방법도 다 생각해 놓았다.

“네?”

최일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대장군이 사전에 폐하께 아뢰었습니까?”

“얼마 전에 짐에게 어서 사람을 찾아 금군을 인수하라고 제안했다.”

황제는 육장봉이 사전에 언질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절대 동의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방식은 너무 막무가내였다.

“대장군은 권세를 탐하지 않는군요. 고상하고 강직하니, 이는 조정 대신의 본보기입니다.”

최일은 진지한 표정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황제는 갑자기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군. 최일에게 물어보는 게 아니었는데.’

결국 육장봉의 불경죄를 다스리기는커녕, 오히려 큰 상을 내려야 할 판이 되었다.

‘장봉아, 이게 웬 날벼락이냐?’

* * *

정작 육장봉은 황제와 조정 대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휴가 신청서를 보낸 다음, 장군부의 친위대와 밤새 서둘러 정리한 마차를 끌고 월령안을 데리러 월씨 저택으로 갔다.

월씨 가문 하인들은 한밤중까지 바삐 보내다가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와 같이 일하고 있으면서도 다들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군부의 사람들을 보고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여러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소인이 아가씨를 모시고 오겠습니다.”

월씨 가문 하인들도 오늘 아가씨가 육 대장군과 함께 성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던 참이었다.

월령안도 일찌감치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느라 눈을 뜨자마자 진한 차를 한 주전자나 마셨다. 다만 눈가의 거뭇한 그림자는 숨길 수가 없었다. 특히 오늘은 흰옷을 입고 있어서 더욱 창백해 보였다.

“심 오라버니, 저 외출할 거예요. 좀 늦게 돌아올지도 모르겠네요. 바깥일은 수고스럽겠지만, 오라버니께서 좀 봐주세요.”

육장봉이 그녀를 위해 나서 주었기에 소 승상의 문인들이 그녀를 심하게 괴롭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잘한 훼방은 끊이지 않을 테니, 반드시 경계해야만 했다.

사실 육장봉이 함께 가 주지 않으면 광원사에 가서 어머니에게 제사 지내기도 힘들었다. 그것만 아니라면, 오늘 육장봉과 함께 광원사에 가겠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씨 가문의 일은 이제 시작이었다.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도 없고, 쉽게 외출할 수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보다 이상한 조짐이 있으면 최대한 빨리 알려 줄게.”

심민은 월령안의 걱정을 알고 있었다. 다른 일은 도와줄 수 없었다. 그로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을 힘이 닿는 데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도 심민에게는 크게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하인이 건네는 바구니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바구니 안에는 하인이 아침 일찍부터 준비한 제사 음식이 있었다.

지난번에는 광원사로 가는 도중 사고가 발생했다. 그 바람에 빈손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절만 했을 뿐,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니, 어머니를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월령안은 남의 손을 빌리는 대신 직접 바구니를 들고 앞뜰로 걸어갔다. 앞쪽 화원에 이르자, 검은 옷을 입은 육장봉이 뜰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서둘렀다.

육장봉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흰옷을 입은 월령안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가 맞이하려 했다. 그러나 막 한 걸음을 내디딘 순간, 바로 멈추고 제자리에서 그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월령안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월령안은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육장봉 앞에 이르렀다.

“대장군을…….”

“내게 주시오.”

육장봉은 손을 내밀어 다짜고짜 그녀의 바구니를 넘겨받았다. 또한 그녀가 예를 올리는 것도 저지했다.

“대장군, 감사합니다.”

월령안은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할 수도 없었다. 육장봉은 거의 빼앗다시피 바구니를 채 갔다.

“갑시다.”

그는 바구니를 들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월령안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웃고 싶었다.

‘바구니는 팔에 걸지 않고 그냥 들 수도 있다고 말해 줘야 하나?’

커다란 남자가 바구니를 팔에 걸고 있으니 정말 이상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으며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갔다.

월씨 저택 대문을 나서자, 위풍당당한 갑옷 차림의 병사들이 장창을 들고 두 줄로 서있었다. 얼핏 보아도 오륙십 명은 되어 보였다. 그들 앞에는 커다랗고 소박한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월 낭자를 뵙습니다.”

육이를 필두로 한 육씨 가문 친위대가 일사불란하게 말에서 내려 월령안에게 예를 올렸다.

월령안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거 너무 거창한 거 아냐? 광원사에 가서 어머니께 제사만 지내려는 건데, 육장봉이 왜 이렇게 공식적으로 행동하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다 데려가야 하나?’

오륙십 명밖에 안 되는 육장봉의 친위대는 수천수만 명이나 되는 듯한 기세로 외쳤다. 심지어 월령안은 자신이 육씨 가문의 여주인이 된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이 외침 하나로, 오늘만 지나면 온 변경의 백성이 다 알게 될 것이다. 육장봉이 조회에 참석하지 않은 건 그녀를 데리러 오느라 그랬던 것이라고.

‘육장봉은 나를 요녀(妖女)로 만들 생각인가?’

월령안이 고개를 들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마차 옆에 서서 그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자신이 함정에 빠져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마차로 걸어갔다.

마차 옆에 다다르자, 육장봉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부축해 주겠소.”

월령안은 육장봉을 흘끔 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팔에 걸친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건넸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육장봉이 그녀가 마차에 오르는 걸 부축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육장봉이 이처럼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그녀로서는 함정에 빠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육장봉이 준비한 마차는 딱 두 사람이 앉을 만한 크기였다. 또한 여분의 말도 준비하지 않았다. 월령안이 마차에 오르자, 육장봉도 그 뒤를 따라 올라탔다.

“출발!”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마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월령안은 철썩, 하는 소리를 들었다. 뒤이어 일사불란한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만 들어도 이들이 얼마나 잘 훈련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성을 나가는데 이렇게 거창하게 행동하다니. 늘 조용하게 행동했던 월령안으로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요녀라는 악명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마차는 송취 골목을 지나 북적거리는 거리로 나갔다.

육장봉의 친위대는 변경에서도 꽤 유명했다. 게다가 육장봉이 이처럼 거창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 바람에 마차가 송취 골목에 들어설 때부터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 제법 많은 사람이 밖에 지키고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마차가 나오자마자, 한가한 구경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봤어. 육 대장군이 월 가주를 부축해 마차에 올라탔어. 둘이 같은 마차에 탔다니까.”

“대장군이 아침 일찍부터 월씨 저택으로 데리러 왔는데 뭐 하러 가는 걸까?”

“마차가 별로 크지도 않은데 남자와 여자가 같이 타서, 설마…….”

“그런데 오늘 대조회 날이 아닌가? 대장군은 조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누가 알겠나?”

마차 안에 있던 월령안은 거리의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육장봉을 묵묵히 흘끔 보았다.

‘날 한번 난처하게 한 거로 모자라나? 도대체 몇 번을 더 난처하게 하려는 거야?’

이번만큼은 정말 해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꼭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육장봉이라는 뒷배가 있는 한, 주나라에서 더는 조심할 필요 없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흠흠…….”

육장봉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광원사에 도착할 때까지 한 시진 남짓 걸릴 거요. 왜탑에서 좀 쉬는 게 어떻겠소?”

육장봉은 월씨 저택에 오기 전에 이미 암위의 소식을 받았다. 어젯밤 조계안이 월씨 저택에 다녀갔으며, 그 바람에 월령안이 간밤에 별로 자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기회도 아니었다.

“좋아요.”

월령안은 잠을 보충해야 할 정도로 피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육장봉 때문에 난처해진 걸 생각하니, 지금은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고 말 한마디 없이 서로 어색하게 있느니 자는 척하는 게 나았다. 그녀도 이 핑계로, 난처함 때문에 죽고 싶은 심정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월령안은 마차의 왜탑에 기대어 두 눈을 살짝 감았다. 머릿속에는 육장봉이 변경에 돌아온 뒤의 이런저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처음에는 생각할수록 정신이 또렷했으나, 저도 모르는 사이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육장봉은 그녀가 부담을 느낄까 봐 줄곧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월령안이 깊은 잠에 빠진 순간, 그는 가볍게 웃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한쪽에 있던 얇은 담요를 그녀의 몸에 덮어 주었다.

월령안은 그와의 관계를 청산하려는 모양이지만, 평생 어림도 없을 것이다.

육장봉은 담요를 덮어 준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도 마차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마차는 여유로운 속도로 달려나가, 곧 성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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