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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70)화 (370/1,004)

370화 육장봉의 휴가 신청서

그러나 다음날 조회에서는 황제가 예상했던 치열한 광경은 벌어지지 않았다.

조회 내내 대신들은 대단히 조용했다. 월령안을 탄핵하러 나서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녀가 돈을 뿌려 소씨 가문을 추어올린 일을 꺼내는 사람도 없었다.

‘소 승상의 문인들이 이렇게 배짱이 없나?’

황제는 어사대의 사람, 호부상서며 이부상서 등을 번갈아 보았다. 이 두 부서의 사람 대부분은 소 승상 일파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아무 소리도 없는지 궁금했다.

‘참, 그러고 보니 장봉이는 어디 있지?’

황제는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나서야, 비로소 육장봉이 오늘 조회에 출석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황제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장군은 어디 있느냐?”

“으음…….”

원래 조용하던 대전이 한순간에 쥐 죽은 듯이 더 조용해졌다.

‘어찌 된 영문이지? 내가 모르는 일이 생겼나?’

황제는 이반반을 바라보았다. 이반반 역시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도 줄곧 황제의 곁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흠흠…….”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를 물은 꼴이 되었다. 황제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한마디 했다.

“아무 일이 없으면 조회를 끝내도록 하라.”

이 말을 들은 이반반은 높은 목소리로 복창했다.

조정을 가득 메운 대신들은 모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만 내려다보았다.

황제는 볼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또 한 번 문무백관 앞에서 최일을 지명하여 난각으로 따라오라고 분부했다.

최일은 몰래 피식 웃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여러 원로 대신의 탐색하는 눈길을 오롯이 받아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여유롭게 황제의 뒤를 따랐다.

‘내가 폐하께 총애를 받는 것뿐인데, 뭘 어쩌겠어?’

황제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난각에 도착하자마자 앉기도 전에 물었다.

“최일, 오늘 어찌 된 영문이냐? 어사대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말을 하지 않은 거냐? 혹시 자기들끼리 짐이 모르는 협의라도 했단 말이냐?”

‘내가 어제 전해 받은 정보가 잘못됐나? 소 승상의 문인들은 월령안에게 손을 쓸 생각이 없는 건가?’

* * *

월령안이 사는 송취 골목은 바로 천자의 발치, 황궁에서 반 시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 주변에는 수많은 관리가 살고 있었다.

육장봉의 장군부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장군부는 황궁과 불과 이각 거리에 있었으며, 황궁과는 동일 선상에 있었다. 주변에 사는 사람도 모두 고위 관리나 귀인들로, 하나같이 신분이 고귀하고 실권을 쥐고 있었다.

오늘 새벽, 날이 채 밝기도 전부터 장군부는 야단법석을 떨었다. 병사들은 횃불을 들고 말을 탄 채 줄줄이 대열을 짓더니, 마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늘어섰다.

“어떻게 된 일이야?”

“오늘은 대조회가 열리는 날이 아닌가? 장군부에서 왜 저러지? 웬일로 마차가 나왔을까? 대장군은 평소에 말을 타고 다니시는데?”

장군부 주변에는 대부분 무장이 살았다. 그들도 다 말을 타고 다녔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다 보니, 아직 잠이 덜 깬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장군부의 광경을 본 순간, 모두 잠에서 확 깼다.

“설마 대장군께서 다쳐서 말을 못 타시는 건가?”

주나라에서 무장으로 살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육장봉은 젊었지만, 군공이면 군공, 출신이면 출신까지 모두 갖추었다.

그는 변경에 돌아온 뒤, 관리나 무장을 따로 포섭하려 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변경에 있는 무장들은 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를 따랐다.

장군부에서 마차가 나오자, 지나가던 무장들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잇달아 말에서 내려 장군부의 시위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었다.

하지만 묻고 난 이들은 모두 떨떠름해졌다.

‘난 누구지? 지금 여긴 어디지? 내가 뭘 하는 걸까?’

무장들은 ‘장군부’라고 쓰인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또 엄숙한 표정의 시위, 들락날락하느라 바쁜 집사와 하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기가 어떻게 그 자리를 떠났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지금은 그저 조용히 있고 싶을 뿐이었다.

무장들은 얼떨떨한 상태로 궁문 앞으로 갔다. 한참이 지나도록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대전에 들어간 대신들은 맨 앞에 서 있어야 할 육 대장군이 없는 걸 알아차렸다. 누군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물었다.

“대장군은 왜 안 오셨는가? 대장군은 항상 시간에 철저하셔서 절대로 늦는 법이 없는 분인데.”

“오늘은 대조회인데, 늦게 도착하면 불경죄가 아닌가. 어서 궁문 입구에 가보게. 대장군이 어디까지 오셨으려나?”

장군부를 지나쳤던 관리들은 그 말을 듣자, 하나같이 얼굴빛이 싹 변하더니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켰다.

결국, 이제까지 꾹 참고만 있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대장군은 오늘 아마 조회에 나오지 않을 것 같소.”

“조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대장군이 휴가를 내셨단 말이오?”

무장들은 이부의 관리를 바라보았다.

이부의 관리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내관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대전에 들어왔다.

“주(周) 상서, 대장군께서는 오늘 조회에 참석하지 못한답니다. 이건 장군부에서 보내온 휴가 신청서입니다. 상서께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대장군이 휴가를 낸다고? 이런 때에?”

이부의 주 상서는 떨떠름했지만, 내관의 손에서 휴가 신청서를 받아 들었다.

문신들은 주 상서 주위를 슬그머니 둘러섰다. 특히 소 승상의 문인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대인, 좀 봅시다……. 대장군이 뭐라고 쓰셨소?”

‘육 대장군이 못 오면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품속에 따로 준비한 상소문을 움켜쥐었다.

그들은 원래 월령안을 탄핵하려 했다. 탄핵하는 이유는 그녀가 육씨 가문에 있는 삼 년 동안, 권세를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고, 불법으로 장사했으며,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월령안이 금나라와 거래한 것을 구실로, 적국과 결탁하고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죄명을 씌우려 했다. 철저히 월령안을 죽일 셈이었다.

뜻밖에도, 어제 육 대장군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보란 듯이 사람을 보내 월령안에게 끊임없이 선물을 보냈다. 진시에서 자시까지 반 시진마다 하나씩, 특히 맨 마지막에는 육 대장군이 직접 월씨 저택으로 찾아갔다. 그가 월령안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운 것처럼 말이다.

육 대장군이 이처럼 야단법석을 피우니, 그들은 인정하기 싫어도 확실히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감히 장군부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계획을 임시로 변경했다. 월령안이 돈을 미끼로 백성을 선동하여 소란을 피워, 나이가 들어 은퇴한 관리를 모욕한다는 죄명으로 바꾸었다.

전자에 비하면 후자의 죄명은 훨씬 작았다. 하지만 오늘 그들의 목적은 일단 간만 보는 데 있었다. 효과가 좋으면 다시 이 일을 크게 벌이려고 했다. 민심을 매수하는 걸 보면 보다 큰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여 죄명을 더 뒤집어씌울 셈이었다.

소 승상의 문인들은 원래 이 정도로 물러나는 게 내키지 않던 참이었다. 지금 육 대장군이 휴가를 요청한다는 내관의 말에, 하나같이 다시 움직이려 했다.

육 대장군이 자리에 없는 오늘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주 상서의 손에 들린 휴가 신청서를 보자, 그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이상해졌다. 마치 똥이라도 먹은 듯,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

맞은편에 있던 무장들은 그 모습을 보자 조급해졌다.

“대장군이 왜 휴가를 냈는데?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 건가? 좀 말해 보시오.”

“이렇게 느려터져서야 원. 댁들을 기다리다 답답해 죽겠구먼. 내가 직접 봅시다.”

대담하고 성급한 사람 하나가 직접 앞으로 다가가 주 상서의 손에서 휴가 신청서를 빼앗았다.

주 상서는 아무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손에 든 휴가 신청서를 빼앗겼다. 다시 찾아가려고 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휴가 신청서를 가로챈 무장이 높은 소리로 외쳤다.

“이게 뭐야. 대장군이 월씨와 함께 전 장모의 제사를 모실 거라는데? 이건…… 이 전 장모와 대장군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대장군이 전 장모를 위해 휴가를 내고 조회에 안 나오다니?”

장군부를 지나쳤던 무장들은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장군께서는 참 호기로우시군!’

그들은 대장군이 무슨 핑계라도 대서 이 일을 감출 줄 알았다. 뜻밖에 대장군은 강직하게 대놓고 말했다.

‘탄복할 수밖에 없구나!’

“전 장모라고? 이리 주시오. 나도 좀 봅시다…….”

주위에 있던 무장들은 급한 성미를 이기지 못해 앞다퉈 휴가 신청서를 낚아챘다.

그 모습을 본 주 상서는 깜짝 놀라 자기도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이리 주시오. 뺏지 마시오……. 대장군의 휴가 신청서는 이부에 자료로 남겨야 합니다. 돌려주십시오!”

한차례 쟁탈전을 겪은 뒤, 육 대장군이 쓴 휴가 신청서는 찢어지고 말았다.

주 상서는 여러 조각이 난 휴가 신청서를 바라보았다. 화가 나서 표정이 언짢아졌다.

“휴가 신청서가 이렇게 찢어졌는데 내가 어떻게 자료로 남기겠소! 당신들이 대장군에게 가서 다시 쓰라고 할 거요?”

“나는 상관없소. 난 만지지도 못했네.”

“나도 상관없네. 만지기는 했지만, 대장군의 휴가 신청서를 찢은 건 내가 아닐세. 저 사람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빼앗아서 찢어진 거라니까.”

무장들은 너도나도 손을 벌려 보이며 자기 위치로 물러섰다. 다들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자기가 한 짓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주 상서는 화가 치밀었다. 그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내관이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황제 폐하 납시오.”

주 상서는 감히 조회에서 소란을 피울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저 꾹 참고 일단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육 대장군의 휴가 신청서를 본 소 승상의 문인들은 모두 얼이 빠졌다. 심지어 황제가 올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육 대장군이 이렇게까지 월령안을 보호하는데, 우리가 월령안을 죽이려 든다면 육 대장군은 우리를 그냥 죽이겠지?’

소 승상의 문인들은 품속의 상소문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상소문도 묵묵히 도로 집어넣었다.

이 일은 돌아가서 소 승상과 다시 의논해야 했다. 아무튼 며칠 뒤면 또 대조회가 있을 테니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전혀 급하지 않았다.

* * *

육장봉은 조회가 열리기 일각 전에 보란 듯이 주 상서에게 휴가 신청서를 전달했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도, 황제의 문책도 두렵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었다.

또한 그때는 조정의 문무백관이 모두 한자리에 있었다. 최일이 육장봉을 위해 숨겨 주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황제가 묻자, 전부 사실대로 말하고 한마디도 숨기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황제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겨우 말문을 열었다.

“월령안과 함께 전 장모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휴가를 내고 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게다가 보란 듯이 문무백관의 앞에서 휴가 신청서를 내다니. 이 행동은 짐을 좀 무시하는 게 아니냐?”

최일은 황제를 힐끗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폐하도 참, 관대하시군. 이게 어디 ‘좀’ 정도인가? 이건 완전히 무시한 꼴인데.’

황제가 조용히 물었다.

“짐이 불경죄를 묻지 않으면, 체면이 너무 깎일까?”

최일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황제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장봉이도 좀 조용히 하면 어디가 덧난단 말이냐? 다른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더냐? 아니면, 조회가 끝난 다음 가면 될 게 아니냐!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짐의 체면을 무시한 이상, 짐도 그대로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황제였고, 체면을 지켜야 했다.

오늘 육장봉은 정말이지 그의 체면을 제대로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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