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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69)화 (369/1,004)

369화 월령안이야 당연히 훌륭하죠

월령안은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조계안이 거만하게 상석에 앉아 두 발을 탁자 위에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야말로 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인.”

월령안은 등롱을 한쪽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가 조계안에게 예를 올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기러기들이 야단법석을 떨던데……. 왜, 내게 기러기 요리라도 대접할 셈이냐?”

조계안은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 사이로 보이는 눈에서는 음침하고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

월령안은 살짝 웃음소리를 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웃으며 물었다.

“대인께서는 어떤 요리를 좋아하세요? 양념에 볶아 드시는 걸 좋아하나요, 구워 드시는 걸 좋아하나요?”

“볶아서, 졸여서, 찜으로, 삶아서…… 골고루 한번 다 먹어 보고 싶은데, 어쩌지?”

조계안은 실눈을 뜨고 말했다.

“처음에 온 한 쌍은 안 돼요. 다른 건 대인께서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역시, 육장봉이 생일선물을 보낸 일 때문에 왔군.’

육장봉이 이렇게 소란을 피웠다. 황궁 사람들이 소식을 듣지 못했으면 모를까. 이 일을 알고서도 묻지 않을 리는 없었다.

육장봉의 오늘 행동은 황제의 기대에 전혀 부합되지 않았다. 황제는 그녀와 육장봉이 서로 미워하고, 경계하기를 바랐다.

“처음에 온 한 쌍은 왜 안 돼?”

조계안은 단박에 화가 나 다리를 거두고 똑바로 앉았다. 두 손으로 탁자를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압박하는 듯한 자세로 캐물었다.

월령안은 조계안의 기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저 진지하게 말했다.

“처음 한 쌍은 최 대인이 사셨거든요. 저는 신용이 있는 상인이니, 돈을 내신 분에게 넘겨주어야 해요.”

“육장봉이 보내 준 기러기를 팔았다고?”

조계안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 탁자를 내리치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최일, 참 잘했어. 역시 내 친구답군.’

“제게 선물했으면 제 것이잖아요. 제가 못 팔 이유가 있겠어요?”

월령안은 웃으며 되물었다.

‘나와 육장봉이 서로 미워하는 걸 보고 싶은 거잖아? 그럼 황제의 바람대로 황제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만이지.’

“되지. 물론 되지. 되고말고.”

조계안은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크게 웃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한 쌍에 얼마냐? 싸면 나도 몇 마리 사련다.”

‘하하하핫! 육장봉에게도 오늘 같은 날이 있구나! 그러게 월령안은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했잖아. 생일선물을 벌충해 준다느니, 기러기를 보낸다느니, 그런 짓거리로는 평범한 여인들이나 달랠 수 있겠지. 월령안은 절대 넘어가지 않아.’

조계안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를 통해 월령안은 그녀의 대처가 옳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았다. 눈에 떠오른 비웃음을 감추고 짐짓 진지하게 말했다.

“산 기러기는 구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저도 이번에 받은 기러기가 너무 많군요. 비싸게 팔 수는 없으니, 최 대인과 같은 가격으로 한 쌍에 백 냥으로 하죠.”

기러기의 가치는 기러기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다. 기러기의 의의와 상징에 있었다.

기러기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계안이 사고 싶어 하면 팔면 그만이지. 돈 벌 기회가 있는데 벌지 않는 건 멍청한 짓이야.’

“아직 열일곱 쌍이 남았지? 내가 다 사마.”

조계안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조금이나마 서운한 기색을 찾아보려 했다.

참 기쁘게도, 그녀에게는 조금도 서운한 기색이 없었다. 심지어 주저하지도 않고 흔쾌히 대답했다.

“되고말고요! 사람을 시켜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직접 가지고 가실 건가요?”

“다 죽이라고 해라. 손수 가지고 가겠다.”

조계안은 차가운 목소리로 냉혹하게 말했다.

월령안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평온하게 말했다.

“네. 지금 준비하라고 이르지요.”

조계안은 몇 초 동안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눈길을 피하지 않자, 갑자기 엄숙하게 말했다.

“아주 훌륭하구나.”

‘어느 방면이든 다 훌륭해.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똑똑하지.’

오늘 밤 월령안의 처사는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만큼 훌륭했다. 동시에 황제도 이 결과를 마음에 들어 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일 조회에서는 아무도 월령안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소 승상의 문인들은 고사하고, 소 승상이 아직 그 자리에 있더라도 소용없었다.

이런 월령안이야말로 바로 황제가 원하는 월령안이었으니까.

월령안은 웃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실용주의자였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물건은 실제로 다가오는 이익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고작 기러기 열일곱 쌍일 뿐이다. 이것은 육장봉이 그녀에게 청혼하며 보낸 기러기가 아니었다. 설령 그가 청혼하며 보낸 기러기라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황제의 의심과 조계안의 불만을 해소해 주기만 한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팔 수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현실적이었다.

그때, 월씨 가문의 하인이 고기죽과 간식을 가지고 와 서재의 긴장된 분위기를 깨뜨렸다.

월령안은 하인을 바로 들이지 않고 먼저 물었다.

“많이 늦었는데, 대인이 시장하실 것 같아 음식을 좀 준비했습니다. 대인, 좀 드시겠습니까?”

어차피 아까 육장봉에게 주려고 요리했던 것 중에 남은 것이라, 크게 돈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이로써 조계안을 흔쾌히 보낼 수 있다면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한 것이었다.

“좋아.”

조계안은 월령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짓누르던 위압감도 거두어들였다.

월령안은 여전히 전혀 변함없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계안의 기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조계안은 살짝 실망했지만, 은근한 기쁨이 더 컸다.

월령안은 변함없이 냉정하고 자제력이 강했다. 육장봉의 얕은 수작 따위에 감동하지 않았다. 육장봉의 행동 때문에 평정심을 잃지도 않았다.

‘육장봉도 헛수고했구나! 고소하군!’

월씨 저택에서 야식을 먹은 조계안은 심신이 모두 편해졌다. 원래 눈꼴사납던 것들도 이제는 봐줄 만했다.

기분이 좋아진 조 대인은 자비를 베풀었다. 월씨 가문의 주방장에게 한밤중에 기러기를 잡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곧바로 육장봉의 암위를 가리키더니, 그 열일곱 쌍이나 되는 기러기를 자기 집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암위는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조왕 전하는 한바탕 날 때리고서도 기분이 풀리지 않으신 건가? 대장군께도 한바탕 맞으라는 거야? 참, 해도 너무하는군.’

암위는 고통스러웠지만, 조왕의 주먹이 겁이 나 감히 거절하지도 못했다. 다만 월령안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그녀가 한마디라도 자기를 감싸 주기를 바랐다.

날이 어두워서인지, 아니면 암위의 눈빛이 분명하지 않아서인지 월령안은 그의 ‘소리 없는 부탁’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흔쾌히 조계안의 요구에 동의했다. 어차피 그녀의 힘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겨우 조계안을 보내자, 월령안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하품을 했다. 방에 돌아가서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뻗어 버렸다.

* * *

반면, 조계안은 달랐다. 월씨 저택에서 나왔지만, 기분이 상쾌하고 기운이 넘쳐 잠이 싹 달아났다. 황궁으로 돌아와서도 흥분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조계안은 황제의 침궁으로 쳐들어가 황제를 잠자리에서 끌어내었다.

황제에게 침궁으로 후궁을 불러다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는 습관이 없으니 망정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서로에게 민망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늦은 시간에 뭐 하는 거냐? 짐은 잠시 후에 조회에 나가야 한다. 할 말이 있으면 빨리해라.”

황제는 조계안이 용상(龍床 – 황제의 침상)에서 끌어내는 바람에 영 개운하지 않았다. 그는 이불을 끌어안고 용상에 앉아 하품을 연발했다. 조계안이 아무리 잡아당겨도, 손에 쥔 이불을 놓지 않고 용상에서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조계안도 개의치 않았다. 신발을 벗어 던지더니 책상다리를 하고 황제의 맞은편에 앉았다.

“제가 육장봉과 월령안을 찾아갔어요. 육장봉, 그 비열한 자식은 말도 마세요. 금군에게 저를 사로잡으라고 했다니까요.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월령안을 다시 봤다니까요. 육장봉의 공세를 막아내고, 그 자식의 정성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어요. 역시 밖에 있는 천박한 속물들하고는 다르더라고요.”

“월령안이 어쨌길래?”

월령안의 이름이 나오자, 황제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변이 없다면, 잠시 후에 열릴 조회의 주인공은 월령안이었다. 그녀의 이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이야 당연히 훌륭하죠.”

조계안은 득의양양해서 입을 열었다. 황제가 묻기도 전에 월령안과의 대화를 낱낱이 털어놓았다.

황제는 그 말을 듣자, 한순간 자기가 잠이 덜 깬 건 아닌지 의심했다.

“뭐라고? 장봉이가 선물한 기러기를 모조리 팔았다고? 그것도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고?”

‘월령안도 참, 남의 호의를 너무 무시한 거 아닌가? 장봉이가 자기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조금도 감동하지 않았다고?’

“그럼요!”

조계안은 황제를 흘깃 보더니 차갑게 비웃었다.

“육장봉도 참, 월령안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준 주제에 그깟 기러기 몇 쌍만 가져다주면 마음이 풀릴 거라고 생각하다니. 월령안을 너무 얕잡아 본 거죠.”

“하지만 월령안도 너무 냉정하구나. 장봉이가 산에서 온종일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찾아다녔다는데. 설령 마음이 풀리지 않았더라도, 장봉이의 호의를 짓밟아서는 안 되지.”

황제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흥!”

조계안은 거드름을 피우며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황형 말대로라면 육장봉이 훨씬 더 냉정하지 않나요? 삼 년 동안 월령안이 육장봉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이제는 말도 하기 귀찮네요. 말하더라도 황형은 육장봉은 아무것도 몰랐으니 탓할 수 없다고 할 테니까요.

그럼 어디 육장봉이 아는 것만 이야기해 볼까요. 그 삼 년 동안 월령안은 육장봉의 아내로서 매달 전선에 편지, 옷가지, 약, 음식을 보냈어요. 그런데 육장봉은 월령안의 물건을 삼 년 동안 받아 놓고 여기에 어떤 응답이라도 했나요? 이혼할 때 안 된다는 말 한마디라도 했어요?”

“그건 네가…….”

“모두 제 탓이라고 말하지는 마시지요. 육장봉이 부부간의 정을 염두에 두고, 월령안의 장점을 기억해 두었더라면 이혼을 부정할 수도 있었어요. 본인이 거리에서 부정하면 누가 강요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조계안은 경멸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없이 오만한 태도로 자기 생각을 견지했다.

황제는 탄식했다.

“그 당시 상황은 너나 나나 모두 잘 알고 있잖느냐. 장봉이도 부정할 수가 없었어.”

“이러나저러나, 육장봉이 월령안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으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란 말입니다.”

조계안은 여전히 자기 생각을 고집스럽게 말했다.

황제는 아무리 말해도 조계안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됐다. 시간도 늦었으니 여기서 잠이나 자라.”

황제는 모래시계를 힐끔 보았다. 조회까지는 아직 한 시진이나 남았다. 더는 조계안과 실랑이하기 싫었다.

‘아무튼 서로 설득할 수 없으니 그냥 이렇게 해야지. 잠깐, 계안이는 일부러 나를 깨워 월령안의 태도를 전했지. 무슨 의도였을까?’

황제는 잠들기 전 흐리멍덩한 머리로 이 문제를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기도 전에 졸음이 몰려와 잠들고 말았다.

‘모르겠다. 무슨 큰일이든지 간에 조회 때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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