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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68)화 (368/1,004)

368화 육장봉, 이 비열한 자식!

육장봉은 말을 달려 송취 골목을 빠져나가던 중 갑자기 멈춰 섰다.

“나와라!”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고 은 가면을 쓴 조계안이 걸어 나왔다. 그는 육장봉의 앞을 막아서더니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기러기 열여덟 쌍, 생일선물 열여덟 개. 현음 고모의 물건까지 다 내놓다니. 육장봉,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

“너하고 무슨 상관이냐?”

육장봉이 비웃듯이 말했다.

“네가 나한테 일을 만들어 주는데 그래도 나하고 상관없나?”

조계안은 냉소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육장봉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탄 말은 불안하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육장봉도 싸늘하게 웃었다.

“네가 하지 않으면 되잖나.”

“잠한성이 키운 그놈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안 할 수 있겠어?”

조계안은 이를 갈며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이놈이 고의로 이런 거겠지? 작정하고 날 노린 거잖아?’

“앞으로는 일을 보태 줬다고 하지 말고, 도와줘서 고맙다고 해라.”

육장봉은 의도적으로 잠한성의 사람을 보내 조계안을 잡아 뒀던 것이 잘못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능력을 발휘했을 뿐이다.

조계안은 화가 치밀어 이를 악물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사람도 네가 잡아 두었지?”

그는 부하를 보내 육장봉의 동향을 알아보려 했다. 그런데 부하는 지금까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놈은 좀 약하더군.”

그자는 제대로 손을 써 보기도 전에 육일에게 들켰다.

이게 어디 육장봉의 탓이겠는가.

“그렇다면 한판 붙자!”

조계안은 실소하더니 검을 빼들고 육장봉을 겨누었다.

‘육장봉,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오늘 피를 보지 않고는 분이 풀리지 않겠구나!’

육장봉은 이틀 밤낮을 한시도 쉬지 않고 야외를 뛰어다니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한 상태였다. 조계안은 하루 동안 잠을 자고 기운을 회복했지만, 아직 상처가 채 낫지 않아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지금 두 사람은 피장파장이었다. 누가 더 유리하고 불리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계안이 검을 뽑자, 육장봉도 물러나기는커녕 바로 말에서 뛰어내려 공격을 받아냈다.

챙! 챙!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혔다. 조계안은 육장봉의 공격에 끊임없이 뒤로 밀려났다. 손에 든 검도 육장봉의 검날을 따라 아래로 미끄러졌다.

카카캉!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겼다.

조계안의 손에 들린 검이 육장봉의 검 자루까지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는 육장봉의 검을 힘껏 밀쳐 냈다.

캉!

두 사람은 엄청난 충격에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조계안은 돌담에, 육장봉은 문틀에 부딪혔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몸을 추슬렀다.

다그닥, 다그닥…….

바로 그때, 순찰하던 금군이 기척을 듣고 달려왔다.

금군은 즉시 두 갈래로 나뉘어 조계안과 육장봉을 에워쌌다.

“대장군?”

육장봉을 에워쌌던 금군은 그를 알아보자, 즉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조계안은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었다.

주나라의 조왕은 줄곧 비밀에 싸인 인물이었다. 조정의 일품 고관들이나 그의 정체를 아는 정도였다. 평범한 금군은 그의 소문만 들었을 뿐, 본인을 본 적이 없었다.

금군은 장창으로 조계안을 겨누며, 언제든 그를 잡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조계안은 금군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꼿꼿이 선 자세로 오만하게 말했다.

“꺼져!”

그때, 육장봉이 금군에 명령을 내렸다.

“저자를 잡아들여라!”

“네, 대장군.”

금군은 명령을 듣자, 즉시 조계안을 공격했다.

“육장봉, 이 빌어먹을 자식이!”

조계안은 육장봉이 금군에 자신을 잡아들이라고 명령을 내릴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 방어도 하지 않고 있다가 금군의 장창이 날아들자 가까스로 피했다.

육장봉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검을 거두고 말 등에 뛰어올랐다. 금군에 포위된 조계안을 무시한 채, 그의 눈앞에서 말을 타고 가 버렸다.

“육장봉, 이 개자식! 너는 사람도 아니야!”

육장봉이 도망쳐 버리자, 조계안은 잔뜩 화가 나서 욕을 퍼부었다. 바로 금군을 따돌리고 육장봉을 뒤쫓으려 했다.

그러나 육장봉의 강경한 수완에 군기가 바짝 든 금군은 죽기 살기로 그의 명령을 수행했다. 조계안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쉽게 도망가게 두지는 않았다.

조계안으로서도 금군을 죽일 수는 없었다. 바로 몸을 뺄 수가 없게 되자 울화가 치밀었다.

“육장봉, 명심해! 이 일은…… 끝나지 않았어!”

조계안에게 들려온 대답은 육장봉이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떠나가는 소리뿐이었다.

조계안은 꽤 애를 쓰고 나서야 금군을 따돌렸다. 하지만 그때쯤 육장봉은 이미 장군부로 돌아간 뒤였다.

“비열한 자식! 네놈이 이렇게까지 비열한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조계안은 검을 거두고 화가 난 채로 황궁으로 돌아갔다.

황궁 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침궁으로 돌아온 조계안은 적막한 실내를 둘러보며 말하기 힘든 갑갑함을 느꼈다. 그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자리에 앉았지만, 곧 다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조계안의 궁에 있는 내관은 그가 씩씩대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감히 앞으로 다가가지도 못했다. 그저 한쪽으로 물러나 조계안에게 길을 내주었다.

조계안은 성큼성큼 황궁을 나섰다. 궁문을 빠져나오자마자 곧장 송취 골목으로 달려갔다.

그는 첫발을 잘못 디뎠다.

일이 이미 이 지경이 된 이상, 육장봉을 찾아가서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월령안을 찾아가야 했다. 그녀가 육장봉의 공세에 감동했는지를 물어봐야 했다.

“육장봉, 이 비열한 자식! 간사한 놈!”

육장봉이 월씨 저택에 보낸 기러기 열여덟 쌍과 생일선물 열여덟 개만 떠올리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육장봉은 권세면 권세, 용모면 용모 모두 갖추었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았다. 이 세상에 어느 여인이 거절할 수 있겠는가.

월령안이 원래 육장봉을 좋아했다는 점은 둘째치자. 조계안조차도 육장봉이 그녀를 위해 열여덟 가지나 되는 선물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자, ‘육장봉이 정말 심혈을 기울였구나’라고 한마디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마저도 감동했는데 이 세상에 육장봉에게 감동하지 않을 여인이 어디 있을까.

“뭐가 공정한 경쟁이야? 다 거짓말이야. 이게 어딜 봐서 공정해.”

조계안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낮에 내가 왜 잤을까? 육이가 찾아왔을 때, 분명 어딘가 수상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왜 직접 조사하지 않고 부하를 보냈지?’

“육장봉, 기다려라. 네 얼굴을 현음 고모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두들겨 주지 않으면 내가 성을 갈겠다!”

조계안은 부글부글 치밀어 오르는 노기를 한가득 안고 월씨 저택을 찾았다.

월령안은 이미 잠자리에 든 뒤였다.

조계안도 다른 일이었다면 하룻밤을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 사건만큼은 일각조차 기다릴 수 없었다.

조계안은 그를 가로막는 암위를 물리치고는 오만하게 명령했다.

“월령안에게 나를 보러 나오라고 해라.”

“전하, 밤이 깊었습니다. 월 낭자는 이제 겨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암위가 설득하려 했다.

조계안은 코웃음을 치며 거만하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만나겠다고 하면 잠든 게 아니라 기절했다고 해도 기어 와야 할 것이다.”

‘월령안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늦게 자는데? 내가 왜 배려해 줘야 하는데!’

그로서는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전하…….”

암위는 계속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입을 연 순간, 조계안이 발로 걷어찼다.

“육장봉의 부하가 나까지 간섭하려 드는 거냐.”

암위는 벽에 날아가 부딪히고는 거칠게 떨어졌다. 그는 땅바닥에 엎어진 채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대인, 고정하십시오. 소인이 아가씨를 모셔오겠습니다.”

집사는 조계안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부랴부랴 달려왔더니 조계안이 암위에게 손을 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자 잠시도 지체하지 못하고 서둘러 말했다.

“드디어 눈치 있는 놈이 나왔군. 어서 빨리 가지 못할까!”

조계안은 포악하기 그지없었지만, 육장봉의 부하에게만 그랬을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대인,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소인이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집사는 조계안이 또 손을 쓸까 두려워 급히 뒤뜰로 달려갔다.

조계안은 뒷짐을 지고서 여유롭게 암위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의 등을 꾹 밟았다.

“네가 오늘 월씨 저택에 있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라. 내가 월씨 저택에서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거든. 그게 아니라면 너희 장군이 내게 기어오른 것만 가지고도, 난 너를 능지처참할 수 있다.”

육장봉이 그의 사람을 잡아 두고, 금군에게 그를 포위 공격하게 했다. 조계안은 이것만 가지고도 육장봉의 암위를 죽일 수 있었다. 그땐 육장봉도 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숨을 살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암위는 쓴웃음을 지었다. 감히 불만을 가질 엄두도 못 냈다.

그는 오늘 줄곧 월씨 저택에 있었다. 조왕과 장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왕이 장군의 계략에 당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야 장군이 이렇게 요란하게 월 낭자에게 선물을 보내느라 소문이 자자했는데, 황제가 사람을 파견하여 묻지도, 막지도 않았을 리가 없었다.

‘장군도 참…… 너무 영리하시군. 나만 좀 힘들게 됐을 뿐이구나.’

암위로서 장군의 부인을 보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장군을 위해 누명까지 뒤집어써야 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 * *

육장봉이 이틀 밤낮을 힘들게 보냈다지만, 월령안도 온종일 편치 않았다.

온종일 울고 웃느라 감정 기복이 극심했다. 무너질 뻔한 적도 여러 번이다 보니 진이 다 빠졌다.

아까 침대에 누웠을 때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 마음속으로 되뇌다 보니, 엎치락뒤치락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는 육장봉이 떠나서 일도 마무리되었다. 더는 버티지 못했다. 온몸에 쌓인 피로가 밀물처럼 밀려와 침상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창 단잠을 자는데 갑자기 누군가 깨웠다.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가만 안 있을 거야!”

하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조 대인께서 오셔서 당장 만나자고 합니다.”

“조계안. 이 한밤중에…… 그 인간은 사람을 못살게 굴지 않으면 어디가 덧난다니?”

월령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불쾌하긴 했지만, 굳어진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물을 준비해라. 씻어야겠다.”

일각 뒤, 월령안은 간단하게 단장하고 밖으로 나갔다. 처소를 나서자, 밖에서 지키고 있던 집사가 말했다.

“아가씨, 조 대인께서 언짢으신 듯합니다. 암위에게 손을 댔습니다.”

월령안은 걸음을 멈추었다.

“육장봉이 보낸 암위에게?”

“맞습니다.”

집사는 얼굴에 걱정스러움을 내비치며 불안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도 다치게 했는가?”

월령안의 얼굴빛도 어두워졌다.

집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닙니다. 조 대인은 대장군이 보낸 암위만 때리셨습니다.”

“알겠다.”

월령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먹을 것을 좀 올리게……. 참, 조 대인은 어디 계시지?”

조계안이 암위에게 손을 댄 원인은 대충 짐작이 갔다.

육장봉에게 당하고 화가 났지만, 정작 본인을 찾지 못하자 암위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리라. 큰일도 아니었고, 월씨 가문을 겨냥한 것도 아니었다.

집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아가씨, 조 대인은 안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들 하나같이 자기가 남이라는 자각이 없군. 아가씨 안 서재에 집사인 나보다 더 자유롭게 드나들다니.’

“알겠다. 조 대인께 음식을 올려라. 나 혼자 가면 된다.”

월령안은 하녀의 손에서 등롱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하녀는 먼저 쉬라고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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