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육장봉의 생일선물
월령안은 화청으로 돌아와서 육장봉이 일곱 번째로 보낸 선물을 열어 보았다. 그녀의 일곱 살 생일 선물이었다.
“구리거울, 나무 빗……. 아는 것도 많네. 일곱 살짜리 여자애가 꾸미기 시작하는 걸 알다니.”
월령안은 거울과 나무 빗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구리거울의 이음매에 파인 흔적을 바라보았다. 또 나무 빗의 고르지 못한 빗살을 바라보았다.
이것들이 육장봉이 직접 만든 것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장인이 만든 것이라면 이렇게 투박할 리가 없었다.
“당신도 정말 한가하네요.”
월령안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구리거울과 나무 빗을 챙겨 넣었다.
그녀는 지금 열여덟 살이었다. 이제는 일곱 살짜리 어린 여자애가 쓰는 물건은 쓸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선물 일곱 가지를 하나씩 늘어놓았다. 다음 선물이 올 때까지는 아직 삼각(三刻 – 45분)이 남았다. 그래서 서재로 가서 일거리를 찾으려고 했다.
막상 서재에 앉아 장부를 보았지만, 전혀 집중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정원으로 돌아왔다.
정원에 남은 차와 여행기 한 권을 보자,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최일은 정말 세심하군.’
때마침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차를 마시면서 한가하게 책을 보다가, 가끔은 멍하니 있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육구가 여덟 번째 선물을 가져왔다. 기러기 한 쌍 말고도 오래된 금(琴) 하나가 왔다.
최일이 없으니, 이 금이 황궁에서 나온 물건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이 금이 현음 장공주와 연관이 있는지는 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보낸 물건이니만큼 절대 보통 물건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금을 가볍게 튕겼다. 곡 절반 정도를 연주해 보더니 금을 챙겨 넣었다.
지금까지 육장봉은 그녀에게 선물을 여덟 개나 보내왔다. 모든 것에 정성을 쏟은 흔적이 가득했다. 이제 그녀는 다음 선물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여덟 살은 그녀 인생의 분수령(分水嶺 - 전환점)이었다.
여덟 살이 되기 전에 행복했던 만큼, 여덟 살이 지난 다음에는 그만큼 고생했다.
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생일은 그녀가 가장 기대하는 날이었다. 그날은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 어머니가 온종일 함께 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재미있는 것이 잔뜩 있었고, 또 선물도 많이 받았다.
여덟 살이 지난 다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 줄 기력이 없었다. 그녀도 더는 생일을 챙기고 싶지 않았다. 가끔 노인이 준 선물을 받았을 뿐이다.
노인은 실속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주었던 선물은 것은 쓸 만한 사람이 아니면 사업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홉 살이 넘었을 때였다. 그녀에게 가장 괴롭던 시기는 지난 뒤였다.
그럼 육장봉은 어떨까.
그녀의 집이 격변을 겪고, 그녀가 가장 힘들어했을 때, 과연 무슨 선물을 보낼 생각일까?
* * *
월령안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반 시진 뒤, 육장봉의 아홉 번째 선물이 도착했다.
그 바람에 최일은 실망하고 말았다. 육장봉의 사람이 제시간에 아홉 번째 기러기를 가져왔던 것이다.
“기러기를 아홉 쌍이나 찾았다니. 육장봉도 참 대단한걸.”
최일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 뒤였으나, 일꾼 하나를 송취 골목에 남겨두어 상황을 지켜보게 했다.
육장봉이 이런 구경거리를 보여 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모르면 몰랐지, 아는데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
그 대신 나중에 어머니와는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자기 혼사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육장봉은 그에게 오지랖을 부릴 자격이 없었다. 그는 육장봉의 전철을 밟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까.
최일은 일꾼의 보고를 듣더니, 계속 송취 골목을 지키라고 했다. 하지만 육장봉의 부하가 기러기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보고하러 올 필요는 없다고 했다.
육장봉의 아홉 번째 선물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았다. 또한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홉 번째 생일은 월령안이 인생의 격변을 겪은 다음 맞이하는 첫 생일이었다.
육장봉이 월령안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면 틀림없이 그 선물에 정성을 쏟았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되면 도리어 월령안의 아픈 곳을 들출지도 몰랐다.
* * *
그리고 이때 월령안은 육장봉이 보내온 아홉 번째 선물을 안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육장봉이 보내온 아홉 번째 선물은 그림 한 폭이었다. 그 그림에는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바둑을 두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한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보며, 월령안은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십 년이 지났다.
더는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보낸 그림을 보자, 자신이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웃는 얼굴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육장봉의 이 선물에는 정말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홉 살의 그녀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잃고, 집안이 망한 슬픔 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는 밤마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호랑이 인형을 안고 울었다.
아버지도, 오라버니도 그리웠다.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장례식을 마친 뒤, 그녀와 어머니는 월씨 저택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모녀 두 사람은 몸에 걸친 옷 말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만약 아홉 살 때 이 그림을 받았더라면, 그동안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을 적어도 하나는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아홉 살 생일에는 기승을 부리는 찬바람과 눈물만이 함께했다.
월령안은 손끝으로 그림의 모든 선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그래도 더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떨어져 그림을 망칠까 봐 두려웠다.
그녀가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육장봉이 보낸 열 번째 선물이 도착했다.
월령안의 열 살 선물로 육장봉은 그녀에게 작은 칼을 보냈다.
열 살 되던 해, 그녀는 변경에 도착해 어머니와 함께 소씨 저택에 들어갔다. 하지만 소씨 저택에서는 잘 지내지 못했다. 육장봉이 보낸 이 비수는 열 살의 그녀가 호신용으로 쓸 만한 것이었다. 자기 몸을 보호하라는 의미였다.
열한 살 생일선물로 육장봉은 옥으로 만든 주판을 주었다.
열한 살이 되던 해, 그녀는 소씨 저택에서 나가 장사하는 법을 배웠다.
열두 살 생일선물로 육장봉은 지방 지도를 주었다.
열두 살 되던 해, 그녀는 상단을 따라 장사하러 돌아다녔다. 길에서 까딱하다가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이렇게 자세한 지도가 있었더라면 훨씬 편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때는 지도가 없었다.
열세 살 생일선물로 육장봉은 환약을 줬다. 여러 가지 독을 해독하는 해독제였다.
열세 살 되던 해, 그녀는 사막에서 독전갈에게 물렸다. 하마터면 살아남지 못할 뻔했다.
열네 살 생일선물로 육장봉은 불패(佛牌 – 불교의 호신용 부적)를 줬다.
그녀가 막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고승이 의식을 치른 불패를 받아왔다. 하지만 열네 살일 적 암살당할 뻔한 위기를 겪은 뒤, 불패도 깨졌다. 그 뒤로는 불패를 지닌 적이 없었다.
열다섯 살, 그녀는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오래지 않아 그녀와 육장봉의 혼사가 정해졌다.
육장봉은 혼례복을 보내왔다.
그 무렵, 날은 저문 지 오래였다. 그러나 월씨 저택의 정원은 대낮처럼 환했다.
혼례복은 불빛 아래서 눈을 찌를 정도로 붉었다. 혼례복을 수놓은 금실이 더욱 반짝거려서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정말 예쁘네.”
월령안의 눈시울은 여전히 붉어져 있었다. 그러나 불빛 아래에서 혼례복을 보는 그녀의 눈빛은 아주 평온했다. 기쁨도, 슬픔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혼례복만으로는 아무것도 나타낼 수 없지 않은가.
열다섯 살 되던 해, 그녀는 온 변경의 귀족 여인이 모두 부러워할 만한 혼례복을 입고, 장씨 가문 낭자도 시샘할 만한 봉관을 쓰고 육씨 가문에 시집갔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쫓겨나는 결말을 맞이했을 뿐이다.
“받아 두어라.”
월령안은 힐끗 보았을 뿐,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월령안의 열다섯 번째 생일선물을 가져온 사람은 육삼이었다.
육삼과 월령안은 그래도 낯이 익은 편이었다. 월령안의 심드렁한 모습에, 육삼은 대담하게 물었다.
“월 낭자,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마음에 들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재혼할 때, 꼭 당신네 장군께서 보낸 혼례복을 입고 시집가도록 할게요. 제 다음번 낭군께서도 개의치 않아 하실 것 같네요. 감히 싫다는 말도 못 하겠죠.”
‘육삼은 지금 나더러 감지덕지하라는 건가? 꿈 깨시지!’
육장봉의 이 행동은 그녀가 얼마나 하찮게, 서둘러 시집갔는지를 일깨워 줄 뿐이었다.
납작 엎드릴수록 무시당하는 법이다.
그녀는 육장봉에게 시집가기 위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고, 아무 조건이나 다 받아들였다. 너무 납작 엎드렸던 것이다.
육삼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도저히 뭐라 대꾸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육삼은 좌절하며 물러났다.
월령안은 잡지 않고 말했다.
“밤에는 통행금지가 아닌가요? 장군께서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도 외출할 수 있나요?”
지금은 이미 해시(亥時 – 오후 9시~11시)였다. 밖에서는 진작 야간 통행금지가 시작되었다. 거리를 더는 돌아다닐 수 없었다. 육장봉이 이 시간에도 그녀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은 공권력 남용이었다.
“월 낭자, 저희는 대장군의 친위대입니다. 야간 통행금지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육삼은 조용하게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 낭자가 우리 장군께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장군께서 경기의 안전을 책임지고 계시는 것도 모를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장군의 통행을 금지할 수가 없는데.’
“그렇다면 저는 자시가 되기 전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한단 말인가요?”
육장봉 친위대의 말대로라면 반 시진마다 하나씩, 모두 열여덟 개의 선물이 있다. 한 시진 반을 더 기다려야 마지막 선물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조금 피곤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피곤했다.
“월 낭자, 낭자께 드릴 선물 열여덟 개를 준비하시느라고 장군께서도 심혈을 많이 기울이셨습니다.”
특히 하루 만에 기러기 열여덟 쌍을 사냥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육장봉은 기러기 열여덟 쌍을 찾느라 온 산을 샅샅이 뒤졌다. 마지막에는 절벽에 매달리는 위험도 무릅쓴 끝에 기러기 둥지를 찾아냈다.
그들 장군은 목숨을 걸고 이 열여덟 개의 선물을 준비했다고 할 수 있었다.
월령안은 비웃었다.
“저도 당신네 장군께 설옥고를 드리기 위해 심혈을 많이 기울였어요. 그분께서 찾으신 기러기 열여덟 쌍보다 절대로 적지 않을걸요.”
세상 사람들은 늘 자기가 한 희생만 볼 뿐이다. 남이 한 희생은 보지 못한다.
“월 낭자,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육삼은 울상을 하고 떠났다.
반 시진 뒤에 육사가 왔다. 그는 기러기 한 쌍과 손바닥만 한 비단함을 가져왔다.
“육사 장군, 감사해요.”
월령안은 선물을 받았다. 육사를 보내고 비단함을 열었다.
함 안에는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의 아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