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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63)화 (363/1,004)

363화 장군은 운이 정말 좋다니까

최일은 선물을 보고 멍해진 월령안을 토닥였다. 눈에는 딱하다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애초에 가지지 않았더라면, 잃는 아픔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지금 육장봉은 월령안이 갖고 싶었던 모든 것을 주었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월령안은 어떻게 해야 할까?’

“벌써 오시로군요. 식사하러 가죠. 또 반 시진이 지나면 일곱 번째 선물이 올 거예요. 아까 육장봉의 호위병이 말했잖아요. 어젯밤에 기러기를 여섯 쌍밖에 잡지 못했다고요. 일곱 번째 선물에도 기러기가 딸려 오나 봅시다.”

월령안은 순간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웃는 듯 마는 듯한, 매력적인 최일의 얼굴을 보자, 도저히 화를 낼 수 없었다.

“대인도 참…….”

“분위기를 잘 깨죠. 저도 압니다.”

최일은 월령안의 말을 이어받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꼬마 령안, 사랑이 밥을 먹여 주지는 않아요. 일단 식사를 해야 나머지 선물을 열 기운이 나지 않겠어요?”

“알겠어요.”

월령안은 최일이 자신을 위해 이러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감동해서 이성을 잃고 결정을 내릴까 걱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최일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가문의 흥망성쇠를 어깨에 짊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 * *

육장봉은 진시부터 시작해, 반 시진마다 기러기 한 쌍과 생일선물 하나를 월령안에게 보내고 있었다.

오시가 되기도 전, 육팔이 일곱 번째 기러기와 육 대장군이 월령안을 위해 준비한 일곱 번째 선물을 가지고 갔다.

곧 여덟 번째 기러기를 보내야 했다. 육이는 이 거대한 부담감에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는 질풍처럼 산속을 누비며 사방에서 기러기를 찾는 육 대장군을 찾아갔다.

“대장군, 이제 기러기가 한 쌍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월 낭자께 여덟 번째 생일선물을 보내고 나면, 기러기가 남지 않을 겁니다.”

어젯밤, 그들은 하룻밤을 공들여 기러기 여섯 쌍을 겨우 찾아냈다. 그들은 이게 가장 힘든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오전은 더욱 힘들었다.

오전 내내 기러기 두 쌍밖에 찾지 못했다. 겨우 여덟 쌍을 채웠지만, 열여덟 쌍에서는 열 쌍이나 모자랐다.

이건 정말 그들의 탓이 아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기러기는 대부분 날아가 버렸다. 여덟 쌍을 찾은 것만 해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

육장봉은 대답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갈 뿐, 전혀 멈추려는 기색이 없었다.

육이가 재빨리 쫓아가 눈을 질끈 감고 물었다.

“장군, 아홉 번째 선물은 어떻게 할까요?”

“그만.”

육장봉이 갑자기 손을 쳐들었다. 그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확 달라졌다. 마치 칼집에서 빠져나온 검처럼 기세가 날카로웠다. 그리고 육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화살처럼 공중을 가로질렀다.

육이는 장군이 무언가를 발견했음을 알아차렸다.

육이는 당황하지 않고 나머지 병사들과 함께 재빨리 따라갔다.

퍽!

순간, 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기러기가 끼룩끼룩 우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한 쌍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육이는 비틀거리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대장군이 강한 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날 듯한 속도로 뛰쳐나가길래, 무슨 이상한 상황이라도 발견한 줄 알았다.

그런데 기러기 둥지를 발견한 것이었다니.

‘기러기 잡기에 너무 열심이신 거 아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육이는 정신을 번쩍 차리더니 뒤에 있던 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얼른 따라가라!”

아홉 번째 선물을 곧 보내야 한다. 그러나 아홉 번째 기러기가 과연 어디 있는지는 몰랐다. 지금으로서는 기러기를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육이는 사람을 거느리고 육장봉이 남긴 흔적을 따라 쫓아갔다. 그들은 곧 절벽 끝에 도착했다.

육이 일행이 막 멈춰 섰을 때였다. 육 대장군이 겉옷을 보따리 삼아 기러기를 싸 안고 절벽 아래에서부터 훌쩍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새장!”

육장봉은 착지하자마자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끼룩끼룩…….

육이는 그 꾸러미 안에서 꿈틀거리는 기러기 머리를 보았다. 저 꾸러미 안에 기러기가 적어도 세 쌍은 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기러기 세 쌍 덕분에 그들의 부담도 많이 줄었다.

육이는 병사가 건네준 쇠로 만든 새장을 받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대장군.”

푸드덕!

육장봉이 손을 놓자, 그의 겉옷에 싸였던 기러기가 한 마리, 한 마리씩 새장 안으로 떨어졌다. 무려 열몇 마리나 되었다.

그러나 큰 기러기는 여섯 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갓 알을 깨고 나온 새끼 기러기였다.

육이는 새장 안의 보송보송한 새끼 기러기를 보면서 입가를 씰룩거렸다.

‘장군께서 아예 기러기 둥지를 싹 털어 오셨구나. 운이 정말 좋으시다니까. 기러기 둥지도 발견하고 말이야.’

기러기는 추워질 때만 여기로 날아와 겨울을 났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기러기는 다시 날아간다. 이곳에서 알을 낳는 기러기는 아주 드물었다.

이 기러기 둥지는 대단히 귀한 것이었다.

육이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월 낭자께서는 분명히 이 새끼 기러기를 좋아하실 겁니다.”

“그래.”

육장봉은 차갑고 딱딱한 얼굴에 좀처럼 보기 힘든 부드러운 미소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 미소는 곧 사라졌다.

그는 냉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절벽에 입구가 하나 있었다. 사람을 보내 조사해 봐라.”

‘입구라고?’

육이의 눈동자가 갑자기 확 커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앞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런 우연이? 장군은 그저 기러기를 잡으러 왔을 뿐인데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데.’

그러나 장군의 놀라운 운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육이는 최대한 빨리 명령을 내렸다.

“밧줄을 준비해라. 내려가서 탐색한다. 너희는…… 기러기를 서둘러 장군부에 보내라. 조심해라. 기러기들이 가는 길에 다치면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육이가 명령을 내리자, 그의 뒤에 있던 병사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육장봉은 그들을 데리고 야외 훈련을 한답시고 여기에 왔다. 사실은 기러기를 잡기 위해서였지만, 야외 훈련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각 소대의 협조를 받아, 병사들은 밧줄로 몸을 고정했다. 그리고 한 명씩 밧줄을 타고 절벽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육장봉은 옆에 서서 지켜보았다.

기러기를 잡는 게 급하기는 했지만, 그는 무책임한 장수가 아니었다. 지금은 일해야 할 때였다. 그는 자신의 직책을 잊을 수는 없었다.

그때 밑에서 정탐하러 간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군, 안에 사람이 살던 흔적이 있습니다.”

육장봉은 육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선발대를 데리고 들어간다. 반항하는 자는 죽여라.”

“예, 대장군!”

첫 번째 소대가 내려간 다음, 육이가 무장한 사병 한 소대를 데리고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육이가 데려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용맹했다. 눈빛이 날카로웠고, 행동이 민첩했다. 그들은 밧줄을 잡자마자 눈 깜짝할 새에 주르륵 아래로 내려갔다. 그것만 보아도 그들의 실력이 보통 병사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대는 동굴 입구에 도착하자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육이의 지휘에 따라 칼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일각이 지났다. 아래쪽에서 다시 정탐하던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군, 안에 있는 놈들은 전부 사사입니다. 천명사에 있던 사사들과 검법이 똑같습니다. 같은 스승에게 훈련을 받은 듯합니다.”

“잠한성이 키운 사사인가?”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당장 앞으로 나가 밧줄을 잡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상대가 사사라면, 육이 일행만으로는 역부족일 수도 있었다.

육장봉은 칼을 들고 동굴로 들어갔다.

그가 움직이는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하늘도, 해도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두운 동굴이었지만, 행동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잠시 후 앞쪽에서 격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육장봉은 또 앞으로 수십 장을 걸어갔다. 사각지대가 나왔다.

길목을 돈 순간, 눈앞이 확 밝아졌다.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지며 산허리에 있는 동굴을 밝게 비췄다.

그가 들어선 순간, 회색 옷을 입은 사사 몇몇이 보였다. 그들은 동굴 입구에 드리운 넝쿨을 잡고 기어올라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휙!

육장봉의 손끝에서 돌멩이 하나가 날아갔다. 절벽 끝에 거의 다다랐던 사사가 비명을 지르며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쿵!

그자는 바위 위로 떨어져 형체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육장봉은 같은 방법으로 넝쿨을 타고 올라가는 사사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렸다. 그리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육이 일행을 바라보았다.

육이가 데려온 병사들은 실력이 뛰어났다. 이 사사들도 약하지 않았다. 양쪽은 엇비슷한 실력으로 겨루고 있었다. 단시간에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를 본 육장봉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직접 손을 쓸 생각이 없었다. 다만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육장봉이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월령안이 이 사람들을 살리고 싶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명령을 꿀꺽 삼켜 버렸다.

‘됐다. 이것도 내가 월령안에게 주는 생일 축하 선물인 셈 치자.’

“투항하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사사의 존재 의의는 죽음을 각오하고 주인이 맡긴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그들이 배운 것 중에서 ‘투항’이라는 글자는 없었다.

만약 다른 사사였다면 육장봉도 절대로 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잠한성이 길러낸 사사였다.

청희 장공주가 황실에서 사사를 훈련하는 방법을 제공하기는 했다. 하지만 잠한성이 길러낸 사사들은 황실 사사들과는 매우 달랐다.

잠한성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훈련시킨 사사들은 무공이 뛰어났다. 개인 전투력으로 따지자면, 보통 사사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잠한성은 그저 모질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는 사사를 길러냈다기보다는, 무공이 강한 고수를 훈련하다가 사사로서 가르쳤다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하물며 이들은 아직 사사로서 완성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위험이 닥쳤을 때, 도망치는 자도 없었을 것이다.

육장봉이 투항하는 자는 죽이지 않겠다고 하자, 사사 중 절반이 목숨을 걸고 싸울 투지를 잃고 말았다. 게다가 잠한성이 이미 잡혔다고 하자, 나머지 사사도 투지를 잃었다. 그들의 전투력이 대폭 줄어들었다.

육이가 지휘하는 소대는 바로 우세를 차지했다.

이런 때 사사를 모조리 죽이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육 대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저들을 살려 줘라.”

“네, 장군.”

육이는 육장봉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알 필요가 없었다. 그는 대장군의 명령은 따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동굴 안에는 사사가 서른두 명 있었다. 앞서 육장봉이 죽인, 도망치려던 사사가 여덟 명이었다. 또 몇몇은 전투 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는 전부 육이가 이끄는 소대에게 맞아 기절했다.

“이자들을 조왕 전하께 보내라. 지체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육장봉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본인은 훌쩍 뛰어올라 꼭대기에 있는 동굴로 빠져나갔다.

자시(子時 – 오후 11시~오전1시)가 되기 전까지, 남은 기러기 일곱 쌍을 더 찾아야 했다.

육이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장군이 명령을 내린 이상, 육이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육구와 육십에게 앞으로의 일을 맡겼다. 월령안에게 생일선물을 보내도록 준비하고, 그 김에 포로도 데리고 성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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