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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59)화 (359/1,004)

359화 안에 도대체 뭐가 들었나요?

초성과 당제는 별 볼 일 없는 인물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일이 큰 이익을 포기하고 이 두 사람만 원한다고 했다. 장 부승상도 최일의 체면을 봐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최일에게 긍정적인 답장을 했다.

‘사흘 뒤에 놓아주겠다.’

단, 목숨은 부지할 수 있어도 공로와 명예는 보장할 수 없었다.

최일은 월령안이 이 결과에 만족해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마부를 불러 마차에 말을 메게 했다.

그는 직접 송취 골목의 월씨 저택으로 가려 했다. 겸사겸사 월령안에게 이렇게 크게 벌인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도 물어볼 셈이었다.

최일이 월씨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진시(辰時 – 오전 7시~9시)였다.

하인이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체구가 우람하고 용맹한 병사 한 무리가 말을 달려 송취 골목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마부는 허둥지둥 말을 달랬다. 말이 놀라 난동을 피우게 되면 마차에 탄 최일을 놀라게 할지도 몰랐다.

말이 온순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그 병사들은 질서정연하게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병사들을 통솔하는 사람은 커다란 나무 상자를 든 채 월씨 저택의 대문을 쿵쿵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상자를 든 사람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저희는 대장군의 명령을 받고 월 낭자를 뵈러 왔습니다.”

문지기가 상대방의 영패를 보더니 입가를 씰룩거렸다. 옆으로 한 걸음 옮겨서 길을 터 주었다.

“나리들, 들어오십시오.”

그는 거리낌 없이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월씨 저택에 올 때마다 월령안은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는군.”

최일은 마차 안에서 이 장면을 보더니, 하인에게 문을 두드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마차에서 내리더니 직접 신분을 밝혔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월씨 저택에 들어섰다.

“최 대인!”

병사들을 통솔하던 몇몇이 최일을 알아보고 그에게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임(林) 참장(參將 - 부장 다음 가는 무관 계급), 오랜만이군.”

최일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임 참장의 발치에 놓인 나무 상자를 훑어보았다.

최일이 바로 시선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가 나무 상자 안의 물건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나무 상자 안에서 기척이 들렸다.

‘살아 있는 게 들었나?’

이제는 당당하게 훑어볼 수 있었다. 그는 눈을 살짝 치켜뜨며 물었다.

“자네 대장군께서 설마 사람을 잡아서 보낸 것은 아니겠지?”

‘육장봉이 월 삼낭을 찾은 건가?’

임 참장은 거리감을 지키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최일은 웃기만 하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월령안이 나왔다. 월령안은 서로 쳐다보지 않고 있는 최일과 육장봉의 부하를 보았다..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양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모두에게 인사를 한 후 말했다.

“최 대인,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일단 화청으로 모실 테니 잠시 앉아 계세요.”

“서두를 거 없습니다. 기다리지요.”

최일은 웃으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의 발은 뿌리라도 내린 듯 제자리에 꼼짝 않고 있었다. 절대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육장봉이 일을 벌이는 광경은 지켜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이걸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다음에 육 대장군을 만났을 때 재미가 덜하지 않겠는가.

최일의 웃음은 옥처럼 맑고 부드러웠다. 서 있는 모습도 군자답게 단정하고 의젓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최일의 시선에 교활한 웃음기가 섞인 것을 알아차렸다.

‘이 사람은…… 전혀 명문가 공자 같지는 않은걸.’

월령안은 가볍게 웃고 더는 권하지 않았다. 대신 돌아서서 임 참장에게 말했다.

“대인, 실례했습니다. 무슨 일로 행차하셨는지요?”

월령안은 최일을 상대할 때보다 임 참장을 대할 때 더욱 예의가 발랐다. 미소에서도 거리감이 느껴졌다.

임 참장은 슬그머니 최일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돌아가서 장군에게 알려야겠다고 속으로 묵묵히 새겼다.

‘최 공자가 우릴 괴롭히겠다면, 우리야 반격할 수 없지. 하지만 우리 장군께서 아시면 가만히 계실까?’

임 참장은 이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제법 좋아졌다. 그는 월령안에게 답례를 올리고 나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월 낭자, 이건 저희 장군께서 낭자를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 또 이쪽은 낭자의 첫돌 선물로 드리는 겁니다.”

임 참장이 말을 마치자, 병사 하나가 비단함을 앞으로 받쳐 들고 왔다.

월령안은 나무 상자를 보았다가, 시선을 병사의 손에 든 비단 함에 떨구었다. 그녀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돌 선물이라고요?”

‘육장봉은 도대체 무슨 짓이야? 내 나이가 벌써 열여덟 살인데, 인제 와서 내 첫돌 선물을 주겠다고? 이런 게 재밌나?’

월령안이 거부감 가득한 얼굴을 하자, 최일이 활짝 웃는 얼굴로 일깨워 주었다.

“대장군께서는 역시 섬세하시군요. 월 낭자, 열어 보지 않으세요?”

여기 있으면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첫돌 선물을 벌충할 생각을 하다니. 육장봉이 생각해 낸 것 치고는 용한데.’

그는 누구에게도 탄복하는 법이 없었지만, 육장봉에게만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월령안은 최일을 흘겨보며 말했다.

“이건 대장군께서 제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최 대인께서 신경 쓰실 만한 것은 아니에요.”

‘최일, 이 사람도 참…….’

처음 봤을 때는 단정하고 상냥한 것이 대갓집 공자답게 기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보니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딱 맞네. 이 여우 같으니라고! 하긴, 조계안과 벗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일 리가 없지.’

최일이 이렇게 말한 이상, 그녀도 선물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제가 주제넘었군요.”

최일은 화를 내지 않았다. 얼굴의 미소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육장봉은 그에게 신세를 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지금 그로서는 월령안에게 미움을 살 각오를 하고 육장봉을 도와준 것이었다.

임 참장은 다시 최일을 바라보며 또 묵묵히 마음에 새겼다. 돌아가서 고자질할 생각이었다.

‘최일, 최 대인이 월 낭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정합니다. 다른 마음이 있어 보입니다.’

어쨌든 선물은 전달했다. 월령안도 받았다. 임 참장도 더는 뭉그적거리지 않고 포권하며 말했다.

“월 낭자, 선물은 전했…….”

바로 이때, 나무 상자가 움직거리며 소리를 냈다.

끼룩끼룩!

월령안은 임 참장을 보며 물었다.

“안에 도대체 뭐가 들었나요?”

“월 낭자께서 열어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임 참장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해명했다.

“월 낭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놈들이 방금 깨어나서 그럽니다. 상자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그러는 거지,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이놈들이 하필 이때 깨어나다니. 시간 한 번 제대로 골랐군.’

목숨을 아끼는 월령안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여봐라, 열어봐라.”

최일은 의미심장하게 월령안을 힐끗 보고 따라서 묵묵히 뒤로 물러섰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육장봉도 참……. 내가 정말 졌다. 조계안은 육장봉의 상대가 되지 못하겠구나.’

조계안이 잠을 잘 때, 육장봉은 목숨을 걸고 야외에서 월령안의 선물을 찾았다. 육장봉이 기울인 정성만 보아도, 조계안이 억울하게 진 건 아니었다.

월씨 가문의 하인이 앞으로 다가가 나무 상자를 열었다.

끼룩끼룩!

살아 있는 기러기 한 쌍이 나무 상자 안에서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날아가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두 다리와 날개가 묶여 있어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기러기?”

월령안은 더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육장봉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어젯밤에는 빙금을 주더니, 오늘에는 기러기를 한 쌍 보낸다고? 삼 년 전에 빚진 것을 다 갚겠다는 건가?’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육장봉은 그녀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은표는 그렇다 칠 수 있었다. 그녀는 돈이라면 싫어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기러기는 인제 와서 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육장봉에게 다시 한번 시집 갈 것도 아닌데 말이다.

“네, 월 낭자. 이건 저희 대장군께서 어젯밤에 직접 잡으신 겁니다.”

그들이 어젯밤에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한밤중에 기러기를 잡다니. 정말 대장군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이었다. 그나마 대장군 본인이 능력이 있어 기러기 여러 마리를 찾았기에 망정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 모두 힘들었을 것이다.

“그건 참……. 대장군께 감사하네요.”

월령안은 나무 상자 안에서 푸드덕거리는 기러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선물을 물릴 수 있나요?”

어젯밤에 선뜻 육장봉의 은표를 받은 게 조금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어젯밤에는 육장봉이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예물을 보내고, 빙금을 벌충하고, 또 산 기러기도 한 쌍까지 잡아 오다니. 육장봉은 지금 다시 예물을 보내 날 맞이하겠다는 건가?’

“대장군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내는 건 그분의 일이고, 받을지 말지는 낭자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월 낭자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버리거나, 날려 보내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대장군께서는 한 번 보낸 선물을 도로 돌려받지는 않으십니다.”

임 참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장군의 말을 반복했다. 그의 대장군은 대단히 오만한 사람이었다.

월령안이 냉소를 지었다.

“그럼 팔아도 되나요?”

“어…….”

임 참장은 말문이 막혔다.

“하하하하…….”

최일은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임 참장은 다시 한번 최일을 바라보고 묵묵히 마음에 새겼다.

‘이번이 세 번째다. 다 일러바쳐야겠어.’

월령안은 활짝 웃는 얼굴로 물었다.

“최 공자, 사시겠어요? 어쨌든 밑천이 들지 않은 물건이니 싸게 드릴 수 있어요.”

‘한참이나 구경을 했으니까 최일 당신도 그만해!’

“월 낭자, 감사합니다만, 저는 기러기를 보낼 만한 연인이 없네요. 사도 쓸 데가 없어요.”

‘장난하나? 육장봉이 직접 잡은 기러기를 감히 누가 사? 죽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게 어떻게 쓸 데가 없어요? 기러기는 늘 날아다니니 몸에 군살이라고는 없죠. 식감도 아주 좋을 거예요. 거기다 이 기러기 한 쌍은 살아 있는 거예요. 아주 신선하죠. 최 공자께서 사서 드셔 보시지 않겠어요?”

월령안은 거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권유했다.

최일 역시 흥미진진한 모습이었다.

“월 낭자께서는 드셔 보셨습니까?”

“하늘을 나는 것 중에 제가 먹어 보지 못한 것은 없죠. 기러기는 식감이 아주 좋아요. 살도 많고요. 최 공자께서 사시면 틀림없이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녀가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할 때, 물을 헤엄치는 것이든, 하늘을 나는 것이든,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전부 먹어 보았다.

“흠흠…….”

임 참장은 세게 기침을 하며 최일을 슬그머니 노려보았다.

‘최 대인, 그만하시죠.’

이 기러기는 그들 장군이 직접 잡은 것이었다. 그분의 성미를 건드렸다가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이다.

최일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환해졌다. 그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사고말고요! 오늘 점심, 제가 월 낭자께 기러기를 대접하겠습니다.”

“최 대인!”

임 참장은 화가 나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건 저희…….”

“지금은 제 기러기입니다만.”

월령안은 임 참장의 말을 자르더니, 최일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백 냥입니다.”

“열 냥을 더 추가해 요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최일은 일이 커져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좋아요.”

월령안은 손을 들어 하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주방에 가져가서 최 대인께 쪄 드려라.”

“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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