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너의 적을 얕보지 마라
돈의 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 누구도 돈의 매력은 거절할 수 없었다.
십만 냥에 달하는 동전을 뿌리자, 단 하루 만에 변경에서 귀가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소문을 들었다. 다들 소씨 가문과 육씨 가문이 사돈을 맺은 뒤 소씨 가문이 다시 일어날 것이며, 소씨 가문에서 다음 승상이 나온다는 걸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단 하루 만에 변경의 모든 귀족과 관리도 이 소문을 알게 되었다. 또한 동전을 뿌려 소씨 가문을 죽어라 추어올린 게 월령안의 솜씨라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월령안은 역시 독한 사람이군. 소 승상은 말벌집을 쑤신 거야.”
월령안이 이번에 벌인 소동 덕에, 온 변경의 귀족과 관원 모두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소 승상의 문인도 있었고, 정적도 있었다. 또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지만, 기회를 틈타 이득을 챙기려는 중도파도 있었다.
소 승상의 문인들은 당연히 화가 나 어쩔 줄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 소 승상의 사직은 그들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그들은 조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소씨 가문이 아무리 몰락했다 한들, 일개 상인인 월령안이 괴롭힐 수는 없었다.
“준비하시오. 모레 대조회에서 우리의 적은 바로 월령안이오! 월령안이 무릎 꿇고 사과하고, 월씨 가문을 변경에서 쫓아내고, 월씨 가문이 빈털터리가 되어 완전히 망할 때까지는 절대 그만둬서는 안 되오!”
“우리의 적수는 늘 조정의 관리였소. 일개 여자 상인에 손을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오. 이건 그 계집의 영광이자 우리의 수치요! 하지만 명심하시오. 절대 적을 얕봐서는 안 되오. 월령안은 본보기일 뿐이오. 월령안을 짓밟는 것은 단지 싸움의 시작일 뿐이오.”
소씨 가문의 문인들은 싸움을 치를 준비를 마쳤다. 끝까지 혈전을 벌일 각오도 마쳤다. 그들은 질 수 없었다.
이번 싸움에서 졌다가는, 앞으로 조정에는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소 승상의 문인들은 소 승상의 덕을 보아 하나같이 조정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방에 발령되더라도, 풍요롭고 공적을 쉽게 쌓을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조정에는 이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소씨 가문의 문인들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했다.
소 승상이 사직한 뒤, 몇몇 세력은 소 승상의 문인들에게 손을 쓰려고 몰래 준비하고 있었다. 여태껏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선두에 서고 싶지 않다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익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한 이유가 더 컸다.
조정의 거물들이 직접 대전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다툴 수는 없었다. 그건 너무 점잖지 못하고 품격을 떨어뜨리는 짓이었다.
그러니 손을 쓰기 전에 소 승상이 남긴 정치 자원을 어떻게 나눌지, 반드시 상의를 마쳐야 했다.
본디 그들이 손을 쓰기 시작한다는 것은, 사적으로 합의를 봐서 모든 일이 다 결정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형세는 그들이 천천히 의논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 소문을 들은 몇몇 거물들도 하나같이 어처구니가 없어 했다.
“이건 정말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는 격이군. 월 가주의 이 수법은 정말 예상 밖이었네. 우리가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막다른 길로 몰지 않았나.”
“월씨 가문의 이 어린 아가씨가 간이 보통 큰 게 아니로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조정의 승상에게 손을 쓴다는 말인가? 아무리 퇴직한 승상이라 해도, 조정에서 소씨 그 능구렁이의 세력을 무시할 것이 못 되는데. 우리 같은 이들도 감히 건드릴 수가 없는 사람을 감히 건드렸군.”
“월씨 가문 사람이 이렇게까지 방자하게 행동한 건 삼십 년 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네. 내 기억으로는 월청화(月淸和)라는 남자였는데, 낡은 정원 하나 때문에 변경을 발칵 뒤집었지. 그 무렵의 상서도 그 일 때문에 벼슬을 사직했어.”
“월씨 가문의 이 어린 계집은 제 아비보다도 더 방자하군. 그때 아비는 변경에서 상서 하나를 끌어내렸을 뿐인데, 딸은 승상 가문 전체를 곤경에 빠뜨렸으니. 참 재미있어.”
“변경의 형세가 드디어 달라지겠군.”
사소한 일이라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월령안은 일을 크게 벌이고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이 일도 더는 월령안과 소 승상 사이의 사적인 일이 아니게 되었다. 조정의 정쟁과 관련되고, 심지어 수백 명의 운명이 달린 일이 되어 버렸다.
월령안은 이번 소란을 벌이고 도리어 홀가분해졌다. 조정 대신 모두를 이 사건에 말려들게 했다. 그 바람에 그들은 예정보다 이르게 소씨 가문의 문인들과 싸워야만 했다.
* * *
최씨 가문의 후계자로서, 최씨 가문에서 가장 높은 관직에 앉은 사람으로서, 최일도 진작 소식을 들었다.
“월령안은 정말 박력이 넘치는군. 난 정말 점점 더 월령안이 마음에 드는걸. 이런 사람이라면 출신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 최씨 가문의 손님이 될 만한 자격이 있지.”
소씨 가문의 세력을 나눠 가지는데 급급한 조정의 거물들과는 달리, 최일은 소식을 듣고도 매우 덤덤했다.
그는 서둘러 태도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홀로 서재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다음 그는 한참이나 시간을 들여 최씨 가문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들에게 이번에 손에 넣게 될 이익을 포기하고, 전혀 커 보이지 않는 보상을 요구하게 했다.
“이번에 우리 최씨 가문은 개입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오직 초성과 당제, 이 두 사람의 목숨만 원합니다.”
* * *
“초성과 당제가 누구냐?”
정작 조정의 몇몇 거물은 의아한 얼굴로 아랫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장 부승상 역시, 듣고도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 사건은 일전에 그가 엄격하게 처리하도록 명령했었다. 그 일로 유경장은 큰 실의에 빠졌었지만, 정작 장 부승상은 아랫사람이 설명한 뒤에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원래부터 원한을 맺고 있었구나. 아쉽게도 내가 이 일을 잊고 있었지 뭐냐. 그렇지 않았다면 월령안에게 선심을 쓰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을 텐데.”
장 부승상은 말은 이렇게 해도 조롱하는 기색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내가 왜 일개 상인 여인에게 밉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단지,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었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허튼 약점이 잡혀서는 안 되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육장봉의 보호가 있더라도 그는 월령안을 처리했을 것이다. 그런 것은 단지 시간문제였을 뿐이었다.
“최일도 참 실망스럽군.”
장 부승상은 처음부터 월령안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월령안이 자기 손녀를 망친 이상, 뒷배를 누구로 두었든지 간에 그녀는 반드시 죽어야 했다.
지금 월령안은 그가 손자에게 찾아 준 숫돌에 불과했다. 그는 월령안보다 최일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난 원래 최일이 큰 인물일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저 그렇군.”
‘이렇게 좋은 기회인데, 최일은 왜 최씨 가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월령안에게나 중요한 자들을 가지려 하는지……. 참 근시안적이야.’
“나리, 최일과 월령안은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혹시 월령안 쪽에서 무슨 약속을 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손에 다 들어온 이 좋은 기회를 최씨 가문이 포기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장 부승상의 하인인 회색 옷을 입은 늙은이가 낮은 목소리로 일깨웠다.
장 부승상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더니 여유롭게 대답했다.
“내가 소산이에게 월령안을 지켜보라고 했다. 월씨가 강남에서 맺은 인맥들은 모두 범씨 가문 사람들 손에 있어. 월령안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하지만 너도 사람을 시켜 지켜보게 하거라. 이상한 기척이 있으면 상의할 필요 없이 바로 움직여라. 망설일 필요가 없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그도 월령안과 이야기를 해 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월령안에게는 그런 기회를 줄 수 없었다.
* * *
육장봉은 성 밖에 있었다. 그러나 성안의 동향은 한 시진 간격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최씨 가문은 미리 물러났고, 장 부승상 등을 비롯한 사람들은 싸움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육장봉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딱히 뭐라 말하는 대신 육일에게 당부했다.
“계속 지켜봐라. 그 어떤 움직임이라도 바로 보고하도록. 그리고 월 삼낭의 일은 될수록 빨리 알아내라. 그 여자가 어떻게 유씨 가문과 연이 닿았는지 알아야겠다.”
“네, 대장군.”
육일은 명령을 받고 새장에 갇힌 기러기 여섯 쌍을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돌아서서 떠나갔다.
그들은 하룻밤 동안 기러기를 여섯 쌍밖에 잡지 못했다. 그런데 대장군은 열여덟 쌍을 원했다. 무려 열두 쌍이나 부족했다.
오늘 열여덟 쌍을 모조리 잡지 못하면, 대장군의 기분은 분명 바닥을 칠 것이다.
‘나는 그냥 빨리 심부름이나 하러 가야겠다. 괜히 차질이 생겨서 대장군께 벌을 받는다면 억울하다고도 못하니.’
* * *
월령안이 돈을 뿌려 온 변경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는 소식은 장 오공자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씨 가문 사람이 찾아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일이 이 지경이 된 이상, 그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소씨 가문 사람을 돌려보낸 뒤, 장 오공자는 먼저 장 부승상에게 사죄하러 찾아갔다.
장 부승상은 말을 듣고 난 뒤,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장 오공자는 마음이 불안해져 머리를 조아렸다.
“할아버지, 손자가 잘못했습니다.”
“네가 뭘 잘못했느냐?”
장 부승상의 목소리는 여전히 자애로웠다. 딱히 기쁨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제가 월령안을 얕보았습니다.”
장 오공자는 여기 오기 전에 모든 일을 정리해 보았다.
청주 월씨와 소씨 가문이 손을 잡았고, 장 오공자는 몰래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죄를 월령안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장 오공자가 한 일에는 잘못된 부분이 없었다. 유일한 잘못은 월령안을 얕본 것이었다. 월령안의 배짱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두둑했다.
장 부승상은 일어나더니 장 오공자를 부축해 일으켰다.
“다섯째야, 월령안은 너보다 고작 한 살이 더 많단다. 그런데 월령안은 열다섯 살에 가주가 되었지. 넌 올해 열일곱이다. 결코 어리지 않아. 이번에는 할아비가 너의 뒤처리를 해 줄 거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네 뒤처리를 해 주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홀로 짊어져야 한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오공자는 패배감에 젖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난 월령안만 못하구나.’
이를 본 장 부승상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다섯째야, 원아를 위해 하루빨리 복수하고 싶은 심정은 안단다. 할아비도 원아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은 서두른다고 해결되지 않아. 급하면 일을 그르친다. 알겠느냐?”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장 오공자의 기분은 많이 좋아졌다.
그 모습을 본 장 부승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째야,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 너의 적을 얕보지 마라. 월령안은 비록 상인 집안 출신 여인이기는 하지만, 능력과 수완이 뛰어나고, 인맥도 있단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지 않느냐. 월령안은 그 돈을 그렇게 많이 움켜쥐고 있지 않느냐. 그 말인즉슨, 월령안이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이 모든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도 월령안을 장 오공자를 연마하기 위한 숫돌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실패는 장 오공자에게 주는 경고인 셈이었다. 앞으로 자만하지 못하도록, 실수를 방지하는 경고였다.
“알겠습니다.”
장 오공자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두 눈은 강렬한 투지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