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그 도전을 받아 줘야지
청주의 사람이 보란 듯이 황궁에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변경에서 일을 벌이기도 했다. 황제인 그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행위였다.
“네.”
조계안은 대답한 다음, 심술궂은 얼굴로 덧붙였다.
“그리고 황형이 중시하는 소씨 가문, 소 승상도 참 능력이 있어요……. 이런 방법으로 불쌍한 척을 하다니. 만약 제가 알아내지 못했더라면, 월령안이 이 죄를 뒤집어썼겠죠.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이 없었을 겁니다.
하기야 소씨 가문을 짓밟으려는 사람이 소 승상 본인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이 일에 소씨 가문이 얽혀 있다는 말이냐?”
황제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계안아, 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해 봐라.”
‘소 승상이 청주에 줄을 댔나? 소 승상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지? 짐이 사직을 말리지 않았다고 불만이 생긴 건가?’
“무슨 말을 합니까? 알고 싶다면 알아서 조사하시지요. 전 말씀 드리러 왔을 뿐이니까요. 소여방은 제가 함정에 빠뜨린 게 맞습니다. 소 승상과 청희 장공주의 일도 제가…… 됐어요, 내키지는 않지만, 육장봉도 한몫한 거로 하죠.”
육장봉을 언급한 순간, 조계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육장봉이 아무 꿍꿍이도 없이, 이런 시기에 병사를 거느리고 훈련하러 가지는 않았을 거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육장봉이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네…….’
조계안은 짜증나는 얼굴로 머리를 두드렸다. 그러다 문득 황제가 아직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게 떠올랐다. 순간 더 짜증이 났다.
그는 황제를 힐끗 보고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소 승상과 청희 장공주의 일은 저와 육장봉이 함께 조사한 겁니다. 소씨 가문은 제 무덤을 스스로 판 겁니다. 다른 사람 탓할 것 없어요. 소 승상이 만약 제 사람들에게 손을 뻗는다면, 전 소씨 가문이 조정에 남긴 마지막 뿌리까지 잘라 버릴 겁니다.”
황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다급히 말했다.
“계안아, 네가…….”
“전 피곤합니다. 그만 잘래요. 황형도 일 보러 가세요.”
조계안은 황제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난각 옆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계…….”
황제도 일어났다. 조계안을 불러 세우고 싶었지만, 그의 지친 뒷모습을 보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됐다. 이건 내 사람을 시켜 조사해야겠군!’
* * *
월령안은 사람을 시켜 변경의 커다란 주루, 다루 앞에 좌판을 벌이고 동전을 마구 뿌렸다. 이 일은 굳이 조사할 필요도 없이, 거리를 한 바퀴 돌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소씨 가문의 하인들은 아침 일찍 물건을 사러 나왔다가 길거리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떠드는 말을 들었다.
“소 승상이 복직한다.”
“다음 승상은 반드시 소씨 가문 출신이다.”
하인들은 하나같이 의기양양해졌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바로 소씨 가문 사람이라고 자랑했다.
식견이 좁은 백성들이 자기에게 아부를 떨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한 좌판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방금 열 마디를 했소. 동전 열 닢을 주시오.”
“나도 다섯 마디 했소. 그러면 동전 다섯 닢이 맞겠지? 내 옆의 사람이 증인이오. 온종일 소리를 하면 동전 스무 닢을 받는 게 맞소?”
아까까지만 해도 소씨 가문을 추어올리던 사람들이 돌아서서 동전을 달라고 하고 있었다.
소씨 가문 하인들은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들은 일이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서둘러 다가가서 알아보았다.
자초지종을 알아본 그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물건을 사는 것도 내팽개치고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가 보고했다.
그들은 월령안이 돈을 풀어 그들 소씨 가문을 추어올리는 게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씨 가문의 모두가 소씨 가문과 월씨 가문이 원수 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좋은 의도로 돈을 뿌려서 길거리의 사람들에 소씨 가문 칭찬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닐 게 뻔했다.
소 승상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검고 야윈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어려 있었다. 기분이 좋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좋은 기분은 얼마 가지 못했다.
월씨 가문에서 좌판을 열고 동전을 뿌려 백성들에게 소씨 가문을 추어올리게 한다고 집사가 보고했다. 그 말을 들은 소 승상은 손에 든 죽 그릇을 떨어뜨렸다.
그는 그릇을 치울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집사를 바라보았다.
“어찌 된 일이냐? 똑바로 말해라!”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집사는 하인이 들은 소식을 하나하나 보고했다. 그리고 자기가 새로 알아낸 소식도 덧붙였다.
“월씨 가문에서 예순일곱 명을 보냈습니다. 여러 큰 주루며, 다루 밖에 모두 그들이 있습니다. 지금 거리에서는 전부 소씨 가문에 대해 좋은 말만 한답니다. 나리께서 복직하실 거라는 둥, 우리 소씨 가문에서 다음 승상이 나올 거라는 둥 떠들고 있답니다. 나리, 이 일은 심상치 않습니다.”
“심상치 않은 것을 누가 모르겠느냐!”
소 승상은 이를 악물고 버럭 화를 냈다.
“월령안! 이, 이게 아주 잘났구나!”
원래는 그저 슬그머니 손을 썼을 뿐이다. 소 승상 쪽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할 수 있었다. 이 소문이 점점 퍼져서 바깥사람들이 소씨 가문을 띄워 주었다가 짓밟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황제에게 가서 우는소리를 하려고 했다. 소씨 가문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지, 일개 상인도 소씨 가문을 이토록 마음껏 괴롭히고 함정에 빠뜨린다며 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월령안이 일을 더욱 크게 벌였다. 대놓고 그들을 욕보이고 있었다.
소씨 가문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소씨 가문의 문인(門人 – 문하생, 또는 그 세력을 따르는 사람)들이 여기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반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들은 정말 소씨 가문이 망했고, 소희 승상이 만만하다고 여길 것이다. 또 누구나 함부로 짓밟을 수 있다고 여기리라.
그는 조정에 수십 년을 몸담았다. 그가 아무리 원만하기 처신했다 하더라도, 밉보인 사람이 아예 없을 리는 없었다.
조정에 그를 짓밟아 진흙탕에서 뒹굴게 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몰랐다. 먼젓번 그가 사직서를 내고 황제가 동의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와 소씨 가문에게 손을 쓰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먼저 나서려는 이가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월령안 같은 일개 여인이 이토록 맘껏 소씨 가문을 짓밟고 모욕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들이 과연 이 기회를 놓치겠는가.
‘월령안이 이렇게 나오면 나도 반격할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반격한다면 폐하께서는 날 어떻게 생각하실까?’
“빌어먹을 월령안!”
월령안이 그의 계획을 망쳤으니 그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가서 장 오공자에게 편지를 보내라. 일은 그쪽에서 벌였으니, 그쪽에서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내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고 해라.”
소 승상은 또 다른 주모자를 떠올렸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소 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씨 가문은 이미 구정물을 뒤집어썼다. 그러니 장씨 가문도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 했다.
만약 장씨 가문이 아직도 청주의 그들과 계속 왕래하고 있음을 황제가 알게 된다면, 장 부승상도 승상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네, 나리.”
소 집사는 황급히 대답하고 시킨 일을 하러 갔다.
소 승상은 홀로 식당에 앉아 있었다. 한참 뒤, 그는 차가운 얼굴로 분부를 내렸다.
“가서 여방이에게 말해라. 사흘 뒤에 큰 도련님의 혼례를 치를 테니 고향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해라.”
월령안이 그들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고, 이 일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들 소씨 가문이 반격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런 시기이니만큼 그의 아들은 변경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됐다. 그의 아들이 여기 있는 한, 황제는 진비의 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럼 나와 청희 장공주의 일은?’
소 승상은 냉소를 지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청희 장공주의 계략에 빠졌다. 나중에야 잘못을 깨닫고 다시 바른길로 돌아온 참이었다.
‘폐하께서 내게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기는 하시겠지?’
소 승상은 재빠르게 대처하며 집안일을 하나하나 지시했다.
‘월령안이 나와 정면으로 겨루고 싶다면, 그 도전을 받아 줘야지. 일개 상인 계집이 나와 어떻게 겨룰지 한번 두고 봐야겠다!’
* * *
황궁 안.
황제가 소식을 알아보라고 보낸 사람도 길거리의 일을 사실대로 보고했다.
황제는 보고를 듣고 한참 멍해졌다가 목소리를 냈다.
“월령안이…… 미쳤단 말이냐?”
‘정면으로 소 승상과 겨루겠다는 건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정적들도 감히 손을 쓰지 못하는 소 승상에게, 일개 상인이 먼저 손을 쓰다니?’
“월 가주는…… 확실히 박력이 넘칩니다.”
이반반은 육 대장군의 차가운 얼굴을 떠올리더니, 묵묵히 월령안을 위해 한마디 거들었다.
그도 별수 없었다. 이미 육 대장군의 함정에 빠져 그와 같은 배를 탔다.
이반반으로서는 월령안의 칭찬을 한마디라도 해서, 월령안에 대한 황제의 불만을 슬그머니 없앨 수밖에 없었다.
그도 정말이지 너무 난처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짐도 월령안이 부러워지는구나.”
황제는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하지만 곧 표정을 바꾸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제보니 계안이도 월령안 때문에 사정하러 돌아온 거였구나? 자기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면 안 된다는 둥, 그럼 자기가 가만두지 않겠다는 둥……. 인제 보니 짐이 월령안을 탓할까 두려워 자기가 먼저 이 일을 무마하려 한 게 아니냐.”
이반반은 마음속이 조마조마하여 낮은 소리로 말했다.
“폐하, 조왕 전하의 이마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습니다. 앞서 소인이 보았는데 아직도 어혈이 있었습니다.”
“짐이…….”
이반반의 말을 들으니 황제는 화를 낼 수 없었다.
“됐다, 짐이 이번 한 번은 양보해야겠구나.”
“조왕 전하께서 일어나시면 틀림없이 기뻐하실 겁니다. 소인이 지금 수라간에 조왕 전하가 즐기시는 요리를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황제가 이번에 월령안의 잘못을 따지지 않기로 타협했다. 조왕 전하도 황제를 달래기 위해 틀림없이 함께 식사할 것이다.
“고기 요리를 몇 가지 더 준비해라. 계안이가 요즘 여위었더구나.”
황제는 순간 화를 내던 것도 잊고 이반반에게 분부를 내렸다.
“그리고 송 원정을 불러 난각 밖에서 대기하라고 해라. 계안이가 일어나거든 이마 상처를 살펴볼 수 있게 해라. 수라간에서도 계안이가 좋아하는 요리만 준비하지 말고, 기혈을 보충하는 요리도 두어 개 준비하라고 해라. 계안이가 계속 고생했으니 몸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몸보신을 잘해야지.”
옆에 있던 이반반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그러나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이반반은 얼굴의 웃음기를 거두었다. 어두운 얼굴로 옆에 있는 내관에게 말했다.
“가서 대장군의 사람에게 말을 전해라. 일이 잘되었다고.”
내관은 대답하고 빠른 걸음으로 뛰어갔다.
* * *
때는 밤이었다. 육장봉은 수하들을 데리고 성 밖의 큰 산에서 기러기를 찾고 있었다.
황궁에서 전해온 소식을 듣자, 육장봉은 옅은 미소를 짓고는 손에 든 쪽지를 없앴다. 바로 돌아서서 친위대에게 냉혹하게 명령을 내렸다.
“산으로 들어간다!”
날이 밝기 전까지 적어도 기러기 열 쌍은 찾아야 했다. 그래야 날이 밝은 뒤, 반 시진 간격으로 월령안이 기러기 한 쌍씩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