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화 황형은 골치 아프겠군
월령안은 마침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조계안과 실랑이하기도 귀찮아서 젓가락을 놓고 말했다.
“대인께서는 품위 있고 멋있으신데요. 기개와 도량이 비범한 분인데, 무서울 게 뭐 있나요?”
‘매일 저런 가면을 쓰고 있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 있나? 조계안은 자각이 없는 건가?’
“보는 눈이 있군.”
가면 아래서, 조계안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위로 올라갔다.
“어젯밤에 내가 태후의 궁에서 월 삼낭의 종적을 발견했다.”
“월 삼낭이 정말 황궁에 숨어 있었나요?”
월령안은 미리 짐작했지만, 확실한 소식을 들으니 역시 놀라웠다.
잠시 후, 그녀는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조정에서는 어떻게 처리하기로 했나요?”
“당분간은 처리하지 못할 거다.”
조계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전혀 거리낌 없이, 월씨 가문 하인에게 그릇과 수저를 한 벌 더 내오라고 했다.
“월 삼낭을 황궁에 데리고 간 건 태후의 친정인 유씨 가문의 사람이다. 월 삼낭은 지금은 태후 궁에 있어. 만약 태후가 월 삼낭을 감싼다면 황형은 어쩌지 못해. 월 삼낭이 무슨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니까.”
장소원의 일을 가지고 월 삼낭의 탓을 할 수는 없었다. 일단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태후가 끼어든다면 큰일은 작은 일이 될 것이고, 작은 일은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유씨 가문 줄을 잡다니. 정말 수완이 좋네요. 이건 아마도 청주와는 상관없는, 월 삼낭 본인의 능력일 거예요.”
유씨 가문은 늘 영리하게 처신했다. 그들은 그 어떤 정치적 문제에도 엮이지 않았다. 황제와 대적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사람을 시켜 찾아보라고 하마. 걱정하지 마라……. 황궁에 있는 한, 다른 건 몰라도 월 삼낭이 다른 짓을 벌일 기회가 없도록 잘 지켜볼 거다. 내가 그 정도 능력은 있지.”
조계안은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월령안은 웃기만 했다. 그녀는 소씨 가문을 음해하려는 소문을 퍼뜨린 게 월 삼낭의 솜씨라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단지 웃으면서 감사 인사를 했을 뿐이다.
그러나 월령안이 말하지 않더라도 조계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방금 황궁에서 나올 때 길거리에서 누가 그러더구나. 다음 승상은 반드시 소씨 가문에서 나올 거라고 말하면 동전을 하나 받는다고 하던데. 네가 한 일이냐?”
“맞아요. 대인께서는 제 대응이 어떤 것 같으세요?”
월령안은 더욱 찬란하게 웃었다.
조계안은 ‘허튼짓’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월령안이 생긋 웃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 버렸다. 대신 한마디 했다.
“아주 잘했다!”
조계안은 말을 하고 나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난 왜 월령안이 허튼짓을 하는 걸 지지했지?
월령안이 되려 소 승상을 함정에 빠뜨린 것은 통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월령안이 어머니의 시신을 찾기 위해 벌였던 일도 드러나게 된다.
일을 이토록 크게 벌이면 온 변경 백성이 떠들어 댈 것이다. 심지어 북요인들이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황제의 기분이 언짢아질 게 뻔했다. 월령안을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는, 천성적인 반골이라 여길 것이다.
“제 생각에도 아주 잘한 것 같아요. 저는 누명을 쓰는 게 싫어요. 해명해도 소용없다면 사실로 만드는 게 더 낫죠. 소씨 가문에서 불쌍한 척, 약한 척, 상인인 나에게 괴롭힘을 당한 척한다면, 저는 소씨 가문에게 어떤 게 진정한 괴롭힘인지 똑똑히 알려 줄 거예요!”
월령안은 조계안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일을 크게 벌이는 걸 분명 불만스럽게 여길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와는 상관없었다.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은 대단히 많았다. 그 무리에 끼려면 조계안도 줄을 서야 할 것이다.
“원래는 그저 길거리에서 백성들이 떠드는 소문이었으니 다들 모르는 척할 수 있었다. 나중에 소씨 가문이 우는 소리를 두어 마디 하면 황형이 이익을 좀 주고 달래 주면 끝날 일이었지.
그런데 지금 네가 일을 이렇게 크게 벌였잖느냐? 다른 사람도 네가 지금 일부러 소씨 가문을 대적하고 있다는 걸 다 알 거다.
소씨 가문의 그 인간들도 모르는 척할 수 없겠지. 어떤 일인지 뻔히 알면서도 소씨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나설 수밖에 없어. 이 일 때문에…… 황형은 골치 아프겠군.”
그러나 달콤하고 어여쁘게 웃는 월령안을 보자, 조계안은 심한 말은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됐다, 됐어. 정 안 되면 내가 황궁에 다시 가서 무마하면 그만이니까. 아무튼 황형도 지금 나에게는 미안해하고 있으니까. 소 승상을 역으로 음해하는 건 물론이고, 내가 소 승상 따귀를 두어 번 때리더라도 황형은 날 어쩌지 못할 거야. 그러게 누가 잘못하라고 했나?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말만 하면 다야? 황형도 참 순진해.’
* * *
조계안은 월씨 저택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황궁으로 돌아갔다.
황제는 어젯밤을 바쁘게 보내고 난 뒤, 쌓인 업무를 겨우 처리했다. 그렇게 밀린 잠을 보충하려는 찰나, 조왕이 돌아왔다고 궁인이 보고했다. 그는 당장 벌떡 일어나 앉았다.
“계안이가 돌아왔다고? 지쳤다고 하지 않았느냐? 가자마자 돌아오다니. 밖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한 건 아닐까? 아니면 상처가 또 아픈 건가? 여기 여러 날 오지 않았는데, 조왕의 궁에 있는 아랫것들이 침소를 잘 정리해 두었는지 모르겠구나.”
황제는 생각할수록 걱정되었다.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하듯 벌떡 일어섰다.
“안 되겠다. 조왕의 처소에 사람이 묵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 습해졌을지도 모르겠구나. 조왕에게 짐의 침궁에 와서 쉬라고 해라. 짐은 마침 태후 마마를 뵈러 가려고 했다. 어차피 침궁이 비지 않느냐? 이반반, 네가 가서 조왕에게 짐의 침궁에 와서 쉬라고 해라.”
옆에 서 있던 이반반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그는 드디어 입을 열 기회가 오자, 다급히 말했다.
“폐하, 조왕 전하께서 난각에서 폐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연히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는 거겠지요.”
‘조왕 전하께서 드디어 폐하께 심술을 부리지 않기로 하셨군. 시중을 드는 우리도 드디어 숨을 돌릴 수 있겠어.’
그게 아니면 매일 조마조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황제가 갑자기 성질을 부릴까 걱정하다 보니, 그들도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황제는 이반반을 흘겨보고는 긴 다리를 놀려 밖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폐하, 신, 신발을, 신발을 신으셔야…….”
이반반은 맨발로 나가는 황제를 보고 고개를 숙여 황제의 신발을 들었다. 그러나 몸을 돌려 보니 황제는 이미 떠난 뒤였다. 하는 수 없이 신발을 들고 황제의 뒤를 쫓아갔다.
이반반은 헐떡이며 뛴 끝에 황제를 따라잡았다.
“폐하, 얼른 앉으십시오. 누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내일 대신들이 분명 폐하께 제왕으로서의 품위가 없다고 할 겁니다.”
“짐은 집에서조차 한시도 자유롭지 못하구나.”
황제는 계단에 걸터앉아 다리를 내밀어 이반반에게 신발을 신기게 했다. 그의 얼굴에는 언짢은 기색이 드리워 있었다.
“짐이 밥을 먹어도, 물을 마셔도 간섭하지, 후궁과 밤을 보내는 것도 간섭하지. 짐이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면 백성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하고 사치를 부린다고 하지…….
이반반, 황제 노릇이 무슨 재미가 있느냐? 장봉이를 봐라. 장봉이는 하고 싶은 일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해 버리잖느냐? 또 월령안을 좀 봐라. 일개 상인 집안 여인이 짐보다도 잘 지내더라. 적어도 짐처럼 비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선이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욕먹을 일은 없지 않느냐?”
“폐하, 폐하께는 만민을 책임지고 계십니다. 일개 여자 상인을 어찌 폐하와 비교할 수 있을는지요? 그 여인은 폐하의 신발을 들 자격조차 없습니다.”
이반반은 깜짝 놀랐다.
황제는 늘 명군이 되기 위해 자신을 단속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소극적으로 변했을까.
“흥!”
황제는 코웃음 쳤다. 그는 이반반이 신발을 다 신겨 주자, 부축도 받지 않고 훌쩍 일어났다.
“이반반, 짐이 없어지더라도 백성은 여전히 백성이다. 내가 없어진 데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살던 대로 똑같이 살아가겠지. 하지만 월령안 같은 거상이 없어진다면, 남북 화물을 운반하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백성들의 생활은 불편해질 거야.”
이반반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황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황제는 오히려 웃음을 지었다.
“됐다. 짐도 푸념을 늘어놓은 것뿐이니까.”
이반반은 그 말에 웃기만 하고 말을 아꼈다. 단지 황제를 묵묵히 따르며 속으로 몰래 기도했다.
‘조왕 전하, 더는 폐하께 화를 내지 마세요. 폐하께서는 요즘 많이 지쳐 있으시답니다.’
한편, 조왕은 난각에서 한참이나 기다렸지만, 황제가 오지 않자 곧 잠이 들 것 같았다.
황제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조계안은 입을 열자마자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말하려던 순간, 자기가 찾아온 용건을 떠올리고 묵묵히 입을 닫았다. 그리고 대단히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일어나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
“황형.”
“됐다, 어서 앉아라. 지친 것 좀 봐라……. 짐이 난각을 치우라고 할까? 나중에 여기서 쉬겠느냐?”
조계안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황제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순식간에 더욱 환해졌다.
“그러시든가요.”
조계안은 가타부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도 너무 지쳐서 더는 움직이기 싫었다.
황제는 더욱 기뻐했다. 조계안의 옆에 앉아 먼저 물었다.
“계안아, 급한 일로 짐을 찾았다 들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
조계안도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던 참이었다. 황제가 입을 여니 그 말을 받아 물었다.
“황형께서는 밖에 나도는 소문을 알고 계십니까?”
“무슨 소문 말이냐?”
황제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는 요 며칠 영녕후부의 일 때문에 줄곧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거리의 소문도 이제야 퍼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황궁의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둘째치고, 설령 알았다 해도 황제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인데, 누가 감히 황제에게 이야기하려 하겠는가.
“육씨 가문에서 소씨 가문에 예물을 보냈잖아요?”
조계안은 하품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예물을 좀 많이 보냈어요. 그러자 밖에서 육씨 가문이 소씨 가문을 더 중시한다는 둥, 소함연을 더 중시한다는 둥, 육장봉이 소 승상을 도와줄 거라는 둥, 소 승상이 곧 복직할 거라는 둥, 복직하지 않아도 다음 승상은 반드시 소씨 가문 출신이라는 둥 하는 소문이 퍼지고 있답니다.”
“허튼소리. 어찌 이런 소문이 돈단 말이냐?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는 게 아니냐? 소씨 가문을 죽이려고?”
황제의 얼굴이 굳어졌다.
“소 승상이 비록 잘못을 저질렀어도 남이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사해라. 누가 감히…….”
“허!”
조계안은 황제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그는 황제를 흘겨보고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이럴 줄 알았어요. 정말 재미없다니까.”
조계안이 화를 내자, 황제도 순간 큰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는 다급히 누그러지며 조계안을 달랬다.
“계안아, 어찌 된 일이냐? 짐에게 설명을 해 주거라. 짐은 아무것도 모르지 않느냐?”
“그 소문들은 청주 월씨가 사람을 시켜 낸 겁니다. 하룻밤 만에 온 성의 백성이 모두 알게 됐어요.”
조계안은 자신의 용건을 떠올리고는 황제에게 심술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말투가 곱지 못했을 뿐이었다.
“월령안? 또 월령안이 벌인 일이냐?”
황제는 화를 낼 엄두도 못 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을 뿐이다.
조계안은 황제를 흘겨보았다.
“월 삼낭입니다!”
“태후 궁에 있는 월 삼낭 말이냐?”
황제의 안색이 또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