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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55)화 (355/1,004)

355화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건가?

태후의 궁은 수색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가서 최근 며칠간 궁을 드나들었던 사람을 기록한 인명부를 가져오너라. 내가 써야겠다.”

“소인이 지금 당장 다녀오라 이르겠습니다.”

이반반은 조계안이 기다리다 짜증이 나서 사람을 거느리고 태후의 궁전에 쳐들어가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발걸음이 빠른 내관에게 최대한 빨리 궁에 드나든 사람을 기록한 인명부를 가져오라고 서둘러 분부했다.

황궁에는 문이 네 개 있었다. 드나든 사람을 기록한 인명부는 총 여덟 권이었다.

“초, 초, 총관…….”

내관이 숨이 끊어질 정도로 뛰어왔다. 이반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인명부를 받아 조계안에게 가져갔다.

조계안은 받아 들고 날 듯이 빠르게 훑어보았다.

짜증스럽고 음침하던 눈이 순간 날카롭게 번뜩였다. 눈에 마치 별빛이 어린 듯했다.

촤라라락…….

조계안이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아주 빨랐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가 건성으로 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반반은 조왕이 펼쳐 본 장에 있던 내용은 모조리 기억했음을 알고 있었다.

인명부 여덟 권은 모두 빽빽한 글씨로 가득했다. 그러나 조계안은 이각이 채 지나기도 전, 날 듯이 빠른 속도로 인명부 여덟 권을 전부 훑어보았다.

조계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시큰거리는 두 눈을 깜빡이다가 먼젓번에 펼쳐 본 두 번째 인명부를 꺼내 펼쳤다. 그리고 한가운데의 기록을 짚으며 말했다.

“여기……. 이틀 전에 유씨 가문 사람이 태후를 뵈러 들어왔군. 낭자 둘을 데리고 북정문(北定門)으로 들어왔다.”

말을 마친 조계안은 또 인명부 한 권을 꺼내 중간 부분을 펼쳤다. 그리고 다른 기록을 가리키며 말했다.

“갈 때는 한 사람만 데리고 나갔다. 남문(南門)으로 나갔군.”

“유씨 가문에서 사람을 데려왔단 말입니까?”

유씨 가문은 태후의 친정이었다.

이반반은 조계안이 가리키는 기록 두 줄을 보고 좀 어리둥절해졌다.

‘이렇게 떳떳하게 황궁에 들어와서 당당하게 황궁에 남았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아무도 알아차린 사람이 없지? 이게 어찌된 영문이지?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건가?’

“정말 재미있군. 들어오고 나간 게 완전히 반대쪽 문이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그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하룻밤 내내 소란을 피운 끝에 드디어 실마리를 찾아냈다.

조계안은 기분이 제법 좋아졌다. 손에 든 인명부를 덮더니 이반반에게 던져 주었다.

“사람을 보내 알아보되 경솔하게 행동하지는 마라.”

“네, 전하.”

이반반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태후의 궁에 가서 사람을 잡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람 하나를 확인하는 것쯤은 이반반에게 있어 작은 일에 지나지 않았다.

반 시진 뒤, 이반반은 긍정적인 소식을 받았다.

“전하, 확인했습니다. 월 삼낭이 맞습니다.”

“정말 영리하군. 태후가 있는 곳에 숨을 줄도 알고. 됐다, 나머지는 우리가 상관할 게 아니다. 보고하러 가자.”

이제 태후에게 어떻게 사람을 내놓으라 할지는 황제가 신경 쓸 일이었다. 그는 사람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었다.

조계안의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걸음을 보자, 이반반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폐하께서는 또 머리가 아프시겠구나.’

조계안이 난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밝은 뒤였다. 황제와 육장봉은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은 여유롭기 그지없어 보였다.

“다들…….”

조계안의 눈이 어두워졌다. 그는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죽을 둥 살 둥 각 궁전을 수색하고 인명부를 펼쳐 보고 있을 때, 둘은 난각에서 다과나 즐기고 있었다니. 양심이 아프지도 않아?”

육장봉은 이제 막 음식을 다 먹은 참이었다. 손에 든 그릇을 한쪽에 놓더니, 오른손을 가슴팍에 가져가 누르며 엄숙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아프지 않군.”

“너…… 지금 장난해? 이게 귀신이라도 들렸나?”

조계안은 육장봉의 옆에 앉았다. 그는 음료를 들어 바로 입에 쏟아부었다.

지금 졸릴 뿐만 아니라 배도 고팠다. 그나마 성과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육일을 죽였을 것이다.

왜 육장봉을 죽이려 들지 않는지는 빤했다. 이길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육장봉은 조계안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되물었다.

“알아냈나?”

“네가 먼저 말해. 월 삼낭이 황궁에 숨어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내 사람이 월 삼낭을 한참이나 찾았지만, 그 계집의 행방을 찾지 못했어. 아주 꼭꼭 숨었더군.”

조계안은 또 달콤한 간식을 집어 입에 넣었다.

“변경에서 네가 찾지 못할 사람은 없다. 네가 찾지 않은 곳이 있을 뿐이지.”

육장봉은 끝까지 월령안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조계안은 육장봉에 태도에서 무언가 짐작한 듯 입을 열었다.

“나도 원래 황궁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어. 청주의 그 늙다리들은 분명 황궁에 사람을 남겨 두고 있을 거야. 그놈들이 황궁에 사람을 밀어 넣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 단지 난 황후께서 이렇게 둔하실 줄은 몰랐지. 사람이 당당하게 입궁한 것은 물론이고, 황궁에 갑자기 한 사람이 늘었는데도 전혀 모르다니. 정말이지…….”

조계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실망한 얼굴을 했다.

“당당하게 입궁했다고?”

황제가 드디어 입을 열 기회를 찾았다.

조계안은 황제를 힐끗 보고 손가락을 튕겼다.

“이반반…….”

“폐하, 이렇게 된 일입니다…….”

이반반은 앞으로 다가가 일의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또 조계안이 찾아낸 두 가지 출입 기록을 올렸다.

황제는 이를 보고 난 뒤 얼굴이 새파래졌다.

“월 삼낭과 유씨 가문이 무슨 사이인지 어서 조사해 봐라.”

‘청주 그 늙다리들이 유씨 가문과도 얽혀 있다고? 선대의 외척이었던 유씨 가문이 이런 시기에 실수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을 텐데?’

조계안이 남의 불행을 기뻐하듯 말했다.

“바로 잡아들이지 않고요?”

“일단 조사해라. 확실해진 다음에 짐이 태후를 만나러 가겠다.”

황제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태후 옆에 있는 것이라면 고양이나 강아지도 다른 것들보다 존귀했다. 사람은 말도 할 것 없었다. 함부로 손댈 수 없었다.

“좋아요. 황형 뜻대로 하세요. 이 일은 제가 한숨 자고 일어난 다음에 다시 조사하지요. 잘 지켜보십시오. 또 도망치게 두지 말고요.”

조계안은 피로에 전 얼굴로 하품했다.

그는 여전히 황제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육장봉에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육장봉, 같이 가지?”

“음.”

육장봉은 대답하고 일어났다.

“계안아, 황궁에 남아서 쉬지 않고? 네 안색이…….”

조계안이 가려고 하자, 황제는 서둘러 일어나 만류하려고 했다. 그러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계안이 말을 잘랐다.

“황궁에 남아서 뭐 하겠어요? 황형이 그 잘난 고모한테 효도하는 걸 방해하라고요?”

“계안아, 청희 장공주의 일은 짐이 이제 알았…….”

황제는 달래듯 입을 열었다. 그러나 조계안은 여전히 체면을 봐주지 않고 비아냥댔다.

“잘못한 걸 알았으면 앞으로 계속 잘못을 저지르세요. 황형,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돌아선 조계안은 장난기를 거두고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육장봉, 갈 거야, 말 거야?”

“폐하, 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육장봉은 황제를 보았다. 황제는 화가 났는데 차마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버림받은 소녀처럼 서러워하며 조계안에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육장봉은 속으로 생각했다.

‘조계안이 또 한 건 했군.’

* * *

육장봉과 조계안이 황궁을 나갔을 때는 이른 시간이었다. 장사꾼들이 그제야 노점을 열고 있었다. 길에는 행인들도 많지 않았다.

조계안은 황궁 안에서는 금방이라도 지쳐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황궁을 나가 쉬려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막상 황궁을 나서자 또 서두르지 않았다. 말이 천천히 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둘은 말을 타고 나란히 걸었다. 육일을 비롯한 사람들은 눈치껏 뒤쪽에서 따라갔다.

조계안은 말을 타고 있었지만,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육장봉에게 비스듬히 기울이고 말했다.

“월 삼낭이 황궁에 숨어 있다는 소식은 월령안이 알려 준 것이지?”

“맞아.”

육장봉은 조계안에게 숨길 것이 없었다. 숨길 필요도 없었다.

조계안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또 나 몰래 월령안을 찾아갔구나!”

육장봉은 조계안에게 눈을 흘기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생각이라는 걸 좀 해.”

“육장봉, 그게 무슨 뜻이야?”

조계안은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내가 월령안을 만나러 가는데 너 몰래 갈 필요가 있나?”

육장봉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너…….”

조계안은 육장봉을 손가락질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하잖아!’

육장봉의 말이 맞았다. 그가 조계안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월령안을 만나러 가더라도, 자신은 막을 수 없었다.

육장봉은 그거로도 부족한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몰래 갈 필요가 있겠어?”

“그러면 넌 또 정정당당하게 월령안을 만나러 가겠다는 말이야?”

조계안은 이를 악물고 물었다.

육장봉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게는 오지랖 넓게 간섭하는 황형도 없으니까.”

이 말에는 트집 잡을 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조계안은 한참이나 침묵했다. 그의 눈에 음울한 빛이 떠올랐다.

바로 이때, 길거리에서 갑자기 제각기 다른 고함이 들렸다.

“돈 드립니다! 돈 드려요!”

“육씨 가문과 소씨 가문이 혼인하고 소 승상이 복직한다는 말만 하면 동전 하나를 드립니다.”

“다음 승상이 반드시 소씨 가문 출신이라는 말을 하면 동전을 하나 더 드립니다.”

“돈 드립니다! 돈을 드려요!”

“여럿이 모여서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면 한 사람 당 하루에 동전 서른 닢씩 드립니다.”

조계안의 우울한 기분은 우렁차게 들려오는 잇단 고함에 깜짝 놀라 날아가 버렸다. 그는 경악한 시선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니면 저 사람들이 잘못 말한 건가? 누가 이렇게 까부는 거야? 소씨 가문을 이런 식으로 모함한다고?”

“월령안이지!”

육장봉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역시 월령안이 소씨 가문을 모함하는 게 맞았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귀엽고 직설적이었다.

월 삼낭의 수법은 월령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역시 월령안이군!”

조계안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육장봉을 노기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이걸 네가 또 어떻게 알아? 넌 매일 월령안 집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거야? 왜 그렇게 한가해?”

“이건 내 일이다.”

육장봉은 조계안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시간이 늦었군. 난 병사들을 데리고 야외에 나가 훈련해야 하니까 먼저 가지.”

말을 마친 육장봉은 말을 타고 떠나갔다.

육일을 비롯한 이들은 상황을 보자, 재빨리 말을 타고 쫓아가며 조계안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조계안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육장봉 부하들도 너무한 거 아니야? 나한테 먼지까지 먹이고!’

“뜬금없이 무슨 야외 훈련을 한다고? 북요인과의 비무를 대비하는 거면 야외까지 나가서 훈련할 필요가 없잖아!”

조계안은 말을 채찍질해 쫓아갔다. 그러나 가다가 또 멈춰 섰다.

“너한테는 신경 쓰기도 귀찮다!”

조계안은 말머리를 돌려 송취 골목으로 향했다.

그는 간만에 월령안을 찾아가기로 했다.

* * *

아침 일찍, 월령안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옷을 입고 은색 가면을 쓴 조계안이 귀신처럼 소리 없이 식당에 나타나더니,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조 대인?”

월령안은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을 떨어트릴 뻔했다.

“내가 무섭게 생겼느냐?”

조계안의 눈은 월령안을 음침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에서는 ‘내 기분이 언짢으니 나를 좀 달래 라’ 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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