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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54)화 (354/1,004)

354화 황궁의 잠 못 이루는 밤

육장봉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월령안은 제멋대로 해명에 나섰다.

“대장군도 아시다시피 월씨 가문은 보통 상인 집안이 아니에요. 저희 월씨 가문이 돈이 많기는 해도, 그 돈은 저희 것이 아니죠. 해마다 충분한 돈을 내놓기 위해서 월씨 가문의 가주는 쉴 틈이 없어요. 매일 눈을 뜰 때마다 돈을 벌어들일 방법만 생각하죠. 월씨 가문은 다른 가문처럼 가족의 도움도 받을 수 없어요. 월씨 가문의 가주에게는 가족이 없어요. 형제도 없죠. 뭔가를 하고 싶어도 오로지 가주 혼자 감당해야 해요.”

“음.”

육장봉은 무심하게 한마디로 대답했다. 그는 월령안을 통해 월씨 가문의 은밀한 세력을 알아내고 싶은 게 아니라고, 단지 그녀가 월 삼낭의 계략에 빠질까 걱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월령안은 믿지 않을 테니까.

그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월 삼낭을 찾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월 삼낭은 청주 월씨의 세력을 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월령안이 청주 월씨 가문을 대표하는 거로 보일 것이다.

월 삼낭을 찾아내지 못하면 석연치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육일과 육이가 온 변경을 샅샅이 뒤졌지만, 월 삼낭을 찾지 못했소. 당신이 만약 월 삼낭이라면 어디에 숨을 것 같소?”

월령안은 같은 월씨 가문 사람이니만큼 월 삼낭의 심리를 더 잘 알 것이다.

“만약 제가 월 삼낭이라면 어디에 숨었겠느냐고요?”

육장봉의 질문을 듣자, 월령안도 처음에는 멍했다. 그러나 바로 눈을 번쩍 빛냈다.

“알겠어요!”

월령안은 흥분해서 두 손으로 책상을 짚고 벌떡 일어났다.

“황궁이에요! 만약 제가 월 삼낭이라면 황궁에 숨을 거예요. 변경에서 황궁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요.”

“황궁이라고?”

육장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이 맞소. 또 청주의 그 사람들이라면 황궁에 인맥이 있을 것이오. 사람 하나를 황궁에 들여보내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닐 거요.”

육장봉은 바로 일어났다.

“시간을 끌 것 없소. 내가 당장 입궁하여 조사하라고 하겠소.”

월 삼낭은 너무 교활했다. 그는 월 삼낭에게 월령안을 해칠 기회를 줄 수 없었다.

“이렇게 늦었는데요?”

‘육장봉은 왜 이렇게 기운이 넘치는 거야? 황궁이 아주 자기 집이네? 조사하고 싶으면 그냥 할 수 있는 건가?’

“문제라도 있소?”

육장봉이 되물었다.

“없어요.”

육장봉과 황제가 대화를 나누던 장면을 떠올리자, 월령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황제 앞에서 육장봉은 신하다운 겸손함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육장봉과 황제는 군신 관계라기보다 형제 같았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깜짝 놀란 표정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월 삼낭을 찾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소?”

“대장군께서 처리하세요.”

월령안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녀로서는 손을 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지.”

육장봉은 승낙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줄곧 손에 움켜쥐고 있던 나무함을 월령안의 눈앞에 던졌다.

“당신 거요.”

“뭔데요?”

월령안은 나무함을 집어 들고 열어 보려고 했다. 그러자 육장봉이 말했다.

“선물이오. 되돌려 보내지는 마시오. 싫다면 그냥 버리시오.”

육장봉은 말을 마치자마자 떠나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웠다.

“선물이라고?”

월령안은 손에 든 나무함을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웬 선물을 보냈지?”

월령안은 호기심이 동해 나무함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새 은표가 한 다발 들어 있었다.

“은표잖아?”

월령안은 나무함 안의 은표를 꺼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한테 은표를 주다니? 잘못 준 거 아냐? 내가 돈이 부족해 보이나? 황금당에게 줄 수고비도 진작 다 줬는데. 이렇게 두툼한 은표 뭉치라니. 이게 대체 다 얼마지?”

세어 보고 나서야 십수만 냥이나 된다는 걸 알았다.

“육장봉이 미쳤나 봐. 아니지, 모두 십이만팔천팔백 냥이니까 이 숫자는…… 설마 빙금으로 준 건가?”

월령안은 손에 든 나무함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소함연이 받았다던 빙금의 딱 두 배였다.

육장봉이 이만한 금액을 들고 이 시간에 갑자기 찾아올만 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녀에게 뒤늦게 빙금을 주려한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소박까지 놓은 마당에 인제 와서 무슨 빙금을 벌충한단 거야? 육장봉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설마 밖에서 떠도는 소문에 내가 기분이 상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럴 리가. 난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데. 그런데…….’

“그런데 기분은 좀 좋네. 왜 이러지?”

월령안은 손에 든 은표를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이것으로 삼 년 전의 아쉬움을 달래는 셈 쳤다. 삼 년 전의 그 혼례는 월령안에게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됐어. 돈하고 싸울 것도 아니고. 육장봉이 줬으니 받아 두지, 뭐. 안 그래도 내일 또 돈을 써야 하는데 이 돈으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끄자.”

월령안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몸은 성실하게 은표를 나무함에 다시 담았다. 그리고 서재 뒤쪽의 밀실에 넣었다.

고작 십여만 냥밖에 안 되는 돈이었다. 육장봉이 준 거니 받아 두면 그만이었다.

그녀가 육장봉에게 쓴 돈은 십만 냥 정도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주는 돈은 받기가 좀 그렇더라도 육장봉은 달랐다.

육장봉이 얼마를 주든지 간에, 그녀는 모두 당당하게 받을 자격이 있었다.

* * *

월령안은 은표를 잘 챙긴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황궁의 높으신 분들은 그녀의 말 한마디 덕분에 오밤중에 일어나야 했다. 발 뻗고 잘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제는 육장봉 때문에 일어나야 했다. 그의 얼굴은 잠에서 덜 깬 듯 몽롱해 보였다.

“월 삼낭이 궁에 숨어 있다고 확신하느냐?”

“육장봉, 네 정보가 틀리기만 해 봐. 그랬다간 내가 널 죽여 버릴 테니까!”

조계안도 육장봉에게 불려와 입궁했다. 그는 지금 대단히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는 이틀이나 눈을 붙이지 못했다. 그나마 오늘 밤에는 일이 없어, 드디어 단잠을 잘 수 있겠구나 했던 참이었다.

그러나 자리에 눕자마자 육일의 부름에 일어나야만 했다. 하마터면 육일을 죽일 뻔했다.

“추측일 뿐이다. 네가 조사하지 않아도 돼.”

육장봉은 조계안을 훑어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울화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계안아…….”

황제는 조계안을 보자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는 기뻐하며 조계안을 불렀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짜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반면 조계안은 황제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충 황제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황형을 뵙습니다.”

황제는 전혀 기분 나빠 하지 않고 다급히 변명했다.

“계안아, 청희 장공주의 일은 짐이 잘못했다. 짐은…….”

“됐습니다.”

조계안은 귀찮다는 듯이 황제의 말을 잘랐다.

“전 황형의 군소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명령이나 내리시지요.”

황궁에서 사람을 찾으려면 황제에게 아뢰어야 한다. 사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황제의 허락을 받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

황제는 조계안이 짜증 난 것을 알았다. 더 말을 하는 대신 바로 명령을 내렸다.

“이반반, 조왕 전하와 함께 다녀오거라. 자객이 황궁에 잠입해서 짐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해라. 모든 궁전을 봉쇄하고 자객을 찾아라.”

“예, 폐하.”

이반반은 앞으로 다가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묻어 있었다.

황궁은 이반반이 관리하는 곳이었다. 월 삼낭이 정말로 궁에 숨어들었다면 그에게는 모욕적인 일이었다.

“가자.”

조계안은 난폭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는 인사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육장봉의 옆을 지날 때, 조계안은 어깨로 그를 밀쳤다. 하지만 육장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계안은 육장봉을 흘겨보고 퉁명스럽게 콧방귀를 뀌더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가서 자기가 자주 앉던 자리에 앉았다.

“장봉아, 네가 얻은 정보는 정확한 것이냐?

황제도 드높은 옥좌에 앉지 않았다. 대신 육장봉의 맞은편에 앉았다.

“네.”

“월 삼낭이 정말 궁에 숨어 있다면 짐은…… 정말 소름이 돋는구나.”

물론, 추측일 뿐이었다. 그 추측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일단 한 번 찾아보고 나면 결론이 날 것이다.

‘청주의 그 노친네들이 소리소문없이 황궁에 사람을 밀어 넣다니. 만약 자객이라도 투입한다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조왕 전하에게 자주 입궁하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조계안도 심심해하지 않을 것이다.

황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짐도 계안이에게 자주 입궁하라고는 한다. 하지만 황궁에 있기를 싫어하더구나. 황궁은 너무 구속이 심하다고 말이다.”

“폐하께서 명령을 내리시면 되지요.”

황제의 웃음은 더욱 서글퍼 보였다.

명령을 내렸는데도 조계안이 따르지 않으면, 황제는 체면을 잃게 될 것이다. 자기 체면이 깎일 만한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 * *

이날 밤, 온 황궁에서 잠을 잘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계안은 이반반과 금군을 데리고 모든 궁을 하나하나 수색했다.

궁전 하나하나, 방 하나하나 모두 샅샅이 뒤졌다. 심지어 황제와 황후의 침소마저 놓치지 않았다. 날이 밝아서야 모든 궁의 수색을 마쳤다.

그러나 아무도 찾지 못했다.

월 삼낭은 없었다.

조계안의 안색이 먹물처럼 어두워졌다. 그는 차갑게 이반반을 노려보며 말했다.

“모든 궁전을 수색했다고 확신하느냐? 빠뜨린 곳이 없느냐?”

‘결국 육장봉이 잘못 알았던 건가?’

이반반은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고 다급히 말했다.

“모든 궁전을 다 뒤졌습니다. 다만…….”

“다만 어디?”

조계안은 울화가 치밀어 소리를 질렀다.

이반반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다만 태후 마마와 태비(太妃) 마마의 거처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뭐? 태후?”

조계안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노기가 순간 확 사그라들었다.

‘태후의 거처를 어떻게 수색한다는 말인가?’

태후는 황제와 조왕의 생모가 아니었다. 비록 황제와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친어머니가 아니다 보니 그리 편한 사이는 아니었다. 서로 예의를 깍듯이 차려야 했다.

태후를 대할 때, 황제는 예법에 더욱 신경 썼다. 자신의 생모보다 태후를 더욱 존중했다. 잘못을 조금이라도 저지를 수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문무백관은 황제가 불효하다고 질책할 것이다. 태후도 말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속으로는 기분이 상할 것이다.

그랬다가는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만다.

바로 지금처럼, 조계안은 태후의 궁에 바로 들어가서 여기를 수색하겠다고 태후에게 말할 수 없었다. 설령 태후가 허락한다 해도 어림없었다.

“정말 성가시군.”

조계안은 이미 짜증이 가득 나 있던 터라 참지 못하고 욕을 한마디 했다.

이반반은 깜짝 놀랐다. 혹시 조계안이 사람을 거느리고 쳐들어갈까 걱정되어 다급히 설득했다.

“전하, 태후의 궁전에는 쳐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다른 의도가 없더라도, 일단 쳐들어가면 태후 마마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다.

또 월 삼낭을 찾아내는 것과는 무관하게, 태후의 궁을 침범하는 것은 악수(惡手)였다.

월 삼낭을 찾아내면, 태후는 황제가 그녀와 청주가 엮여 있다고 여길까 봐 불안할 것이다.

심지어 황제가 일부러 태후에게 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태후의 거처에 있는 아무나 지목하여 그자가 청주와 연관이 있다며 주장하려는 거라고 의심할 수도 있었다.

월 삼낭을 찾아내지 못해도 태후는 기분이 나쁠 것이다. 친아들이 아니어서 자기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다.

이 일에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태후와 황제의 원래부터 미묘했던 모자 관계가 아슬아슬하게 변할 것이다. 만약 이 일을 계기로 태후와 황제 사이에 빈틈이 생긴다면 앞으로 관계를 회복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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