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능력을 제대로 보여 줘야지
소 승상은 이미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기로 했다. 황제도 허락했다.
그동안 소씨 가문은 대단히 몸을 낮추었다.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백성들이 갑자기 소씨 가문을 치켜세웠다. 육씨 가문에서는 소씨 가문을 아주 중시한다고 했다. 육씨 가문의 도움이 있으니 소 승상의 몸이 좋아지기만 하면 바로 복직하리라고 했다. 설령 소 승상이 복직하지 않더라도, 후(候)로 봉해질 것이다. 심지어 다음 승상은 반드시 소씨 가문에서 나온다는 말도 나왔다.
전부 소씨 가문을 치켜세우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소씨 가문에는 이런 소문이 도는 게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황제도 이미 소씨 가문 출신의 대 유학자를 다음 승상으로 임명하기를 포기했다. 황제가 그럴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유언비어가 돌고 있으니 포기해야 했다.
소씨 가문에는 이런 시기에 길거리의 백성들이 소씨 가문을 치켜세우는 것이 대단히 불리했다. 가뜩이나 힘든 소씨 가문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월령안이 꾸민 일임이 밝혀지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육이도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이 청주 월씨임을 알아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조사를 계속했다. 소문의 출처가 월령안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될 때까지 끝까지 조사하고 나서야 이곳에 온 것이다.
육이는 이 일이 심상치 않다고 여겨 바로 돌아와 육장봉에게 보고했다.
육장봉은 육이의 보고를 듣고 난 뒤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
“월령안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 월 삼낭이겠군.”
육장봉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눈에서 날카로운 섬광이 번뜩였다.
“조사해라. 월 삼낭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 최근에 누가 청주 월씨의 사람과 접촉했는지 반드시 밝혀내라.”
‘하나같이 나 육장봉을 바보로 아는 건가? 어중이떠중이들이 감히 월령안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다니.’
육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조사하겠습니다.”
육이는 월령안이 아니라는 육장봉의 말에 안도했다. 황제가 소씨 가문을 음해하는 게 월령안임을 알아내는 날에는 그녀의 마음씨가 올바르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어쩌면 그녀를 더욱 싫어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황제는 이 일을 계기로 소씨 가문과 소 승상을 동정할 수도 있었다.
월령안은 소 승상을 어렵사리 무너뜨렸다. 그런데 소 승상이 다시 일어선다면, 그녀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 일은 반드시 배후를 밝혀내야 했다.
* * *
육장봉이 유언비어에 관해 육이에게 보고를 들을 때, 월령안도 집사에게 이 일에 관해 보고를 받고 있었다.
오전, 월령안은 길을 지나다가 자신을 짓밟고 소함연을 치켜세우는 소문을 들었다. 아무래도 이 일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하인에게 이 일을 지켜보라고 분부했다.
역시나 오후가 되자, 밖에 퍼진 소문은 소씨 가문 전체를 치켜세우는 것으로 변했다. 소씨 가문과 육씨 가문이 사돈을 맺고 나면, 소 승상이 당장이라도 복직하고 권세도 더 높아질 것처럼 떠들어댔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문을 듣자마자 누군가 소씨 가문을 띄우는 척하며 짓밟기 위해 음해하고 있음을 알아챌 것이다.
월령안은 사람을 시켜 조사했다. 뜻밖에도 그 화살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청주 월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정말 재미있군.”
월령안은 집사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참 대단한 함정이야!’
집사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아가씨,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일은 우리도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백성을 유도하여 소씨 가문을 노리는 사람이 청주 월씨 가문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조사해 냈다. 집사는 누가 한 일인지 짐작이 갔다.
“월씨 가문의 사람답네. 자기 집안사람을 공격하는데도 전혀 봐주는 법이 없군.”
불빛 아래서 월령안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직 셋째 언니가 숨은 곳을 찾지 못했느냐?”
“소인이 무능하여 찾지 못했습니다.”
집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차마 월령안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번에는 그가 둘러대는 것이 아니었다. 월 삼낭자도 월씨 가문 출신이었다. 당연히 월씨 가문의 일처리 방식을 꿰고 있었다. 월씨 가문의 하인들을 피하는 것쯤은 삼낭자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집사는 고개를 더욱 깊게 숙였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씨, 앞으로 우리는 어떡할까요?”
“나한테 덮어씌우고 있잖느냐? 기왕 덮어쓴 김에 일을 더 크게 벌여라.”
낮에 사람들 앞에서 보여 주었던 따뜻하고 온순하던 모습은 월령안에게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의 눈에는 날카로운 살기가 서려 있었다.
“아가씨, 무슨 뜻인지요?”
집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일을 벌일 거라면 크게 벌여야지……. 소씨 가문을 띄워주는 척하면서 짓밟는 게 청주 월씨 가문에서 벌인 일이라면, 소씨 가문에 청주 월씨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 줘야지!”
월령안은 눈을 감고 시선 속의 살기를 감추었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내일 성의 각 다루, 술집 밖에 좌판을 열게. 누가 육 대장군이 소 승상의 복직을 돕는다고 말하면 동전 하나씩 주게. 만약 그자들이 길거리에서 크게 ‘다음 승상은 반드시 소씨 가문에서 나온다’고 외치면 동전 두 닢을 주게. 소리를 지르는 대로 동전을 주는 걸세.
쩨쩨하게 굴지 말게. 나 때문에 돈을 아낄 필요 없어. 무조건 일을 키우게. 소란을 크게 피울수록 좋아. 셋째 언니한테 내가 어떻게 소씨 가문을 짓밟는지 보여 줄 거야. 다음번에 나에게 뒤집어씌울 때 더 완벽하게 꾸밀 수 있게 말이야.”
“아가씨, 이, 이래도 되나요?”
집사는 월령안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이럴 때는 무고함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왜 이 일을 사실로 만들려고 하시지?’
“안 될 게 뭐가 있겠는가? 난 소씨 가문을 욕하지도 않았고, 소 승상의 욕을 한 적도 없는데. 난 소 승상을 추어올렸을 뿐인데?”
‘소씨 가문은 황제에게 피해자로 보이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제대로 치켜세워서 보여 줘야지. 소 승상 그 늙은 여우한테 똑똑히 보여 줄 거야. 나 월령안이 어떻게 사람을 짓밟는지. 황제가 조사할 필요도 없게 말이야.’
집사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소씨 가문에서는…….”
“이게 바로 소씨 가문이 보고 싶어 하는 광경이 아닐까?”
월령안이 비웃었다.
“이 일에 소씨 가문이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생각해 보게. 육씨 가문에서 예물을 보내자마자 소문이 떠돌았네. 월 삼낭이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는 없어. 이건 미리 준비한 게 분명해.”
월령안에게는 소씨 가문과 월 삼낭이 협력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그러나 황제가 조사해서 그녀가 소씨 가문을 짓밟으려던 걸 밝혀낸다면, 결국 이득을 보는 쪽은 소씨 가문임은 알고 있었다.
월 삼낭도 그녀처럼 월씨 가문 출신이었다. 월씨 가문 사람은 자기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에게 이득이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만약 충분한 이익이 없었다면, 아무리 월령안을 해치는 일이라고 해도 월 삼낭은 소씨 가문을 돕지 않았을 것이다.
월 삼낭은 소 승상과 손을 잡은 게 분명했다.
그때, 서재의 문이 열렸다.
“소씨 가문이 끼어든 게 확실하오. 당신의 짐작이 맞소.”
육장봉이 달빛을 이고 서재로 들어왔다.
“대장군?”
월령안은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곧 일어나 웃음으로 무마하며 말했다.
“대장군께서 행차하셨는데 마중을 나가지 못했네요. 실례했습니다.”
‘다들 뭐 하자는 거야? 우리 월씨 저택의 벽과 호원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좀 상식적으로, 사람을 통해 알린 다음에 들어오면 안 되나? 꼭 이렇게 소리를 죽이고 나타나야 자기 능력을 뽐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음.”
육장봉은 서재로 들어서더니 집사더러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전혀 자신을 손님으로 여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태도가 장군부의 집사에게 분부할 때보다도 더 자연스러웠다.
월령안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집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가라고 눈짓했다.
집사는 배려심이 넘치게도, 물러가면서 문까지 잘 닫았다.
월령안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런 때에는 문을 활짝 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주인의 명예를 지켜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집사는 도대체 누구네 집 집사야?’
월령안은 울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못 본 척 찻주전자를 들어 육장봉에게 물을 부어 주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척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언제 오셨어요?”
“당신이 동전을 뿌려 소씨 가문을 짓밟겠다고 할 때 왔소.”
육장봉도 숨기지도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월령안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대장군께서는 절 막으시려는 건가요?”
“막아서 뭘 어쩌겠소? 매우 잘했소.”
단지 그 방식이 조금 뻔뻔하고 망나니 같을 뿐이다. 그러나 소 승상처럼 점잔 빼는 가짜 군자를 상대하기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 사건은 청주 월씨가 벌였다. 그리고 월령안은 청주 월씨와 연관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월령안과 청주 월씨가 뭐가 다른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이 해명하더라도 그녀가 발뺌한다고 여길 뿐,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애써 해명하고 찾을 수 없는 증거를 찾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나았다. 상대방에게 미처 손쓸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에게 월령안과 청주 월씨 출신의 품격이 다름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앞으로 청주 월씨가 다시는 월령안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지 못하게 말이다.
육장봉의 말을 듣자, 월령안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순간 환해졌다.
“대장군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니 저는 안심이에요. 대장군,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 일을 꼭 잘 해낼 거예요.”
육장봉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지? 월령안이 왜 날 위해 일하는 것처럼 말하지?’
자신의 말을 교묘하게 소 승상과 대적해도 무관하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다니.
어제 그가 이반반을 속였을 때, 그의 기분이 어땠을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이반반과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그는 기꺼이 그녀의 수작에 걸려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에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대장군께서 밤늦게 찾아오셨는데 급한 용건이라도 있으신지요?”
육장봉이 협조적으로 나오자, 월령안의 기분은 조금 좋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제 발로 찾아온 것까지 그냥 넘어갈 뜻은 없었다.
그녀는 일부러 ‘밤늦게’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이 시간에 연락도 없이 그녀의 집에 나타난 것이 얼마나 적절하지 못한 행동인지 일깨워 줄 셈이었다.
“음.”
육장봉은 대답하고, 손에 든 나무함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내놓지 않았다.
‘월령안이 급한 용건을 물으니, 급한 용건부터 이야기해야겠군.’
“영녕후부의 일에 변고가 생겼소.”
이 일이라면 월령안이 흥미를 느낄 거로 생각했다.
월령안은 잠시 멈칫하다가 물었다.
“청희 장공주가 내놓은 증거가 소용없나요?”
“그렇소.”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월령안은 역시 날카로웠다. 그가 말문을 열었을 뿐인데 대강의 내용을 짐작해 냈다.
월령안은 피식 비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청희 장공주는 정말 불쌍하네요. 평생 착하고 순진무구한 바보인 척 연기를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고수였잖아요. 모두가 청희 장공주를 진짜 바보로 만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