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월령안의 눈에 든 사람
월령안이 집으로 돌아갈 무렵에는 길이 트여 있었다. 구경하는 백성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어 육씨 가문이 소씨 가문에 예물을 보낸 일을 떠들고 있었다.
“다들 봤나? 육씨 가문 넷째 집안이 소씨 적장녀한테 보낸 예물 말이야. 살아 있는 기러기를 쓴 것은 물론이고, 빙금만 무려 육만육천육백육십육 냥이야. 세상에나, 금화로 바꿔도 작은 산더미라니까.”
“내 말이. 장군부에서는 분명 상인 집안 출신인 월씨에게 불만이 있는 거라니까. 생각들 해 봐. 삼 년 전에 장군부에서 산 기러기를 예물로 보냈어? 산 기러기는커녕 빙금 한 푼 주지 않았다며.”
“요즘 세상에 아무리 가난해도 색시를 얻으려면 빙금은 좀 주어야지. 월씨가 대장군에게 빙금 한 푼 받지 못한 걸 보면, 장군부에서는 월씨에게 아주 불만이 많았나 봐.”
“그나마 월씨가 낯짝이 두꺼워서 망정이지. 다른 아가씨가 그런 일을 당했어 봐. 시집도 가기 전에 그렇게 냉대를 받았으니, 부끄러워서 벽에 머리를 박고 죽었을걸.”
거리의 백성들은 다들 할 일이 없는 모양인지, 전부 모여들어 육씨 가문에서 예물을 두 번 보낸 일을 떠들고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말하든지, 육씨 가문에서는 월령안을 좋아하지도 중시하지도 않았으며, 소함연을 더욱 중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누군가 일부러 월령안을 짓밟고 소함연을 추켜세우게 유도하는 것이 분명했다.
월령안은 마차 안에 앉아 있었지만, 밖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었다. 길거리의 백성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짓밟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활짝 웃었다. 그녀의 눈에는 티 나지 않는 부러움도 살짝 섞여 있었다.
그래도 소함연이 부럽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육씨 가문 넷째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는 그녀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육비우는 빙금을 내놓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오늘 육씨 가문에서 보낸 예물은 모두 소씨 가문에서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소함연은 참 좋은 아버지를 두었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지,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지, 모두 뒤처리를 해 줄 아버지가 있었다.
“장소원에 비하면 넌 참 행복하구나. 부숴 버리고 싶게 말이야!”
월령안은 가볍게 웃으며 마차에 기대 눈을 감았다.
‘저들이 날 짓밟고 싶다면 짓밟으라지. 심하게 짓밟을수록 좋아. 소씨 가문이 얼마나 나대는지 황제가 알게 할 수 있을 테니.’
마차는 순조롭게 자택으로 돌아왔다. 월령안이 마차에서 내리자, 집사가 우울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가씨, 오늘 육씨 가문에서…….”
“됐어, 알고 있네. 밖에서 나를 짓밟고 소함연을 치켜세우는 유언비어를 누가 퍼뜨렸는지 알아보게. 증거를 모아두게. 쓸 데가 있네.”
월령안은 그녀를 짓밟고 소함연을 치켜세우는 짓을 한 자가 절대 소 승상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소 승상이 얼마나 총명한데 이런 멍청한 짓을 벌이겠어. 손을 쓴 사람은……. 정말 흥미진진하군.’
집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급히 대답했다.
“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월령안은 벌써 멀리 가 버린 뒤였다.
* * *
육장봉이 월령안의 집으로 예물을 보냈다. 뒤이어 육씨 가문 넷째 집안에서는 소씨 가문에 예물을 보냈다.
이 사건은 온 변경 백성의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황제도 깜짝 놀랐다.
“장봉아, 어찌 된 일이냐? 왜 뜬금없이 월령안의 집으로 예물을 보냈느냐? 뭘 하려는 것이냐?”
육장봉이 요즘 벌인 일 중 몇 가지는 황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월령안을 남다르게 대한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요즘 따라 특히 더욱 그랬다.
요즘 육장봉은 계속 티 나지 않게 월령안을 감쌌다. 어제 명화전에서도 그러했다.
황제는 어제 육장봉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병풍이 손 신의를 덮치는 순간, 육장봉은 움직이지 않았다. 월령안이 앞으로 다가가자, 그제야 급히 몸을 일으켰다. 일련의 일들을 황제는 모두 보았다.
“예물이요? 무슨 예물 말씀입니까?”
육장봉이 되물었다.
“어제 말이다. 짐이 말을 해야 아느냐?”
육장봉은 정말 시간을 제대로 골랐다. 어제는 다들 청희 장공주의 일에 몰두해서 황궁에는 이 사건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건 원래 월령안의 혼수입니다. 월령안의 혼수 목록에 있습니다.”
육장봉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황제는 화가 나 실소했다.
“넌 짐이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느냐? 그건 모두 육씨 가문에서 가주 부인에게 물려주는 물건이지 않으냐! 네가 그 물건을 모두 월령안에게 주었는데, 설마 월령안을 아직도 육씨 가문의 가주 부인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네.”
‘아직도’가 아니라 줄곧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삼 년 전, 할머님께서 월령안에게 예물을 보낼 때 빙금이 없었다고? 산 기러기도 없었단 말인가?’
육장봉은 월령안이 빙금을 받지 못한 것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의 짧고 실속 없는 대답은 황제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황제가 더 캐물으려고 하는데, 이반반이 다급히 난각에 들어섰다.
“폐하, 형부상서가 급한 일로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형부상서?”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고 육장봉을 힐끔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정사가 더욱 중요했다.
“들라 하라.”
“신은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육장봉이 공수하며 말했다.
“너도 함께 들어라. 짐이 어제 형부에 명령해 장공주를 학대했다는 구실로 영녕후 전체를 가두도록 했다. 형부상서가 지금 온 걸 보니, 아마도 영녕후 사건에 진척이 있는 것 같구나.”
황제는 쉽게 육장봉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육장봉은 지금 대단히 바빴다. 육장봉이 일단 황궁을 나가면 황제가 다시 그를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폐하, 형부는 신의 소관이 아닙니다. 영녕후부의 일도 신의 소관이 아닙니다.”
육장봉은 이와 관련된 사무를 조계안에게 진작 넘겨주었다. 이 일이 월령안과 연관되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개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는 추밀사다.”
황제는 그가 추밀사로서 조정 정무에 관심을 좀 두기를 바랐다.
“폐하, 형부는 추밀원 소관도 아닙니다. 신이 개입하면 장 부승상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육장봉은 황제가 지금 여전히 장 부승상을 위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업무를 줄이기 위해 장 부승상을 일부러 거론했다.
황제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육장봉이 난각을 나서자, 마침 바쁜 걸음으로 난각에 들어서는 형부상서를 마주쳤다.
“대장군.”
형부상서는 공수하고 예를 올렸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고 형부상서를 스쳐 지나갔다.
그가 멀어진 뒤, 형부상서가 황제에게 오래된 병이 있다는 등, 사건에 변화가 생겼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게 어렴풋이 들렸다.
육장봉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대장군!”
육장봉이 궁을 나가려고 할 때,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리자, 이번에 임명된 태의원 원정이 땀투성이가 된 채로 서둘러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육장봉은 그가 월령안의 눈에 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키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제자리에 서서 잠시 기다렸다.
“대장군, 소관은 송연치(宋衍致)라고 합니다. 어제 소관과…….”
송 어의는 육장봉이 자기를 잊었을까 봐 먼저 소개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차갑게 말을 잘랐다.
“무슨 일인가?”
“그, 그게…….”
송 원정은 말문이 막힌 듯했다. 얼굴이 조금 불안해 보였다. 그래도 단단히 결심한 듯, 앞으로 다가와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소관은 어제 폐하의 명령을 받아 청희 장공주를 진맥했습니다. 그러다가 청희 장공주의 맥이 좀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던가?”
육장봉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송 원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희맥(喜脈 - 임신의 징후가 있는 맥박)이 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
육장봉은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송 원정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엄숙하게 대답했다.
“청희 장공주 마마의 희맥은 아주 이상합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장공주 마마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였는데, 회임하지 않은 게 확실합니다.”
육장봉의 눈에는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월령안은 역시 간도 크군. 감히 폐하까지 속이려 들다니.’
육 대장군이 말을 하지 않자, 송 원정은 그가 사건의 심각성을 모른다고 여겨 서둘러 한마디 덧붙였다.
“장공주 마마의 희맥은 가짜입니다. 소관은 장공주 마마가 월 가주를 해치려고 일부러 꾸민 일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음.”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갑고 엄숙하게 말했다.
“그러니 장공주는 반드시 회임한 거여야만 하네. 회임한 지 두 달이 되었네. 알겠나?”
송 원정은 멈칫했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장군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다른 어의들이 장공주 마마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일을 사실로 만들 것이다. 절대 청희 장공주가 월 가주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라.
육장봉은 칭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훌륭하네!”
월령안은 역시 보는 눈이 뛰어났다. 그녀가 송 어의를 밀어주어 원정의 자리에 앉게 한 보람이 있었다.
황궁 안은 편한 장소가 아니었다. 송 원정은 말을 마치자 바로 떠나갔다. 육장봉도 오래 머무르지 않고 황궁 밖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궁문 입구에서 그는 검은 옷을 입은 최일을 만났다. 그 모습은 멋스러우면서도 기개가 빼어났다.
최일은 마침 입궁하려던 참이었다. 그의 걸음은 시원스럽고,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색다른 우아함을 자랑했다. 가는 도중에도 수많은 사람이 최일을 훔쳐보았다.
육장봉은 최일과 가까워지자, 발걸음을 멈추고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본 최일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곧 미소를 띠고 앞으로 다가와 농담처럼 말했다.
“대장군을 뵙습니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요?”
육 대장군은 항상 ‘안하무인’이었다. 황궁 안이든 밖이든 누구를 만나도 발걸음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누군가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예를 올려도 항상 무시했다.
최일은 그나마 자신은 육장봉과 친분이 있는 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육장봉에게서 아무런 대우도 받지 못했다.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육장봉이 먼저 멈춰 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육 대장군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기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일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육장봉은 최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위아래로 그를 훑어보고 차갑게 말했다.
“월령안이 사람 보는 눈은 늘 뛰어나지. 보통 사람은 월령안의 눈에 들지 못하네.”
육장봉은 말을 마치더니 돌아서서 떠나갔다. 최일만 그 자리에 남아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저 말은 무슨 뜻이지?”
최일은 몸을 돌려, 멀어지는 육장봉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했다.
“내가 보통 사람이라서 월령안의 눈에 들지 못했다는 건가? 아니면 육장봉 자신은 월령안의 눈에 특별하다고 일부러 알려주는 건가?”
말을 마친 최일은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후자가 맞을 거야. 나는 최일이니까!”
‘내가 어떻게 보통 사람이겠어? 내가 어떻게 월령안의 눈에 들지 않을 수 있겠어?’
그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들었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여유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춘일연이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육장봉은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군. 정말 옹졸한걸.”
최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황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속세에 관심 없는 육 대장군에게도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육 대장군을 놀리는 데 써먹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