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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47)화 (347/1,004)

347화 수익성이 아주 좋은 투자

월령안은 거부감 가득한 얼굴을 했다. 집사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아가씨, 밖에 이미 소문이 퍼졌습니다.”

월령안이 현실을 외면하더라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며 투덜댔다.

“내가 지금 그때 가지고 나왔던 예물을 하나하나 돌려보낸다면 어떨 것 같은가?”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듯합니다.”

집사는 고개를 숙였다.

“내 생각도 그래…….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으려니 속이 더 갑갑해.”

육장봉은 떠들썩하게 예물 여든여덟 상자를 그녀의 집으로 보냈다. 그 문제의 수고비 때문에 불만이 있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육장봉은 음흉한 사람이라, 화가 났다고 해도 대놓고 따지지 않았다. 오히려 육씨 가문에서 그녀에게 주었던 예물을 보냄으로써, 변경의 백성들에게 새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모르는 사람은 그들이 아웅다웅 부부싸움을 하는 거라고 여길지도 몰랐다.

뭐야? 난 육장봉과 부부가 아니야. 난 육장봉과 아무 관계도 없어.’

월령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를 악물었다 하자, 집사는 두어 마디 달래려고 했다. 그런데 때마침 하인이 와서 보고했다.

“월 아가씨, 대장군의 사람이 뵙기를 원합니다.”

“안 만나!”

월령안은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만약 아가씨께서 그들을 만나주지 않겠다고 하시면 이 상자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인은 나무함 하나를 집사의 손에 건넸다.

월령안은 어두운 얼굴로 차갑게 코웃음을 치더니 거만하게 고개를 돌렸다.

‘장군부의 사람들도 내가 지금 기분이 나쁘다는 걸 알긴 아나 보네?’

“아가씨, 옛 의서입니다.”

집사는 함을 열고 힐끔 보았다.

“또 편지도 있습니다.”

“가져오너라.”

월령안은 집사가 받들고 있는 의서에 손을 뻗었다. 펼쳐서 하나하나 훑어보더니 실소했다.

“병 주고 약 주네.”

집사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말을 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화가 났지만, 귀중한 의서에 화풀이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화를 꾹 참으며 말했다.

“이 의서를 한 부 베껴서 다시 장군부에 보내라.”

육장봉은 먼저 황실의 귀중한 의서를 내놓아 그녀가 베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이것을 봐서라도 예물의 일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예. 아가씨.”

집사는 눈을 내리깔고 눈 속의 웃음기를 감췄다.

‘아가씨는 아시는지 모르겠군. 육 대장군은 늘 아가씨를 늘 화나게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빨리 아가씨를 달래신다는걸. 이러는 걸 보면 육 대장군도 우리 아가씨를 잘 아시는 거야. 우리 아가씨를 늘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집사는 물러가기 전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 일이 복인지 화인지 모르겠구나.”

그 혼잣말은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월령안은 듣고 말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쓴웃음을 지었다.

육장봉과 자꾸 엮이는 것이 복인지 화인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

상인으로서의 이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건 좋은 기회야.’

육장봉은 지위가 높고 권력이 강했다. 그가 그녀를 좋아한다면, 감정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득이 딸려왔다.

그녀는 이 감정을 잘 이용하여 육장봉의 세력에 기대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또 두렵기도 했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웠다.

월령안은 자신의 가슴을 눌러 보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지자, 얼굴의 미소가 더욱 씁쓸해졌다.

예전에는 육장봉이 없으면, 그녀의 심장은 뛰지 못할 줄 알았다.

지금, 그녀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그것도 점점 더 활기차게 뛰고 있었다.

‘이건 육장봉 때문일까?’

“육장봉.”

월령안은 두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눈물 한 방울이 톡, 하고 눈가에서 떨어졌다.

마음이 대단히 언짢았다.

‘육장봉은 왜 내가 다 포기한 다음에야 이러는 걸까. 왜 평온하던 내 마음을 휘젓는 건데?’

“내가 전생에 당신 무덤을 판 것이 틀림없어. 그래서 이번 생에 이렇게 당신한테 단단히 찍힌 거야!”

* * *

월령안은 시간을 조금 들이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점심을 들고 난 뒤, 집사가 송 어의 몫으로 준비한 분례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자 송씨 저택으로 가서 송 어의를 데리고 명월산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막 문을 나서려 할 때였다. 문지기가 보고하러 왔다.

“아가씨, 밖에 송씨라고 하는 소년이 아가씨를 만나 뵙고 싶답니다. 그 소년의 말로는, 자기 할아버지가 바로 우리 월씨 가문에서 초빙한 의원인데 지금 오실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사죄를 하려고 찾아왔답니다.”

“올 수가 없다고?”

월령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먼저 사람을 들이거라.”

얼마 지나지 않아, 대략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해사한 얼굴을 한 훤칠한 소년이 화청으로 들어왔다. 소년은 미안한 표정으로 월령안에게 정중하게 큰절을 올렸다.

“소인이 월 가주를 뵙습니다.”

“송 공자, 어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앉으세요.”

월령안은 소년의 수심이 가득한 얼굴에 미안함과 불안한 기색밖에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속으로 송씨 가문에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 어의가 오지 못하는 데는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혹시 누군가 송 어의를 가로챈 걸까?’

“월 가주, 저는 송씨이고 이름은 언(言)이라고 합니다. 태의원의 송 어의는 저희 할아버지이십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월 낭자께 사죄하러 왔습니다.”

송언(宋言)은 앉지 않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월령안에게 읍했다. 그리고 부끄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월 가주를 위해 일할 수 없게 되셨습니다. 오후에도 월 낭자와 함께 성 밖에 나가실 수 없으세요.”

송언은 말을 마치고, 은표 한 장을 꺼내 월령안의 손 옆에 두었다.

“월 가주, 이건 백 냥짜리 은표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월 가주께 돌려드리라고 하셨어요. 또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라고도 하셨고요. 할아버지께서는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월령안은 은표는 신경 쓰지 않고 상냥하게 물었다.

송언은 부끄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점심 때 황궁에서 갑자기 사람이 왔습니다. 폐하께서 할아버지를 원정으로 승진시켰으니, 바로 태의원에 나오라고 하셨어요. 한시도 늦으면 안 된다고요. 할아버지께서는 이틀만 미뤄 달라고 한참 통사정을 하셨지만, 폐하께서 오늘 오후에 태의원에서 할아버지를 만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도 도저히 다른 수가 없어 그들을 따라 입궁하신 거예요.”

송언은 말을 마친 다음 월령안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 일은 어떻게 해명해도 송씨 가문 잘못이었다. 더 좋은 곳이 생겼답시고 원래의 약속을 저버린 꼴이었다.

“송 선생님이 승진하셨군요. 이건 좋은 일이에요. 보석은 결국 빛을 발하는 법이죠. 송 선생님이 드디어 힘든 나날을 이겨낸 것을 축하해요. 그분의 의술이라면, 반드시 성공하실 거예요.”

월령안은 기쁨을 드러내며 축하해 주었다. 전혀 불쾌한 티는 내지 않았다.

이 일은 송 어의의 탓도 아니고, 송씨 가문의 탓도 아니다. 그녀의 추측대로라면, 이 일은 황제가 일부러 그런 것이다.

그녀가 송 어의를 빼내 간 것을 알자, 일부러 송 어의의 관직을 높여 주어 황궁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황제라는 작자가 이렇게 옹졸해서야. 정말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월령안이 화를 내기는커녕 진심으로 할아버지를 축하해 주자, 송언은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월 가주, 할아버지 말로는 월 가주께서 급히 의원을 쓰셔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도 할아버지 곁에서 의술을 십몇 년 배웠어요. 비록 할아버지 실력에는 못 미칩니다만, 할아버지의 의술을 칠팔 할 정도는 배웠습니다.

월 가주, 만약 당분간 다른 의원을 찾을 수 없으시다면 제가 한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할아버지께서 제게 치료 방법을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송 공자도 의술을 배우셨나요? 송 선생님은 자손들에게 의술을 배우지 못하게 하셨다던데요?”

월령안의 눈이 반짝거렸다.

황궁에서 나오는 길에 송 어의에게 들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의술을 가르치지 않았다. 손자도 과거 준비를 하고 있다 들었다. 그런데 의술을 배운 손자가 있었다니.

송 공자는 약간 어색하게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의술을 배우지 못하게 하신 것은 맞아요. 의술을 배우면 삼대가 망한다면서요. 하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의술을 좋아했어요. 할아버지께서 안 된다고 하셔서 몰래 배웠어요. 나중에 할아버지도 하는 수 없이 저를 옆에 두고 가르치셨어요. 아직 실제로 진료한 적은 없지만요.”

월령안이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여길까 걱정되어서인지 송언은 다급히 한마디 덧붙였다.

“월 가주,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오기 전에 할아버지께서 저를 시험해 보셨어요. 처방대로 그분 몸에 침을 놓게 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출사표를 내도 되겠다고 하셨어요.”

송언의 말을 듣자, 월령안은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은 듯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일어나 송언에게 읍하며 말했다.

“송 공자, 앞으로 부탁드릴게요. 저를 대신해 송 어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송 어의께서 제 큰 고민을 해결해 주셨어요. 이번에 진 신세는 기억해 두겠습니다.”

그녀가 사람을 제대로 봤다. 송 어의는 역시 인품이 고상한 사람이었다.

“월 가주, 절대 그런 말씀은 하시지 마세요. 감사 인사를 드려도 저희가 드리는 게 맞아요.”

송언은 나이가 어려 유들유들하게 굴 줄 몰랐다. 월령안이 그에게 예를 올리자, 깜짝 놀라 연신 피하며 서둘러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평생 태의원에 계셨지만, 폐하께서는 할아버지의 존재를 전혀 모르셨대요. 이번에 원정으로 승진한 것도 전부 월 낭자의 덕분이라고 하셨어요. 월 낭자는 저희 집안의 은인이세요.”

“보석은 언제고 빛을 발하는 날이 오는 법이죠. 송 선생님은 의술이 뛰어나고 인품이 훌륭하시잖아요. 사람들에게 짓눌리지만 않았더라면, 진작에 성공하셨을 거예요. 그러면 제가 그분의 덕을 볼 기회도 없었겠죠.”

사실, 그녀야말로 태의원에서 송 어의를 빼내 옴으로써 큰 덕을 보았다.

월씨 가문은 무슨 사업이든지 다 했다. 그러나 의약 사업만큼은 해본 적이 없었다. 송 어의라는 줄이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사업을 더 크게 벌일 수 있었다.

이제 노인을 치료할 의원도 생겼고, 송 어의도 원정으로 승진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녀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월령안은 아까까지의 우울한 기분을 지웠다. 그리고 송 어의와 똑같은 조건으로 송언을 고용하겠다고 먼저 말했다.

송언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러나 곧이어 두 손을 연신 내저었다.

“전 할아버지만큼 대단하지 못해요. 저는…… 안 됩니다. 전 할아버지보다 못해요.”

“송 공자, 함부로 자신을 낮추시네요!”

송언이 기꺼운 마음으로 남게 하려고, 월령안은 먼저 좋은 점을 말했다.

“우리 집에는 황실에 소장된 유일본 의서의 복제본이 있어요. 그리고 약왕곡의 신의께서 직접 가르쳐 줄 거예요. 공자가 배우려고만 하면, 천부적인 재능도 있으니까, 미래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을 거예요.”

그녀가 송 어의의 손자를 얻게 된다면 황제가 송 어의를 빼앗아 가도 괜찮았다.

이로써 그녀와 송씨 가문의 이익은 더욱 깊게 엮였다. 게다가 송 어의가 원정으로 승진했으니 그녀에게 좋은 점이 더욱 많을 것이다.

황제는 신분을 내세워 그녀가 마음에 들어 했던 어의를 빼내 갔다. 지금으로서는 그녀가 손해를 본 것 같지만, 멀리 보면 그녀는 수익성이 아주 좋은 투자를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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