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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43)화 (343/1,004)

343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

육장봉은 굉장히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월령안은 그가 이 와중에 농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정신이 들자, 놀리듯 한마디 했다.

“그럼 대장군께서는 좋은 가격에 파셔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월령안은 육장봉 말에 맞추어 농담을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육장봉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묵직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당신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니 팔 수 없소.”

월령안은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너무 무섭잖아. 육장봉이 미쳤나?’

“콜록, 콜록…….”

월령안은 침을 꿀꺽 삼키다 사레가 들렸다. 그 바람에 한바탕 기침을 했지만, 잦아들지 않았다. 창백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육장봉은 한숨을 내쉬었다.

“때를 잘 맞춰서 기침하는군.”

분위기가 제대로 깨졌다.

월령안은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불쌍한 모습으로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이렇게 날 놀라게 해서 죽일 셈인가?’

육장봉이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라면 일부러 그래도 괜찮소.”

육장봉의 시선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뜨거웠다.

‘내가 당신을 아껴 줄 테니 당신은 더 교만하게, 더 고집스럽게, 더 제멋대로 굴어도 좋소. 오직 나만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교만하게, 고집스럽게, 제멋대로 굴었으면 좋겠소.’

월령안은 육장봉의 시선에 몹시 불편해졌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대장군, 힘들어요.”

순간 육장봉의 안색이 변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소?”

그는 성큼성큼 한 나지막한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예를 올리기도 전에 목청을 높여 불렀다.

“어의는 어디 있느냐? 당장 나오너라!”

육장봉이 소리를 치자, 하늘을 진동시키고 땅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어도 태의원 전체를 뒤흔들었다. 나이 지긋한 한 어의가 육장봉의 고함을 듣고 날 듯이 뛰어나왔다. 육장봉이 사람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유, 육 장군?”

“뭐? 대장군이라고?”

“이, 이, 이…….”

상상력이 풍부한 한 어의가 월령안을 가리켰다. 목소리가 떨려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황궁에서 여인은 딱 두 부류였다. 하나는 후궁이고, 다른 하나는 궁녀였다.

육장봉의 성품으로는 절대 황제의 후궁을 건드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육장봉이 안은 사람이 궁녀라는 말인가?’

‘세상에!’

수많은 귀족 여인의 열광을 불러일으키고도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여인이라면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하던 육 대장군이 일개 궁녀의 손에 걸려들었다.

‘저 궁녀는 팔자가 너무 좋은데!’

어의들은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멈춰 선 채 말을 하지 못했다.

정작 육 대장군은 본인이 월령안을 안은 채로 황궁을 활보했다가는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킬지 모르고 있었다. 물론, 알았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그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육장봉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살필 필요가 없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늙은 어의를 대충 손으로 가리켰다.

“자네로 하지. 이 사람을 살펴보게.”

육장봉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월령안을 안고 태의원으로 들어갔다.

지명된 늙은 어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동정과 부러움이 섞인 시선을 받으며 육장봉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왜탑 위에 살며시 올려놓고는, 돌아서서 어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또 차갑고 오만해졌다.

“이 여인이 햇볕 아래서 일각 정도 서 있었네. 그러고 아주 힘들다고 말했지. 안색도 창백한데, 자네가 보기에는 어찌 된 영문인가?”

육장봉을 따라 들어온 늙은 어의는 월령안은 뚫어져라 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 차림새는 궁녀가 아닌데. 어느 집의 귀족 여인인가? 그런데 귀족 여인이 왜 면으로 지은 옷을 입었지? 이 낭자는 도대체 누구지? 얼굴색 하나 변하는 법이 없던 육 대장군이 소리 지르고 당황하게 만들다니?’

월령안을 쳐다보는 어의의 두 눈에는 생기가 넘쳤다.

육장봉은 본능적으로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늙은 어의의 시선을 가로막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다 보았는가?”

“다, 다 보았습니다.”

늙은 어의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그리고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 낭자는 기혈이 모두 허합니다. 크게 한기가 드는 바람에 심하게 몸이 상했습니다. 한동안 몸을 잘 조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겁을 먹어서 마음이 편하지 못한 상태이실 겁니다……. 지금 몸이 아주 허약한 상태니 제대로 자리에 누워서 몸조리를 해야 합니다.

오늘 햇볕이 강했으니, 그리 오래 계셨다면 더위를 먹었을 겁니다. 따로 치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낭자의 옷을 느슨하게 하여 숨을 돌리게 하면 됩니다.”

늙은 어의는 진맥하기는커녕 보기만 했는데도 월령안의 상태을 정확하게 맞췄다. 게다가 기세도 당당해, 자신의 진단에 자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관복을 보니 가장 하급 어의였다. 태의원에서도 심부름꾼 같은 존재였다.

그의 관복은 깨끗하게 풀을 먹이기는 했지만, 옷소매와 옷깃은 심하게 닳아 보풀이 일은 상태였다. 형편이 궁색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만한 재주가 있으면서 힘들게 사는 것을 보자, 월령안의 마음이 움직였다.

“혹시 저희 집에서 주치의를 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급료로 지금의 세 배를 드릴 수 있어요. 일 년 사계절마다 의복을 드리고, 설 선물, 명절 선물도 따로 챙겨드릴게요.”

능력이 있는 사람을 발굴해 손에 넣지 않는다면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나, 낭자는 누구시오?”

늙은 어의는 놀란 눈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요즘 세상에 감히 태의원에서 어의를 빼가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월령안이 공손히 말했다.

“월씨 령안이라고 합니다.”

“월씨 가문의 그분?”

늙은 어의는 눈앞이 반짝였다.

‘재신의 아이! 내 반평생 가난하게 살았는데 인제 팔자가 피려고 이러나?’

월령안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늙은 어의는 눈앞이 반짝거렸다. 그러나 곧 우울해지더니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월 가주, 전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밉보인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월 가주께 폐를 끼칠 겁니다. 이 일은 없던 일로 하시죠. 저도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의 의술은 뛰어났다. 이 몇 년 동안, 그를 쓰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설령 그를 쓰려는 사람이 없더라도, 그의 의술과 어의라는 신분이 있으니, 이 변경에서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중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를 계속 억누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바람에 변경에서 생존하기 어려웠다.

태의원과 변경을 떠났다가 비명횡사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없었다면, 그는 진작 떠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태의원에서 매일 허송세월만 보내고, 남들의 억압을 받으며 살았겠는가.

“누구에게 밉보이셨어요?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월령안은 인재를 진심으로 아꼈다. 게다가 이 늙은 어의는 그녀를 속일 수 있었는데도 자신이 밉보였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이를 미루어 보아, 인품도 좋은 게 분명했다.

만약 지나치게 어려운 상대가 아니라면, 이 사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청희 장공주 마마입니다.”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청희 장공주 마마라고요? 어떻게 밉보이셨는데요? 그분은 착하시잖아요. 불쾌하다 해도 사소한 일로 따지고 들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월령안은 내심 즐거워졌다.

‘우연이 너무 기가 막힌데!’

만약 이 늙은 어의가 다른 사람에게 밉보였다면 그녀는 함부로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밉보인 사람이 청희 장공주라면 전혀 부담이 없었다.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월 가주께서 물으시니 저도 숨기지 않겠습니다.”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이십여 년 전, 제가 갓 입궁하여 당직을 설 때 일이지요. 그때 청희 장공주 마마께서는 아직 시집가지 않았을 때입니다. 제가 궁에서 우연히 그분을 보았을 때, 임신하셨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동료에게 말을 꺼냈지요. 그런데 동료가 바로 청희 장공주 마마 앞에서 제 이야기를 일러바쳤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얼굴이 더욱 수심에 잠겼다.

“그때 저는 청희 장공주 마마의 맥을 짚지도 않았고, 가까이서 살피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멀리서 한 번 보고 청희 장공주 마마께서 임신하셨다고 했지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제가 관심을 끌어서 환심을 사려는 것으로 보였겠죠. 아니면 못된 마음을 품고 청희 장공주 마마의 명성을 더럽히려 했거나요. 고종 황제께서는 절 죽이려 하셨지만, 청희 장공주 마마가 사정하여 목숨을 건졌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그는 한숨을 쉬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바보스럽게도, 당시에 저는 청희 장공주 마마께 정말로 감사했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어휴, 말을 말아야지요. 이 얘긴 안 하렵니다. 이십 년이나 넘게 지났는데 미련을 남길 게 뭐가 있겠나요? 목숨을 건졌으니 그래도 만족합니다.”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월 가주, 일은 이렇게 된 겁니다. 제가 청희 장공주 마마께 밉보였는데 그래도 저를 쓰시겠습니까?”

“만약 청희 장공주 마마께서 지금 세력을 잃었다고 한다면,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겠어요?”

월령안이 되물었다.

“청희 장공주 마마께서 세력을 잃다니요? 그럴 리가요?”

그는 더없이 놀랐다.

그는 그녀의 수완을 직접 겪어 본 사람이었다. 장공주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청희 장공주에게 밉보인 사람 중 잘 풀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온 변경에서 청희 장공주가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청희 장공주의 수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볼 때는, 청희 장공주 같은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태의원에 계시면서 청희 장공주 마마가 입궁하여 요양하고 계신 걸 모르셨나요? 어의들이 장공주 마마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진단을 내렸어요.”

이런 일도 모르는 걸 보니, 이 늙은 어의는 심하게 따돌림을 당하는 모양이었다.

“그럴 리가요!”

그는 크게 흥분하며 말했다.

“그분은 폐하보다도 건강합니다. 갑자기 중독이라도 되지 않는 한, 적어도 몇십 년은 거뜬히 더 사실 겁니다. 폐하께서…….”

월령안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황급히 그의 말을 잘랐다.

“말씀하실 때 조심하세요. 여기는 태의원이에요.”

다행히 육장봉이 있어서 사람들이 감히 다가오지 못했기에 망정이었다. 늙은 어의가 아까 한 말이 또 무슨 사달을 일으킬지 알 수 없었다.

“청희 장공주 마마는 폐하를 속이는 겁니다.”

그는 몹시 화가 났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고 중얼거렸다.

“안 되겠습니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폐하를 뵈어야겠습니다. 청희 장공주 마마가 폐하를 속이는 걸 보니 분명 음모가 있는 겁니다.”

월령안은 다급히 그를 잡아당겼다.

“폐하께서 이미 알고 계세요.”

“폐하께서 아셨다고요?”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다가 곧 시름을 덜었다.

“그러면 다행이에요. 천만다행이지요.”

월령안은 그가 가식적으로 자기가 공을 세울 기회를 놓쳤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안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의술만 뛰어난 게 아니라 인품도 좋구나.’

월령안은 이 늙은 어의가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자신을 따라가려 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의는 관리였다. 이러한 신분과 지위는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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