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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42)화 (342/1,004)

342화 힘들다고 말했잖아요

월령안은 황궁에 온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매번 곧바로 후궁으로 갔을 뿐, 전전에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높은 곳에서 황궁 전체를 본 적도 없었다.

“여기에 서 보니 이제야 황궁이 얼마나 큰 지 알겠네요.”

월령안은 난간에 기대 저 멀리 겹겹이 포개진 궁전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은 다르구나.’

육장봉은 월령안의 옆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팔을 난간 밖으로 걸치더니 티 나지 않게 월령안이 떨어지지 않게 보호했다.

“어화원의 적성정(摘星亭)은 황궁에서 가장 높은 곳이지. 당신이 좋다면 데려다주겠소.”

“아니에요. 이곳에 와서 황궁을 한번 본 것만으로 전 만족해요.”

월령안은 고개를 돌리고 육장봉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대장군, 고마워요. 오늘 대장군 덕분에 황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됐네요.”

바람이 불어와 월령안의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했다. 머리카락이 육장봉의 손가락 틈에서 미끄러졌다.

육장봉은 머리카락이 빠져나간 빈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월령안의 웃는 얼굴을 보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한가…….’

육장봉이 지금 이 시간에 만족한 반면, 월령안은 진심으로 육장봉과 함께 황궁을 산책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황궁에는 노닐 만한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황궁은 어디를 보나 엄숙하고 웅장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어디를 가도 늘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풍경을 구경하기는커녕 목소리조차 키울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산책이야?’

그녀는 사람이 꾸민 경치는 대자연의 조화에 견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처럼 다양하고 넓은 세상을 봤던 사람은 황궁에 만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애초에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그와 함께 산책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한 대로라면, 어색하게 조금 걷다가 할 말이 없으면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육장봉은 그녀를 전망대로 데리고 왔다. 전망대의 위치는 아주 좋았다. 난간 앞에 서서 황궁의 건축물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황궁은 정말이지 드넓었다. 물고기의 비늘처럼 빽빽이 늘어선 궁전들은 대단히 웅장했다. 눈앞이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다. 전망대에 서서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는 이것뿐이었다. 처음 본 순간에는 가슴이 떨렸지만, 계속 보니 평범해 보였다.

월령안은 난간에 기댄 자세로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어가며 수없이 보았다. 이대로는 곧 질릴 참이었다.

그런데도 육장봉은 돌아가자는 말이나, 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월령안은 심심해진 나머지 난간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태양이 높이 솟아오른 시간이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어 눈을 찌르는 듯했다. 견디기 힘든 더위였다. 안타깝게도 전망대는 햇볕을 가릴 게 전혀 없었다.

월령안은 점점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육장봉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어지러움이 심해지자 가슴이 심하게 답답해졌다. 결국 참을 수가 없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대장군, 우리 그만 돌아갈까요?”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여기가 싫소?”

‘아까는 아주 좋아하지 않았나? 왜 갑자기 가려고 하지? 여인들이 좋아한다는 건 원래 이렇게 변덕스러운 건가?’

“햇볕이 너무 강해서요. 너무 오래 쬐니 힘드네요.”

월령안은 손을 들어 그늘을 만들었다.

‘육장봉은 내가 아직 환자라는 걸 잊은 건가? 이틀 전 흘린 피를 다 보충하지도 못했는걸.

나처럼 몸조리해야 하는 환자에게 강한 햇볕이나 쬐게 하고 말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아니다. 그 육장봉인걸. 육장봉이 잊어버리는 건 당연해. 괜히 기대하지 말자.’

육장봉은 월령안을 곁눈질로 힐끗 바라보았다.

“그 정도로 허약했소?”

월령안은 사막도 가로지를 수 있는 여인이었다.

그는 월령안이 햇볕 좀 쬐었다고 힘들어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월령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화가 나서 실소가 터졌다.

“정말 죄송하네요. 제가 대장군의 기분을 망쳤어요.”

‘난 피를 잔뜩 흘리고 겨우 회복된 환자라고. 그런데 강한 햇볕을 일각이나 쬐게 해 놓고, 내가 약한 척을 한다고 탓하다니? 육장봉은 나를 자기 수하의 병사들처럼 훈련하고 싶은 건가?’

“기분이 나쁜가?”

육장봉은 월령안의 말에 담긴 불만을 눈치챘다. 순식간에 마음속의 불쾌함이 사라졌다.

‘드디어 솔직하게 말하는군. 이제야 경계심이 조금 풀어진 모양이지.’

그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대장군, 무슨 용건으로 저를 불러내신 건가요? 만약 용건이 없으면 이만 돌아가도 될까요?”

월령안은 짜증을 억누르고 물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상대가 육장봉만 아니었다면 바로 몸을 돌려 떠나, 다시는 만나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다니까. 내가 몸이 안 좋은 게 안 보이나? 하긴, 육장봉에게는 눈치라는 게 필요 없지. 저 사람이 남의 눈치를 볼 일도 없고 말이야.’

여기까지 생각한 월령안은 들끓던 기분이 갑자기 가라앉았다. 갑자기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여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복에 겨운 건가?’

그 순간, 월령안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이성을 잃게 되었지? 육장봉이 너그럽게 대해 준다고 성질이나 부리고. 내가 진짜 미쳤나?’

월령안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그녀는 다급히 육장봉에게 읍하며 사과했다.

“대장군, 죄송해요. 제가…….”

“됐소. 돌아가지.”

육장봉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월령안이 겨우 경계를 푸는가 싶었더니, 도루묵이 되었다. 그는 서운한 속내를 숨겼다. 그 대신, 차갑게 월령안의 말을 자르고 뒤돌아서 걸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반응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육장봉이 돌아섰기에 그녀 또한 치맛자락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육장봉의 보폭은 매우 컸기에 그녀는 거의 뛰다시피 해야 쫓아갈 수 있었다.

황궁은 다른 곳과는 달랐다. 그녀는 이곳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만약 홀로 뒤떨어져 금기를 범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월령안은 전망대 길을 뛰어 내려온 다음에 잠시 멈췄다가, 육장봉의 뒤를 빠른 걸음으로 따랐다. 그러나 지금은 몸이 허약한 데다가 너무 빨리 걸었더니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곧 그녀는 땀에 흠뻑 젖어버렸다. 안색도 하얗게 질려 보는 사람이 놀랄 지경이었다.

그때 명화전 밖에서는 육십과 육십일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월령안이 숨을 헐떡이며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방금 굳은 얼굴로 들어간 대장군을 떠올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가와 물었다.

“월 낭자, 왜 그러십니까?”

“저…… 저 몸이 좀 불편해요. 먼저 궁을 나갈 수 있을까요?”

월령안은 입궁하느라 여러 겹으로 된 정장을 갖춰 입고 있었다. 곧 질식할 것만 같았다.

육십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육십일에게 눈짓을 했다.

“십일, 네가 남아라. 내가 월 낭자를 모시고 궁을 나가마.”

당연히 가능했다. 월 낭자는 그들 장군의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먼저 궁을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황궁을 드나들 수 있었다.

“고마워요.”

월령안은 지금 답답할 뿐만 아니라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다행히 아직 의식이 있어 자신이 어디 있는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월 낭자, 제가 부축해 드릴까요?”

월령안이 아주 힘겹게 걷는 모습을 보고, 육십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괜찮아요.”

월령안은 힘없이 손을 저었다. 그리고 똑바로 서려고 억지로 버텼다. 그녀는 그렇게 연약하지 않았다. 이 정도 거리는 버틸 수 있었다.

육십도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낮은 소리로 일깨워 주었다.

“월 낭자, 조심하세요. 앞에 계단이 있습니다.”

“네.”

월령안은 외마디로 대답했다. 그러나 실수로 발을 헛디뎠다. 몸이 비틀거리더니 곧 넘어질 듯 휘청였다.

“월 낭자, 조심…….”

육십이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부축하려 했다.

바로 이때, 육십의 옆으로 한 줄기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 육십이 손을 뻗는 순간, 그 그림자는 월령안을 받아내더니 두 팔로 안아 올렸다.

“이렇게 힘든 상태였으면서 왜 말을 하지 않았지?”

월령안은 하늘이 핑글 도는 느낌이 들더니 머리가 더욱 어지러워졌다. 그녀는 주먹을 꼭 움켜쥐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황궁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도록, 비명을 지르려는 본능을 참았다.

육장봉의 목소리를 듣자, 월령안은 힘든 걸 무릅쓰고 눈을 뜨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군, 감사합니다.”

“장군.”

육십이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왜 말하지 않았소?”

육장봉은 고개를 숙이고 월령안의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서는 사람을 압박하는 한기가 흘러나왔다.

월령안은 웃으며 말했다.

“대장군,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당신이 신경 쓰지 않았거나, 듣지 못했을 뿐이죠.’

물론, 육장봉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기만 즐거우면 되니까. 그런 위치의 사람이니까.

월령안의 말을 들은 육장봉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

‘월령안이 힘들다고 한 게 핑계가 아니라 진짜였나?’

육장봉은 굳은 얼굴로 말없이 월령안을 안고 밖으로 걸어갔다. 그의 주변에는 접근하기 힘든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황궁에서 그녀를 안고 나간다면 소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건 알았다.

그녀는 관자놀이를 가볍게 누르고 불편함을 참으며 말했다.

“대장군, 저 혼자 걸을 수 있어요. 절 내려 주시겠어요?”

“얌전히.”

육장봉은 눈을 내려 뜨고 월령안을 뚜렷이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 눈빛이 무척 강렬했다.

월령안은 몸을 떨더니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김에 눈도 감았다.

‘내가 방금 육장봉에게 겁을 먹은 건가?’

이 남자의 눈빛은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보다도 무서웠다. 그녀는 더 생각할 엄두가 안 났다.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쳤다. 너무 무서웠다.

육장봉은 사람 하나를 안고 있었지만, 걷는 속도에는 전혀 영향이 가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외전(外殿)을 나가 월령안을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

육십은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한 걸음 나선 순간, 육십일이 붙잡았다.

“장군께서 계시는데 따라가서 뭘 어쩌려고?”

“나 좀 봐. 깜빡했네.”

육십은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두 사람은 몸을 돌리고, 명화전 밖에서 손불사를 계속 기다렸다.

그들은 이미 월 낭자를 놓쳤다. 그런데 손 신의도 무사히 데려가지 못한다면, 월 낭자는 그들을 장군부로 되돌려 보낼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십이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속도를 올려 명화전으로 갔다.

‘손 신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돼!’

* * *

육장봉은 서둘러 걸었다. 가는 도중 내관이나 순시하던 금군이 예를 올려도 그들에게 눈길을 주기는커녕 쌀쌀맞은 기운을 풍겼다.

월령안은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은 육장봉의 품에 묻은 채 죽은 척했다.

‘음, 난 아무것도 안 보여.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월령안은 육장봉이 그녀를 안고 궁을 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가다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손불사의 마차는 내궁(內宮)에 세워져 있었다. 이렇게 오래 걸을 이유가 없었다.

‘한참을 걸었는데 왜 멈추지 않는 거야.’

그녀는 살며시 눈을 떴다. 눈에 들어온 것은 죄다 낯선 건물들이었다.

월령안은 결국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대장군, 저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가요?”

육장봉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갖다 팔아버릴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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