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곤장형을 내려 때려죽여야 합니다
육장봉의 눈빛은 서늘하고 살기등등해, 이상할 정도로 냉혹했다.
“장봉아…….”
황제는 깜짝 놀란 얼굴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장봉이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살기는 또 왜 이렇게 강하고?’
깜짝 놀란 건 황제뿐만이 아니었다. 대전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놀라고 두려워했다.
‘입을 열자마자 사람을 죽이라니.’
‘육 대장군, 너무 무시무시한데.’
궁녀 화영은 놀라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폐하, 살려 주십시오. 폐하, 살려 주십시오.”
이 궁녀도 놀란 게 분명했다. 무릎을 털썩 꿇더니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폐하…….”
청희 장공주도 따라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병상에 누운 환자였다. 목소리가 어찌나 연약한지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
육장봉은 두려움에 찬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말했다.
“폐하, 국고가 풍족하지 못합니다. 조정에는 쓸모없는 사람을 부릴 여유가 없습니다. 장공주 마마의 사람들이 제대로 시중을 들지 못하니, 공주부의 하인과 시위에게 모조리 곤장형을 내려 때려죽여야 합니다.”
그날, 성문 입구에서 청희 장공주의 사람들이 월령안을 어떻게 괴롭히고 모욕했는지, 그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은 그가 서둘러 춘일연에 가야 했기 때문에 그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 오늘 기회가 왔으니, 지난번의 빚에 이자까지 쳐서 모조리 갚아 줄 생각이었다.
“폐하, 제 하인들은 아주 착합니다. 부디…… 그들, 그들을 죽이지 마세요!”
청희 장공주는 육장봉의 말을 듣자 놀라서 기절할 지경이었다.
‘육장봉은 지금 날 노리는 거구나. 폐하가 과연 저놈의 말을 들을까? 괘씸한 놈!’
그녀는 지금 중병이 들어 살날이 얼마 안 남은 연약한 여인을 연기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당장 기어 일어나서 육장봉 앞으로 뛰쳐나가 그 얼굴을 찢어버렸을 것이다.
월령안도 깜짝 놀라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이 왜 이렇게까지 잔혹하게 굴지? 나에게는 이렇게 굴지 않고, 그나마 온화하게 대해 주는 걸 감사해야 하나?’
“장봉아…….”
황제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바로 육장봉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이는 대단히 좋은 기회였다. 청희 장공주의 살날이 얼마 남았건 간에, 그녀의 사람부터 제거해야 했다.
황제는 전혀 지체하지 않고 당장 명령을 내렸다.
“대장군의 말이 맞구나. 여봐라…….”
청희 장공주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다급히 말했다.
“폐하, 제 옆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잘못이 없어요. 전부 제가 몸이 부실해서예요. 그들과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제가 말을 잘랐다.
“황고모(皇姑母), 걱정하지 마시지요. 짐이 있는 한, 절대 저들처럼 고약한 노비들이 고모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겁니다.”
황제는 청희 장공주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명령을 기다리는 금군 병사에게 명을 내렸다.
“장공주의 성격이 유약한 것을 믿고, 공주부 전체가 한통속이 되어 장공주를 괴롭히고, 시중을 제대로 들지 않았다. 짐의 명령을 전하라. 공주부의 시위와 하인 모두에게 곤장형을 내려 때려죽이도록 하라!”
청희 장공주가 서둘러 말했다.
“폐하, 안 됩니다. 저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 마세요. 저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부디 폐하께서 그들을 놔 주시기 간청합니다. 저를 위해 덕을 쌓는다 치세요.”
‘황제가 미쳤나? 육장봉의 말을 듣다니! 안 돼. 내가 반드시 황제를 막아야 해.’
그녀 옆에 둔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심복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청희 장공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심지어 꾀병을 부리는 중인 것도 상관하지 않고, 애써 일어나려고 했다.
물론, 황제와 어의에게 꾀병을 부리는 게 들통나지 않도록 연기는 계속했다. 그녀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도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장공주 마마…….”
그녀의 궁녀 화영은 충성심이 지극했다. 이런 때에도 잊지 않고 다가가 청희 장공주를 부축했다.
궁녀의 부축이 있자, 청희 장공주는 걸을 힘이 생겼다. 그러나 그녀가 병풍을 돌아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육장봉의 차가운 시선이 날아왔다.
육장봉은 청희 장공주의 옆에 있는 궁녀를 가리키며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공주를 왜탑으로 모셔다드려라. 그리고 저 궁녀는 끌어내라.”
“네, 장군!”
대답을 마친 금군 병사가 앞으로 나가 궁녀를 끌어냈다.
“아, 안 돼……. 이러지 마라. 이럴 수는 없어.”
청희 장공주는 그들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에도 가냘픈 미인이었고, 지금은 ‘병이 위독해서’ 더욱 연약했다. 무슨 힘이 있어 저항하겠는가.
금군은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청희 장공주를 저지했다.
“장공주 마마, 장공주 마마…….”
궁녀 화영은 몸부림치며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다.
“폐하, 소인은 억울합니다. 소인은 억울합니다. 육 대장군, 저자, 저자가 장공주 마마를 해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폐하, 폐하…….”
“억울하다고?”
육장봉이 코웃음을 치더니 날카로운 기세로 몰아붙였다.
“멀쩡하시던 장공주 마마께서 너희의 보살핌을 받으시고 결국 이렇게 마지막 숨밖에 남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내가 너희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이냐? 장공주 마마께서는 상냥하고 선량하셔서 세상의 험악함을 모르신다. 그러니 너희의 악독한 심보를 못 알아보셨겠지. 그렇다고 너희가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청희 장공주는 처음으로 후회했다. 자신의 성품을 지나치게 완벽하게 꾸며냈던 게 후회스러웠다. 지금이야말로 그 완벽함에 발목이 잡힌 꼴이었다.
육장봉은 청희 장공주를 힐끔 보고 차갑게 말했다.
“장공주 마마께서도 더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 하인들 때문에 눈이 가려지신 거겠지요. 폐하께서는 늘 현명하게 판단하셨으니, 장공주 마마를 위해 이 일을 꼭 바로잡으실 겁니다. 다시는 서러움을 겪지 않도록 말이죠.”
“육…….”
청희 장공주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늘 부드럽던 눈이 독을 품고 육장봉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흐느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폐하, 육 장군의 말을 듣지 마세요. 저자, 저자는 사사로이 복수하는 거예요. 제 주변 사람들을 물리치려는 거예요. 폐하, 제 옆에는 저 오래된 하인 몇 명밖에 없습니다. 제가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걸 생각해서라도 부디 저들을 살려 주십시오.”
오직 황제만이 육장봉을 저지할 수 있었다. 반드시 황제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하지만 육장봉은 더는 그녀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냉혹하게 금군에게 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뭣들 하는 것이냐? 얼른 끌어내지 않고.”
“네, 장군.”
금군은 전혀 지체하지 않고 궁녀를 끌어냈다.
“장공주 마마, 장공주 마마……. 살려 주세요.”
궁녀는 두렵고 당황스러워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
육장봉이 차갑게 말했다.
금군은 두말없이 손날을 내리쳐 궁녀를 기절시켰다.
순간, 소란스럽던 대전이 고요해졌다. 청희 장공주의 막막하고 나약한 울음소리만 들렸다.
황제는 꿋꿋하게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전혀 감정의 기복이 보이지 않았다.
청희 장공주의 편을 들어주려던 종실 친왕들은 이 광경을 보고 말을 삼켰다. 그들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알 것 같았다.
청희 장공주는 눈앞에서 자기 심복 시녀가 끌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음속으로 막막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협박했다.
“폐하, 저들은 모두 부황께서 저에게 남겨 주신 사람들이에요. 육 장군은 저들을 건드릴 자격이 없어요!”
청희 장공주는 그래도 이성적이었다. 직접 황제를 질책하지는 않았다.
황제는 원래 약간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청희 장공주의 말을 듣자 마음이 차가워졌다.
그는 청희 장공주를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예의를 갖춘 어조로 손불사에게 말을 건넸다.
“청희 장공주 옆의 사람들은 장공주를 잘 보살피지 못했네. 그래서 병세가 깊어진 다음에야 보고했군. 손 신의, 짐은 장공주의 건강이 아주 걱정되네. 신의가 최선을 다해 장공주를 진찰해 주게.”
“폐하, 육장봉은 부황께서 주신 제 사람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는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입니다. 육장봉은 군공만 믿고, 저를 안중에 두지 않고 제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폐하, 정녕 두 눈 멀쩡히 뜨시고 육장봉이 저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만 계실 겁니까?”
청희 장공주는 끝내 감정을 제어할 수 없는 듯 크게 소리를 질렀다.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찌르는 듯했다. 어여쁘고 창백하던 얼굴이 일그러져 평소의 연약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황제는 놀란 시선으로 청희 장공주를 바라보았다.
“황고모, 어찌 된 일입니까? 전에는 이러신 적이 전혀 없잖습니까? 황고모께서는 항상 부드러우셨습니다. 한 번도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신 적도, 화를 내신 적도 없지 않습니까? 황고모의 이런 모습이 짐은 아주 낯설게 느껴집니다.”
자리에 있던 친왕, 군왕, 국공들은 황제의 말을 듣자, 하나같이 의심의 눈초리로 청희 장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청희 장공주가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생각했다. 설령 하인 몇몇 때문에 사정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애쓸 필요는 없었다.
청희 장공주는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는 것보다 더 흉한 웃음을 짓고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저…… 저야 당연히 폐하를 믿지요. 다만 제 몸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황고모, 이 하인들은 고모를 잘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장봉이가 그들을 처리한 것도 고모를 위한 것입니다. 황고모의 마음씨가 이리 곱다 보니, 옆의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 고얀 노비들이 실로 괘씸하지 않습니까. 보세요, 황고모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습니까? 황고모, 마음 편히 잡숫고 몸을 추스르세요. 짐의 고모가 아닙니까. 짐은 고모를 해치지 않을 겁니다.”
청희 장공주가 다급하게 말했다.
“폐하, 그들은 최선을 다했어요. 제 몸이 부실한 거예요.”
황제가 말했다.
“됐습니다. 황고모께서 그들을 위해 사정하시니 짐이 그들의 목숨을 살려 주도록 하지요. 먼저 그들을 가두고 조사한 뒤 다시 이야기합시다. 황고모, 이제는 만족하시겠습니까?”
어찌 되었건, 더는 이들이 청희 장공주와 접촉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청희 장공주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 폐하, 감사합니다…….”
그녀도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만 했다.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실수했다. 여기서 다시 소란을 피운다면 그녀의 명성이 훼손될 것이다.
‘조계안! 조계안의 그 말 때문에 폐하가 내게 불만을 가진 게 틀림없어.’
청희 장공주는 화가 나 몸을 떨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가 없다 보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월령안은 한쪽에 서 있었다. 청희 장공주가 분노에 차 어여쁜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으려니, 절로 마음이 흐뭇해졌다.
황제가 한발 양보하자, 청희 장공주도 더는 소란을 피울 수 없었다. 금군이 ‘부축하는’ 대로 병풍 뒤로 갔다.
그제야 육장봉은 사람들에게 그와 함께 전각에 들어온 남자를 소개했다.
“폐하, 장공주 마마와 영녕후 세자는 한 쌍의 원앙처럼 정이 깊습니다. 세자께서는 장공주 마마께서 편찮으심을 알고 식음을 전폐하셨습니다. 신이 감히 독단적으로 영녕후 세자를 모시고 입궁했습니다. 폐하께서 벌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