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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36)화 (336/1,004)

336화 우리 장군도 참 염치가 없어

소 승상은 화가 나서 피를 토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화가 나서 피를 토할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월령안이었다.

월령안은 하인의 보고를 듣자마자 최대한 빨리 앞뜰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육이 일행이 이미 상자를 안으로 들이고 있었다.

“령안아, 미안해. 도저히 막을 수 없었어.”

심민은 육이 일행이 도착했을 때 마침 앞뜰에 있었다. 그도 기척이 들리자마자 당장 달려와서 만류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다가가자, 육이가 팔로 심민의 앞을 막으며 구석으로 몰아갔다.

‘이 사람들이 어디를 보아서 병사란 말이야? 완전히 강도잖아.’

“아가씨…….”

다른 하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상자를 들고 들어온 노병은 상자를 내려놓자마자 월씨 가문의 하인들을 구석으로 몰았다. 월씨 가문의 하인들이 아무리 싸움을 잘하더라도 이 노병들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마…… 흠흠, 월 낭자, 실례했습니다.”

육이는 오는 내내 월 낭자가 앞으로 그들 육씨 가문의 마님이라고 묵묵히 되뇌었다. 그 생각을 하도 많이 해서인지, 입을 열자마자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월령안은 육이가 무심코 뱉은 말을 듣고 마당에 가득 쌓인 상자를 보자마자, 어찌 된 영문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심민에게 위로의 미소를 건넸다. 그리고 돌아서서 육이를 바라보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육이 장군, 별말씀을요. 제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은 것만 해도 대장군께서 제 체면을 많이 세워 주신 거죠.”

“월 낭자, 농담도 참. 저희는 같은 편을 해치지 않습니다.”

육이는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자기 인상이 더 부드러워 보이기를 바라며, 굳은 입꼬리를 애써 끌어올렸다.

월령안은 코웃음을 치더니 더는 실랑이하지 않았다. 대신 뜰에 꽉 찬 상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육이가 대답했다.

“이건 저희 장군께서 월 낭자께 드리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어쨌든 그가 직접 말할 수는 없었다. 월 낭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상관없었다.

월령안은 더는 실랑이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예전 혼례가 있었을 때 육 노부인께서 제게 주셨던 약혼 예물이군요. 저 안에 든 수많은 물건은 육씨 가문 여주인에게 몇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거고요. 이 귀중한 물건을 당신네 장군께서는 어쩜 이렇게 쉽게 선물할 수 있는 거죠?”

“월 낭자께 드리는 건 절대 쉽게 선물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이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월령안은 가볍게 웃고 눈을 감았다.

“가져가세요.”

육이의 얼굴이 더욱 엄숙해졌다.

“월 낭자, 장군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물들은 월 낭자께 드리는 거라고요. 월 낭자께서 받기 싫으시면 버리라고도 하셨습니다.”

이는 아침에 출발하기 전, 장군이 한 말이었다.

장군은 하룻밤을 생각한 끝에, 월 낭자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월령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버리라고? 진짜 미쳤답니까?”

이 여든여덟 상자의 예물 중에서 여든 상자는 육씨 가문의 역대 여주인이 남긴 것이었다. 가치를 떠나서 이 물건들에 담긴 의미는 남달랐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걸 버리라고 말했다고? 집안 말아먹을 사람이네.’

“월 낭자께서 아시다시피, 저희 장군께서는 미치지 않으셨습니다. 이 물건은 애초부터 낭자의 혼수로 장군부에 들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물건은 원래 낭자의 것입니다. 당연히 낭자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지요.”

육이는 장군이 미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장군은 단지 월 낭자를 길들이기 위해 애를 먹이려고 작정했을 뿐이다.

“당신네 장군이 날 애먹이려고 작정한 거네요!”

월령안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라고?’

육장봉은 그녀가 육씨 가문 가주 부인에게 전해 주는 물건을 버릴 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물건은 육씨 가문에서는 의미가 남다른 것이었다. 육씨 가문이 가장 힘들던 때조차 이 물건들은 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육 노태군은 죽기 전에 그녀의 손을 잡고 이것들을 다음 맏며느리에게 물려 주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가지기 싫으면 버리라고 하다니.

육씨 가문에서 육비우를 제외한 다른 친척들은 그녀를 대단히 존중해 주었다. 특히 육 노태군은 그녀를 친손녀처럼 여겼다. 그녀가 육씨 가문에 시집갔을 때는 고작 열다섯 살이었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주가 있더라도 여성 연장자의 가르침과 좋은 배경이 없었다면, 사람을 대하는 방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았을 것이다.

육 노태군은 그녀를 하나하나 가르쳤다. 심지어 크게 병이 들었을 때도 고통을 참으며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를 가르쳤다.

육 노태군에게는 크나큰 은혜를 입었다. 육 노태군의 은혜를 봐서라도 월령안은 이 물건들을 버릴 수 없었다.

대답은 빤했다.

육이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때때로 그들의 장군은 정말 염치도 없이 억지만 부렸다. 월령안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월령안은 화를 억누르며 애써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웃으면서 육이를 바라보았다.

“당신들은 정말로 내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문지기 하인이 달려와 보고했다.

“아가씨, 손 신의가 성문에 도착했습니다. 궁에서 나온 사람이 아가씨더러 입궁할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육이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낭자, 입궁을 미룰 수는 없지요.”

‘마침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군. 역시 모든 게 장군의 뜻대로 풀리고 있어.’

월령안은 간신히 가라앉았던 화가 다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당신네 장군은…… 정말 시간도 딱 맞춰 골랐네요.”

육장봉이 일부러 시간을 계산한 게 틀림없었다. 고의가 아니라고 해도 그녀는 믿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은 그녀가 이 시간에 손불사와 함께 입궁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남아서 이 예물을 처리할 수 없음을 알고 벌인 일이 분명했다. 월씨 저택에서는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육장봉의 친위대를 상대할 힘이 없었다.

“낭자, 저희 장군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낭자께서 급히 입궁하셔야 해서 이 예물을 처리할 시간이 없다면, 낭자가 돌아오실 때까지 저더러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걸리든지 저는 기다릴 겁니다.”

육이도 이 말을 할 때만큼은 월령안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얼마나 걸리든지…….’

월 낭자가 이 예물을 받지 않고 입궁했다가는 오늘 황궁에서 나오지도 못할 것이다. 한 이틀 시간을 끌고, 월령안이 황궁에서 나왔을 때는 모든 일이 끝났으리라.

육이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몰래 월령안을 힐끔 바라보았다.

‘장군에게 찍히다니. 월 낭자도 참 불쌍한걸.’

“당신네 장군은 참 대단해요. 내가 졌어요!”

월령안은 화가 나서 더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육이가 짐작할 수 있는 일은 그녀도 생각할 수 있었다.

육장봉은 그녀에게 분명히 알리고 있었다. 만약 지금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그가 직접 손을 써서라도 받게 할 것이다.

그녀는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집사!”

월령안은 속에서부터 울화가 치밀었다. 안색이 좋지 못했다.

육장봉은 모든 것을 계산해 두었다. 그녀는 반격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반격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흔쾌히 받아 손실을 최소로 줄이는 것 말고, 그녀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네, 아가씨.”

월 삼낭을 두둔했던 것에 심한 죄책감을 느꼈던 집사는 어제 죄를 자청하며 오랫동안 꿇어앉아 있었다. 그 바람에 그는 무릎이 상해, 걸을 때마다 절뚝거렸다.

월령안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곳간을 열고 이것들을 전부 집어넣게!”

“네, 아가씨.”

집사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가서 보고해요. 당신네 장군에게 제가 이 예물 여든여덟 상자를 받은 이상, 다시는 돌려 주지 않을 거라고 전하세요. 만족스럽냐고도 물어보시고요.”

‘만족스럽거든 황궁에서 술수를 부려서 나와 손불사의 발목을 잡지 말라고. 염치없이 날 황궁에 가둘 생각도 하지 말고.’

“제가 지금 가서 보고하겠습니다.”

육이는 월령안이 장군의 숨겨진 협박을 알아들었음을 알아차렸다.

‘어휴, 우리 장군도 참…… 염치가 없어!’

월령안은 문을 나설 때, 일부러 예물이 놓인 앞뜰을 돌아서 뒷문으로 나갔다. 예물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육장봉이 잔꾀를 부려, 그녀가 예물을 받을 수밖에 없게 만든 게 특히 짜증이 났다.

나중에 황궁에서 나올 무렵에는 밖에 어떤 소문이 돌게 될 지 상상이 갔다. 그러나 해명을 할 수도 없었다. 해명하려 할수록 사람들은 그녀가 내숭을 떤다고 생각할 테니까.

“내가 전생에 육장봉의 무덤이라도 파 준 게 분명해. 그래서 이번 생에 그 인간에게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거야.”

월령안은 마차에 탄 뒤에도, 속에 맺힌 울화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육장봉은 왜 그렇게 염치가 없지? 그 인간보다 속이 좁은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니까.’

그녀는 육장봉이 지금 복수하는 거라고 확신했다. 그녀가 밤을 보낸 수고비랍시고 천 냥을 보낸 데 대한 복수였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돈을 주자마자 육장봉이 바로 기회를 틈타 예물을 보내왔을 리가 없었다.

이 세상에 이러한 우연은 결코 없다. 육장봉은 일부러 이러는 게 분명했다. 마음 먹고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옹졸한 남자 같으니라고. 분명 당신이 먼저 내 명성을 더럽혔잖아. 난 반격했을 뿐이야. 왜 당신이 내 명성을 더럽히는 건 괜찮고, 내가 당신을 골탕 먹이는 건 안 되는데?”

월령안은 간식을 집어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달짝지근한 맛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이런 때 달콤한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궁문 입구에 도착했을 때 즈음에는, 월령안의 기분도 많이 가라앉았다. 기왕 벌어진 일이니 더 화를 내도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앞으로 변경에 두 달도 머무를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쉽게 잊을 것이다. 그녀가 변경을 떠나고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변경의 백성들은 그녀를 잊을 것이다.

육장봉이 그녀와 아무리 엮이고 싶다 한들 소용이 없으리라.

이렇게 생각하자 생각보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월령안이 궁문 입구에 도착했을 때, 손불사를 데리러 간 사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궁문을 지키는 금군은 월령안에게 먼저 황궁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월령안은 거절하고 궁문 입구에서 손불사를 기다렸다.

월령안이 아까처럼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보자, 육십이 앞으로 다가가서 소씨 가문의 일을 말해 주었다.

소씨 가문에서는 육이가 가지고 간 예물이 소씨 가문에 오는 것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떠들썩하게 골목을 물청소까지 하고 길목에 드나드는 마차를 막았다. 그 호들갑을 떨며 예물이 오기만을 기다렸건만, 결국 망신만 당했다.

월령안은 이 이야기를 듣자,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그녀는 원래 심술궂은 사람이라, 원수가 잘 못 지낸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신네 장군이 드디어 제대로 된 일 하나를 했네요.”

“월 낭자께서 기분이 좋으시면 그만이지요.”

월령안이 웃자, 육십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육십일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육십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슬그머니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월 낭자를 기쁘게 해 드렸으니, 장군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지는 않더라도 칭찬 한마디는 해 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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