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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35)화 (335/1,004)

335화 예물 여든여덟 상자

징을 치고 북을 울릴 필요도, 풍악을 울리고 폭죽을 터뜨릴 필요도 없었다. 육이 일행이 길거리에 나서자마자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이게 뭐 하는 거지? 저 상자들은…… 예물 같은데. 그런데 왜 풍악이 없지? 중매쟁이는? 기러기도 안 보이는데?”

“상자 위에 ‘육’ 자가 쓰여 있네. 육 장군부의 그 육씨 가문인가? 대장군이 재취를 하나? 그 장씨 가문의 낭자가 정절을 지키느라 자결했다고 하지 않았어? 혹시 대장군이 의리를 지키느라 그 장 낭자의 위패를 맞아들이는 건가?”

“장씨 가문은 아닌 것 같아. 장씨 가문에서 장례를 치를 때 대장군은 찾아가지도 않았다던데. 내가 보기에는 육씨 일곱째 도련님의 예물을 전하는 거야. 듣기로는 그 도련님과 소씨 가문의 혼사가 다음 달 십팔일이래. 시간을 계산해 보니 예물을 보낼 때가 됐네.”

육이 일행은 하나같이 몸집이 크고 기세가 비범했다. 그런 사람들이 예물 여든여덟 상자를 짊어지고 질서 정연하게 길을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했다.

“저기 좀 봐. 행렬을 이끄는 사람이 육 대장군의 호위병이 맞지? 대장군이 귀성하던 날, 길에서 저 사람을 봤어.”

“육씨 가문에서 대장군의 호위병이 직접 소씨 가문에게 예물을 전하러 가다니. 육씨 가문에서 이 혼인을 아주 중요시하나 봐.”

“소씨 가문 낭자가 참 복이 많아. 듣기로는 육씨 가문 사내들은 다 일편단심이라던데. 육씨 가문은 첩실도 들이지 않고 밤일을 시중드는 시녀도 없대.”

“어서, 빨리 따라가 보자고. 육씨 가문에서 예물을 보내는 건 삼 년 전에도 한 번 봤어. 그때 육씨 가문에서 가주 부인을 맞이하는 데 예물이 무려 여든여덟 상자였어. 지금은 얼마나 되는지 몰라.”

“삼 년 전, 육씨 가문에서 맞이한 것은 가주 부인이야. 예물 여든여덟 상자는 가주 부인 기준이지. 지금은 넷째 집안 공자가 아내를 맞이하는 거잖아. 육씨 가문에서 이 혼사를 아무리 중시하더라도 예물은 가주 부인을 맞이할 때보다는 적어야지. 대갓집에서는 이런 예의를 깐깐하게 따지더라고.”

개중 소식이 빠른 사람은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한바탕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순간, 한 소년이 고함을 질렀다.

“여든다섯, 여든여섯…… 여든여덟! 제가 세어 봤어요. 모두 여든여덟 상자예요. 빨리 세어 보세요. 제가 잘못 센 건가요?”

“여든여덟 상자라고?”

그 소식이 빠른 사람이 소년의 말을 듣고 바로 소리를 질렀다.

“그럴 리가 없어! 대갓집에서 얼마나 예의를 따지는데. 가주 종형제의 부인이 가주 부인의 위세를 짓누르는 법이 어딨어.”

“정말 여든여덟 상자야. 못 믿겠으면 한 번 세어 봐!”

“그래 한 번 세 보지 뭐.”

그 사람도 고집이 셌다. 사람들을 비집고 가장 앞으로 나가더니 앞에서부터 뒤로 세기 시작했다.

“정말 여든여덟 상자잖아! 통도 참 크구먼. 그때 육 대장군이 아내를 맞이할 때와 맞먹잖아.”

그 사람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목청을 높였다.

“무엇이 여든여덟 상자야?”

늦게 온 사람은 이 말을 듣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

“육씨 가문 넷째 집안에서 소씨 가문에 예물을 보내는데 여든여덟 상자나 되지 뭐야. 그때 육 노태군이 육 장군의 부인에게 보낸 예물 숫자와 똑같아. 하지만 상자들이 그때보다 훨씬 큰 것 같은데. 들어간 예물도 더욱 많겠지.”

“서둘러, 소씨 가문에 예물을 보내는 것을 보러 가자고.”

물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게 육씨 가문의 예물이야? 왜 이렇게 조용하지? 중매쟁이도 없이? 앞에는 기러기도 없고, 축하용 과자도 안 뿌리는데? 왜 아무것도 없지?”

이 의심하는 말들은 구경거리에 열중한 백성들에게 묻혀 버렸다.

“육씨 가문에서 상인 집안 여인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넷째 집안에서 부인을 맞이하는데 예물을 무려 여든여덟 상자나 준비하겠어? 가주 부인도 여든여덟 상자를 받았다며. 이건 전 가주 부인을 망신주는 게 아닌가.”

“육씨 가문인데 어떻게 상인 집안 출신의 부인이 눈에 차겠어? 내가 듣기로는, 그때 육 대장군이 전선에서 위험에 처하는 바람에 육 노태군이 육 대장군에게 상인 집안 여인을 가주 부인으로 들였대. 경사를 치러서 액운을 막느라 그랬다나 봐.

신부가 운이 좋고, 사주팔자도 맞고, 담력도 있다니 한 번 시도해 본 거지. 그런 사람이 무슨 가주 부인이야? 단지 액막이 신부일 뿐이지.”

“육씨 일곱째 도련님이 맞이하는 사람은 명문가 아가씨야. 소 승상댁 규수라고. 예물이 적어서야 쓰겠어? 내가 보기에는 여든여덟 상자도 적은걸. 육씨 일곱째 공자가 소 낭자를 맞이하는 건 여자 쪽이 기우는 혼사인데.”

“어서, 어서 따라가 보자고…….”

변경의 백성들은 구경거리를 좋아했다. 다들 육이 일행을 따라가서, 육씨 가문에서 소씨 가문에 예물을 보내는 광경을 보고 싶어 했다.

곧, 육이 일행 뒤에는 사람이 한 무리 뒤따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떠벌리기 좋아하고,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들은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틈에 먼저 소씨 저택으로 달려가 ‘희소식을 알렸다’. 돈이나 몇 푼 얻으려는 심산이었다.

소씨 가문의 하인이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들이 하는 말은 진짜 같았다. 게다가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직접 나가서 소식을 알아보았다. 알아보니 정말이었다.

“나리, 나리, 희소식이에요!”

하인은 기뻐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돌아오자마자 소 승상에게 이 좋은 소식을 전했다.

“나리, 육씨 가문 일곱째 도련님이 예물을 보냈어요. 무려 여든여덟 상자나 된대요. 그때 대장군이 부인을 맞이할 때와 똑같은 숫자입니다!”

하인은 흥분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육비우가 예물을 보냈다고? 어디서 온 소식이냐?”

보름도 안 되는 새, 소 승상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머리가 새하얘졌고 심하게 야위었다. 두 볼이 푹 꺼졌고 검버섯도 거뭇거뭇하게 나서 무서운 인상으로 변했다.

“나리, 소인이 직접 보았습니다. 육이 장군이 앞장을 서고, 뒤로 백 명이 넘는 육씨 가문 병사가 예물을 들고 옵니다.”

하인은 흥분해서 손짓, 발짓까지 곁들였다.

“하나같이 아주 멋있어요. 그 상자들도 번쩍거리는 게 대단히 으리으리하답니다!”

“육이가 예물을 전한다고? 왜 사전에 알려 준 사람이 없었지? 육이가 우리 소씨 가문에 예물을 전하는 것이 확실하냐?”

소 승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약간 의심하는 어조였다.

이 며칠 동안, 그는 육씨 가문 넷째 집안에서 내쳐진 사부인과 혼사를 논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순조롭지 않았다.

육씨 가문 넷째 집안에서는 예물을 여덟 상자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 사부인은 더욱 뻔뻔하게 소씨 가문에서 돈을 내서 약혼 예물을 마련하라고 했다. 또 혼인할 때, 그 예물을 육씨 가문에서 들고 올 테니, 그런 식으로 두 가문의 체면을 지키자고 했다.

소 승상은 그 사부인 때문에 역겨워서 견딜 수 없었다. 만약 소씨 가문에 변고가 생기지만 않았어도 정말 저런 어른이 있는 집안에는 함연이를 시집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육씨 가문 넷째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하인의 보고를 듣고 기뻐하지 않았다. 다만 이상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하인은 잠시 멍해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리, 육씨 가문 사내는 육 대장군과 일곱째 도련님 둘뿐이에요. 장씨 가문의 그분은 떠나갔으니 혼사는 이미 글렀지요. 그리고 우리 저택은 장씨 저택과 방향도 다릅니다.

육씨 가문에서 예물 여든여덟 상자를 들고 우리 집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어요. 그럼 우리 저택 말고 또 어느 집에 예물을 전하겠습니까?

행렬을 거느린 사람이 육이 장군인 것을 보니, 넷째 집안이 망신당하지 않게 육 대장군께서 특별히 나서서 처리한 모양입니다.”

소 승상이 자세히 생각해 보자, 이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찌 되었건 준비부터 해라. 길을 깨끗이 청소하고 중문(中門 – 바깥채와 안채 사이의 문)을 열어 두라고 해라.”

만약 정말 육장봉이 예물을 준비한 거라면, 사전에 소씨 가문에 알리지 않은 것도 그럴 만했다.

육장봉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네, 소인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소 승상이 명령을 내리자, 하인은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원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다들 경사스러운 느낌이 드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소 집사는 더욱 일찌감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 일꾼에게는 길목에서 지키라고 했다. 또 길이 막히지 않게 지나가는 마차들을 통제하라고도 했다.

소씨 저택에서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육이 일행이 예물을 들고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예물이 오기만 하면 그들 소씨 가문은 기를 펼 수 있었다.

무려 여든여덟 상자였다. 육씨 가문에서는 가주 부인의 기준으로 아가씨에게 예물을 보내오는 것이었다.

이제 누가 감히 육씨 가문에서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아가씨를 맞이하기 싫어한다고 입을 놀릴 것인가?

오늘 이후로 수군거렸던 사람들이 망신당할 것을 생각하자, 집사는 흥분되어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일각이 지나도록, 반 시진이 지나도록, 한 시진이 지나도록, 골목에서는 전혀 기척이 없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기척이 없지?”

육씨 저택에서 소씨 저택까지, 그냥 걸어도 한 시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예물을 전하는 행렬이 아직도 소식이 없다니. 혹시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소 집사는 마음이 불안해져 제자리에서 뱅뱅 돌았다. 수십 바퀴를 돌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일꾼을 불러 말했다.

“네가 밖에 가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봐라.”

이토록 오래 기다렸는데도 소식이 없으니 하인도 불안해졌다. 집사의 명령을 듣자 바로 길거리로 나가 알아보았다.

자초지종을 알아본 하인은 분통을 터트릴 뻔했다.

“큰일이에요. 큰일 났어요……. 소 집사님, 큰일 났어요.”

하인은 땀범벅이 되어서 뛰어오더니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소 집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서둘러 물었다.

“무슨 큰일이냐?”

“예물, 예물이…….”

하인은 뛰어오느라 숨이 차 헐떡거렸다.

“예물이 망가졌느냐? 아니면 누구에게 빼앗겼어?”

“아니, 아니요……. 워, 월씨 저택으로 가져갔어요! 월씨에게 주는 거였어요!”

소식을 알아본 일꾼은 숨을 돌리고 울먹거리며 말했다.

“워, 월씨 저택으로 갔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육씨 가문에서 왜 뜬금없이 월씨 저택으로 예물을 보내?”

소씨 가문에서 육씨 가문의 예물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온 동네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육씨 가문의 예물이 사실은 월씨 가문으로 가는 것이었다니!

‘이, 이러면 우리 소씨 가문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소 집사는 이 충격적인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대로 두 눈을 뒤집더니 그만 쓰러져 버렸다. 도저히 이 소식을 가지고 나리를 뵐 면목이 없었다.

“어, 어서…… 소 집사가 쓰러졌어.”

“어, 어서 나리께 알려야지!”

소씨 가문의 하인들은 허둥지둥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감히 소 승상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영영 숨길 수는 없었다.

소 승상은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앞뜰에서 보고하러 오지 않자 변고가 생겼음을 짐작했다. 그래서 앞뜰이 소란스러워지자 급히 하인을 보내 물었다.

소 승상은 나름 여러 가지 경우를 짐작했다. 하지만 육씨 가문에서 월씨 가문에게 예물을 보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육장봉! 네놈이 감히 날 우롱해!”

소 승상은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쿨럭!”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피를 울컥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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