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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34)화 (334/1,004)

334화 예물을 월씨 저택에 보내라

조계안은 오만하게 얼굴을 돌리고 이마의 상처를 가리켰다. 그러면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아는 황형이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다쳤으니까 분명히 타협할 거야. 황형이 손불사의 조건을 수락하면 나머지 일은 네게 맡길게. 청희 장공주 옆에는 고조 황제가 남긴 사람이 아직도 많아. 난 아주 바빠서 다른 것들을 신경 쓸 시간이 없어.”

조계안은 말을 마치자, 책상을 두 팔로 짚고 훌쩍 뛰어올랐다.

“됐어, 그럼 난 이만…….”

“가져가.”

육장봉은 서랍에서 약을 꺼내 조계안에게 던졌다.

조계안은 팔을 뻗어 약상자를 받아 들었다. 힐끔 보았지만, 상자에 글씨가 적혀 있지 않자 물었다.

“이게 뭐야?”

육장봉이 대답했다.

“설옥고.”

황제가 좀 지나치기는 했다. 피가 옷깃까지 물들일 정도였다.

이번에 조계안이 황제를 설득하느라 치른 대가가 너무 컸다.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었다.

조계안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너한테 어떻게 설옥고가 있어? 월령안이 준 거야?”

그는 샘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내치기까지 했는데 월령안은 왜 이놈에게 설옥고까지 주는 거야? 월령안은 나한테는 한 번도 설옥고를 준 적이 없잖아!’

지난번, 그도 부상을 입고 월씨 저택에 갔었다. 그는 월령안이 그의 몸에서 풍기는 피비린내를 맡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그에게 설옥고를 준다는 말은 꺼낸 적이 없었다.

그는 대단히 화가 났다.

“산 거야.”

조계안이 얻어맞은 것을 봐서라도, 육장봉은 더는 그를 자극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돈이 많아? 월령안이 준 수고비가 적지 않았나 보네.”

조계안의 분노가 바로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는 설옥고를 꼭 쥐고 돌아서더니 멋들어진 모습으로 가 버렸다. 떠나기 전에 육장봉을 비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계안을 바라보는 육장봉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수고비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 육일을 추궁하지 못했다.

* * *

월령안은 궁문 입구에서 반 시진을 기다렸다. 곧 궁문이 잠기려 하자, 그녀는 슬슬 떠날 준비를 했다.

이때 황제의 내시 총관이 그녀를 향해 느긋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월령안의 얼굴에는 다시 예의 바른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이 총관.”

“월 가주, 폐하께서는 지혜롭고, 백성들을 잘 살피시지요. 폐하께서 손 신의의 조건을 허락하셨소. 손 신의께 말을 전해 주시오. 내일 진시에 황궁의 마차가 마중을 나갈 거요.”

이반반의 말투와 태도는 썩 좋지 못했다. 월령안을 보는 시선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월령안은 못 본 척했다. 그녀는 황궁의 방향으로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진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현명하시고 백성들을 잘 살피시지요. 이것은 천하 만민의 복입니다.”

이반반의 굳은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하지만 월령안에게는 여전히 차갑게 대했다. 그녀가 큰절을 마치자,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가 버렸다.

월령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라면 손 신의의 조건이 별것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황실에 제시하면, 천자께 불경을 저지르는 게 되고 만다.

황제가 이 일을 승낙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황제의 심복인 이반반이 그녀를 마뜩잖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월령안은 목적을 이루자 기분이 제법 좋아져, 신이 나서 말했다.

“집으로 가자.”

육십과 육십일은 말을 타고 마차의 양측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차를 사이에 두고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조금 전 성 밖으로 나가는 조왕 전하를 보았다. 황제가 이토록 빨리 타협한 데에는 조왕 전하의 공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둘은 마음이 통한 듯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들이 나서서 월 낭자에게 조왕의 공로라고 알려 줄 수는 없었다.

* * *

월령안이 월씨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문 뒤였다.

집사는 소식을 접하고 일찌감치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가 돌아온 것을 보자, 바로 측문을 열게 하고 뒤쫓아 갔다.

마차가 멈춰 서자, 집사가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다소 불안한 목소리로 불렀다.

“아가씨.”

“그래.”

월령안이 대답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어두운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지만, 거기서 감정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집사는 당황해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 소인이 죄를 지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월령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집사를 힐끔 바라보았다.

“자네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결정을 내린 사람은 그녀였다. 모든 대가도 그녀가 감당하는 것이 당연했다.

집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아가씨, 월 삼낭이 사라졌습니다.”

“아주 잘됐네.”

월령안이 가볍게 웃었다.

월씨 가문의 삼낭자가 그렇게 쉽게 잡히면 그녀는 오히려 실망할 것이다.

“아가씨…….”

집사는 고개를 들고 의아한 얼굴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아가씨의 이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의심하지 말게. 나는 진심으로 아주 잘됐다고 생각하니까. 어쨌든 내 언니인데 다른 사람 손에 죽으면 내가 얼마나 속상하겠나?”

월령안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집사를 신경 쓰지 않고 성큼성큼 가 버렸다.

지금, 누가 과연 월씨 가문의 주인인지 월씨 가문 사람들에게 똑똑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 * *

낙원 사건 이후, 월 삼낭은 변경에서 사라졌다. 월령안뿐만 아니라 육장봉의 사람도 월 삼낭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육일이 보고하러 왔을 때, 육장봉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알아서 벌을 받으러 가라고 눈치를 주었을 뿐이었다.

“네, 장군.”

육일은 감히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화풀이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가 일 처리를 잘 못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육 대장군은 육일에게 화풀이하고 나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는 탁자 위의 조각도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눈에 갑자기 위험한 섬광이 번뜩였다.

퍽!

육장봉은 손목을 움직였다. 손에 든 조각도는 마치 비도처럼 날아가 창문틀에 박혔다.

그는 늘 오만했다. 그가 마음에 든 것이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전부 그의 것이어야 했다.

‘나와 선을 긋고 싶다고? 꿈 깨시지!’

육장봉은 냉소를 짓고 소리를 질렀다.

“여봐라!”

“장군!”

막 부상에서 회복된 육이가 공손한 자세로 아랫자리에 서 있었다.

“혼인식 때 육 노태군께서 마님에게 준 예물과 예단을 찾아내라. 그리고 내일 그 예단대로 준비하여, 월씨 저택에 보내도록.”

육장봉은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분부했다.

육이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한참 후에야 장군이 말한 마님이 바로 월령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육이는 묵묵히 이 칭호를 기억해 두고 낮은 목소리로 일깨웠다.

“장군, 마님께서는 그때 받은 약혼 예물을 고스란히 들고 시집오셨었습니다. 천 같은 소모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창고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마님께서 떠나실 때 가져가지 않으셨습니다.”

탕!

육장봉은 무겁게 탁자를 내리치더니,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전부 정리해서 마님에게 보내도록. 거절한다면 이 예물은 본인이 시집올 때 해 온 혼수의 일부라고 해라. 본인 물건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라고 해.”

육이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끝내 삼켜 버리고 대답했다.

“네, 장군.”

‘장군은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려는 걸까!’

이른 아침부터 그 시절의 약혼 예물을 들고 월씨 저택으로 찾아가다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장군이 월 낭자에게 새로이 약혼 예물을 보내는 줄로 알 것이다.

육이는 월 낭자가 이 ‘예물’을 받았을 때, 얼마나 화를 낼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육이는 우울한 기분으로 서재를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내 상처는 왜 하필 오늘 다 나았을까?’

내일 나았더라면 이런 난감한 일이 그의 손에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운명에는 이길 수가 없구나!’

육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운명에 굴복한 그는 집사를 찾아 예단을 받았다. 그리고 사람을 데리고 창고로 가서 보관된 예물을 한 상자씩 들어냈다. 무려 여든여덟 상자나 되는 예물은 뜰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집사는 예물을 보며 이 낯설고도 익숙한 상자들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했다.

“그때 말이야. 자네들은 경성에 없어서 보지 못했겠지만, 마님께서 시집오실 때 얼마나 떠들썩했는지 모른다네. 그 행렬이 어찌나 길었는지, 십 리에 달할 정도였어. 혼수가 어찌나 많은지 장씨 가문의 그 낭자는 물론이고 황실의 공주도 부러워했다니까.”

집사는 월령안이 시집왔을 때부터 육씨 가문을 관리하고 아낌없이 퍼 주던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던 사람이다. 그녀가 쫓겨나면서 온갖 치욕을 당할 때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집사는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져,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자네들이 전선에서 싸울 때, 조정의 그 인간들은 매일 병사들의 봉급을 지급할 돈이 없다고 우는소리만 했지. 대장군이 전쟁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려고 노태군께서는 팔 수 있는 재산이라면 전부 파셨었어.”

그 당시 일들을 떠올린 집사의 입가에는 그리움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때만 해도 우리 육씨 가문은 정말 쪼들렸지. 이 여든여덟 상자의 예물은 육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긁어모은 것이라네. 자네들은 지금 저택의 재산이 점점 많아지는 것만 보이겠지. 하지만 이게 모두 마님이 삼 년 동안 조금씩 일군 것인 줄은 모를 거야.

육씨 가문에 시집온 삼 년 동안, 마님은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육씨 가문을 떠안았어. 육씨 가문이 가장 어려울 때 고생하면서, 육씨 가문에 누가 될 만한 일은 전혀 하신 적이 없었지. 하지만…….”

여기까지 말한 집사는 저도 모르게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육씨 가문이 마님께 큰 죄를 지은 게야.”

그들의 장군은 결국 마님의 정을 저버렸다. 인제 와서 되돌리려고 한들 늦었는지도 모른다.

“이혼에 관해서는 장군도 몰랐습니다. 비우 도련님이 남모르게 한 짓입니다. 장군도 억울하실 겁니다.”

육이도 집사를 따라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변경에 있는 삼 년 동안, 장군의 마음속에는 전쟁밖에 없었다. 또 쓸데없는 의심을 피하려고 변경에는 따로 사람을 두지도 않았다.

변경의 소식은 모두 조왕 전하가 전해 주는 게 전부였다. 월 낭자가 삼 년 동안 육씨 가문과 장군을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한 줄은 정말 몰랐다. 변경에 돌아와서야 사실을 알았지만, 아쉽게도 때는 이미 늦었다.

집사는 침묵을 지키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장군이 아내를 내친 일에 예사롭지 않은 사연이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지금 육이의 말을 듣자, 장군은 잘못이 없다고 더욱 확신했다. 단지 운명의 장난이었을 뿐이었다.

집사는 더는 생각하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 내가 도와주지. 날이 밝기 전까지 이 상자들을 모두 깨끗하게 정리하세.”

집사의 도움으로 육이는 한결 편해졌다. 날이 밝기 전에 예물 여든여덟 상자는 정리가 끝났다. 또 이 예물이 육씨 집안 것임을 남들이 모를까 걱정이라도 된다는 듯, 상자마다 전부 커다랗게 ‘육’ 자를 써서 붙였다.

시간이 조금 남자 육이는 잠을 보충하러 갔다.

진시(辰時 – 오전7시~9시)가 되자, 육이는 선명하고 산뜻한 색깔 옷을 차려입고 나왔다. 그리고 육씨 가문의 병사 백칠십육 명을 거느리고 예물 여든여덟 상자를 짊어진 채 육씨 저택에서 나와 월씨 저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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