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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31)화 (331/1,004)

331화 참 인생의 승리자라니까

장 오공자는 장 부승상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그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렸지만, 지금은 그를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가슴이 시큰거렸다.

그는 자신의 철없음을 탓했다.

장 오공자는 참혹한 꼴을 한, 관 속 시체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할아버지, 원아를 해친 사람은 누굽니까?”

“그건…… 월령안이다!”

장 부승상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고통스럽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원래 월령안과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월령안은 냄새나고 딱딱한 돌멩이 같은 존재였다. 거슬려도 굳이 직접 치울 가치는 없었다. 도리어 월령안처럼 급이 낮은 인물을 상대하면 장씨 가문은 이기더라도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제 월령안과 장씨 가문의 원한은 깊어졌다. 피를 보지 않고는 청산할 수 없었다.

다섯째는 벌게진 눈을 하고 말했다.

“월령안! 제가 기억해 두겠습니다.”

“다섯째야, 함부로 나서지 마라.”

장 부승상은 낮은 목소리로 타일렀다. 그는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의 뒷배는 육장봉이란다. 육장봉은 지금 한창 잘 나가니, 우리 장씨 가문은 그자를 피해야 한다. 알겠느냐?”

분노한 장 오공자는 할아버지의 눈에 섬광이 번뜩였다가 바로 사라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장 부승상은 마음속으로 더없는 위안을 느꼈다.

‘장씨 가문의 후계자가 드디어 칼을 갈게 되었구나!’

월령안이라는 숫돌은 칼을 갈기에 딱 알맞았다. 다섯째를 성장시킬 수 있지만, 다치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 * *

장소원이 비명횡사했다. ‘정절’을 위해 자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장씨 가문에서는 크게 장례를 치르는 대신 조용히 사람을 묻었다.

명월산장에 있던 월령안은 장소원의 소식을 접하고 탄식을 금치 못했다.

“장 부승상도 참 지독하네요. 자기 친손녀인데도 말이죠.”

노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넌 장 부승상이 가장으로서 아주 잘 처리했다는 걸 부정하지는 못할 거다. 황제의 불만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장소원이라는 잠재적인 위험도 제거했지.”

장소원이 살아 있는 동안 그녀와 설지화의 일은 언제든지 드러날 수 있었다.

지금은 장소원이 죽었다. 그것도 약에 중독된 상황에서 정절을 위해 자결했다. 누가 감히 그녀가 혼전에 순결을 잃었다고 하겠는가.

“전 단지 아쉬운 것뿐이에요. 복수를 시작도 안 했는데 원수가 죽었으니까요.”

월령안은 풀이 죽은 얼굴로 대답했다.

“육장봉이 널 도와 복수해 주었잖니? 장소원은 곱게 죽지도 못했어.”

노인이 위로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복수 같은 일은 당연히 제가 직접 손을 써야죠. 그래야 제 마음속의 증오를 잠재울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장소원을 죽이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걸요.”

그녀는 어떻게 원수를 갚을지 계획을 짜 두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원수는 이미 죽었다.

마치 파리를 절반만 삼킨 것처럼 역겨운 기분이었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었다. 영 개운하지 않았다.

노인은 가볍게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육장봉이 손을 쓰나, 네가 쓰나 무슨 다른 점이 있느냐?”

“어떻게…….”

말을 하던 월령안은 고개를 홱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영감님. 요즈음 부쩍 육장봉을 편드네요! 말씀하세요! 육장봉이 무엇으로 매수를 하던가요?”

노인은 월령안을 흘겨보며 말했다.

“네 생각에는 그놈이 뭐로 날 매수했을 것 같으냐?”

“아마도…… 그러게요. 제가 있는데 영감님에게 뭐가 부족하겠어요? 아무도 영감님을 매수할 수 없을 걸요?”

월령안은 우쭐거리며 대답했다.

노인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

‘바보 같은 령안아. 이 세상에서 날 매수할 수 있는 유일한 게 바로 네 행복이다. 네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난 기꺼이 육장봉에게 매수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이런 말을 월령안에게 하지 않을 것이다.

‘령안아, 너는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단다. 이런 어두운 일들을 알 필요가 없어.’

육장봉이 찾아왔다. 월령안은 노인의 다리를 베고 잠이 든 상태였다.

미풍이 잔잔하게 불어와 그녀 이마의 머리카락을 걷어 올렸다. 매끈한 이마와 동그스름한 눈썹이 드러났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마음을 놓고 잠들었음을 알았다. 그녀가 깨지 않게 소리를 거의 내지 않도록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그는 노인 앞으로 다가가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어르신, 제가 령안이를 데려가겠습니다.”

육장봉이 나타나자, 노인은 바로 기척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육장봉의 행동을 묵인했다.

육장봉이 입술로 말하는 것을 보고,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월령안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서, 그는 육장봉과 타협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육장봉을 좋아하지 않았다.

육장봉은 노인이 자신에게 품은 불만을 아는 듯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노인의 묵인하에 허리를 숙여 월령안을 안아 올렸다.

예전 같았더라면 월령안의 경계심이 발동해, 육장봉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깨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제 피를 많이 흘려 몸이 허약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노인이 옆에 있어 완전히 경계심을 풀고 있었다.

육장봉에게 안긴 채였지만, 월령안은 깨어나지 않았다. 다만 본능적으로 눈 부신 빛을 피하려고 얼굴을 그의 품에 묻었다.

육장봉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날씨는 참 좋았다. 낙원도 참 아름다웠다.

* * *

월령안은 명월산장에서 이틀 동안 요양했다. 손불사의 치료를 받은 덕에 몸은 많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항상 바쁘던 사람은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면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하도 누워 있다 보니 움직이기 싫어졌다.

그래서 몸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서둘러 성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황제가 지정한 마지막 날짜까지 미루다가, 성문이 닫히기 직전에 부랴부랴 성으로 들어갔다.

성으로 들어온 그녀는 자택으로 가지 않고 바로 마차를 황궁으로 돌렸다.

물론, 황제가 자신을 만날 리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도 황제를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성의를 보이려는 것이었다. 황제가 맡긴 일에 정성을 쏟는다는 사실만 알릴 셈이었다.

월령안은 금군에게 내쫓길 마음의 준비까지 마쳤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마차에서 내린 그녀가 신분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궁문을 지키는 금군은 예전의 냉담한 태도는 싹 사라지고 싹싹하게 말했다.

“월 낭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소인이 지금 가서 보고하겠습니다.”

예전과 똑같은 금군이다. 하지만 차가웠던 얼굴에는 다른 표정도 떠올라 있었다. 언행도 매우 공손해졌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언제부터 황궁의 금군이 이렇게 친절해졌지?’

그녀가 육씨 가문에 있던 삼 년 동안, 가끔 황궁에 들어와 연회에 참가했을 때도 이들은 그녀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월령안이 의아해하던 때, 마차를 몰던 육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 지금은 금군을 지휘하는 분은 저희 대장군이십니다.”

“아…….”

월령안은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인제 보니 당신 덕분이군요. 고마워요.”

육십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저 감사 인사를 넙죽 받았다가는 장군께서 날 때려죽이겠지?’

육팔, 육구, 육십일까지 떠올린 그는 영리하게 바로 말을 받았다.

“낭자, 이건 저희 장군 덕분이지요.”

그는 그녀의 감사 인사를 전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네요. 사실은 대장군의 덕을 본 것이군요.”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고 감탄했다.

“육 대장군의 아내일 때도 보지 못했던 대장군의 덕을 대장군의 전처가 되니 보는군요.”

육십은 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말에는 도저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앞으로 다시는 월 낭자 앞에서 잔꾀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 괜히 두 분 사이를 거들겠다고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금군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금군은 월령안과 육십의 대화를 듣고, 동정의 시선으로 육십을 바라보았다.

‘대장군과 월 낭자 사이에 끼어 있다니. 편할 날이 없겠네.’

역시 금군이 좋았다. 비록 대장군에게 중용될 일은 없지만, 자기 일만 잘하면 대장군에게 혼날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다른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했다. 하인처럼 다른 사람의 호위나 하라고 시키는 법이 없었다.

금군의 동정 어린 시선과 마주하자, 육십은 아주 의아했다.

‘왜 금군이 우리를 동정의 눈으로 보지? 우리는 월 낭자 옆에 있는 게 무척이나 좋은걸. 무엇보다 돈이 많다고!’

육팔과 육구는 월 낭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장군에게서 벌을 받았다. 그래도 천 냥이 넘는 돈을 챙겨 모두와 나누었다.

그들 열한 명, 심지어 조금도 힘을 보태지 않았던 육이도 백 냥 넘게 가져갔다. 그들의 일 년 치 급여보다도 많은 돈이었다.

‘만약 금군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래도 우리를 동정할까? 됐어. 말하지 말아야겠어. 이 좋은 일자리를 뺏길라.’

그는 금군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마치 ‘형제여, 내 마음 알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쓴웃음이었다.

금군 병사들은 순간 우월감으로 가득 차 허리를 쭉 폈다.

친위대는 고개를 돌리고 그런 금군을 흘겨보았다.

동상이몽이었다.

월령안은 옆에 서서 육장봉 수하의 두 무리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눈빛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황제가 육장봉을 진심으로 아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육장봉은 병권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추밀원도 육장봉이 장관한다. 그는 병권과 정권, 그것도 전부 최고의 실권을 잡고 있었다.

육장봉은 수상, 부승상과 마찬가지로 초품(超品) 대신이었다. 하지만 실상을 따져 보면, 육장봉의 권력은 그 둘보다 훨씬 위라고 볼 수 있었다.

장 부승상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육장봉을 끌어들이려고 했던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현재 육장봉의 권세라면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황제가 여전히 육장봉을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해내기 힘든 일이었다.

한 사람이 벼슬을 해서 육장봉의 위치에까지 도달한다면 어떻게 처신하더라도 황제의 경계를 살 것이다. 하지만 육장봉은 아니었다.

“참 인생의 승리자라니까!”

월령안은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월 낭자, 뭐라고 하셨습니까?”

육십과 금군은 눈빛 교환을 마치고 돌아서자마자, 월령안의 말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뭐라고 말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하자, 바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손하게 물었다.

일하는 도중 정신이 팔리다니. 장군이 없었기 망정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와 육십일도 처참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내 말은…… 육팔과 육구는 괜찮아요?”

월령안은 아무 이유나 하나 둘러댔다.

“월 낭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장군께서는 늘 상벌의 기준이 분명합니다. 육팔과 육구가 저지른 잘못대로 벌을 받게 됩니다. 전부 규칙대로지요. 저희 장군께서는 함부로 벌을 주시지 않습니다.”

육십은 월령안이 정말로 걱정하는 줄 알고, 말을 잔뜩 늘어놓으며 안심시켰다.

“그럼 다행이에요.”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육장봉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상벌 기준이 매우 분명했다. 그 어떤 일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육팔과 육구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그녀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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