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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24)화 (324/1,004)

324화 이건 내게 벌을 주는 건가?

성 밖의 군영에는 병사 삼만 명이 있었다. 대부분의 병사가 월령안을 만나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다. 이 척후병은 마침 월령안을 알고 있었지만, 쓰러진 여인이 월령안이라는 건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손에 신호탄을 쥔 채 다가갔다. 긴 나뭇가지로 월령안의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순간, 깜짝 놀라 손에 든 신호탄을 땅에 떨어뜨렸다.

“워, 워, 월 낭자, 월 낭자다! 월 낭자가 다쳤습니다!”

척후병은 감히 월령안을 건드릴 수 없었지만, 그녀만 놔두고 갔다가 위험해질까 봐 자리를 떠날 수도 없었다. 다만 목청을 돋우어 사람을 부를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군영 입구에서 수백 장이나 떨어진 지점이었다. 그의 외침은 군영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척후병은 너무 놀란 나머지 신호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결국 군영 쪽으로 뛰어가며 연신 고함을 질렀다.

마침내 그의 고함에 군영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월 낭자가 군영 밖에 있다니? 무슨 일이냐?”

가장 반응이 빠른 사람은 육일이었다. 그는 당장 군영 밖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육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육장봉은 이미 몸을 날려 군영을 빠져나가 월령안의 곁으로 갔다.

육장봉은 말 옆에 쓰러져 있는 피투성이가 된 월령안을 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기고 손가락을 내밀어 호흡을 확인했다.

“……!”

‘숨이 붙어 있어.’

그녀의 호흡을 느낀 순간, 육장봉은 힘이 빠진 듯 다른 한쪽 무릎도 바닥에 댔다. 한순간에 온몸에 걸친 옷이 모조리 땀에 젖어 들었다.

그는 크게 숨을 헐떡였다.

육장봉이 월령안의 옆에 무릎을 꿇은 모습을 보고, 뒤쫓아온 육일 일행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대장군은 황제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 분인데. 월 낭자 앞에서 무릎을 꿇다니!’

‘이건…… 내가 헛것을 보나?’

육일 일행은 눈을 힘껏 비비면서 다시 보았지만, 여전히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육장봉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한 행동이었다. 조심스럽게 월령안을 안아 올리더니 그녀가 아플까 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령안은 여전히 아파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걸 보니, 견디기 힘든 듯했다. 그녀의 입술이 미약하게 달싹였다.

“월령안…….”

그걸 본 육장봉은 곧 멈춰 서서 제자리에서 굳어진 채,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혹시라도 듣지 못했을까 봐, 다시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괜찮소. 내가 있소. 당신은 이제 안전하오.”

지금 월령안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빛이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한지,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부드러우면서도 불안에 떨고 있는지, 육장봉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 있던 육일 일행은 그 광경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알게 되었다.

친위대 몇몇은 서로 마주 보더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차렸다. 동시에 마음속으로 묵묵히 육팔과 육구 두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이 둘은 이제 끝났구나!’

“유, 육장봉…….”

월령안은 줄곧 의식이 있었다.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의식을 잃을 수가 없어,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텼다.

눈을 뜨고 자신을 안은 사람이 육장봉임을 알아보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드디어 안전해졌구나.’

이 세상에서 육장봉의 곁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었다.

“내가 있소. 내가 여기 있소.”

월령안의 미약한 목소리에, 육장봉은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손에 쥐고 거듭해서 꽉 쥐어짜는 것 같은 지독한 통증만 느꼈다.

월령안이 입술을 달싹였다.

“손, 손불사를…… 찾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이제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말을 준비해라!”

육장봉은 월령안을 안고 군영으로 가려다가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육일에게 분부했다.

육일은 작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장군, 마님께서 상처를 입은 듯한데 마차를 준비할까요?”

예전이었다면 그는 감히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군의 명령은 그 누구의 이의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육 대장군은 복부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도 여전히 말을 타고 달렸지, 마차 같은 건 타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월령안에 관한 일은 관례대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육장봉은 주저하지 않고 명령을 바꾸었다.

“마차를 준비하라!”

“장군, 군의에게 마님의 상처를 싸매라고 할까요?”

대장군이 명령을 변경하자, 육일은 대담하게 다시 한번 제안을 했다.

“필요 없다. 설옥고를 가져와라.”

육장봉은 잠깐 멈칫하다가 육일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월령안의 팔과 허벅지에 난 상처만 볼 수 있었다. 그 상처를 보면 그녀가 스스로 그은 걸 알 수 있었다.

이 두 곳의 상처에서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월령안은 조심스럽게 혈관을 피해 살이 많은 곳만 골라 그었다.

상처는 매우 깊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몸에서는 또 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는데도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또한, 온몸이 이상할 정도로 불덩이 같았다. 심지어 그렇게 피를 많이 흘렸는데도 얼굴은 여전히 홍조를 띠고 있었다.

‘이건 절대 보통 일이 아니다.’

월령안이 손불사를 찾아가라고 한 걸 보면, 군의가 소용없을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육일은 설옥고를 몸에 지니고 있어 육장봉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상처에 설옥고를 발라 주었다. 이제 손과 팔의 상처에서는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여전히 피가 흥건했고, 손가락 사이에서는 선혈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월령안은 도대체 어디를 다친 거지? 왜 이렇게 출혈이 심하지?’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힘을 주어 월령안을 더욱 꽉 껴안았다.

“장군,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육장봉이 정체 모를 답답함에 시달릴 때 육일이 마차를 몰고 왔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월령안을 안은 채 마차에 올랐다. 제대로 앉기도 전에 바로 명령을 내렸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명월산장에 간다.”

“네.”

육일이 직접 마차를 몰았다. 육삼, 육사를 비롯한 몇몇 친위대는 말을 타고 양쪽에서 호위했다.

육일의 마차를 모는 기술은 대단히 능숙했다. 마차는 가는 내내 빠르고 안정적으로 달렸다.

하지만 육장봉에게는 마차가 굼뜨게만 느껴졌다. 특히 월령안은 가는 내내 계속 신음을 울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육장봉의 날카로운 양쪽 눈썹은 좁혀지다 못해 거의 한 줄로 이어지다시피 했다.

월령안은 남에게도 엄격했지만, 자신에게는 더욱 엄격한 사람이었다. 속으로는 피를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는 내내 신음하며 그의 품속으로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게 분명했다.

“괜찮소. 곧 도착할 거요.”

육장봉은 가볍게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거듭되는 손길은 부드럽고 섬세했다.

하지만 여전히 혼미한 상태에서 최음제의 영향을 받자, 월령안은 아무것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편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이렇게 되자 힘든 사람은 육장봉이었다.

육장봉은 자신이 짐승이 아니라고 자신했다. 아무리 월령안을 좋아한다고 해도, 온몸이 피투성이인 모습을 보면서 그런 충동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움찔거리며 품속을 파고들었다. 어떻게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아무리 인내심이 뛰어나다고 해도, 조금 속이 들끓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내게 벌을 주는 건가?’

* * *

육일은 나는 듯이 마차를 몰았다. 마침내 반 시진 뒤, 육장봉과 월령안은 명월산장에 도착했다.

이 무렵, 한발 먼저 도착한 암위는 이미 손불사를 들어서 내오고 있었다.

그렇다. 말 그대로 들어서 내오고 있었다. 그가 손불사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리는 바람에, 두 발은 땅에서 떨어져 있었다.

손불사는 내내 들려서 오느라 하마터면 목이 졸려 죽을 뻔했다.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당장 암위의 이마를 삿대질하며 험한 욕을 퍼부었다.

“망할 놈의 자식! 생각이 있냐, 없냐? 네 어미는 너를 어떻게 낳은 게야? 네놈 머리에는 똥만 들어찬 거야? 말도 할 줄 몰라? 사람을 들고 뛰다니, 네놈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힘만 세면 다야? 내가 약을 뿌려서 네놈의 손을 잘라 버리는 수도 있어! 못 믿겠으면 해 볼까? 돼지같이 멍청한 놈. 네 어미는 너를 낳느니 똥을 낳는 게 나았을 거다. 똥은 밭에 거름이라도 되지, 너 같은 놈은 어디다 쓰란 말이냐?”

암위는 그렇게 심한 욕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손불사가 욕을 하게 내버려 두었다.

손불사는 한참 동안 욕을 하다가 제풀에 지쳤다. 그리고 암위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금세 맥이 풀렸다.

“흥…… 아무짝에도 쓸모도 없는 겁쟁이 같으니라고. 삿대질 당하고 어미 욕을 해도 말대꾸조차 하지 않아. 열불 나네.”

손불사는 꺼림칙하다는 표정으로 침을 탁 뱉었다. 그리고 양손을 뒷짐을 지더니 등을 구부정하게 숙이고 암위를 등졌다.

‘화가 나는군! 요즘 젊은것들은 정말 말이 아니야. 이놈들은 령안이한테 가서 좀 배우면 안 되나? 이 늙은이가 어디 쉬운 사람인 줄 아나? 내가 화난 걸 못 봤나? 내 비위 좀 맞춰 주면 죽나? 어휴, 짜증 나!’

손불사는 암위에게 등을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콧방귀를 뀌는 거로 자신의 언짢음을 표현했다.

암위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손불사가 멀리 내빼지 않도록 지켜보기만 했다. 육일이 마차를 몰고 오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손 신의, 장군께서 오셨습니다.”

‘어허, 내게 도움을 청하러 왔군?’

암위를 등지고 있던 손불사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도 몸을 돌리는 순간, 바로 고수다운 품격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늙은이는 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아직 멈추지도 않은 마차에서 육장봉이 피투성이가 된 월령안을 안은 채 뛰어내려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준수한 얼굴은 서리가 내린 듯이 섬뜩한 표정이었다.

“어서, 어서 이 사람부터 구해 주십시오.”

“령안이가 누구에게 당했나?”

월령안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손불사는 이 모습을 본 순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챘다.

“네.”

육장봉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월령안은 오는 내내 뒤치락거리며 그를 괴롭혔다. 그 바람에 아무리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는 그라고 해도 그녀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약효가 강하지 않았고, 그녀도 잘 버텨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월령안이 아니, 그가 이 반 시진을 버텨 낼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었다.

미인을 품에 안고 있으면서도 건드릴 수 없다니. 육장봉은 이 반 시진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참 속을 썩이는군……. 그러게 내 그랬잖나. 변경은 좋은 곳이 아니라니까.”

손불사는 초조해하며 손을 내밀어 월령안을 건네받으려고 했다. 그러다 자신은 힘에 부친다는 것을 떠올리고 육장봉을 다그쳤다.

“어서 령안이를 방으로 데려가게.”

이번에는 암위가 옮겨 주기 전에 손불사가 제 발로 재빨리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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