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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23)화 (323/1,004)

323화 거긴 반드시 안전할 거야!

“우우우…….”

장소원은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지독하게 고통스러웠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월령안이 그녀를 돌의자에 눌러 앉혔다. 장소원은 몸부림을 치려 했지만, 반항할 힘이 없었다. 분노에 찬 소리 없는 외침을 내지를 뿐이었다.

장소원의 행동을 보자, 월령안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자업자득이야!”

월령안은 장소원을 동정할 수 없었다.

그녀가 냉랭하게 장소원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월령안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비수를 뽑아 자신의 팔뚝을 그은 다음, 비틀거리며 정자 밖으로 도망쳤다.

아직 이각이 지나지 않았다. 월령안은 육팔과 육구가 때맞춰 달려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육팔과 육구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대신 혼자서 묵묵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낙원은 너무 넓었다. 의식이 몽롱한 채로 휘청휘청 달려가다가 길을 잃었음을 깨달았다. 게다가 등 뒤에서 발소리도 나는 것 같았다.

“젠장.”

월령안은 낮은 목소리로 욕을 했다. 더는 길을 찾으려 하지 않고 한쪽으로 방향을 잡고 묵묵히 달렸다.

낙원은 둥근 형태가 아니었다. 한 방향으로만 뛰다 보면 어떻게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계획은 맞아떨어졌다. 곧 작은 문이 보였다. 지키는 사람도 없고, 문에는 구리 자물쇠 하나가 걸려 있을 뿐이었다. 이 문의 크기와 재질을 보니, 하인들이 드나드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범씨 가문 사람들은 평소 낙원에서 지내지 않았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월령안은 앞으로 다가가, 원래 튼튼하지 못한 구리 자물쇠를 비수로 열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때 등 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월령안의 몸은 더는 버틸 수가 없는 상태였다. 두 다리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억지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월령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남은 의식에 의지해 한쪽의 큰길로 달려갔다.

이곳에는 황실과 최씨 가문의 별장이 있었다. 비록 외진 곳이었지만 황량하지는 않았고, 심지어 관도(官道)도 있었다.

지금은 체력이 달렸다. 산이나 지름길을 따라 달린다고 하더라도, 결국 장소원의 사람들에게 붙잡힐 게 뻔했다. 오직 관도로 가야만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아주 작은 기회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푹!

월령안은 또다시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칼로 자신의 팔을 그었다. 이번에는 하도 깊게 그어 뼈가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그 덕분에 또 수십 장을 더 달려갈 수 있었다.

아마도 운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거의 관도에 다다르는 순간, 맞은편에서 누군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러나 그 사람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월령안은 피를 너무 흘려 머리가 어지러웠다. 말을 타고 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확실하게 알아볼 수가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운이 좋아도, 마침 아는 사람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 와서 구해 주기를 바라 본 적도 없었다. 불확실한 사람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승부를 거는 게 더 나았다.

그러니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누구든지 월령안에게 있어서는 똑같았다.

말을 탄 사람은 나는 듯이 달려오느라 미처 그녀를 보지 못했다. 곧 월령안을 칠 뻔했지만,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돌진했다.

그녀 역시 피하지 않았다. 심지어 상대방을 향해 달려갔다.

“비켜라, 비켜!”

재빠르게 말을 달리던 사람은 누군가 말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도 피하기는커녕 마주 달려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바로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안간힘을 다해 고삐를 잡아당기며 말을 멈추려 했다.

바로 이때 빙침 하나가 월령안의 손끝에서 날아갔다.

“앗!”

말에 탄 사람은 고통에 찬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낙마해서 쓰러졌다.

이와 동시에 월령안은 이미 말 옆으로 달려가 있었다. 말이 속도를 늦추는 틈을 타서 고삐를 잡고 말에 올라탔다.

“죄송합니다! 저는 월씨 령안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말을 빼앗고, 당신을 다치게 한 건 어쩔 수 없이 한 일입니다. 월씨 저택으로 찾아오시면 당신의 모든 손실을 두 배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월령안은 이름도 모르는 운 나쁜 행인에게 사과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나자마자 말머리를 돌려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고삐를 잡자, 팔에 난 상처가 땅겨 피가 더 빨리 흘렀다. 피를 많이 흘린 탓에 머리는 어지러웠지만, 대신 몸의 열기가 적지 않게 사라졌다.

장소원과 월 삼낭이 사용한 최음제는 독하지 않은 것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능욕당하는 모습을 보게 하려는 것이었다.

피를 많이 흘리면서 최음제의 효과는 감소했다. 그러나 복부의 통증은 완화되지 않고 오히려 심해졌다.

얼마 달리지 않아, 월령안은 통증 때문에 얼굴이 땀투성이가 되었다. 머리카락도 모두 흠뻑 젖어 얼굴에 달라붙어 무척이나 볼썽사나웠다.

지독한 통증에 이를 악물었지만, 몸이 계속 덜덜 떨렸다. 이 통증의 유일하게 좋은 점은 머릿속이 점차 맑아지는 것뿐이었다.

‘여인이 독해지기 시작하면 정말 무섭구나.’

월령안은 짧게나마 정신을 차린 틈을 타서 재빨리 궁리했다.

지금은 이미 이각이 지났다. 그녀가 안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육팔과 육구는 틀림없이 그녀를 찾으러 낙원으로 쳐들어갔을 것이다.

인제 와서 정문으로 달려가면 일행을 만나지 못할 확률이 칠 할은 되었다. 되려 장소원의 복병을 만날 수도 있었다.

육팔과 육구를 찾아간들 소용없었다. 그러면 다른 방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낙원은 최씨 가문의 최원, 황실의 국원과 가까웠다.

국원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국원의 하인은 황제의 사람들이니, 하나같이 눈이 정수리에 붙어 있을 게 뻔했다. 그녀가 지금 같은 모습으로 달려가 도움을 청하면,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늑대 소굴에 빠지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최씨 가문의 최원으로 가는 게 최선책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최일과 교분이 두텁지 않았다. 최씨 가문 하인들도 그녀를 알지 못했다. 그녀가 최원으로 달려갔다가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역시 결과는 끔찍할 것이다.

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는 법.

그녀는 최음제 때문에 몸이 허약해진 상태였다. 이 와중에 미친 놈이라도 만나면 돈도 잃고 몸도 잃을 판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장씨 가문 사람들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최원이나 국원으로 가는 길에는 장씨 가문 하인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정말 갈 곳이 없구나.”

수십 장밖에 달리지 않았지만, 월령안은 안절부절못했다. 말 등에 엎드려 말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단숨에 갈림길까지 달려갔을 때였다. 월령안은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그곳이 있었구나! 거긴 반드시 안전할 거야!”

월령안은 이번에는 아무 망설임 없이 칼을 허벅지에 꽂았다. 그러고는 고삐를 당겨 왼쪽의 오솔길로 달려갔다.

‘군영! 육장봉이 군영에 있어!’

마음속으로는 육장봉을 원망하고, 늘 그가 나쁘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육장봉이 믿고 의지할 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이 군영에 데려다줄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그녀는 무사할 수 있었다. 육장봉 수하의 병사들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그녀를 어쩌지는 않을 것이었다.

월령안은 갈 길을 찾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말을 몰아 미친 듯이 달렸다.

반 리쯤 달렸을 때, 뒤쪽에서 어렴풋이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환청을 들었는지, 행인이 지나간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비수를 말 등에 꽂았다. 이제는 말채찍을 들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히히힝…….

말이 통증을 느끼고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돌진하는 바람에 월령안도 하마터면 굴러떨어질 뻔했다. 악착같이 말갈기를 잡고 있었기에 망정이었다. 군영에 도착하기도 전에 낙마해, 성이 나서 미친 듯이 날뛰는 말의 발굽에 짓밟혀 죽을 뻔했다.

말은 날 듯이 달렸고 월령안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직 의식이 남아 있었고, 자신의 처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무거워서 몸을 전혀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말을 부둥켜안고 말이 앞으로 돌진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월령안은 운이 좋았다. 다행히 길 앞에 절벽이나 강물 같은 게 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녀의 상태로 보았을 때, 그대로 휩쓸려 크게 다쳤을 것이다.

월령안은 미친 듯이 도망갔지만, 그녀를 쫓던 장씨 가문 호원들은 오래지 않아 갈림길까지 뒤쫓아갔다. 그녀가 선택한 길을 보자, 우두머리는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말을 채찍질했다.

“군영으로 도망가다니. 그 계집이…… 참 교활하군. 너희들, 어서 빨리 쫓아가거라. 절대 군영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해!”

월령안이 일단 군영으로 도망치면, 혼쭐이 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훨씬 먼저 출발했고 말의 속도는 엇비슷했다. 군영으로 가는 길의 절반을 달릴 때까지도 그들은 월령안을 따라잡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은 군영에서 일 리도 채 안 떨어진 지점에서 월령안의 모습을 발견했다.

우두머리는 감히 더는 쫓아가지 못하고, 속도를 늦추었다. 음침하고 차가운 눈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월령안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더니 이를 갈면서 고삐를 잡고 말머리를 돌렸다.

“돌아가자!”

그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은 이의 없이 신속하게 따라갔다.

그때, 군영 밖을 지키던 병사가 앞쪽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상황을 알아차렸다.

척후병이 말을 타고 나와 살펴보았다. 그가 채 다가가기도 전에 피투성이가 된 웬 낭자가 말 등에서 미끄러져 내리더니 쿵, 하고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가 타고 있던 말은 상처를 입었는지, 아니면 달리다가 지쳤는지 함께 쓰러졌다.

사람과 말이 동시에 한 방향으로 쓰러졌다. 이대로 말이 쓰러지면 밑에 깔린 사람은 죽거나 불구가 될 게 뻔했다.

척후병은 월령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온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은 살리고 보자는 마음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낭자, 빨리 도망치세요!”

병사는 자신이 소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양심을 따라 소리쳤을 뿐이었다.

그 아가씨는 피투성이가 된 채 말 등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기절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힘이 다 빠진 상태라서 절대 피할 수가 없었다.

병사가 월령안이 반드시 말에 깔려 죽을 거라고 여겼을 때였다. 그녀가 갑자기 움직였다.

그녀는 달리지도,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냥 제자리에서 두 바퀴를 굴렀다.

쿵!

말이 쓰러졌다. 흩날린 말갈기가 월령안의 얼굴을 후려치더니 빨간 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월령안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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