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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22)화 (322/1,004)

322화 난 지금 악의로 가득 차 있어

“마침 잘 왔어요. 제가 막 우린 차예요.”

장소원은 품새가 고결하고, 물처럼 상냥하고 부드러웠다. 일거수일투족에는 우아함이 묻어났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타고난 기품이 그녀를 빛나게 했다.

그녀는 찻주전자를 살짝 쥐고 높이 들어 올렸다. 찻물이 조르르 흘러내리며 차분하게 잔에 떨어졌다. 동작은 우아하면서도 멋스러워, 남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장소원은 찻잔을 칠할 정도 채운 뒤 손을 거두었다. 찻물을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고 거두어들이는 것을 보아, 다도에 어지간히 익숙한 모양이었다.

“월…… 가주, 앉으세요.”

장소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찻잔을 맞은편으로 밀어주더니, 월령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편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는 모른다. 월령안은 장소원이 차를 우리는 모습이 어쩐지 최일처럼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아름답기는 해도 억지스러움이 엿보여서, 최일처럼 소탈하면서도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자신이 일부러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 장소원의 단점을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장 낭자, 오가는 시간을 빼고 나니 이제 일 각이 남았네요.”

자리는 세 개뿐이었다. 장소원과 월 삼낭은 이미 자리를 하나씩 차지해 앉아 있었다. 월령안도 과감하게 장소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돌의자에 앉자마자 얼음처럼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월령안은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다행히 차가운 느낌도 한순간뿐이었다. 이제 돌의자는 곧 평소와 똑같게 느껴졌다. 그녀도 마음속의 이상한 느낌을 가라앉혔다.

“일 각?”

장소원은 두 손으로 잔을 들고 차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월령안의 말을 듣고는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령안이는 네가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 호위병에게 말해 두었거든. 이 각 뒤에도 저 애가 나가지 않으면 호위병이 찾으러 들어올 거야.”

월 삼낭은 애교스럽게 웃었다. 말투에는 전혀 불만이 없었다. 마치 고집을 피우는 어린아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월 가주, 저를 맹수 취급하는 거예요?”

장소원도 빙그레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월령안은 농담으로 받지 않았다. 대신 도도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눈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장소원과 월 삼낭은 미소를 유지할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월령안이 자신들을 바보처럼 여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소원은 들고 있던 차도 마시지 못했다. 잔을 내려놓으며 소리 없이 탄식했다.

“월 가주…….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에요.”

월령안은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악의를 가지고 있으면 제가 당신을 무서워할 것처럼 얘기하네요.”

“무섭지도 않은데 왜 굳이 이 각이라는 시간을 정했나요?”

장소원은 얼굴의 미소를 더는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월령안은 전혀 상식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사교적인 수완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상류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 이해되었다.

‘상인 가문 출신이라 그런지 역시 못 배운 티가 나네.’

장소원은 눈을 내리깔았다. 까마귀 깃털 같은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며 눈 속의 분노를 감췄다.

“소인을 경계하는 것뿐이에요. 군자는 경계하지 않죠.”

월령안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고는 살짝 웃었다. 그리고 장소원의 앞에서 그 잔에 담긴 차를 쏟아 버렸다.

“예를 들자면, 이렇게 하는 것도 소인을 경계하는 거예요.”

장소원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순간 굳어졌다. 손을 들어 탁자를 내리치려는 순간, 월 삼낭이 서둘러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원아, 령안이는 원래 저런 성격이야. 악의는 없어. 화내지 마.”

월 삼낭은 겉으로는 살짝 잡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몰래 힘을 쓰고 있었다. 장소원은 전혀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니. 난 지금 악의로 가득 차 있어.”

월령안은 월 삼낭을 힐끗 보고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장소원이 월 삼낭의 말을 너무 잘 따르고 있었다.

‘이건 월 삼낭이 장씨 가문에서 지위가 낮지 않다는 뜻인가? 아니면 월 삼낭이 장소원만을 굴복시킨 걸까?’

어찌 됐든 월 삼낭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월 삼낭이 한숨을 쉬며 거듭 말했다.

“령안아, 언니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월령안은 못 들은 척하고 장소원에게 말했다.

“장 낭자가 저를 만나자고 했죠. 지금 제가 왔으니 얼굴은 이미 봤잖아요. 또 다른 용건이 있나요?”

“제가 당신을 도와 유경장의 두 친구를 구해 줄 수 있어요.”

장소원의 얼굴에는 여전히 품위 있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조금 전 자제력을 잃을 뻔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조건은요?”

월령안은 무심코 물어보았다. 장소원의 제안을 별로 마음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

장소원은 은근슬쩍 화가 났다. 하지만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영원히…… 육씨 가문, 그리고 육 대장군에게 시집가지 말아야 해요.”

“좋아요.”

월령안은 대단히 시원하게 대답했다.

장소원은 어리둥절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제가 뭐라고 했는지 제대로 들었나요? 당신은 육씨 가문에 다시 시집갈 수도 없고, 육 대장군과 재결합할 수도 없다고요.”

“똑똑히 들었어요. 약속하죠. 지금 제가…… 흡…….”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갑자기 배에서 익숙한 통증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뜨뜻한 무언가가 쏟아지는 느낌은 익숙하면서도 불쾌했다.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왜 하필 이럴 때 달거리가……?!’

가장 부적절한 때에 느닷없이 터졌다.

순식간에 월령안의 얼굴빛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장소원과 월 삼낭을 바라보았다.

시간을 계산해 보면 달거리가 올 때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이게 우연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 우연의 일치가 그렇게 많을 리 없다.

게다가 평소에도 달거리가 올 때면 복통이 있기는 해도, 지금처럼 참기 힘들 정도로 아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한 지금처럼 아무 조짐도 없이 갑자기 오지도 않았다.

‘돌의자!’

월령안은 앉은 순간 느꼈던 돌의자의 차디찬 촉감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금세 알아차렸다.

“월! 영! 수!”

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서며 월 삼낭의 이름을 차갑게 외쳤다.

“난 참 좋은 언니를 뒀네!”

“령안아, 갑자기 왜 그래? 얼굴이 왜 그렇게 창백하니.”

월 삼낭은 입으로는 신경을 쓰는 듯했지만, 얼굴에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월령안이 지금 곤경에 처하게 된 건 월 삼낭의 짓 때문인 게 분명했다. 게다가 그녀는 월령안이 알아차렸다고 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장소원은 월 삼낭만큼 참을성이 없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쌀쌀맞게 비웃었다.

“월 가주,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듣건대 육 대장군이 당신 집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육 대장군에게 수고비까지 주었다더군요. 오늘 제가 사람을 데려와 당신과 밤을 보내게 하면, 그 사람에게도 똑같이 수고비를 줄지 모르겠네요?”

장소원은 비웃음이 가득 한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쳐서 사람을 부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슉, 하는 소리가 울렸다. 빙침 하나가 월령안의 손끝에서 날아가더니 장소원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아악!”

장소원은 통증을 느끼고 신음을 울리더니, 다리에 힘이 빠져 쓰러지고 말았다. 곧이어 온몸에 힘이 빠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분노해서 큰소리로 외쳤다.

“월령안,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장소원의 물음에 또 하나의 빙침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이 빙침은 장소원의 목을 파고들어, 그녀가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월령안은 장소원을 해결하자, 즉시 월 삼낭을 겨냥했다. 그러나 한발 늦고 말았다.

월 삼낭은 경계심이 강했다. 월령안이 손을 쓰는 순간 바로 몸을 일으켜 난간을 넘어 도망쳐 버렸다.

“날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날 셈이냐. 월영수, 참 꿈도 야무지군.”

월령안은 칼로 에는 듯한 복통을 느꼈다. 몸 뒤쪽은 이미 붉은 피로 물들었다. 심지어 다리를 타고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쓰러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기어이 정자 가장자리로 걸어가, 월 삼낭이 달아난 방향으로 작은 화살을 쏘았다.

슉…….

작은 화살을 날렸으나 명중하지 못했다.

월령안은 단념하지 않고 또 한 발을 쏘았다. 이번 화살은 월 삼낭의 어깨에 꽂혔다.

월 삼낭이 한 걸음 휘청거렸다. 월령안은 이 모습을 보고 곧 세 번째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월 삼낭은 월령안의 상상보다 훨씬 더 끈질겼다. 작은 화살이 어깨뼈를 꿰뚫었는데도 잠깐 멈칫했을 뿐, 곧 더 빠르게 달아났다.

세 번째 화살은 허공에 떨어졌다.

월령안이 다시 화살을 쏘려 했을 때 월 삼낭은 이미 멀리 달아난 뒤였다.

“중은 도망갈 수 있지만, 절은 도망갈 수 없지.”

월령안은 손을 거두고 몸을 돌렸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소원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두 눈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월령안은 싸늘하게 피식 웃더니, 장소원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월령안이 몸을 돌리는 순간, 전신에서 갑자기 힘이 빠져나갔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차, 최음제에 당했구나.’

“당신…….”

월령안은 돌 탁자를 짚고 간신히 몸을 가누고 섰다. 고개를 돌려 장소원을 바라보며 힘없이 물었다.

“돌의자. 돌의자에 뭐가 있었어? 왜, 어떻게…….”

‘어떻게 갑자기 달거리도 오게 하고, 최음제에도 당하게 할 수가 있지?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컥컥……!”

장소원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사악한 빛으로 번뜩였다.

‘달거리가 왔는데 또 그런 일까지 치르면……. 월령안이 병에 걸리지 않으면 내 성을 간다!’

월령안의 온몸은 불덩어리였다. 눈앞이 아찔했다. 의식은 점점 모호해졌다. 몸도 점점 아래로 처지고 있었다. 만약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복통 때문에 머리까지 울리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이성이 그녀에게 쓰러져서도, 기절해서도 안 된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일단 쓰러져서 기절해 버리면, 육팔과 육구가 들어오더라도 그녀를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종아리에 묶은 비수를 꺼내고 싶었지만, 쭈그려 앉을 엄두도 못 냈다. 한 번 주저앉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문득 돌의자 위에 놓인 찻잔이 보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안간힘을 다해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올리더니 탁자에 세차게 내리쳤다.

“윽…….”

찻잔이 산산이 조각났다. 파편이 손바닥의 부드러운 살점을 파고들어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픈 나머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래도 손바닥의 짜릿한 통증 덕분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렸다.

“장소원! 나는 속이 좁아서 원한이 있으면 반드시 갚아야 하거든. 당신이 먼저 시작했으니 날 원망하지 마.”

월령안은 탁자 위의 찻주전자를 들어 장소원의 얼굴에 내리쳤다.

“윽……!”

아직도 뜨거운 찻물이 장소원의 얼굴 위로 쏟아 부어졌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올랐다. 하지만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몸에도 힘이 없었다. 그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끙끙 신음을 낼 뿐이었다.

“육장봉에게 시집가고 싶다고? 그 소원대로 해 줄게.”

월령안은 조금도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휘청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온몸의 힘을 다해 장소원을 끌어당겨, 자신이 조금 전에 앉았던 돌의자에 앉혔다.

“날 해치려고? 그 소원대로 해 줄게.”

그녀는 들어와서 아무것도 마시지도 않았다. 이상한 냄새를 맡지도 못했다. 다만 그 돌의자에 앉는 순간, 너무 차가워져 의아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면, 이 돌의자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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