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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21)화 (321/1,004)

321화 낙원을 갖고 싶지 않아?

월령안이 낙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

정원 밖은 조용했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 앞의 돌계단에는 이끼가 끼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게 분명했다.

월령안이 낙원에 도착하자, 하인이 앞으로 다가와 측문을 열고 그들 일행을 맞아들였다. 마차는 정원 안으로 들어가 후미진 곳에 멈춰 섰다.

월령안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햇빛 아래에 서 있는 월 삼낭을 보았다. 그녀는 온몸에서 햇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이 빛났다. 월 삼낭은 웃는 얼굴로 그녀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령안아, 드디어 언니가…… 또 널 만났구나.”

월 삼낭은 두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한 걸음 나와 월령안을 안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그 손을 바로 피했다.

월 삼낭이 어색하게 손을 거두었다. 웃는 얼굴이 씁쓸하면서도 단호해졌다.

“령안아, 언니한테 화났니? 언니가 너무 늦게 왔다고? 장씨 저택에서 너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아서? 아니면 장씨 저택에서 너를 난처하게 했다고?”

월 삼낭의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령안, 언니도…… 어쩔 수 없었단다. 언니를 원망하지 마라, 응?”

미인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는 철석같이 냉정한 사람이라도 조금은 누그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월령안의 얼굴에서는 어떤 감동의 빛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냉랭하게 월 삼낭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오직 경계심뿐이었다. 자매간의 재회, 가족 상봉으로 인한 기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기쁨은 장씨 저택에서 이미 다 소진되었다.

“월 삼낭, 아니면 월영수라고 불러야 하나? 우리 모두 월씨 가문 사람이잖아. 서로 뻔히 아는 처지에 왜 그래? 어차피 늑대로 태어났는데 왜 양의 탈을 뒤집어쓰려는 거야?”

월령안은 한마디 비웃고서 귀찮은 듯이 말했다.

“특히 언니는 아무리 양처럼 꾸며도 전혀 그럴듯하지 않거든. 참 못 봐주겠다.”

“령안아, 너 어쩌다 이렇게 변했니? 너무 낯설어서 언니도 너를 전혀 몰라보겠구나.”

월 삼낭은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옆에 서 있던 육팔과 육구는 어안이 벙벙하여 바라보았다.

‘이 낭자는 정말 연약하군! 월 낭자가 손도 안 댔는데 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굴지?’

“내가 변한 거야, 아니면 네가 변한 거야?”

월령안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월 삼낭, 무슨 자매간의 재회, 연약한 여자의 불굴의 의지 같은 것을 연기하고 싶은 거였다면 오늘 만남은 여기서 끝내.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능력이 있으면 상업계에서 진짜 실력을 발휘해 봐.”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월령안, 낙원을 갖고 싶지 않아?”

월령안이 뒤돌아 가버리려고 하자 월 삼낭은 곧바로 나약한 모습을 싹 벗어던지고, 싸늘하고 오만하게 입을 열었다. 월령안을 향한 눈길은 차갑기만 할 뿐,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월령안은 몸을 돌렸다.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고 비웃듯이 말했다.

“이제야 월씨 가문의 삼낭자답네. 음흉하고 교활한 늑대 주제에 순진한 양인 척하긴. 이젠 나이도 많은데 그러고 사는 것도 피곤하지 않아? 그쪽은 안 피곤할지 몰라도 보고 있는 나는 피곤하네.”

“넌 어떻게 내가 양인 척한다고 그렇게 단정 짓니? 그런 모습이야말로 내 본모습일지도 모르잖니. 난 지난 십 년 동안 그런 모습으로 살았는데.”

월 삼낭은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냉담하고 거만한 모습에는 처량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큰 상처를 받고서도 밝히기 싫은 듯한 도도한 모습은 조금 전의 억울한 모습보다 훨씬 더 애처로워 보였다. 하지만 월령안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낙원 얘기나 한번 해 봐.”

낙원은 외가에서 남긴 유일한 것이었다. 월령안이 낙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월 삼낭은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관심이 없었더라면 월령안이 여기까지 찾아올 리도 없었다. 월 삼낭이 부른다고 해서, 월령안이 바로 달려올 만큼 월 삼낭이 대단한 존재도 아니었다.

“범씨 가문 사람이 안에 있어. 네가 가서 직접 이야기해 봐.”

월 삼낭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눈빛은 너무 고요했다.

월령안은 가볍게 웃었다.

“범씨 가문에 붙었어?”

월 삼낭이 말했다.

“령안아, 네가 믿든 안 믿든, 나는 너를 해치려 한 적이 없어.”

그녀는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녀의 말을 믿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월령안이 말했다.

“난 믿어. 나도 여태까지 셋째…… 언니를 해치려 한 적이 없었거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지 못 하는 건 아니란 소리잖아. 정말로 내가 그 차이를 못 알아들을 거로 생각했나?’

월 삼낭은 눈을 내리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범씨 가문 사람을 만나 볼 거니?”

“안 만나면 어쩌겠어.”

월령안은 환히 웃으면서 일부러 천진난만한 말투로 말했다.

“셋째 언니, 내가 함정인 줄 알면서도 들어갈 것 같아? 내가 아직도 여덟 살 먹은 어린애인 줄 아나 봐!”

“네가 들어온 이상, 나가지는 못할걸.”

월 삼낭은 얼굴을 활짝 펴고 가볍게 웃었다. 그 웃음은 정말로 찬란해, 햇빛조차도 빛을 잃을 지경이었다.

육팔과 육구는 나름 견식이 넓다고 자부했으나, 월 삼낭의 웃음 한 번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월 삼낭의 미소는 너무 아름다웠다. 사람이라면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정신력이 그나마 강했으니 망정이다. 월 삼낭이 그렇게 웃으면서 그들의 목숨을 달라고 했더라면, 아마 순순히 내놓았을 것이다.

월 삼낭은 그러한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육팔과 육구를 흘깃 바라보며 더욱 예쁘게 웃었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가볍게 벌리고, 요염하면서도 천박하지 않게 말했다.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장소원이야. 네가 낙원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가는 순간, 유경장의 두 친구의 구족을 멸할 거야. 물론, 그 구족에는 유경장도 포함되겠지.”

“날 만나겠다는 사람이 장소원이었어?”

월령안은 예쁜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해 보았다.

이 무렵은 육팔과 육구도 월 삼낭의 미모 공격에서 정신을 차린 뒤였다. 두 사람은 다급하게 말렸다.

“월 낭자, 저 여인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조정에도 엄연히 법도가 있으니, 장 부승상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는 못할 겁니다. 게다가 장군께서 계시잖습니까. 장 부승상이 제멋대로 하게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육 대장군은 무장이어서 형부(刑部)의 사건 처리에는 간섭하지 못할걸요. 게다가 육 대장군이 그들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성에 돌아올 수나 있을까?”

월 삼낭은 거리낌 없이 웃었다. 웃든 안 웃든 늘 추파가 일렁이는 눈망울은 별빛이 반짝이듯 더욱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지금 그 모습을 감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월령안은 그녀를 바라보더니, 잠시 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갈게.”

“월 낭자…….”

육팔과 육구는 월 삼낭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이 순간, 육팔과 육구의 눈에는 수많은 남자를 유혹했던 월 삼낭의 아름다운 겉모습이 악귀보다 더 무시무시해 보였다.

“괜찮아요.”

월령안은 손을 들어 육팔과 육구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월 삼낭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이각이 지나도 제가 나오지 않으면, 들어와서 저를 찾으세요. 누군가가 막아 나서거든 바로 죽이세요. 모든 결과는 제가 책임질 거예요.”

이 말은 육팔과 육구에게 한 말이 아니라 월 삼낭에게 한 말이었다.

월 삼낭은 아무렇지도 않게 교태를 부리며 웃었다.

“령안아, 긴장하지 마. 장소원은 단지 네 매력이 어떤 건지 보고 싶어 하는 것뿐이야. 육 대장군이 장씨 가문에 밉보이는 한이 있더라도 장소원을 맞아들이려 하지 않는 게 너 때문이잖아.”

“잘됐네. 마침 나도 한 번 만나 보고 싶었어. 장소원에게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길래, 설씨 가문의 적장자가 장소원 때문에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는지 궁금했거든.”

월령안은 월 삼낭의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장소원은 이미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정말 만나보고 싶다면 굳이 성 밖의 낙원에서 만나자고 할 필요가 없었다.

하물며 장소원은 외사촌 오라버니의 유일한 핏줄도 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 선량한 사람일 수 있겠는가.

그래도 상관없었다. 월령안 자신도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니까.

낙원은 산에 기대어 지어졌다. 면적은 약 백 묘(畝 - 약 300평) 정도 되었고, 왼쪽에는 최씨 가문의 최원(崔園)이, 오른쪽에는 선황이 지은 국원(菊園)이 있었다.

이 세 정원이 산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낙원이 한복판을 차지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월령안의 외가도 보통 가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몰락하는 바람에, 당당한 명문가의 귀족 여인이 결국 상인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었다.

낙원은 개인 정원이 된 이후, 사람들에게 개방하지 않았다. 월령안도 낙원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곳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낙원을 살펴보느라 저도 모르게 신경이 분산되었다. 낙원은 남방 정원의 풍격을 고스란히 살려 지어졌다. 돌과 물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조경의 이치에 따라, 돌과 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여러 가지 화초는 단아하고 소박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이는 북방의 정원처럼 획일적으로 넓고 웅장함을 추구하는 풍격과는 달랐다. 시적인 정취와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 넘쳐흐르는, 품위 있고 고상한 분위기를 더욱 추구했다.

정원의 화초나 물과 돌의 배치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 모습은 산뜻하고 소탈하면서도, 섬세함과 정교함을 잃지 않았다.

물 가까이에 작은 누각이 세워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서늘한 색조를 띤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처럼 그윽하고 아름다웠다. 문인 특유의 정취가 짙게 드러나는 경치였다. 이 정원을 거닐다 보면 자신도 책 향기에 물드는 것만 같았다.

월령안은 낙원만 보고도, 외가가 그 옛날에는 얼마나 위세가 대단했을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모든 것이 지나간 과거일 뿐이었다.

“낙원의 모습은 변한 게 없어. 여전히 그때 당시 모습 그대로야. 이 몇 해 동안 범씨 가문은 유지, 보수만 했지 한 군데도 마음대로 고치지 않았거든.”

월 삼낭이 한마디 덧붙였다. 월령안이 정원의 경치를 살펴보는 모습을 보니, 낙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지난 십 년 동안, 범씨 가문에서도 낙원을 손보고 싶어 했지만, 사실상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낙원의 배치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제멋대로였다. 마치 손이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단 한 곳만 건드려도, 전체가 뒤틀리며 정원의 조화가 깨졌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범씨 가문도 처음에는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경의 대가를 고용해서 고치려고 했다. 그러나 낙원은 모든 곳이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어느 곳이든 꼭 알맞게 서로 어우러졌다. 한 곳이라도 건드리면 정원 전체가 망가졌다.

범씨 가문은 몇 번이나 시도해 본 뒤에야 겨우 포기했다. 그리하여 낙원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

“참……. 범씨 가문에서 사정을 봐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드려야겠네.”

월령안이 비웃으며 말했다.

월 삼낭은 그러한 그녀의 태도를 보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곧 어느 정자에 도착했다. 장소원이 정자에 앉아 차를 우리고 있었다.

월령안은 원래 월 삼낭이 그녀만 데려다주고 가 버릴 줄 알았다. 그러나 월 삼낭은 함께 정자에 들어갔다.

“원아, 령안이가 왔어.”

월 삼낭은 장소원에게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녀는 월령안을 소개해 준 뒤 바로 장소원의 옆에 앉았다. 장씨 저택에서의 조심스러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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