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318)화 (318/1,004)

318화 월령안의 선물

장군왕 세자가 이 계약을 맺게 된 것도, 장군부에서 과감하게 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장군부가 그에게서 이득을 볼 생각이었다면, 황제 앞에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타협하지 않았을 것이다.

월령안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거래는 그냥 밑지지만 않으면 된 거예요.”

‘이러고도 돈을 벌려고? 장군왕 세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장군왕 세자는 이 말을 듣자 내켜 하지 않았다.

“그럼 이 거래는 안 하고 말지. 장군부의 사람을 찾아가 돈을 돌려줄래. 팔지 않으면 될 거 아니야.”

“돌려주긴 뭘 돌려줘요? 장사하면 벌 때도 있고 밑질 때도 있죠. 이번 거래는 벌이가 안 되는 것뿐이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안 해요?”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를 몰아붙여 그의 기세를 꺾어 놓은 다음 말했다.

“이번 거래는 해야 해요. 그것도 아주 크게 해야 해요. 장군부에 찾아서 의논하세요. 술 가게가 개업하는 날에 대장군에게 직접 술을 전하도록요.”

육장봉이 술을 사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 주면 그만이다.

“안 가. 벌이도 안 되는 장사에 무슨 고생이야?”

장군왕 세자는 이번 거래로 돈을 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밑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알자, 조금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 장군부를 설득해 이번 거래를 취소할지만 궁리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모두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해야 좋지 않겠는가.

“길게, 멀리 내다보세요. 이 거래로는 벌지 못하겠지만, 이 거래로 더 많은 돈을 벌 수는 있어요.”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의 성격을 알기에 빙빙 둘러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새로 여는 술 가게가 판로를 빨리 개척하려면 사람들에게 알리고, 믿고 받아들이게 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장군왕부에서는 예전에 술장사를 한 적이 있으니 세자께서도 알고 계실 거예요. 술장사에서 나는 수익의 대부분은 고관대작이 연회를 열어 대량으로 구매할 때 발생해요.

그들은 이미 영녕후부의 술 가게와 거래하는 게 습관이 되었잖아요. 세자께서 영녕후부의 수중에서 장사를 빼앗으려면 가격만 저렴한 거 가지고는 어림없어요.

게다가 고관대작이 대량 구매를 해 주면, 더 나아가 일상적인 판매도 끌어낼 수 있어요. 평범한 백성들은 이런 쪽의 판단력이 부족해요. 그들은 고관대작들이 사는 술이 좋은 물건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세자의 술 가게가 명성을 쌓으려면 반드시 고관대작들부터 공략해야 해요. 하지만 억지로 들이밀어서도 안 돼요. 그들이 먼저 찾아오게 만들어야 해요.”

“가게 하나 여는 게 이렇게 힘들어?”

장군왕 세자는 들어도 영문을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정신을 바싹 차리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너는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렇지?”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장군왕부의 명의를 빌려 종실 분들을 동원해 술 가게의 분위기를 띄울까 생각했어요. 지금은 장군부와 거래한 게 있으니, 굳이 종실에 신세 질 필요는 없겠네요.”

“이 거래가 그렇게 쓸 만해?”

장군왕 세자는 깜짝 놀라 말했다.

그의 술 가게를 위해 종실 사람들을 동원해 분위기를 띄운다. 장군왕부에서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대가는 적지 않았다.

신세를 지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

“물론이죠.”

월령안은 눈길을 탁자 위의 계약서에 떨어트리더니, 가볍게 웃었다.

“가서 육일과 의논하세요. 술이 변경에 도착하더라도 일단은 넘겨주지 마세요. 술 가게를 개점하는 날, 직접 창고에서 장군부로 보내 주겠다고 하세요.”

“몇십만 근이나 돼. 언제까지 운반해야 하지?”

장군왕 세자는 금세 머리카락이 곤두설 것만 같은 공포가 느껴져,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장군부에서 직접 술을 가져가라고 하면 될 거 아니야? 그렇게까지 일을 키울 게 뭐 있어?”

“장사하면서 일을 키우는 걸 싫어하면 어떡해요? 이 일은 크게 만들수록 세자께 유리해요.”

월령안은 그제야 장군왕부에 이런 훌륭한 조건이 있지만, 어째서 도박장에나 의지해 돈을 벌어야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알아듣기 쉽게 다 말해 주었건만, 장군왕 세자는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장담컨대, 장군왕 세자의 장사 머리로는 무슨 장사를 하든 모두 손해를 볼 것이다.

“뭐가 있어…….”

장군왕 세자는 불평을 쏟아내려다가 금세 정신을 차리고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았다. 분위기 띄우기!”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이해했구나.’

“바로 분위기를 띄우는 거예요. 개업하는 날, 가게에서 술을 장군부로 끊임없이 실어 가면, 두 시진이 채 안 돼서 온 변경 사람들이 알게 될 거예요. 장군부가 세자의 술 가게에서 수십만 근의 술을 주문한 사실을 말이에요. 반나절이 채 안 되어 온 변경 사람들이 세자의 술 가게를 알게 될 거고요. 그리고 육장…… 흠흠…….”

월령안은 미처 내뱉지 못한 글자를 삼켜 버렸다.

“육 대장군은 막 대승을 거두고 돌아왔으니, 지금이 그분의 명성이 가장 드높을 때예요. 변경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고요. 그분을 숭배하고 비위를 맞추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데 경성의 하급 관리와 갑부들이 육 대장군이 세자의 술 가게에서 술을 사는 것을 보았어요. 생각해 보세요. 이제부터 그들이 술을 사려면 어디 가서 살까요?”

“당연히 우리 가게지!”

장군왕 세자는 눈이 번쩍 뜨였다.

장군왕 세자의 말에 월령안의 눈에도 웃음기가 어렸다. 장군왕 세자에게 비록 장사 머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정과 의리를 중요하게 여길 줄은 알았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우리 가게’라고 하는 걸 보면 장군왕 세자는 사귈 만한 사람이었다.

사실 말하는 내내, 그녀는 줄곧 장군왕 세자의 술 가게임을 강조하고 암시했었다. 충분히 그 혼자만의 공로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월령안을 잊지 않았다.

장군왕 세자가 드디어 알아듣자, 월령안은 더는 말하지 않고 일어섰다.

“그래서 이 거래는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안을 뒤흔들 정도로 해야 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죠?”

장군왕 세자는 따라서 일어섰다. 두 눈에 빛을 내뿜으며 말했다.

“알겠어. 겉멋을 부리는 건 내가 분명 너보다 나을걸. 기다려 봐. 나…… 아니, 그런데 우리가 어디 가서 이화백을 십여만 근이나 구해? 시장에는 좋은 술이 그렇게 많이 없을 텐데, 우리가 어디 가서 물건을 구한다지?”

월령안은 방그레 웃었다.

“영녕후부의 공급원을 끊으면 되죠. 운송비를 절약해서 푼돈이라도 벌 수 있으려나요.”

월령안은 지금 청희 장공주가 수작을 부릴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수작을 부리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청희 장공주가 수작을 부리기만 하면, 그녀는 청희 장공주의 체면을 완전히 뭉개 버릴 수가 있었다.

“할 수 있을까?”

장군왕 세자가 월령안 곁으로 다가왔다. 뻔히 두 사람밖에 없는데도, 일부러 목소리까지 낮추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왕께서 조금 도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아버지더러 반란을 일으키라고 하는 것만 아니면 무슨 일이든 다 돼.”

장군왕 세자는 돈을 벌게 되자, 아버지를 아주 시원스럽게 팔아넘겼다.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눈짓하더니, 그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왕께 말씀드리세요. 만약…… 그분더러 힘을 합쳐…… 그리고 손불사더러…….”

“네가 생각해 낸 이 계략은 너무 악랄한데. 마음에 쏙 든다!”

장군왕 세자는 듣고 나서 흥분해서 야단이었다.

월령안은 한사코 부인했다.

“어디가 악랄해요? 만약 청희 장공주가 저를 해코지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저도 그분에게 맞서지 않았을 거라고요. 전 다만 저를 보호하는 것뿐이에요.”

‘얘도 참, 말솜씨가 없구나.’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이번 걸음에는 수확이 있었다.

육장봉을 한 방 먹이는 김에 장군왕까지 끌어들여 청희 장공주를 함께 대적하게 되었다. 이만하면 이번 걸음은 헛되지 않은 셈이었다.

일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의 열정적인 권유에도 불구하고, 장군왕부에서 점심을 들지 않고 깔끔하게 떠나갔다.

* * *

이 무렵, 육일 일행도 성 밖의 군영에 도착했다.

육일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말에서 내리자마자 상자를 안고 지휘관의 막사로 갔다.

“대장군, 성에서 나오는 길에 월 낭자를 만났습니다. 월 낭자는 대장군께서 이 며칠간 돌아오시지 못한다는 말을 듣자, 이 상자를 장군께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월령안이 그에게 전하라고 한 말에 대해서는 못 들은 거로 하기로 했다.

만약 그 말을 전했다가는 오늘 오후…… 아니, 지금, 당장, 즉시 되돌아가 새내기들과 함께 다시 훈련해야 할 게 뻔했다.

“놓고 가라.”

육장봉의 눈길은 육일의 손에 들고 있던 상자에 떨어졌다. 줄곧 냉정하면서도 싸늘하던 눈동자에는 의문이 서려 있었다.

‘어제는 날 거부했는데 오늘에는 왜 물건을 보냈지? 저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탁자 위의 나무 상자를 보면서, 육장봉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비고 몇 번이나 죽다 살아나온 사람답게, 육장봉은 위험에는 극도로 예민했다.

탁자 위의 나무 상자는 조용히 놓여 있었다.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짙은 악의를 느꼈다.

“어젯밤, 내 짐작이 맞았던 모양이군. 요즘은 여인도 상대하기 까다롭지만, 노인도 만만치가 않구나.”

육장봉은 눈을 살짝 감고서 가볍게 피식 웃었다.

나무 상자에서는 악의가 느껴졌지만, 육장봉은 주저하지 않고 나무 상자를 손에 쥐었다.

변경에 돌아온 다음, 월령안이 처음으로 그에게 먼저 보낸 물건이다. 그게 악의로 가득한 나무 상자가 아니라 설령 독약이라도, 그는 웃는 얼굴로 삼킬 수 있었다.

육장봉은 손에 든 나무 상자의 무게를 느껴 보고 웃었다.

“보아하니 독약은 아닌 것 같군.”

역시, 월령안은 여전히 그를 아끼고 있는 것이다.

육장봉은 아무 망설임 없이 나무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눈에 보인 것은 나무 상자 안에 깔끔하게 정리된, 분명 사용했던 적이 있는 조각 도구였다.

육장봉은 한순간 가슴이 울렁거리며 불안해졌다.

‘이건 무슨 뜻이지?’

그는 많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월령안이 그에게 나무 조각용 조각도를 보내 주는 건 생각해 보지 못했다. 게다가 이건 분명 그녀가 사용했던 것이었다.

“이건…… 자기가 아끼는 물건을 나한테 선물하는 건가?”

육장봉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떠올랐다. 깊은 눈도 온통 의문으로 가득했다.

‘어제 분명 불쾌해했는데 어떻게 아끼는 물건을 나에게 선물할 수 있지? 이 안에 무슨 오묘한 장치라도 있는 건가?’

육장봉은 군중에서 들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조각도 하나를 꺼내 햇빛 아래에 놓고, 똑똑히 볼 수 있게 칼자루를 돌렸다.

“글자를 새기지는 않았군.”

“딱히 무슨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늬도 없어.”

“대가에게 주문한 것도 아니다.”

“무슨 오묘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평소 육 대장군은 바빠서 식사할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만큼은 고집스럽게 조각도를 들고, 일각 동안 사소한 부분 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이건 그냥 평범한 조각도로군.”

육장봉은 조각도에 관한 연구를 마치자, 상자를 비우고 상자 안팎을 모두 검사했다. 이음매 쪽에 옹이가 있을 뿐, 상자 안에는 아무 비밀 공간도, 무늬도, 단서도 없었다.

“그래서 월령안은 도대체 무슨 뜻이지?”

육장봉은 자신이 둔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의 머리로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월령안이 그에게 준 선물에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혹시 이 조각도로 조각상이라도 만들어 달라는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