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317)화 (317/1,004)

317화 대장군을 날로 먹을 수는 없다

월령안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육십이는 군영에서 나오지 못하잖아요. 그 사람을 빼세요!”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육십이, 네가 감히 육장봉과 함께 나를 골탕 먹여. 정말 분통이 터지네.’

“알겠습니다. 월 낭자!”

육구는 기쁘게 대답했다. 살짝 굳어 있던 얼굴로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십이가 월 낭자와 가깝게 지내고, 월 낭자가 십이를 그들과 달리 대하는 것이 부러웠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드디어 십이가 그들을 부러워할 차례가 되었다.

‘신나네!’

육구는 나무 상자를 챙기고, 육팔과 함께 좌청룡 우백호처럼 의기충천하여 양옆에서 마차를 호위했다. 그들의 신분으로 일개 여자 상인을 호위하는 게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육일이 그들에게 몰래 알려 주었다. 장군은 육일 앞에서 월 낭자를 부를 때마다 매번 ‘마님’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비록 장군이 소심해서 그들 앞에서만 그렇게 부르지만, 이것만 봐도 장군의 태도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육장봉의 열두 친위대가 비록 육장봉만큼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변경에서는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어제저녁 무렵, 월령안이 성 밖으로 나갈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또한 길을 서둘렀기에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붐비는 때였다. 길에 마차도, 사람도 많아서 도저히 빨리 지나갈 수가 없었다.

월씨 가문 일행이 거리에 나가자마자 누군가 그들을 알아보았다. 물론 월령안을 양옆에서 호위하는 육팔과 육구도 알아보았다.

“내가 말했지. 월 가주하고 육 대장군의 관계가 범상치 않다고. 저기 봐……. 월 가주 옆에 있는 사람들은 대장군의 호위병이야. 대장군의 호위병도 관리잖아. 그런 관리가 여자 상인을 호위한다고. 이래도 월 가주와 육 대장군에게 아무 감정이 없다고? 나는 못 믿겠는걸.”

“정말 말세로군, 사람들이 옛날 같지가 않아! 남녀 둘이 중매도 없이 저렇게 야합(野合)해서야…….”

“그게 무슨 말인가. 월 가주나 대장군이나 미혼 남녀 아닌가. 서로 좋다는데 왜 그래? 그 집 어른들도 말을 안 하는데 자네가 왜 큰소리로 떠드냐고? 자네 집안사람도 아니잖아?”

“무슨 중매가 따로 있어. 그 두 사람은 혼인도 했었잖아. 지금은 이혼했다지만, 재결합할 수도 있지.”

“그건 이혼이 아니라 소박을 놓은 거지…….”

“그래. 그럼 소박을 놓았어도 다시 맞아들일 수는 있잖아.”

“내가 볼 땐 힘들 거 같은데. 오늘 아침 일찍 성문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

“무슨 일? 내가 모르는 일이 있나?”

“내가 말해 줄게. 내 일곱째 이모네 외사촌 형이 성문을 지키고 있다네. 그 사람 말로는, 오늘 아침 일찍 월 낭자가 성 밖에서 돌아오다가 대장군의 호위병을 만나서 큰돈을 주더래. 그러면서 대장군이 밤을 보낸 수고비라고 하더라나.”

“밤을 보낸 수고비?”

“밤을 보낸…… 수고비? 이…… 이건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니면 자네가 잘못 말한 건가?”

“맞아, 밤을 보낸 수고비. 자네가 잘못 들은 게 아니야. 월 낭자가 아주 당당하게 말했대. 대장군을 날로 먹을 수는 없다고.”

“풉……!”

첫 사람이 찻물을 뿜어내자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연이어 여러 사람이 찻물을 뿜었다. 다루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뭐 하는 짓이야? 왜 남한테 물을 뿜어.”

“어휴, 더럽게 이게 뭐람.”

“자네, 참……. 이건 새로 지은 옷이란 말일세.”

“미안, 미안. 고의로 그런 게 아니야. 그렇지만 정말…… 그 말은 너무 대단한데.”

욕설과 사과의 소리가 뒤섞였다. 다루는 사람들의 혼란으로 인해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한편, 다루의 별실에 앉아 있던 여인은 이 소리를 듣고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역시 월령안 때문에 나를 맞아들이려 하는 않는 거였구나.”

마음속의 분노는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 * *

월령안은 미리 명첩을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장군왕부 측문에 마차를 세운 뒤, 사람을 보내 장군왕 세자를 찾도록 했다.

운 좋게도 장군왕 세자는 마침 저택에 있었다.

월령안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장군왕 세자는 두말없이 사람을 보내 월령안을 맞이하게 했다.

“웬일로 날 찾아왔지? 요즘 매우 바쁜 거 아니었나?”

장군왕 세자는 새로운 사업을 찾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다. 호강스럽게 자란 부잣집 도련님의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이, 날마다 생기가 넘쳤다. 길상 도박장마저도 문을 닫았다.

황제는 이 소식을 듣자, 사석에서 장군왕을 칭찬했다.

장군왕도 은혜를 갚는 셈 치고, 월령안을 칭찬했다. 하지만 월령안에 대한 황제의 선입견은 너무 깊었다. 황제는 장군왕의 말을 이어받아 월령안을 칭찬하기는커녕 그녀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 주었다.

장군왕은 역대 황제 셋을 모시면서도 넘어지지 않은 오뚝이답게 세상 물정에 훤했다. 월령안이 이익만 중요시하고 정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에, 황제가 그녀에게 편견이 있음을 눈치챘다.

비록 월령안의 편을 들어주고 싶기는 했지만, 황제와 부딪쳐서 좋은 일이 없을 것도 알았다. 그래서 웃기만 하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뒤, 장군왕은 세자에게 주의하라고 했다. 황제의 불만을 일으키지 않도록 월령안과 왕래할 때는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장군왕 세자는 그 자리에서 장군왕에게 눈을 흘겼다.

“폐하께서 언제는 제게 만족하셨다고요.”

장군왕이 세자를 혼내 주려 하자, 장군왕 세자는 한발 먼저 달아났다.

“그리고, 폐하께서 제게 만족하시면 어쩔 건데요? 저에게 감투를 씌워 주실 건가요, 아니면 돈을 벌 기회를 주실 건가요? 폐하께서 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데, 그분이 만족할지 말지를 왜 신경 써야 하나요?”

장군왕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하지만 더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장군왕 세자가 월령안과 왕래하는 것도 막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 아들 하나뿐이었다. 전에 아들이 도박장을 차렸을 때도 용납했고, 이름을 빌려주어서 그의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지금 아들이 모처럼 바른길에 들어서서 성실하게 돈을 벌겠다고 하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리고 황제가 불만스러워하더라도 딱히 문제는 아니었다. 황제는 인자하고 너그러우니,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어야 할 것은 줄 것이다. 다른 이익은 장군왕부에서도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황제의 경고가 있었지만, 장군왕 세자는 예전과 똑같이 행동했고 월령안과 거리를 두지 않았다.

월령안은 이런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장군왕부에서 그녀를 멀리하면, 기껏해야 이 장사를 마친 다음 관계를 말끔히 끊고 다음 동업자를 찾으면 되었다.

돈이 애물단지라지만, 이 세상에서 돈을 꺼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장군왕부가 지금과 같은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앞으로 돈을 벌 기회가 있으면 같이 벌면 되었다.

월령안은 들어서자마자 장군왕 세자의 의기양양하고 활기가 넘치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까지 하자, 마음속으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 몰래 술을 다 팔고도 말 한마디 없네. 다들 하나같이 내가 만만해 보여서 괴롭히려는 건가?’

월령안은 순간 웃음을 거두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이화백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 술들을 모두 폐기하라고 남쪽 사람들에게 연락했어요. 다른 술로 대체해야 할 것 같네요.”

“뭐라고?”

장군왕 세자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순간 굳어졌다.

“술에 문제가 생겼다고?”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 이화백이 모두 상했대요. 전부 쉬어 버려서 팔 수가 없다고 하네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늘 밤에 전부 폐기할 거예요.”

월령안은 양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침울한 말투로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어찌 된 일이야? 그 술에 왜 문제가 생겼지? 구할 방법이 없을까?”

장군왕 세자가 안달하며 말했다.

“그 술들은 장군부에서 벌써 사 갔는데. 술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 장군부에서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돈을 배상하라 할 텐데. 아주 많은 돈을 배상해야 할 거야.”

“그 술이 벌써 팔렸나요? 그것도 대장군의 사람이 와서 샀다고요? 언제 있었던 일이죠? 전 왜 모르죠?”

월령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짐짓 의아해하며 물었다.

“엥?”

장군왕 세자는 깜짝 놀랐다.

“장군부의 사람이 너에게는 말하지 않았어? 우리가 술장사하기로 한 그날 저녁, 육일이 나를 찾아와서 그 술을 전부 사 갔거든. 그때는 나도 동의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들이 장군부에서 벌써 사람을 보내 가지러 갔다는 거야. 내가 팔든 안 팔든 똑같다고 하더라고. 네가 알려 주지 않았으면 그들이 어찌 물건이 있는 곳을 알겠어? 나는 너와 무언가 이야기가 됐던 것은 아닐까 싶었지.

그래서 다음 날,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 월씨 저택으로 찾아갔었지. 그런데 그날 너는 너무 피곤하다면서 쉬고 있었잖아. 너하고 대장군과의 관계를 보건대, 너도 분명 알고 있을 줄 알았지.”

장군왕 세자는 말을 마치더니 의기소침해서 탁자에 엎드리더니 맥없이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죽어도 동의하지 말고 그들더러 너를 찾아가라고 해야 했는데. 이제 난 어떻게 해?”

“이 일은, 됐어요…….”

월령안은 술을 판 과정을 알게 되자, 장군왕 세자에 대한 불만이 다소 해소되었다.

‘여우 같은 육장봉에게 장군왕 세자가 적수가 될 수 있었겠어?’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군부에서 술을 사면서 혹시 계약서 같은 거에 서명했나요? 제게 보여줘요. 해결 방법이 있는지 좀 보자고요.”

“있어. 있고말고.”

장군왕 세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일어나 서가 뒤쪽에서 계약서를 꺼내 월령안에게 내밀었다.

“령안, 자세히 봐봐. 혹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겠어? 장군부에서 당시 제시한 가격은 시장 단가보다 더 비쌌어. 만약 물건을 제때 내놓지 못하면 신용은 둘째치고, 돈을 밑지게 되는 게 문제야.”

월령안은 계약서를 쥔 손을 부르르 떨더니, 장군왕 세자를 흘겨보았다.

“장사하면서 돈을 밑지는 건 둘째 문제고 신용을 잃는 게 가장 큰일이에요. 돈을 밑지면 다시 벌면 되지만, 신용을 잃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요.”

“아아, 알았어. 신용을 잃는 게 큰일이지. 그게 중요하고말고. 령안, 빨리 좀 봐. 어떻게 밑지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아니, 신용을 잃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장군왕 세자는 두 손을 합장하더니, 선뜻 말을 바꾸었다.

월령안은 알고 있었다. 장군왕 세자는 말로만 인정했지,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돈이 신용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아무래도 장군왕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았다. 정 안 되겠으면 믿음직한 사람을 장군왕 세자의 곁에 붙여 놓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장사는 오래갈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에 있는 계약서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보고 나서야 이 계약은 그녀가 진지해진 게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허술하다는 것을 알았다.

월령안은 장군왕 세자에게 계약서를 돌려주었다.

“됐어요. 큰일은 없을 거 같아요. 계약서에는 요구하는 이화백의 구체적인 연도 수를 적지 않았어요. 장군부에서는 십 년짜리 이화백의 단가에 따라 가격을 책정한 거예요. 계약서의 가격에 따라 장군부에 십 년짜리 이화백을 주면 돼요.”

“그럼 우린 한 푼도 못 버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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