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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10)화 (310/1,004)

310화 꼬마 아가씨?

최일은 말을 마친 뒤 동정 어린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또 육장봉도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아무런 감정의 기복도 드러내지 않고, 최일을 한 번 마주 보았을 뿐이다.

월령안은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거지?’

한참 뒤에야 월령안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남도는 지금 청주 범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는 거로 기억하는데요. 그렇죠?”

남주에 대해서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이야말로 자다가 날벼락을 맞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완벽한 예시였다.

“네.”

최일은 칭찬의 눈길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설지화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에요. 장씨 가문에서 설씨 가문을 처리하려고 한 거죠?”

월령안이 또 물었다.

최일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승상 자리 때문인가요?”

월령안은 얼굴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승상 자리 때문이에요.”

최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는 그동안 줄곧 강남을 틀어쥐고 강남의 세수를 장악하려 했지만, 지금까지 그 해법을 찾지 못하셨지요. 장 부승상은 지금 폐하께 성의를 표하려는 건가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나자, 자신이 먼저 한껏 숨을 들이쉬었다.

장 부승상은 승상 자리를 위해 처가에도 손을 쓸 수 있는, 그녀의 상상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네.”

최일의 얼굴에 웃음이 점점 더 짙어졌다.

월령안의 정치적 감각은 매우 예민했다.

그는 장소원의 일에 관해서만 몇 마디 했을 뿐이다. 그런데 월령안은 이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장 부승상의 속셈을 간파할 수 있었다. 천부적인 재능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계속하여 물었다.

“남쪽의 관료들 사이에서 큰일이 터졌나요?”

남쪽 지방에서는 세금을 내는 대상인이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료가 더 중요했다.

황제가 강남에 손을 쓰려면 상인을 다스리는 것으로는 소용이 없었다. 관료 사회를 깨끗이 정리하면 그 아래에 있는 상인들은 자연히 그 분위기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월령안은 상인으로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최일은 서둘러 대답하는 대신, 육장봉을 힐끔 바라보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

육장봉은 최일의 의도를 알아챘다. 그는 지금 자신이 남쪽에 관한 일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월령안에게 이에 대해 알려줘도 되겠는지 묻고 있었다.

육장봉은 최일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사실 그가 강남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최일이 자기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육장봉이 묵인하자, 최일도 더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설씨 가문은 소금 광산을 도적 떼에게 약탈당해, 수십만 근이나 되는 소금을 잃는 바람에 공사 기간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철광산 두 군데도 약탈당했고, 수만 근이나 되는 광석이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게다가 철광산도 완전히 파괴되어, 당장은 채굴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설씨 가문에서는 일단 소식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말에 충분한 무쇠를 바치지 못하면 설씨 가문에는 재앙이 닥칠 겁니다. 또한 강남의 관리들도 연루되어, 강남 전체에 큰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월령안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장씨 가문에서 한 일인가요?”

주나라에는 철이 모자랐다. 황제가 증거도 없는 상황에 추측만으로 월령안을 물고 늘어질 정도였다. 황제는 철광산에 관한 문제는 절대 가벼이 넘기지 않았다.

설씨 가문은 강남에서 소금 광산과 철광산을 관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일이 생겼으니 황제는 크게 노할 게 뻔했다. 동시에 이번 기회에 강남의 관료 사회를 숙청하려 들 것이다.

“모르겠네요.”

최일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강남의 관료 사회를 숙청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면, 폐하께서는 반드시 장 부승상의 공로를 인정해 줄 것입니다. 장 부승상은 이미 대신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니, 승상 자리를 제외하고 다른 건 필요가 없지요.”

강남의 혼란은 장 부승상에게는 이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최 대인은 설씨 가문을 지키고 싶은 건가요?”

강남의 이 사건에 장씨 가문이 연관 되었다는 증거가 없으리라. 월령안은 단번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누가 이익을 얻는가에 따라, 사건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강남이 혼란스러우면 모두에게 좋을 게 없습니다. 장 부승상은 강남에 판을 짜 놓았습니다. 강남에서 결과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청주 쪽, 아니면 장 부승상입니다.”

강남에서 최씨 가문의 세력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심지어 강남에서 물러나야만 할 수도 있었다.

이는 최씨 가문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최씨 가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설씨 가문을 도와야 했다.

그리고 대사족의 대변인인 장 부승상이 승상이 되는 것은 조정에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월령안은 최일의 뜻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섣불리 끼어들고 싶지 않아 완곡하게 거절했다.

“조정에서의 싸움은 제게는 너무 먼일이네요.”

“멀지 않죠. 장 부승상이 승상 자리에 오르면 장씨 가문의 세력이 한층 더 커질 겁니다. 장씨 가문은 또 청주와도 얼기설기 얽혀 있거든요. 월 낭자도 더욱 곤란해질 겁니다.”

장 부승상은 그들 공동의 적이었다.

그때, 줄곧 듣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던 육장봉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최 대인은 무쇠를 원하는 건가?”

“대장군, 지혜로우시군요.”

최일은 육장봉을 바라보며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변경의 여인들이 그 미소를 보았다면 열광했을 것이다.

하지만 육장봉은 눈길도 주지 않고 월령안만 보며 말했다.

“이 거래는 해야 하오.”

월령안은 침묵했다.

‘거절할 수 있나요?’

‘안 되오!’

육장봉은 선택지는 없으며, 반드시 승낙해야 한다고 눈빛으로 말했다.

월령안은 하는 수 없이 육장봉의 ‘권위’에 못 이겨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 거래, 하도록 하죠.”

‘육장봉이 날 잡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군.’

* * *

일 이야기가 끝나자, 육장봉과 월령안은 다루에서 더는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월령안이 작별인사를 하자 육장봉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장봉은 최일의 배웅을 사절했다. 그저 최일의 마차만 ‘징발’해서 월령안을 직접 데려다주었다.

마차에 탄 월령안은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월씨 저택에 다다르자 끝내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대장군, 왜 저더러 이 거래를 승낙하라고 하신 거예요?”

게다가 최일과는 아무 조건도 흥정하지 않고 너무나 쉽게 승낙했다. 이건 육장봉답지 않았다. 당연히 월령안다운 방식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육장봉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바람에 불안해졌다.

“당신에게 필요한 일이오. 최일도 당신이 필요할 것을 알았기에 당신을 찾은 거요.”

육장봉의 깊은 눈에는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둘의 눈이 마주친 찰나, 월령안은 깨달았다. 육장봉은 그녀에게 철광산이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그녀를 도와 숨기려 하고 있었다.

순간, 왜 이렇게 하는지 묻고 싶었다.

물음이 입가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이성이 되돌아오자, 잠자코 말을 삼켜 버렸다.

결국 그 물음은 인사 한마디로 변했을 뿐이다.

“대장군, 감사합니다.”

그 속내를 간파하더라도 대놓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

육장봉의 눈에는 알아차리기 힘든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최일도, 최씨 가문도 얕보지 마시오. 최일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소. 그리고 당신 생각만큼 선량하지만도 않은 인물이오. 이번에 최일을 도와주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거요.”

월령안이 대답했다.

“저는 그분을 결코 얕잡아본 적이 없어요. 그분의 상대가 되지 못할 줄 알고 줄곧 멀리했는걸요.”

그녀는 상대가 누구든 얕잡아본 적이 없었다. 마치 남들이 그녀를 아무리 칭찬해도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에는 총명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녀가 뭐라고 방심할 수 있겠는가.

“아주 잘하고 있소. 그대로만 하시오.”

육장봉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웃음기가 반짝였다.

그 웃음에 눈이 녹아내린 듯, 천지가 확 밝아지는 것 같았다.

월령안은 몰래 심장 부근을 더듬어 보았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이건 감정 때문이 아니야. 그냥…… 미모 때문이야!’

월령안은 시선을 떨어뜨렸다.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는 가운데 몰래 심호흡을 해서야 겨우 마음속의 설렘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다음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침내 마차가 월씨 저택 입구에 멈추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마차에서 내릴 때 한마디 했다.

“꼬마 아가씨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 큰일도 아니니까.”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내가 있으니까.’

월령안은 마차에서 내리다가 살짝 굳어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굴러떨어질 뻔했다. 다행히 반응이 빨라 제때에 마차 가장자리를 잡고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꼬마 아가씨?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호칭이야?’

고개를 돌려 보니 육장봉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는 가볍게 올라가 있었고, 눈빛에는 총애하는 감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고개를 홱 돌려 재빨리 떠나갔다.

“역시 아직 꼬마 아가씨로군.”

육장봉은 월령안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월령안은 도망치듯이 집으로 달려가서는 문안에 들어서자마자 당장 문을 닫으라고 분부했다.

지금은 육장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육장봉은……. 아니야. 내 생각이 지나친 거야. 육장봉이 어떻게 나를 좋아할 수가 있겠어?’

월령안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 * *

“장군, 폐하께서 급히 부르십니다.”

월령안이 문에 들어서자마자, 어느 구석에 숨어있었는지 모를 육일이 나타났다.

“그래. 입궁하지.”

육장봉 눈에 떠올랐던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금 부드러워졌던 얼굴 윤곽도 일순간 차갑게 변했다. 조금 전 웃음을 머금고 월령안을 보고 있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육장봉은 말로 바꿔 타는 대신, 최일의 마차를 타고 입궁했다.

황제는 난각에서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육장봉이 태연자약하게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그는 화가 나서 얼굴빛이 변했다.

“장봉아, 무슨 짓을 한 게냐? 짐이 너를 장씨 가문에 보낸 것은 장 부승상을 위로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너, 너…… 너는 무슨 짓을 했느냐? 월령안이 그렇게도 좋으냐? 짐이 너를 위해 고른 아내도 거절한 건 그렇다 치자. 짐의 명령을 무시하고 사람들 앞에서 장 부승상을 난처하게 했다지?”

“월령안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폐하께서 신을 위해 고른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본래 싸늘하던 육장봉의 얼굴은 황제의 말 때문에 한층 더 차가워졌다. 그는 온몸으로 한기를 내뿜으며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 그리고 황제가 일어나라고 말하기도 전에 고개를 들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신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습니까? 북요의 귀족과 관계를 맺은 여인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몰래 외사촌 오라버니와 사통하고 임신까지 한 여인을 맺어주려 주십니까? 아니면, 폐하께서는 신이 그렇게 정숙하지 못한 여인들을 맞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뭐, 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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