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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08)화 (308/1,004)

308화 자매간의 정

그들 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을 들볶아 자리를 바꾸게 하다니. 장 부승상은 역시 늙은 여우였다. 말 한마디로 그들 셋을 연회에 참석한 모두와 대립하게 했다.

하지만 장 부승상이 그럴 의도가 있더라도, 육장봉이 그에 따를 마음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승상, 이만 가 보겠습니다.”

최일도 일어섰다. 얼굴에는 멋쩍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들 최씨 가문은 설씨 가문과 인척 관계였다. 또, 장 부승상의 처가는 바로 설씨 가문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 최씨 가문과 장씨 가문 역시 인척 관계였다.

육장봉은 이 사실을 분명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장 부승상의 체면을 봐주지도 않으면서, 최일까지 끌어들였다.

‘이건 뭐 인척 관계도 유지하지 말라는 건가. 하지만 인제 와서는 어쩔 수 없지. 육장봉 같은 나쁜 친구를 사귄 내 잘못이군.’

“육 장군, 혹시 우리 장씨 가문의 대접이 변변치 못했나?”

장 부승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의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속이 얼마나 갑갑한지는 본인만이 알았다.

모친의 생신 잔치에 육장봉을 초대한 것은 그와 원한을 맺으려는 게 아니라, 그와 친하게 지내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뜻밖에도, 육장봉은 연회에서 일개 여자 상인을 위해 많은 사람 앞에서 그의 체면을 무시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육장봉이 이렇게 나가면 내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연회가 끝나는 순간 온 변경이 다 알게 될 것이다. 육장봉은 그와 사이가 나쁘니, 승상으로 그를 지지할 리가 없다고 말이다.

“아닙니다. 귀댁의 접대는 극진했습니다. 저는…… 매우 만족합니다.”

육장봉은 마지막 말을 특히 강조했다. 장 부승상의 굳은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저는 그 대접을 누릴 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장 부승상의 얼굴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의 말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을 더 하기도 전에 육장봉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참, 장 부승상. 저 육장봉이 비록 군에 몸담은 무식쟁이지만, 생각은 하고 삽니다. 고양이니 강아지니 하는 것을 우리 육씨 가문에 밀어 넣을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 육씨 가문에서 고물(古物)은 받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는 이유는 눈에 차지 않아서입니다. 남에게서 원인을 찾기보다, 먼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자기 모습부터 말끔하게 정리하십시오.”

육장봉은 그 말을 마치자, 몸을 돌려 떠나갔다.

장 부승상은 그 자리에 선 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장 부승상의 명령이 없으니, 장씨 가문 사람 중 누구도 육장봉을 감히 막지 못했다.

육장봉은 악의로 가득하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는 주저 없이 떠나 버렸다. 이 말이 장씨 가문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그가 이렇게 떠나 버리면 장씨 가문이 어떻게 뒷수습을 할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 육장봉은 고의로 그랬다.

일부러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을 해서 그들이 궁금해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또 장씨 가문에서는 그걸 해명할 방법이 없었다. 만약 서둘러 해명하면, 오히려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었다.

장 부승상은 육장봉의 음흉한 속셈을 알아차렸다. 뒷짐을 진 손이 가늘게 떨렸다.

‘육장봉이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거야. 폐하께서도 이 사실을 아실까?’

육장봉은 월령안의 일을 빌미로, 그들 가문의 연회에서 망신을 주었다.

‘이건 육장봉 본인의 뜻인가, 아니면 폐하의 뜻인가?’

자신은 강남(江南)이라는 팔을 자르고서라도 황제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고자 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나를 경계하는 건가?’

“아버지…….”

뒤에 서 있던 아들 셋은 장 부승상의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당황하며 불렀다.

장 부승상은 뒷짐을 졌던 손을 옷소매에 감추었다. 몸을 돌리고, 평소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이 아비는 괜찮다. 너희는 손님들을 접대하거라. 귀빈들을 소홀히 대접해서는 안 된다.”

일이 이 지경이 된 이상, 더 생각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예, 아버지.”

장 부승상의 세 아들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들은 장 부승상을 공손히 배웅하고, 남자 손님들의 연회청에 가서 손님 접대를 했다.

장씨 가문 사람들은 손님들에게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았다. 그저 육장봉과 최일이 일이 있어 먼저 떠났다고만 말했다.

여인들의 연회청에서 벌어진 소동은 옆에 있던 남자 손님들에게도 다 들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이는 모두 닳고 닳은 사람들이었다. 무슨 기척을 들었다 하더라도, 입을 열지 않고 모르는 척했다.

잠시 후, 장씨 가문 연회는 조금 전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회복했다. 육장봉과 최일이 나간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모두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사정이 달라졌음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돌아가고 싶지만, 장씨 가문의 체면 때문에 감히 자리를 뜨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육장봉, 최일과 월령안 세 사람이 훌쩍 떠나갈 때, 장 부승상은 말리지 않았다. 그 뒤에 장씨 가문 사람들도 역시 만류하지 않았다. 장씨 가문도 체면이 있으니 육장봉 등 세 사람이 떠나게 놔둘 수밖에 없었다.

* * *

장씨 가문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을 받으며 세 사람은 마차를 세워 놓은 바깥 뜰로 갔다.

월령안의 마차는 육장봉, 최일의 마차와 다른 곳에 세워져 있었다.

세 사람이 갈림길에 이르자 월령안은 따로 갈 거라고 말하려 했다. 이때 최일이 말했다.

“월 낭자, 제 마차를 타고 갑시다. 할 말이 좀 있어서……. 우리 셋이 어디 가서 좀 앉았다 가는 게 어떻습니까?”

최일은 그렇게 말하면서 월령안에게 눈을 깜빡여 보였다. 다른 뜻이 있는 게 분명했다.

월령안은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선뜻 승낙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육장봉도 대뜸 대답했다.

“가지.”

최일은 웃으며 두 사람을 마차로 불렀다.

최일은 앞에서 걷고, 육장봉과 월령안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마차에 오르기 전, 육장봉은 일부러 옆으로 한 걸음 비켜 힐끗 뒤를 돌아다보았다.

모퉁이에서 빨간 옷자락이 얼핏 나부끼는 게 보였다.

육장봉은 냉소를 지으며 월령안을 따라 마차에 올랐다.

최일도 마찬가지로 무엇인가 느끼고, 마차에 오르기 전에 뒤를 돌아보고 웃었다.

마차는 곧 장씨 가문 저택을 벗어났다.

마차 안에서 최일은 준비해 두었던 찻물로 두 사람을 대접했다.

“죄송합니다. 마차 안에 찻물밖에 없습니다. 낭자들이 좋아하는 간식은 없네요.”

“저는 마차 안에서 간식을 먹는 버릇은 없어요.”

월령안은 최일이 건네주는 차를 받아 들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잘됐군요. 그러면 제가 접대를 소홀히 한 게 아니죠.”

최일은 환하게 웃으며 육장봉에게도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

“방금 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지요?”

월령안은 어리둥절했다.

“누가 우리를 지켜봤다고요?”

‘왜 난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지?’

“여자인데 재주가 좀 있는 듯하더군.”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생각이 난 듯 한마디 덧붙였다.

“왼쪽 눈가에 눈물점이 있었소.”

찻잔을 든 월령안의 손이 잠깐 굳었다.

“어떻게 생겼나요?”

육장봉은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얼굴 하나에 눈 두 개, 코 하나.”

최일을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그게 무슨 묘사입니까? 누구는 얼굴 하나에 눈 둘, 코 하나가 아닌가요? 월 낭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보았잖습니까.”

육장봉은 최일에게 차가운 눈길을 보냈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평범했네.”

‘월령안과 얘기하는데, 최일은 왜 끼어드는 건가?’

월령안은 육장봉을 뚫어지게 바라본 뒤, 묵묵히 눈길을 거두었다.

“만약 여자고 눈가에 눈물점이 있으면 제 셋째 언니일 가능성이 커요. 바로 장씨 가문의 그 외사촌 아가씨예요."

“장씨 가문의 외사촌 아가씨가 낭자의 언니라고요? 친언니인가요?”

최일은 놀란 눈길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이복언니니까요. 친언니인 셈이네요.”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셋째 언니는 아주 예쁘고 눈가에 눈물점이 있어요. 장 노부인의 처소에서 만났어요. 예상대로라면 아마 제 언니일 거예요.”

최일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그 외사촌 아가씨가 열몇 살 정도라고 들었습니다만?”

월령안이 벌써 열여덟 살이었다. 그녀의 언니가 어떻게 더 어릴 수가 있겠는가.

“언니의 외모는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어요.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심지어 분위기는 더욱 물이 올랐고요.”

월령안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혹시 가짜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최일이 물었다.

월령안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예요. 제가 받은 느낌은 셋째 언니와 똑같았어요. 제가 그때 어린 나이였지만, 셋째 언니는 기억하고 있어요…….”

월령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생각해 보았다. 생각할수록 확신이 생겼다.

“제 셋째 언니는……. 글쎄, 뭐랄까요. 언니에게는 좀 상반되는 분위기가 있어요. 대사족이 정성껏 키운 귀족 여인보다 고결했고 기품이 훨씬 뛰어났어요. 하지만 또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 교태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 상반된 분위기는 느낌 같은 거예요.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이라도 그 느낌까지는 모방해 낼 수가 없거든요. 게다가 집사는 먼발치에서 보자마자 바로 제 셋째 언니라고 확신했어요.”

월 삼낭자의 분위기는 월령안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장씨 가문의 외사촌 아가씨 ‘영수’가 바로 그녀의 언니, 월 삼낭인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월 삼낭의 성격은 어떠한가요?”

최일이 또 물었다.

“총명하고 야심도 있었죠. 또 자기 장점을 잘 살려요. 어렸을 때 한동안 셋째 언니를 무척 따랐거든요. 하지만 나중에는 어머니가 찾아가지 못하게 했어요. 셋째 언니가 나쁜 물을 들일 거라고 한 게 기억나요.”

그때의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나쁜 물을 들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언니는 월 낭자에게 아무 정도 없겠군요? 심지어 악의를 품고 있는 건 아닙니까?”

최일이 또 말했다.

“정이라고요?”

월령안은 자조적으로 말했다.

“상인은 이익을 중시하고 정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말 못 들어 보셨어요? 그중에서도 월씨 가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갔어요. 월씨 가문의 모든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형제자매와 다투어야 해요. 남매의 정이란 월씨 가문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저와 셋째 언니는 비록 아버지가 같지만, 이복이다 보니 그리 친하지 않았어요. 동복은 가깝고, 이복은 다툰다고 하잖아요. 어렸을 때는 그래도 셋째 언니가 제게는 친절한 편이었어요. 아마 제가 태어났을 때 다른 형제자매는 모두 성년이 되어서 그랬을 거예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가주가 되지 못할 운명이니까, 언니도 저를 안중에 두지 않았겠죠. 그래서 저를 웃는 낯으로 대했을 거예요. 자매의 정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은 더욱 없죠.”

월씨 가문에서는 자식을 늑대처럼 키웠다. 세상 사람들은 월씨 가문이 이익을 중시하고 정을 가볍게 여긴다며, 그들이 천성이 냉담하다고 여기고 멸시했다.

하지만 그들은 월씨 가문의 아이들에게 선택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녀가 팔 년 동안이나 아무 걱정 없이 여느 아이들과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형제자매들과 암투를 벌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사랑 때문이었다.

월령안은 세상을 뜬 아버지와 오라버니, 그리고 장씨 가문에서 만났던 월 삼낭을 떠올렸다. 마음속이 복잡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목숨을 바쳐 지켜 주지 않았다면, 월 삼낭의 오늘 같은 모습이 바로 월령안의 삶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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