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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06)화 (306/1,004)

306화 내 체면을 세워 주려고 왔구나

연회청 안의 부인들은 깜짝 놀라 너도나도 문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웬일이지?”

“누가 감히 장씨 가문 연회에서 소란을 피울까?”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독상을 차지하고 앉은 월령안도 평범한 사람인지라, 자연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육장봉과 최일 두 사람이 눈이 부신 빛을 뿜어내면서 우아하고 여유롭게 연회청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의 위풍당당한 풍채와 뛰어난 기질은 각자 개성이 뚜렷했다.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은 서로를 돋보이게 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방 안의 빛을 모두 독차지한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빛을 잃었다.

순간, 연회청이 조용해졌다. 모든 이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로 옮겨 갔지만, 누구도 불만스러워하지 않았다.

젊은 낭자든, 나이 든 부인이든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에 불을 켰다.

월령안 역시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육장봉이든, 최일이든 모두 용모가 준수하고 기품이 있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 중 한 명씩만 나타나더라도 다들 앞다투어 구경할 정도였다. 그런 둘이 지금 함께 나타나니, 그 효과가 곱절이 되었다.

월령안은 두 사람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속의 울적함도 꽤 옅어졌다.

아름다운 사물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특히 미남은 눈과 마음을 모두 즐겁게 하며, 기분도 좋아지게 한다.

월령안은 육장봉과 최일을 보았다. 두 사람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보았다.

다른 게 아니라, 온 연회청에서 문가에, 게다가 홀로 탁자에 앉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게 월령안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육장봉의 분노가 불타올랐다.

그가 손바닥에 올려놓고 아껴 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여인을 장씨 가문에서 이렇게 대접하다니.

육장봉뿐만 아니라 최일 또한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원래 장씨 가문의 행태를 알고 있었기에 월령안이 억울함을 당할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상상은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한 법이다.

월령안이 고립되어 주변에서 손가락질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자, 최일도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장씨 가문은 월령안은 남들과 함께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 바람에 모욕당하고, 경고를 받고, 따돌림을 당해야 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월령안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장씨 가문에 빌붙는 줄로 알 것이다.

최일은 장씨 가문의 연회가 끝나면, 변경의 지체 높은 부인이나 낭자들이 월령안을 어떻게 비웃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월령안은 변경의 상류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모든 사람이 그녀를 거리낌 없이 비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 평범한 여인들은 물론, 최일 자신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사람을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않는 법인데, 장씨 가문에서는 정말로 사람의 체면을 뭉개는 재간이 있군.’

최일이 잠깐 정신을 판 사이, 육장봉은 이미 성큼성큼 월령안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월령안은 고개를 들어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이 걸어 들어오는 순간, 이들이 자신 때문에 왔음을 알았다. 다만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인제 보니 내 체면을 세워 주려고 왔구나.’

“나는 오늘…… 목숨을 걸고 함께하는 수밖에 없겠군.”

최일은 별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여인들의 가늠하는 눈빛을 한껏 받으며, 월령안의 다른 한쪽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두 분, 이럴 필요 있나요?”

월령안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사실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다. 어차피 지루한 연회라 그냥 참고 견디면 되었다. 이 연회가 끝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녀를 짓밟을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윗사람을 추어올리고 아랫사람을 짓밟으려 한다. 나중에 그녀가 장씨 가문을 한 번 손봐 주면, 그때는 감히 그녀를 웃음거리로 여기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장씨 가문을 어떻게 혼내 줄지도 다 생각해 놓았다. 장씨 가문의 뿌리는 강남에 있었다. 청주로 가기 전, 먼저 강남에 가서 시험 삼아 손을 써 볼 수도 있었다. 장씨 가문의 기반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성을 갈리라.

“월 낭자, 꼭 필요한 일입니다.”

어차피 저지른 일이었다. 최일도 남을 신경 쓰는 대신 듣기 좋은 말을 했다.

“사람에게 명성이란 나무의 그림자처럼 떼어낼 수 없죠. 대장군 부인은 아무나 괴롭힐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최일은 그 말을 하면서 육장봉에게 시선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육장봉이 추밀원의 사람을 빌려주기로 했으니,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그 보답을 해야 했다.

역시, 육장봉의 표정이 조금 좋아졌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소. 나도 장씨 가문의 손님 접대 예절을 보고 싶던 참이었으니까.”

세 사람이 말하는 동안, 장씨 가문의 여집사가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왔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장군, 이곳은 여인들의 연회청입니다. 장군께서 계실 만한 곳이 아닙니다. 장군의 자리는 옆 방에 있습니다. 소인이 모셔다드리지요.”

하지만 육장봉은 그녀에게 눈길을 주기는커녕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장군…….”

여집사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망설임 없이 찻주전자를 들어 월령안에게 찻물을 따라 주었다.

월령안은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육장봉이 웬일이지? 일거수일투족이 나를 보호하려고 이러는 거 같은데? 하지만 그게 말이 되나?’

육장봉은 찻물을 다 따르고 다시 직접 찻잔을 들었다. 그는 월령안에게 차를 건네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손을 들더니 손에 든 찻잔과 찻물을 함께 여집사에게 냅다 던졌다.

“하룻밤 지난 차로 손님을 대접하는 법도는 언제부터 생겼느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찻잔이 여집사의 이마에 적중했다. 집사 낭자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피가 순식간에 솟구쳤다.

“어, 어머……. 피가 나. 피가 나잖아!”

“큰일 났군. 피가 나네.”

한쪽에 앉아서 목을 빼고 구경하던 여인들은 피를 보자 하나같이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옆방까지 전해졌다.

오히려 당사자인 세 사람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매우 담담했다.

월령안은 그래도 호의로 일깨워 주었다.

“대장군, 지금은 장씨 가문 생신 잔치입니다.”

“음.”

육장봉은 단답으로 대답했다. 다시 손을 들더니 찻주전자를 던져 버렸다.

“그럼 피를 보지는 말아야겠군.”

쨍그랑!

날아간 찻주전자는 문가에 떨어졌다.

때마침 장씨 가문의 대공자인 장소산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참이었다. 공교롭게도 찻주전자가 바로 그의 앞에 떨어졌다. 찻물과 파편이 그의 온몸에 튀었다.

장소산은 얼굴의 미소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육장봉, 너무 방자한 게 아닌가!’

그는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

감히 이렇게 장씨 가문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장씨 가문 연회에서 난동을 피우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았다.

육장봉은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그래도 조부의 분부를 떠올리고, 억지로 참았다.

조부는 지금 승상이 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들은 육장봉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했다. 그의 도움을 바라서가 아니라, 그가 다른 일을 만들지 않도록 말이다.

그들 가문은 지금 육장봉에게 밉보여서는 안 되었다.

장소산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속의 분노를 억지로 억누르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몰래 심호흡하고서야 냉정해질 수 있었다.

그는 평정심을 회복하자,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문안으로 점잖게 들어섰다.

하지만 들어서자마자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 땅바닥에 누워 울부짖는 나이 든 시녀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장소산의 표정이 하마터면 무너질 뻔했지만, 냉담한 얼굴을 유지하며 명령을 내렸다.

“사람을 부축해 내보내라.”

하인이 다친 여집사를 데리고 가고, 바닥의 피도 모두 깨끗하게 닦아냈다. 그다음에야 장소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육장봉에게 읍을 했다.

“대장군, 최 대인. 저희 장씨 가문에서 대접이 소홀했습니다. 두 분께서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흥!”

육장봉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그는 장소산을 보지도 않았다.

장소산은 심호흡하고서 계속 웃으며 말했다.

“대장군, 최 대인. 연회가 곧 시작됩니다. 두 분께서는 저와 함께 자리로 가시지요. 아가씨와 부인들을 놀라게 하지 마시고요.”

장소산은 일부러 ‘아가씨와 부인’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육장봉에게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은근히 일깨우는 뜻이었다.

육장봉과 최일이 예절을 지키지 않고 여인 쪽 자리에 왔다. 일이 커졌다가는 망신을 당하는 쪽도 두 사람이란 뜻이었다. 그들 장씨 가문에서는 꼬투리 잡힐 게 하나도 없었다.

육장봉은 이번에는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는 여기가 마음에 드네.”

그 시선에는 아무 감정도, 분노도 없었다. 그러나 장소산은 깜짝 놀라 온몸을 흠칫했다. 그는 마음속의 당황함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말했다.

“장군, 이곳은 여인들의 자리입니다. 장군이 이 자리에 있으면 예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예의에 어긋난다?”

육장봉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내가 누군지는 아느냐?”

장소산은 자신이 육장봉의 눈빛에 놀랐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화가 치밀었다. 그의 목소리에도 매몰참이 실려 있었다.

“장군께서는 당연히…….”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육장봉이 그의 말을 끊었다.

“나는 추밀사이자 초품(超品 – 정1품 위의 품급, 황제 다음가는 품급) 대장군이다. 장씨 가문에서 나와 평등하게 대화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오직 네 조부뿐이다. 장씨 가문은 늘 예의를 중시해 오지 않았느냐? 언제부터 보잘것없는 사품(四品) 말단 관리가 감히 나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었느냐?”

탕!

육장봉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탁자를 세차게 내리쳤다. 탁자 위의 그릇과 젓가락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바람에 지켜보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특히 육장봉의 분노를 정면으로 마주한 장소산은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육장봉이 내리친 큰 탁자는 홍목으로 만들어 무려 수백 근은 족히 나갔다. 그런데 그는 손으로 한 번 내리쳤을 뿐인데도 그릇과 젓가락이 들썩이게 했다.

‘대체 힘이 얼마나 센 거야? 저 손으로 나를 때렸다가는 죽지는 않더라도 불구가 되겠구나!’

순간 장소산은 얼굴빛이 새하얗게 질리고 온몸에 식은땀이 쫙 흘렀다.

그리고 육장봉이 손을 거두어들이자, 홍목 탁자 위에 생긴 깊은 손자국이 보였다. 장소산은 그를 보고 더욱 놀라 이를 덜덜 떨면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현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는 육장봉과 나이가 엇비슷하지만, 육장봉은 이미 조부와 같은 등급의 큰 인물이었다. 그가 얕잡아볼 수 있는 인물도, 동년배라며 사귈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들 가문에서는 원아를 육장봉에게 소개하면서 그를 장소산과 동년배로 취급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 지금까지 육장봉은 이를 승낙한 적이 없었다.

육장봉은 그들 장씨 가문에 숙이고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장소산은 물론이고, 최일과 월령안도 깜짝 놀랐다.

최일은 중간에서 상황을 수습하려던 참이었다. 원래는 육장봉에게 사품 관리도 상당하다고 말해 주려 했었다. 자신도 사품 관리이니 말이다.

하지만 홍목 탁자에 찍힌 손바닥 자국을 보고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렇게 툭하면 손이 먼저 나가는 군대의 무뢰한은 건드릴 수가 없지. 가만히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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