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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05)화 (305/1,004)

305화 월령안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최일은 안방의 자질구레한 일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별일 아니었어요. 장씨 가문 여인들이 지루했는지, 월 낭자의 언니라는 사람을 개나 고양이 취급하면서 놀리더라고요. 월 낭자에게 엄포를 놓으면서 경고를 한 셈이죠.”

그가 볼 때는 안방 여인들의 다툼은 모두 하찮았다. 아무리 소란을 피워 봤자, 고작 그 정도 수준이었다.

월령안의 안목과 대범함은 안방 여인들의 수준을 진작 넘어섰다. 그러니 그런 수단으로는 월령안에게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장씨 가문 여인들은 월령안에게 말로만 조금 수모를 주었을 뿐이었다. 물론, 월령안이 억울할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최일이 아는 월령안은 강심장의 소유자였다. 그러한 자잘한 수단으로는 별로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정작 육장봉은 순식간에 얼굴빛을 흐렸다. 최일의 얼버무리는 식의 대답에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었다.

육장봉은 ‘권력 남용’ 끝에, 최일에게서 더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최일은 하는 수 없이 안방의 수다쟁이 아낙네 노릇을 해야 했다. 월령안이 복수원에서 당했던 일을 사소한 부분까지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육장봉에게 들려주었다.

말을 마친 최일은 거의 절망에 빠지다시피 했다.

“바로 이런 일이었다고요. 장씨 가문 인간들은 원래 사람 속을 잘 뒤집어 놓거든요. 장군께서도 장씨 가문의 행태는 알고 계시겠지요. 항상 높은 자리에서 아부하는 말만 듣다 보니, 정상적인 사람을 만나면 받아들이기 힘든 거죠. 그래서 기회가 생기자 자기네의 존재감과 우월감을 보였던 겁니다.”

최일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언제 이런 쓸데없는 말까지 하는 사람이 됐지? 내가 이렇게까지 수다스러워지는 날이 오다니.’

그러나 그는 하필 육장봉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최일의 말을 모두 듣고 난 후에도, 육장봉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주의 깊게 최일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걸 아는 건가? 장씨 가문 안방의 일까지 왜 그렇게 잘 알고 있지?”

그는 최일이 안방의 아낙네들보다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줄은 미처 몰랐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입니다만?”

최일은 육장봉의 눈길에 괜히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도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다.

“다 명문가 대사족 출신인데, 서로 친척이 없겠습니까?”

“설씨 가문?”

육장봉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희 가문과 설씨 가문이 인척 관계이긴 합니다. 하지만 설씨 가문 일이라도, 저는 원칙적으로 처리할 겁니다.”

최일은 남에게 약점을 잡히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여유롭고 담담하게 말했다.

“설씨 가문에서 상주문을 올렸습니다. 소금 광산이 털리는 바람에 수십만 근의 소금을 손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해 호부의 수입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는데, 호부시랑으로서 제가 좀 관심을 가지는 게 정상적인 일 아닙니까?”

“음.”

육장봉은 외마디로 대답했을 뿐, 최일의 말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설씨 가문의 일은 단순하지 않을 게 뻔했다. 적어도 최일이 말한 것처럼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 더 관심을 보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최일은 화가 나서 말했다.

‘이분도 참, 추밀사가 되었는데도 조정의 일에는 끼어들지 않으려 하는군. 이러니까 각 부서의 거물들도 육장봉이 추밀원을 접수한 데 불만이 하나도 없지.’

물론, 그들이 불만이 있더라도 감히 말하지 못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육장봉과 대적하여 지금까지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으니까.

“폐하께 큰일은 아니라고 아뢰지 않았던가?”

육장봉이 조롱하듯 말했다.

“맞아요. 큰일이 아니니까요.”

최일은 이를 갈았다. 얼굴의 미소도 약간 굳어졌다.

별일이 아니라는 말은 그저 황제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육장봉이 이를 모를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소금 광산이 강탈당하고, 광산의 사상자가 수백 명이나 나왔다. 손실이 적지 않지만, 한 나라로 놓고 보자면 확실히 큰일은 아니었다. 각 부서의 거물들이 힘을 조금만 써 주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부분일 뿐, 진짜 큰일은 소금 광산과 함께 빼앗긴 철광산이었다.

그러나 철광산을 빼았겼다는 사실은 누구도 감히 보고하지 못했다. 강남 쪽의 사람들이 이를 단단히 숨기고 소식이 새어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변경에서는 장 부승상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최일이 알게 된 건 설씨 가문에서 이 소식을 누설했기 때문이었다. 설씨 가문에서는 소금 광산과 철광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소금이 부족한 건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철은 돈으로도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연말 세금을 거둘 때 철을 충분히 내놓지 못하면, 설씨 가문은 망할 것이다.

설씨 가문은 희생양이 되기 싫어 최씨 가문에 구원을 요청했다. 최일은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만큼은 관여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다.

강남은 부유한 지방이다 보니, 세력가 중에는 강남을 노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최씨 가문도 강남에서 사업을 경영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자연히 강남의 대호족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강남이 혼란에 빠지고, 설씨 가문이 무너지면 최씨 가문도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러니 강남에 혼란이 생기면 곤란했다.

“큰일이 아니고, 큰 영향이 없으면, 좋은 일 아닌가?”

육장봉은 눈 속에 떠오른 깊은 생각을 시선을 내려 감추었다.

최일의 말을 들어 보면, 설씨 가문이 소금 광산을 빼앗긴 사건은 보통 사건이 아닐 것이다.

그는 얼마 전, 강남에 사람을 보내 술을 가져오게 한 일을 떠올렸다. 보아하니 그들을 통해 설씨 가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듯싶었다.

‘무슨 일이기에 최일 이 여우 같은 자식이 이렇게까지 도와 달라고 억지를 쓰지? 내가 조금 전에 너무 흔쾌히 대답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 이 여우 같은 자식이 무언가를 알아낸 건가?’

“장군 말씀이 다 맞습니다.”

최일은 더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육장봉도 정말 어지간히 뻔뻔한 게 아니로군.’

남들은 설씨 가문의 일을 모른다지만, 육장봉은 모를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사람을 강남에 보내지 않았던가. 강남의 일이라면, 남들에게면 몰라도 육장봉에게는 숨길 수 없었다.

“월령안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육장봉은 정확한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최일과 계속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최일은 여우같이 영리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그가 강남의 일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걸 안다면, 그가 돈도 쓰고 힘도 쓰게 할지도 몰랐다.

“여인들 쪽에 있겠죠. 오늘 장씨 가문에서 초청한 유일한 상인일 겁니다. 장씨 가문의 행태로 봐서는 아마 단독으로 한 상 내주지 않았을까요. 말로는 서로 존중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상 난처하게 할 셈이겠죠.”

장씨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평소 원만한 성격인 최일도 보기 드물게 조소를 띄웠다.

최일은 장 오공자의 말을 떠올리고는, 모처럼 호의로 한마디 물었다.

“장씨 가문의 그 낭자는 본 적이 있나요?”

육장봉은 최일을 상대하지 않고 일어섰다.

“갈 건가, 말 건가?”

“어디 말입니까?”

최일이 일어서며 물었다.

“월령안을 찾으러.”

육장봉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거긴 여인들의 자리라고요. 장군께서 가시면…… 그게 무슨 체통 없는 짓입니까?”

최일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따라나섰다.

“육 장군, 어쨌든 좀 주의를 하시죠. 당신이 혼사를 거절하는 바람에 장씨 가문에서 월 낭자에게 화풀이하잖아요. 월 낭자가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게는 해 줘야 할 거 아닙니까.”

“내가 왜 주의해야 하지?”

육장봉은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최일을 바라보았다.

“장군 부인의 자리는 원래 월령안이 스스로 쟁취한 거다. 이건 사실이야. 남 보기 부끄러울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최일은 육장봉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더니, 저도 모르게 웃었다.

“좋아요. 장군 말이 다 맞지요.”

육장봉은 변경에 돌아오자마자 아내를 내쳤다. 그의 이 행동은 확실히 옳지 못했다.

그래도 책임감은 있었는지, 자신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게 월령안의 덕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주나라 군의 승리로 보답했으니, 월령안이 삼 년 동안의 헌신을 아주 헛되이 만들지는 않은 셈이었다.

다만, 육장봉이 자신의 부인 자리를 월령안을 위해 남겨 둔다고 해서, 그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최일이 보기에, 월 낭자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갈 사람이 아니었다.

“장군께서 장씨 가문을 거절한 건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폐하의 안목도 참 별로예요. 소씨 가문이고 장씨 가문이고 두 가문 다 정말이지…… 어쩌자고 모두 장군에게 떨어졌을까요.”

소함연은 자신의 과거를 잘 숨기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변경에 돌아오기만 하면, 예전과 다름없을 거로 생각했다.

사실 그녀와 북요 귀족 사이에 있었던 그 추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설령 이 사실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애초에 혼사를 거부하고 도망쳐 육씨 가문에게 망신을 준 사건이 있었다. 이것만 가지고도, 조금이라도 변변한 가문의 소년들은 그녀를 신붓감 후보 명단에서 지워 버렸다.

장 낭자의 일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세간에 둘 이상이 아는 일은, 더는 비밀이 아니다.

장씨 가문에서는 육씨 가문에 가주 부인도 없고, 일을 주관할 여인도 없는 점을 노렸다. 여인들끼리의 미묘한 기류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장 낭자의 이상한 점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로 여겼다.

그리고 육장봉을 병사나 거느리고 다니는 무식쟁이로 보고, 다루기 쉽다고 생각했다. 후처로 장씨 가문의 귀족 여인을 맞이하면, 감지덕지할 거로 여겼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육장봉이 밑바닥에서 기어오른 가난한 병사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육장봉 역시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런데 장씨 가문에서는 육장봉에게 그런 딸을 짝지어 주려고 하다니. 최일이 보기에는 장씨 가문에서 육장봉과 친분을 쌓으려는 것인지, 원한을 맺으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 * *

육장봉과 최일은 모두 키가 크고 다리가 길었다. 몇 마디 대화하는 사이에 회랑을 지나, 옆에 있는 여인들의 연회청에 이르렀다.

여인들의 연회석 배치는 남자 손님 쪽과 거의 비슷했다. 다만 색상이 좀 더 화려하고, 과일과 생화가 좀 더 많이 놓였을 뿐이다.

물론 내부는 더욱 떠들썩했다. 백여 명에 달하는 여인들이 한데 모여 너 한마디 나 한마디 하다 보니 조용할 수가 없었다.

육장봉과 최일이 가까이 다가가자, 방 안에 있는 부인들이 있는 말, 없는 말을 늘어놓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독상을 차지하고 있는 월령안을 알게 모르게 비웃고 있었다.

육장봉의 냉담한 얼굴에는 아무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최일은 하는 수 없이 쫓아갔다.

연회청 입구에 도착하자 나이 든 시녀가 앞으로 다가와 두 사람을 막았다.

“공자, 여긴 여자 손님들의 연회청입니다. 두 분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비켜라.”

육장봉이 손을 들자, 나이 든 시녀는 그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나가떨어졌다. 그녀는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콰당, 하고 커다란 소리를 냈다.

최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슬그머니 옆으로 한 걸음 비켜 묵묵히 육장봉과 거리를 두었다.

‘오늘부터는 이 최 공자의 체면도 예전 같지 않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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