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역시 흥미진진하군
장씨 가문의 나이가 비슷한 도련님 몇은 어른들의 명령을 받고, 정원 한구석에서 육장봉을 몰래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육장봉과 친분을 쌓으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육장봉의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모습을 보자, 나이 어린 몇은 일제히 가운데에 있는 큰형을 바라보았다.
“큰형님, 우리가 이제 가 봐야 할까요?”
“조급해하지 마라. 좀 더 지켜보자. 우리 큰 누이동생을 맞아들이려면 어지간히 재주는 있어야지.”
우두머리 격인 남색 옷차림의 도련님은 장씨 가문 대공자인 장소산(張韶山)이었다.
그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이미 병부시랑(兵部侍郞)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도 능력이 있어, 전도가 유망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최일이라는 떠오르는 정치계의 샛별이 없었다면, 장소산은 젊은 세대의 선두 주자이자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최일이라는 더 빛나는 존재가 있다 보니, 장소산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였다.
“큰형님, 상대는 큰 누이동생을 맞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요. 괜한 욕심 부리지 마세요.”
장소산의 뒤편에 서 있던 보라색 옷을 입은 젊은 공자가 입을 열었다. 그 말투는 경박하면서도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건들거리는 태도로 똑바로 서 있지조차 않았다. 눈빛은 오만했다. 아름다운 눈으로 사람을 바라볼 때면, 비웃음까지 띠고 내려다보는 듯했다.
장소산은 고개를 돌려 소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소년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오만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다들 너무 뻔뻔한 거 아녜요? 그러고도 선비랍시고 잘난 체는.”
“다섯째, 입 다물어라.”
장소산이 차갑게 호통쳤다.
옆에 있던 장씨 가문 다른 공자들도 너도나도 앞으로 다가와 말렸다.
“다섯째, 그만해라. 오늘은 증조모님의 생신 잔치다. 적당히 해.”
“내가 왜 적당히 해야 하나요?”
소년은 그들의 조금도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 그들을 피하며 조롱하듯 말했다.
“왜요? 다들 뻔뻔하게 굴면서 나는 왜 말도 못 하게 해요? 월씨 가문 가주는 많은 심혈을 기울여서 겨우 대장군 하나를 만들어 냈잖아요. 그런데 당신들은요? 가문을 등에 업고 손만 내밀어 남이 피땀 흘려 가꾼 열매를 따 가려고 하잖아요. 자기는 뻔뻔하게 굴면서, 남한테는 자기 체면을 봐 달라고 해요?”
“여봐라…….”
장소산은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년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왜 화를 내요? 제 말이 사실 아니에요? 예전에는 누구도 육장봉을 중시하지 않았고, 군량과 급료까지 전부 삭감했잖아요. 월씨 가문의 그분은 담력과 식견도 있었고, 일을 추진할 박력도 있었죠. 그래서 거금을 들여 대승을 거두게 하고, 지금의 대장군을 만들어 낸 거라고요.
그런데 육장봉이 공을 세우고 돌아오니, 다들 월 낭자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미워했잖아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밀어내고 좋은 사윗감을 뺏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생각은 해 봤어요? 월씨 가문의 그분이 없었다면 오늘의 육장봉이 있을 수 있었을지?”
“다섯째 도련님을 데려가거라.”
장소산은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필요 없어요. 내 발로 갈 거니까. 정말 역겨워……. 여긴 남자고 여자고 전부 파렴치한 것들뿐이야.”
장 오공자는 오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눈에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장소산을 비롯한 사람들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먹으로 점을 찍은 듯한 음침한 눈망울에는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철썩!
장씨 가문 대공자 장소산은 장 오공자의 눈에 어린 증오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순간 손을 번쩍 들어서 따귀를 후려갈기며 호통쳤다.
“후레자식!”
장소산은 장 오공자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갈 정도로 힘껏 쳤다. 장 오공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허!”
장 오공자는 얼굴을 감싸 쥐고 장소산에게로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눈은 포악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후레자식이라고? 내가 후레자식이라고 해도 그나마 사람이거든. 그런데 네놈들은 사람도 아니야. 무슨 낯짝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데?”
장 오공자는 그 말을 마치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비웃듯이 말했다.
“장소산 너도 사람이 아니지만, 장소원(張韶元)은 더더욱 사람이 아니지. 외사촌 형네 집안에서 왜 일이 생겼겠어? 모두 장소원의 허영심 때문이 아닌가? 외사촌 형의 시체가 채 식기도 전에, 독하게도 외사촌 형의 유일한 혈육까지 낙태하고, 바로 뒤돌아서서 시집가려고 하잖아. 정말 낯짝이 두꺼워도 정도가 있지!”
“너…… 입 닥쳐!”
장소산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 손을 들어 다시 한번 장 오공자를 때리려 했다.
장 오공자는 도망가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되려 얼굴을 들이밀었다.
“때려 봐! 그럴 능력이 있으면 그냥 때려죽여! 그럼 입을 다물 테니까.”
장씨 가문의 다른 공자 몇 명이 안색이 크게 변해 앞으로 다가가서 말렸다.
“큰형님, 큰형님……. 화내지 마세요. 다섯째가 지금 흥분해서 그래요.”
“네, 네, 큰형님. 다섯째한테 화내지 마세요. 아직 어린애라서 철이 없어요.”
남은 몇이 장 오공자를 끌고 갔다.
“다섯째, 그만해. 어서 빨리 가…….”
“다섯째, 무슨 바보 같은 짓이냐. 여기가 어떤 자리인데 감히 그런 허튼소리를 해. 어서 빨리 큰형님께 사과하지 못해?”
“됐어, 됐어. 일단 가자. 증조모님의 생신 잔치를 망칠 수는 없잖아.”
“흥.”
장 오공자는 더는 반항하지 않았다. 옆의 형제들이 끌고 가는 대로 끌려갔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떠나기 직전까지 장소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새빨간 두 눈에는 마치 붉은 피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장소산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지만, 결국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친아우이며 막내아우였다. 가족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는 아우라서, 그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장소산은 몇 번이나 심호흡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마음속의 분노를 참을 수 있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미소를 머금고 육장봉에게로 걸어갔다.
장소산은 몰랐지만, 그들이 다 흩어지고도 그 자리에는 한 명이 남아 있었다.
한쪽에 있는 석가산 뒤편에서, 검은 옷을 입은 최일이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걸어 나왔다.
“대사족이라 그런가, 역시 흥미진진하군.”
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면서 장소산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육 대장군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장 낭자는 육 대장군과 참 잘 어울리는군. 황제께서 이 혼사를 아주 잘 점지하셨어.”
최일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육장봉에게로 다가가 그를 곤경에서 빼내 주었다.
“대장군, 장 대인.”
“최 대인.”
장소산은 한창 말을 이어 가지 못해 고민 중이던 터였다. 마침 최일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지금처럼 최일이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원래 장소산은 자기 입심이 좋으니, 두 사람만 있더라도 그다지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을 거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무뚝뚝하고 겉치레마저 하지 않는 육장봉 앞에서는, 아무리 말솜씨가 뛰어나도 소용이 없었다.
“장 대인, 방금 댁의 집사가 찾는 걸 봤습니다.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최일은 부드럽고 예의가 있었다. 언행에서는 명문가 자제다운 고귀하고 우아한 기품이 드러났다. 그가 일부러 따돌리는 것을 알면서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이 자리에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장소산은 최일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는 시샘의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차올랐다. 최일의 빼어남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만약 원아가 그런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그들 가문에서 눈여겨봤을 상대는 분명 최일이었다.
장소산은 마음의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고, 웃으면서 말했다.
“대장군, 최 대인. 바빠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장 대인, 천만에요.”
최일은 상냥하게 대답했다. 육장봉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뒷짐을 지고서는 조금도 응대하지 않았다.
장소산은 하마터면 가슴이 답답해 죽을 뻔했다. 둘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육장봉은 줄곧 저러했다. 말을 받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육장봉과 이야기하느니 차라리 나무토막과 말하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장소산은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육장봉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무시했을 뿐이었다. 장소산으로서는 화가 치밀어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무례한 사람이 될 판이었다.
남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자기가 먼저 얼굴을 들이밀다가 냉대를 받았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장소산은 거의 허겁지겁 도망치다시피 떠나갔다.
“정신 수양이 조금 부족하군.”
최일은 육장봉과 나란히 섰다. 그의 키는 육장봉과 엇비슷했으나 다소 마른 편이었다. 똑같이 흰 얼굴에 기품 있는 문관이지만, 최일은 육장봉의 옆에 서 있어도 그의 빛에 눌리거나 그 때문에 빛을 잃지도 않았다. 오히려 육장봉과 막상막하였다.
한 명은 문인이고, 한 명은 무장이었다. 한 사람은 냉담하고, 한 사람은 부드러웠다, 하나는 강압적이고 오만했지만, 다른 하나는 대쪽같이 꿋꿋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풍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돋보이게 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정기를 다 받은 듯, 둘이 한데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귀하고 우아한 문관이 어떤 모습인지,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운 무장이 어떤 모습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문무가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건 바로 이러한 모습을 두고 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형언할 수 없는 시샘을 느꼈다. 돋보이는 두 사람 때문에 그들 모두는 길가의 잡초처럼 조금도 눈에 띄지 않았다.
두 사람의 ‘빛’에 상하지 않도록, 연회에 참가한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 둘과 조금 더 거리를 두고 한쪽으로 몰려갔다.
이제는 두 사람 주변에 진공 지대라도 생긴 것처럼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정작 육장봉과 최일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처럼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두 사람이 앉자마자, 그들과 가까운 곳에 있던 몇몇 관리는 너도나도 구실을 대고 자리를 떴다.
최일은 찻주전자를 들더니, 육장봉에게 한 잔 따라 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씨 저택을 한 바퀴 돌아봤는데 일이 참 많더군요. 설(薛)씨 가문에 사고가 난 건 장씨 가문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음.”
육장봉은 그렇게 대답했을 뿐, 차를 마시지도 말을 받지도 않았다. 그 일에 관심이 없는 게 분명했다.
최일은 피식 소리 내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월 낭자가 복수원에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뭐?”
육장봉의 담담하던 눈이 한순간에 예리해졌다.
“설씨 가문의 일은요?”
최일은 육장봉의 위압감을 무시하고 빙그레 웃었다.
육장봉은 즉석에서 대답했다.
“추밀원이 자네와 협력할 거네.”
‘최일, 이 여우 같은 자식!’
“그럼 제가 술 대신 차로, 대장군께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최일은 육장봉에게 찻잔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봄바람같이 따듯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무척 좋은 듯했다.
육장봉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최일이 차 한 잔을 비우자 차갑게 입을 열었다.
“말해 보게.”
근처에서 두 사람을 살피던 문관들은 육장봉이 최일의 체면조차 봐주지 않는 것을 보자, 다들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었다.
육 대장군은 그들을 업신여기는 게 아니었다.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었다. 최씨 가문 대공자에게도 역시 저렇게 냉담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