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월씨 가문의 삼낭자
월령안은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장씨 저택에 도착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릴 때라 쉽게 눈에 띄지도 않았다. 신분이 있다 보니, 늦게 도착할 자격도 없었고 일찍 도착해도 좋을 것은 없었다. 지금이 딱 좋았다.
월령안의 예상대로, 장씨 가문은 많은 사람 앞에서 그녀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그녀가 명첩을 꺼내 보이자, 장씨 가문의 여집사는 절차대로 그녀를 장 노부인의 거처인 복수원(福壽院)으로 데리고 가서 생신 축하 인사를 하도록 했다.
월령안은 장씨 가문에 와 본 적도 없었고, 장씨 가문의 여인들도 만난 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장씨 가문 사람들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육삼이 육장봉의 분부를 전한 뒤, 월령안은 장씨 가문에서 일부러 그녀에게 초청장을 보냈다고 추측했다. 십중팔구는 그녀를 한 번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떤 사람 때문에 육장봉이 장씨 가문 혼사마저 거절했는지 궁금했던 것이리라.
육장봉이 혼사를 거절한 건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그녀의 집에서 밤을 묵었다는 소문이 퍼진 때가 육장봉이 거절했던 때와 시기가 너무 공교롭게 겹쳤다.
장씨 가문 사람들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복수원에서 장씨 가문의 여인들을 만났을 때, 월령안은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셋째 언니도 함께 자리한 것은 조금 의외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월령안도 알 수 있었다. 집사가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을 뿐인데도, 장씨 가문의 외사촌 아가씨가 바로 셋째 언니임을 확신한 이유가 있었다.
십 년이 지났는데도 셋째 언니의 얼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십 년 전의 모습 그대로였고, 세월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월령안의 나이가 어렸고, 남매들끼리 접촉이 많지 않았기는 했다. 그러나 이 외사촌 아가씨가 바로 셋째 언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셋째 언니의 외모는 모든 자매 가운데서 가장 예뻤다. 특히 그 눈은 물로 씻은 듯이 맑았고, 부드러운 눈빛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셋째 언니의 눈꼬리 아래쪽에는 눈물점이 있었다. 그 눈물점은 그녀의 뚜렷한 개성이라, 잘못 볼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상대방을 보고 놀라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을 더 하기도 전에, 셋째 언니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얼굴을 돌려 옆 사람과 이야기했다. 그녀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월령안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여기는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서둘러 정신을 다잡았다. 웃는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장씨 가문 여자 집사의 안내를 받아 장씨 노부인에게 다가가 예를 올렸다.
“월씨 령안이 노부인께 축하드립니다. 끝없이 흘러 마르지 않는 동해처럼 복을 누리시고, 늙지 않는 남산 소나무처럼 장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장 노부인은 한가운데에 놓인 왜탑에 앉아 있었다. 왼쪽에는 어린 아가씨 두 명이 가까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나이가 좀 든 부인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이 넷이 장 노부인이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라서 그녀 옆에 앉을 수 있는 게 분명했다.
아래쪽 양측에는 각각 의자가 세 개씩 놓여 있었는데 부인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부인마다 뒤쪽에는 한 명 내지 세 명의 아가씨가 서 있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장씨 가문의 아가씨들이었다.
“자네가 바로 월씨 가문의 낭자인가?”
장 노부인은 백발에 붉은 만수포(萬壽袍)를 입고 있었다. 아주 정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람을 보는 눈빛도 인자해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부유한 생활을 해서 마음의 여유가 있으며, 손아랫사람들에게 자애로운 할머니로 보였다.
월령안이 예를 올리자마자, 그녀는 당장 일어나라고 했다. 그리고 화기애애한 얼굴로 월령안에게 손짓했다.
“과연 예쁘장하게 생겼구나. 이리 오게. 이리 와 보렴…….”
장 노부인은 친절했다. 그렇다고 해서 월령안은 경계심을 늦추지는 않았다.
방안에는 모두 장씨 가문의 여인뿐이었다. 게다가 그녀를 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저도 모르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도무지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장 노부인의 말에 경계심을 꾹 누르고 웃는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불렀다.
“노부인.”
“정말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구나. 나도 나이가 들다 보니 너희처럼 생기 있는 어린 낭자들이 좋구나.”
장 노부인은 월령안의 손을 잡고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미소 띤 얼굴에서는 점점 더 친근함과 자애로움이 넘쳐 흘렀다.
갑자기 장 노부인은 놀랍다는 표정을 짓더니 월령안을 가리키며 옆 사람에게 말했다.
“너희도 봐라……. 이 월씨 낭자가 우리 집 영수(靈秀)와 좀 닮지 않았느냐?”
장 노부인이 입을 열자, 순간 수십 쌍의 눈길이 일제히 월령안에게로 쏠렸다. 장 노부인의 오른편에 앉은 부인은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 정말 영수와 좀 닮았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매인 줄 알겠어요. 그런데 인상이 좀 흐릿한 게, 영수보다는 좀 떨어지네.”
“예쁜 거로 치자면 이제까지…… 내가 본 여자아이 중에서는 영수와 견줄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특히 눈가의 그 눈물점 말이야. 아무리 봐도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니까.”
“영수야말로 ‘맑은 물에서 연꽃이 솟으니 천연스레 꾸밈이 없구나(淸水出芙蓉, 天然去雕飾)’라는 시구 그대로죠.”
나이 든 부인들은 거리낌 없이 말했다. 월령안을 보는 눈빛도 매우 무례했다. 그 까다로운 눈빛은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물건을 품평하는 듯했다.
월령안이었으니 망정이지, 평범한 소녀가 갑자기 이렇게 많은 귀부인의 주목을 받았다가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젊은 낭자들은 그나마 예의를 차렸다.
“월 낭자는 영수와 이목구비는 조금 닮았네요. 그런데…… 품새가 더 낫지는 않네요.”
“생김새고, 품새고, 차림새고 모두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아요.”
장 노부인 왼쪽에 앉아 있던, 양쪽으로 머리를 올리고 새빨간 치마를 입은 어린 낭자가 보라색 옷을 입은 낭자의 팔을 껴안고 귀가에 대고 속삭였다.
“큰언니, 육 대장군의 전처도 그저 그렇네요. 고작 저런 여자를 두고, 육 대장군은 육 부인의 자리에는 저 여자밖에 없다고 한 거예요? 육 대장군은 눈이 어떻게 된 게 아녜요?”
“허튼소리 하지 마.”
보라색 옷을 입은 낭자는 장 노부인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담담히 웃으며 어린 낭자를 콕 찌르고는 월령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를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행동을 하더라도 전혀 거만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예사로운 일 같았다.
이때 월령안도 장 노부인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녀들의 대화를 통해, 보라색 옷을 입고 장 노부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장씨 가문의 큰아가씨로 육장봉의 맞선 대상임을 알게 되었다. 장 노부인이 영수라 부르는 사람은 십중팔구 그녀의 셋째 언니였다.
월령안의 외모는 셋째 언니처럼 출중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둘 다 월씨 가문의 아가씨들이라서 다소 닮은 점은 있었다.
갑자기 장 노부인의 오른편에 앉았던 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기도 하지. 영수처럼 뛰어난 아가씨가 나쁜 놈들에게 개나 고양이처럼 길러졌다니. 어머님께서 마음이 선량하셔서 저 계집애를 거두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 애가 얼마나 더 고생했을지 누가 알아요.”
그 부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구석에 앉아 있던 월 삼낭(三娘)이 앞으로 나서더니, 장 노부인의 발치에 꿇어앉아 감격스럽게 말했다.
“영수는 노부인께서 매해 매일을 오늘처럼 기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마님 말씀이 맞습니다. 노부인께서 마음이 선량하신 덕이지요. 노부인이 없었더라면, 영수의 오늘도 없습니다. 영수의 마음속에서 노부인은 살아 계신 보살입니다. 영수는 평생 노부인의 곁을 지키면서, 노부인께서 다시 생명을 주신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월령안은 삼낭자를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 언니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장씨 가족에게 이렇게까지 아첨할 필요가 있나?’
“우리 같은 가문에는 노부인을 섬기는 하인이 모자라지 않단다. 영수, 너도 딴 생각을 하지 마라. 노부인께서 너를 구한 건 마치 길가의 고양이나 강아지를 구해준 것과 같단다. 가엾은 네게 밥 한술이라도 주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은 아니거든. 너도 네 신분만 명심하면 된다. 진흙탕에서 빠져나왔다고 귀인이 되었다고 착각하지는 마라.”
아까 그 부인이 한 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매몰찬 눈매로 무언가 암시하듯 월령안을 훑어보았다.
장씨 가문 사람들과 셋째 언니의 말을 통해, 월령안은 이 사람이 장씨 가문에서 시집간 딸임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은 월령안에게 핀잔을 주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특별히 이름을 들먹이지 않았기에, 그녀도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다만 미소만 유지하며, 알아듣지 못하는 척했다.
“마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영수가 바로 노부인 옆에 있는 고양이, 강아지입니다.”
삼낭자는 장 노부인의 발치에 꿇어앉아, 아이가 부모를 그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불만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눈을 내리깔고 월 삼낭자의 옆얼굴을 보았다.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사람이 바로 내 셋째 언니라고?’
“고양이, 강아지라니, 그럼 소리 한번 내 볼래? 영수야, 강아지처럼 짖어 봐. 우리 어머니가 강아지를 키우지 못하게 해서 난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거든.”
장씨 가문의 큰 아가씨 옆에 앉아 있던 빨간 옷을 입은 어린 아가씨가 천진난만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직 어린 소녀의 천진함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하는 말은 비수처럼 사람의 체면과 자존심을 마구 난도질했다.
월령안은 상대방을 힐끗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바로 장씨 가문의 예의범절인가?’
하지만 월령안을 더욱 화나게 하는 일은 그 뒤에 있었다.
빨간 옷차림의 아가씨가 말을 마쳤는데도, 방안에서는 그녀가 실례했다며 질책하는 사람도, 앞에 나서서 호통치며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방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마치 그 아가씨가 무슨 재미난 우스갯소리라도 한 것처럼 모두 포복절도했다.
자애로운 장 노부인은 장난스럽게 빨간 옷차림의 아가씨를 쿡 찔렀다.
“이런 장난꾸러기를 봤나. 영수를 놀리다니.”
월령안은 눈앞의 화목하고 즐거워 보이는 조손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장씨 가문 사람들이 일부러 그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녀와 월 삼낭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월 삼낭을 놀렸지만, 사실상 그녀를 모욕한 셈이었다. 월씨 가문의 딸들은 장씨 가문 사람들의 발치에 있는 개일 뿐이라며 소리 없이 알려 주고 있었다.
“노…….”
월령안은 마음속으로 냉기가 차올랐지만, 얼굴의 미소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분노를 참아 가며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한 글자를 내뱉자마자, 누군가 말을 끊어 버렸다.
“할머니, 또 절 놀리시네요.”
붉은 옷차림의 아가씨가 큰 소리로 한마디 하며 월령안의 말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거만하게 그녀를 흘겨보았다.
곧이어 붉은 옷차림의 아가씨는 왜탑에서 뛰어 내려와 월령안을 밀치더니, 장 노부인의 앞에 가서 그녀의 팔을 껴안고 애교를 부렸다.
“영수가 먼저 말한 거예요. 저는 영수의 소원을 이뤄준 것뿐이라고요. 신분에 맞춰 일해야지 않겠어요? 우리 가문은 규칙을 지키는 가문이니까, 고양이, 강아지 노릇을 하기로 했으면 그런 척이라도 해야죠? 할머니, 제 말이 틀렸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