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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01)화 (301/1,004)

301화 자다가 날벼락

소 승상이 깨어났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은 그가 사직을 청하고 황제가 허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 이후로 소 승상이라는 칭호는 과거의 것이 되었다. 소씨 가문에는 승상이 아닌, 소 공만 있게 되었다.

“아버지. 저, 저 때문입니까?”

소여방은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지만, 여전히 소 승상의 침대 옆에 꿇어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너하고는 상관없다.”

소 승상의 얼굴에는 늙은 티가 났다. 머리도 온통 백발이 되었다.

정말로 누구 때문인지 따지자면, 바로 그 자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밝힐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소 승상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소여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여자와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느냐? 혼사를 치르거라. 그리고 고……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우리는 앞으로 삼 대 동안은 벼슬을 해서는 안 된다.”

소씨 가문은 망했다. 한 사람이라도 몸을 뺄 수 있으면 빼야 했다.

사실 그야말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청희 장공주의 일이 끝나지 않은 한은 갈 수가 없었다.

황제의 노여움은 누군가가 감당해야만 했다.

게다가 수도에 남아 형세를 살펴야 했다.

‘만에 하나, 그래도 기회가 있을지 누가 아는가?’

“아버지, 이렇게까지 어렵게 되었습니까?”

소여방은 깜짝 놀라 물었다.

‘삼 대라니? 내가 죽을 때까지 소씨 가문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소 승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더니 분부했다.

“함연이를 어서 시집보내라. 너희들이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구나.”

“아버지…….”

소여방은 울먹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께서는 죽을 각오를 하신 건가.’

지난날 의기양양하고 안하무인이었던 승상의 아들은 이 순간, 늙어버린 것처럼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소여방뿐만 아니라 소씨 가문의 모두가 생기라고는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 기운이 있다면, 그건 소함연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아직도 빛과 투지가 있었으며, 야심도 살아 있었다.

* * *

소 승상이 사직하고 황제가 허락했다는 소식을 월령안도 받았다.

그녀 역시 의아하게 여겼다. 황제가 예전과 달리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의아함이 지나간 뒤에는 이 일을 내려놓기로 했다.

조계안이 말했듯이 그녀처럼 보잘것없는 인물은 아직 거물들의 눈에 들 수가 없었다. 조정의 다툼은 그녀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주변 사람들을 최대한 잘 보호하여, 당제와 소성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거물들의 싸움에 무가치하게 희생되는 졸병이 되지 않게 해야 했다.

정작 육장봉은 월령안이 이 일을 이미 털어 버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 일 때문에 일부러 육삼을 보내, 이 틈에 소씨 가문에 손을 쓰지 말라며 주의를 주었다.

심지어 그녀가 걱정을 털어 버리도록, 육삼에게 중요한 소식을 누설하게 했다. 소씨 가문 일은 나중에 누군가 청산할 거라고 귀띔해 주었다.

월령안은 육삼의 말을 듣고 가볍게 대답했다. 육장봉에게 무슨 목적이 있든지 간에, 이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육삼은 말을 마치고 한마디 덧붙였다.

“월 낭자, 저희 장군께서는 헛소문은 지혜로운 자에게 막힌다고 하셨습니다. 장군께서는 내일 황명을 받들고 장씨 가문의 생신 잔치에 참석하실 겁니다. 월 낭자께서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장군을 찾으시면 됩니다. 장군께서는 생신 잔치일 뿐, 별다른 일은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육삼은 일부러 ‘별다른 일’을 대단히 강조해서 말했다. 분명히 암시하는 바가 있었다.

월령안은 침묵했다.

‘육장봉이 이것저것 당부하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이지?’

소 승상의 일은 육장봉이 굳이 일깨워 줄 필요가 없었다. 월령안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소 승상이 갑자기 실각한 데다가, 제왕의 미움을 받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 기회를 틈타 소 승상의 수중에 있는 세력을 나눠 가지려는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물론, 월령안도 이 기회를 틈타 소 승상을 단번에 밟아 죽여 지금까지의 원한을 갚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아직 그럴 힘이 없음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소 승상이 실각했지만, 그의 문하생과 제자들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육장봉과 장씨 가문이 혼약을 맺는 일에 대해서라면, 월령안은 정말이지 울화통이 터졌다. 그녀는 육장봉 때문에 제대로 골탕 먹고 말았다.

고작 며칠 만에 육씨, 장씨 두 가문이 혼인을 맺는다는 소식이 변경에 파다하게 퍼졌다. 심지어 이 소식은 그녀와 육장봉에 관한 헛소문보다 훨씬 빨리 퍼졌다.

요 며칠 동안, 외출만 했다 하면 누구를 만나든 모두 동정의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듣자하니, 육 대장군과 장씨 가문 낭자의 혼사가 결정됐다더군요. 월 가주, 이 일을 알고 있나요?”

월령안이 이 말을 듣고 뭐라고 해야겠는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것뿐이었다.

‘육 대장군께 축하를 드려야죠. 미인을 아내로 맞이하신다지요.’

하지만 그녀의 진심 어린 축복이 남의 눈에는 억지로 웃으며 강한 척하는 것으로 비쳤다. 이 때문에 위로의 선물을 가득 받는 바람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렇게 나약하지도, 가식적이지도 않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이혼장을 들고 육씨 저택에서 떠나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육장봉은 새 장가를 들 것이다. 명문 출신의 젊고 아름다운 낭자를 맞아들이리라. 장씨 가문의 낭자가 아니더라도 이씨, 소씨, 왕씨 가문 등 다른 명문가 출신 낭자는 참 많았다.

육장봉은 젊은 나이에 지위가 높고, 권력이 컸다. 많은 이가 노릴 것은 뻔했다. 그가 재혼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현실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언짢기는 했어도, 못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삼 년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바로 장씨 가문 낭자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사실을 어렵사리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 육장봉은 육삼을 보내 그녀에게 장씨 가문 혼사를 거절했다고 알려 준 것이다.

혼사를 거절하다니. 일을 이렇게 크게 벌여 어쩌자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전처인 그녀에게 일부러 사람을 보내 해명하며,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를 찾으라고까지 전했다.

이는 장씨 가문에 육장봉이 혼사를 거절한 것은 바로 그녀 때문이라고 알려 주는 꼴이었다.

육장봉은 그녀를 미워하는 사람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장씨 가문에서 그녀를 죽일 만큼 미워하도록 그러는 게 아닐까.

월령안은 화가 나서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장씨 가문의 생신 잔치에는 참석해야 했다.

약자는 강자를 이길 수가 없는 법. 그녀에게는 거물 앞에서 제멋대로 굴 능력이 없었다.

다음 날, 월령안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장씨 가문의 생신 잔치에 참석할 준비를 했다.

장씨 가문의 교양을 생각하면, 그들이 생신 잔치에서 일부러 그녀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냉대와 비웃음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육장봉과 장씨 가문 사이에 혼담이 오가는 사이, 육장봉이 밤에 월씨 저택에 머물렀다는 소문이 월씨 가문에서 새어 나갔다. 그다음에는 육장봉이 또 혼사를 거절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건 완전 자다가 날벼락 맞은 꼴이잖아.”

월령안은 꼬투리를 잡을 수 없도록, 올이 고운 무명으로 지은 붉은 치마를 골랐다. 옷감도 훌륭했고 바느질 솜씨도 좋았지만, 능(綾 – 윤이 나는 고운 실로 짠 비단)이나 금(錦 – 무늬를 넣어 짠 비단) 같은 고급 옷감과는 차이가 있었다.

월령안은 옷차림에서부터 자기의 신분에 걸맞게 비단이 아닌 무명을 선택했다. 그 대신 장신구와 화장에 신경을 썼다.

같은 머리 장신구라 해도 월령안이 꽂은 것은 대가의 작품이라 돈이 있더라도 살 수 없었다. 화장에도 적지 않게 신경을 썼다. 경사스러운 분위기에 맞추되, 자신의 개성을 살리기로 했다.

그녀는 장씨 가문과 억지로 맞설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피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장씨 가문 사람들이 육장봉의 전처가 그저 그렇다고 떠벌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육장봉을 떠나고 나서 시든 꽃이 되었다는 말은 더더욱 듣기 싫었다.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비록 육장봉에게 소박맞았다 해도, 그녀는 절대로 원한에 차서 방구석이나 지키며 살지 않는다고 말이다.

날이 채 밝기도 전부터 일어나 시작한 단장은, 꼬박 한 시진 반이 걸려 진시(辰時 – 오전 7시~9시)가 되었을 때야 끝났다.

단장을 마친 월령안은 무명 치마 차림에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장신구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유난히 독특했다. 산뜻하고 간결하면서도 정교함을 잃지 않았다. 아가씨 신분으로는 이 정도 단장이면 충분했다.

“아가씨, 이 차림새라면 오늘 반드시 눈길을 끌 거예요.”

하녀가 다가오더니 그녀의 치맛자락을 만져 주름을 펴 주었다.

월령안이 입은 옷은 무명으로 짓기는 했지만, 만듦새는 간소하지 않았다. 곳곳에 정교하게 수놓은 꽃을 볼 수 있었다. 무려 여섯 겹이나 되는 치마가 층층이 쌓여, 움직이기만 하면 치맛자락에 수놓은 꽃무늬가 보일락말락 했다.

윗옷은 소매가 넓고 옷깃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이 옷은 옷감이 비싸지는 않더라도, 제작비는 웬만한 비단옷에 못지않았다.

“망신만 안 당하면 되지.”

월령안은 담담하게 웃었다. 얼굴에는 결코 으스대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여러 번 확인했다. 특히 자신의 틀어 올린 머리를 주의하여 보았다.

주나라에서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의 머리 모양에는 차이가 있었다. 하녀는 그녀의 머리를 빗겨 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망설였다.

월령안 본인도 잠시 당황했다. 결국에는 자신이 결정했다. 머리를 틀어 올린 다음, 머리카락 두 갈래를 남겨 자연스럽게 늘어뜨림으로써 미혼임을 드러냈다.

단장을 마치고 여러 차례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단장을 하느라 풀어 두었던 암기를 일일이 다시 몸에 두르고 나서야 밖으로 나갔다.

오늘 월령안의 보호를 맡은 육구와 육십이 뜰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들여 차려입은 월령안을 보자, 그들의 눈에서도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란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둘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는 바라보지 못했다.

월령안은 두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

“오늘, 두 분은 가지 않아도 돼요. 장씨 가문의 연회라서 위험하지 않아요.”

“월 낭자, 저희는 열두 시진 동안 낭자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육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네 장군도 계실 거예요.”

육장봉의 호위병을 이끌고 장씨 가문 연회에 참석했다가는, 영문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그녀가 일부러 과시하는 거로 보일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사실 장씨 가문과 맞설 배짱이 없었다.

“그게…….”

육구는 주저했다.

월령안은 말없이 방그레 미소를 띤 채 그를 바라보았다.

결국 육구가 지고 말았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 그녀에게 길을 내주었다.

‘내가 뭐 어쩌겠어?’

그들 장군도 월 낭자를 어쩌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담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생이 많아요.”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 곁을 지나갔다.

월령안이 멀리 가 버리자, 육구와 육십은 서로를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월 낭자를 보호하는 일이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보니 이 일은 이러든 저러든 양쪽으로 소리를 듣는 고달픈 일이었다.

이제는 월 낭자가 장씨 저택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은 끝장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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