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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98)화 (298/1,004)

298화 나를 파시겠다고?

집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장 부승상 같은 대사족은 줄곧 체면을 중시해 의지하러 온 친척들을 잘 대해 주었습니다. 같은 장씨인 것을 생각해 장 부승상이 삼낭자를 받아 준 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장씨 가문과 청주는 도대체 관계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다면 어느 정도 깊은 관계인가?”

월령안은 원래 장씨 가문이 청주와 관계가 밀접하다고 생각했다. 유경장의 친구에게 손을 쓴 것은 청주에서 유경장에게 본때를 보여 준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단언하기 어려웠다.

정 장군은 장씨 가문이 육장봉과 혼약을 맺을 의향이 있다고 했다.

혼담이 오가는 와중에, 월씨 가문에서 그녀와 육장봉이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밖으로 새어 나갔다. 장씨 가문에서 불만을 품고 그녀의 주변 사람을 혼내는 것으로, 그녀에게 경고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당제와 초성의 일은 장씨 가문에서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조사만 하면 알아낼 수 있는 일이었다.

‘정말 청주의 범씨 가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이토록 오만방자할 수 있을까? 청주에 대한 황제의 태도를 남들은 모른다 쳐도, 장씨 가문이 그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소인은 모릅니다. 장씨 가문 일은 정말 조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집사는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대사족에서 부리는 하인은 모두 대를 걸쳐 내려오다 보니, 주인과 영욕을 함께하는 관계였다.

그런 가문의 소식은 정말 알아내기 어려웠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씨 가문의 생신 잔치가 바로 코앞일세. 어쩌면 생신 잔치에서 답이 나올지도 모르지.”

* * *

그날 기루에서의 월령안과 만난 뒤, 육장봉은 공무로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추밀원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았다. 그는 며칠 내내 추밀원에 머물며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거의 이틀 밤을 새운 끝에 겨우 시간이 났다. 그런데 조계안이 마치 비린내를 맡은 고양이처럼 시간을 딱 맞춰 찾아오더니, 육장봉을 서재에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어떤가? 추밀사 대인, 승진한 심정은 어떠신지요?”

조계안은 웃는 듯 마는 듯하며 물었다.

“무슨 볼일이냐?”

육장봉은 이틀 동안 밤을 지새웠지만, 두 눈은 여전히 예리해서 피로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턱에 까슬하게 올라온 수염만이 그가 이틀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황성사가 생각보다 심하게 좀먹었던걸. 네 사람을 좀 써야겠어.”

조계안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육장봉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더니 찻주전자를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퉤퉤, 퉤……. 이건 또 무슨 차야?”

찻물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질색하며 도로 뱉어냈다.

“시큼털털해서는, 약보다 더 맛없잖아.”

육장봉은 이틀 밤을 지새웠지만, 조계안은 사흘 밤을 지새웠다. 힘들기로 말하면 육장봉보다 그가 더 힘들었다.

“약차다.”

육장봉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월령안이 찾아 준 약 처방이다.”

“아하……. 그냥 옛 처방이었군. 난 또 무슨 보물인가 했지.”

조계안은 사나운 눈초리로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몸을 뒤로 기대더니, 두 발을 책상 위에 걸치고는 건들거리며 말했다.

“손불사가 명월산장에 머무르고 있다. 네 옛 상처도 월령안에게 말해서 손불사에게 보이지 그래?”

“좋은 생각이군.”

육장봉은 책상 위의 찻주전자를 들어 조계안의 눈앞에서 한쪽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졌다. 꺼림칙하다는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쩨쩨한 사내로군.”

조계안은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장씨 가문과 혼담이 오가면서 아직도 월령안이 준 처방을 쓰다니. 참 염치도 없지.”

“폐하께서 영명하시군. 너도 이제는 장가가야지.”

육장봉이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나한테 말해도 소용없어……. 지금 온 변경 사람이 다 알고 있거든. 네가 장씨 가문의 생신 잔치에 참석하는 건, 장 부승상의 딸과 맞선을 보기 위해서라고 말이야.”

조계안은 책상 위에 다리를 걸치고 윗몸은 의자에 파묻었다. 얼굴의 표정은 가면으로 가린 채, 의기양양한 기색이 역력한 눈만 드러냈을 뿐이다.

가면을 벗을 필요도 없었다. 사흘 밤을 지새우고도 여전히 생기가 넘치는 눈만 보더라도 지금 그가 얼마나 흐뭇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네가 한 짓이냐?”

밖에서 떠도는 소문은 이틀 전에 육삼이 육장봉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육장봉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유언비어일 뿐이었다. 그가 돌아온 뒤, 그와 관련된 유언비어가 적지 않았다.

그와 월령안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한가한 이들은 마치 사실처럼 말하고 다녔다.

장씨 가문의 일에 관해서라면, 확실히 장씨 가문에서 그와 혼약을 맺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일찌감치 분명하게 거절했었다.

밖에서 소문이 떠도는 걸 보자, 육장봉은 장씨 가문 쪽에서 소문을 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조계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조계안은 부인하지 않았다. 발을 까딱거리며 우쭐해서 말했다.

“너는 없는 일도 육십이가 허튼소리를 떠벌리게 놔뒀잖아. 내가 진실을 말하는 건 안 되나?”

육장봉은 조계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조계안의 눈에 떠오른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게다가 네가 장씨 가문의 큰 아가씨를 맞아들이기만 하면, 장씨 가문은 청주 쪽으로 넘어가지 않을 게 분명해. 그리고 장 부승상도 폐하께서 다른 사람을 승상으로 임명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거야.

하나로 얻는 게 많으니 얼마나 좋아.”

“그래, 좋지.”

육장봉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모두가 좋아하겠지만, 자신은 싫었다.

조계안은 그거로는 모자란다고 생각했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이 일은 황형도 동의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육장봉이 장 노부인의 생신 잔치에 참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육장봉은 담담하게 말했다.

“날 한 번 더 팔겠다는 건가?”

‘역시 그랬군.’

그는 자신이 전혀 예상 밖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렇게 듣기 거북한 소리를 해?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차면 혼인하는 거지. 네 나이도 적지 않잖아? 지난번 혼사는 너도 불만스러워했잖아. 그래서 봐……. 황형이 네게 대갓집 규수를 찾아줬잖아? 모든 면에서 너와 어울리고, 네 전 부인보다 훨씬 훌륭할 거라고 보장해.”

조계안은 발을 들어 올려 거두었다. 하지만 똑바로 앉는 대신, 두 손을 책상 위에 얹더니 몸을 앞으로 기울여 책상에 엎드렸다. 그리고 짓궂게 웃으며 육장봉을 바라봤다.

“황형이 이렇게 너를 신경 쓰는데, 좀 감동했어?”

육장봉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계안,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처음 한 번은 황제의 고충을 이해하여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없을 것이다. 그는 황제 수중의 장기 말이 아니었다. 황제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게 가만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반항하게?”

조계안은 눈을 깜빡이더니, 유혹하듯이 말했다.

“내가 도와줄게.”

“까불지 마.”

육장봉은 손바닥으로 조계안의 머리를 내리쳤다.

“폐하께 전해. 장씨 가문을 어떻게 달래도 상관 없지만, 내 혼사를 가지고 거래하시는 건 안 된다고. 난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

조계안은 피하지도, 반격하지도 않았다. 못마땅해서 육장봉을 쏘아보았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내가 너더러 장씨 가문 낭자를 맞아들이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난 전해 주지 않을 거야.”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래? 너와 상관없다고?”

삼 년 전에는 그가 변경에 없었고,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남의 계략에 당하더라도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고,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지금 변경에 있었다.

‘이번에는 황제와 조계안이 내 혼사를 가지고 어떻게 일을 꾸미는지, 다시 한번 나를 어떻게 팔 건지 두고 봐야겠군.’

“이번에는 진짜 나와 상관없어.”

육장봉이 진짜로 화를 내자, 조계안은 더는 까불지 못하고 얌전하게 앉았다. 눈빛도 많이 진지해져, 정색하여 말했다.

“너를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게 하자는 건 황후가 먼저 꺼낸 이야기야. 태후께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셨고, 황형도 관심을 두게 된 거지.”

“폐하께 그런 뜻이 있었는데, 황후가 폐하의 속내를 눈치채고 먼저 말을 꺼내 준 건 아니고?”

육장봉은 냉소적으로 비웃으며 황제의 체면을 조금도 봐 주지 않았다.

조계안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가 한 말도 틀린 건 아니지.”

황제에 대해서라면 조계안도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조계안이 아는 한 황제가 큰 손해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많은 일이 과정은 험난할지라도, 결국에는 모두 황제의 뜻대로 되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이십 년 넘게 부승상 자리에 있던 장 부승상은 소 승상이 곧 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위쪽으로 한 단계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황제는 장 부승상을 승상 자리에 앉힐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불만을 품지 않게 하려고, 육장봉을 내세워 장씨 가문을 위로하려 했다.

정치라는 게 서로 경쟁하고 서로 타협하는 게 아닌가.

육장봉은 황제와 가까웠다. 장 부승상은 육장봉이라는 사위가 마음에 들어, 승상 자리를 포기하기로 했다.

황제와 장 부승상은 이야기를 끝냈지만, 육장봉은 내켜 하지 않았다. 난감할 노릇이었다.

그러자 황제는 조계안더러 육장봉을 설득하라고 했다. 하지만 조계안라고 해서 딱히 설득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한 번 가서 해야 할 말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그와 상관없었다.

육장봉은 이 일이 조계안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자, 어조가 조금 누그러졌다.

“이 일은 신세를 졌군. 이젠 됐으니까 꺼져."

육장봉은 손에 잡히는 대로 두루마리 하나를 들어 조계안에게 냅다 던졌다.

조계안은 손을 들어 받고는 또다시 육장봉에게 도로 던졌다.

“누가 그런 걸 대단하게 여긴다고. 난 다만…….”

조계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조적으로 말했다.

“형제까지 다 잃을까 걱정돼서 하는 소리야.”

황제는 늘 자기가 무슨 일을 했던, 나중에 보상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깊은 정이라도 소진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황제는 육장봉이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님을 분명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매번 그를 내세우는 것은 정말 너무한 처사였다.

하필 그로서는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가 오지 않으면, 황제와 육장봉의 관계를 완화할 여지도 없었다.

“조계안! 그분은 황, 제, 폐, 하, 다.”

육장봉도 일어서서 조계안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내뱉었다.

그가 황제인 이상, 그들은 형제가 될 수 없었다.

“그분은 황제이지만, 내 형님이기도 해.”

늘 경박함과 위험함만이 맴돌던 조계안의 눈에는 이 순간, 확고함만이 떠올라 있었다.

“네 행운을 빌지.”

육장봉은 차갑게 비웃었다.

“너…….”

조계안은 얇은 입술을 살짝 열었다. 목소리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살짝 메어 있었다.

“이제는 폐하의 신하일 뿐, 더는 형제가 아니라는 거냐?”

‘육장봉과 황형 사이에는 결국 틈이 생긴 건가?’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계안만 바라보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거야?”

조계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눈에는 씁쓸함뿐이었다.

“삼 년 전에는 폐하께서 등극하신 지 얼마 안 되었고, 사실상 국고에도 돈이 없었지. 그래서 나도 폐하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장 부승상이 승상 자리를 욕심내 폐하께 압력을 넣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타협하기 싫으시니까, 나를 파시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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