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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96)화 (296/1,004)

296화 약혼할 수는 있잖아

부승상인 장연(張延)이 손을 썼다. 그리고 이 짧은 시간에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건으로 만들었다. 이 사건에는 파고들 틈이 전혀 없을 게 분명했다.

장연은 생각보다 예전부터 이 일을 준비해 둔 것이 틀림없었다.

장연은 일찌감치 유경장을 노리면서 당제와 초성도 함께 노렸을 것이다. 미리 판을 짜 놓았으니 필요할 때에 터뜨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설령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분명 오해를 살 만한 일은 하게 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에게는 이를 뒤집을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해 그녀는 유경장에게 말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은 스스로 겪고 이해해야만 했다.

“만날 수 있겠소? 형부에서는 그들의 죄질이 나빠 면회할 수 없다고 했소.”

유경장은 씁쓸해서 말했다.

그는 진정으로 남에게 부탁하러 갔을 때야 재자로서의 명성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날 그를 높이 평가하던 귀인들도 말로만 그랬을 뿐이다. 정작 일이 생기자 전혀 힘써서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안 됐지만, 지금은 될 거예요.”

장 부승상이 독촉하는 사건을 감히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예전에는 사건이 판결 나기 전이었다. 이변이 생기지 않도록 당연히 유경장이 범인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이제는 판결이 났으니, 손을 쓴다면 몰래 한 번 만나 보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유경장의 능력으로는 한 번 만나는 것도 불가능했다.

“령안, 결국 당신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구려.”

유경장의 미소는 점점 더 씁쓸해졌다.

월령안이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요. 당제와 초성의 사건은 이미 확정됐으니, 누구도 그들을 구할 수 없어요. 제가 집사에게 관아에 뇌물을 주어 그들의 식구를 돌봐 주도록 하라고 했어요. 다른 건 저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에요.”

물론 유경장이 처음부터 그녀를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그녀로서도 당제와 초성을 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장 부승상은 대단히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고작 며칠 만에 사건을 판결했다. 이로 보건대, 장 부승상은 애초에 그들과 담판할 뜻이 없었다.

장 부승상은 당제와 초성 두 사람을 가지고 본때를 보여 주려는 게 분명했다. 유경장 또는 그녀에게 장 부승상과 대립한 결과를 똑똑히 보여 준 것이었다. 그 수단은 소 승상보다 더 노련하고 날카로웠다.

* * *

월령안이 손꼽아 기다리던, 약왕 손불사를 모시러 갔던 사람이 편지를 들고 돌아왔다.

약왕은 이미 성 밖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때를 잘 맞춰 왔군.”

월령안은 며칠 동안 장씨 가문과 그 외사촌 아가씨의 일을 알아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저녁이면 노인을 보러 갔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얼굴을 보면서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이제 손불사가 왔으니 적어도 노인의 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월령안은 손불사가 비싸게 구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특별히 명월산장을 정리해 그곳으로 모셨다.

명월산장은 원래 황실 별장이었는데 장군왕 세자가 도박에서 지는 바람에 명월산장을 그녀에게 내주고 말았다. 원래대로라면 황제에게 한바탕 혼나야 했지만, 등요 공주가 장군왕 세자를 납치한 사건이 터졌다. 그 바람에 황제는 장군왕을 욕할 처지가 못 됐다.

황제의 묵인하에 월령안은 순조롭게 명월산장의 주인이 되었다.

손불사는 관아와 관련된 일은 하는 법이 없었고, 관리의 병을 치료해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황실 별장에 머무는 것에는 개의치 않았다.

손불사는 월령안의 접대에 대단히 만족했다. 하루 쉬고 원기를 회복하자, 월령안에게 서둘러 환자를 보내라고 했다.

그는 변경을 좋아하지 않아서, 빠르게 치료를 끝내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의 시간은 아주 귀했다.

월령안은 손불사의 전갈을 받고 그날로 정씨 가문에 편지를 보냈다. 정 낭자를 보내면, 월령안이 손 선의를 만날 때 데리고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정씨 가문에서는 이 소식을 받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월령안의 호의를 대단히 중시하며 감사한다는 뜻을 드러내기 위해, 정 장군과 정 부인은 정 낭자를 직접 월씨 저택까지 바래다주었다. 그와 동시에 열 대나 되는 마차에 선물을 바리바리 실어 왔다.

병을 치료하기도 전에 선물부터 보내왔다. 이 정도면 정씨 가문에서는 이 일을 아주 완벽하게 처리한 셈이었다.

풍요로운 강남에서 온 정 부인은 용모가 아주 아름답고 기질이 온순했다. 오자마자 월령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감사 인사를 했다. 마치 물로 만들어진 사람처럼, 눈물이 닦으면 닦을수록 점점 더 많이 흘러나왔다.

그나마 월령안이 낭자들을 달래는 데 익숙했기에 망정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정 장군은 전형적인 무인이었다. 몸집이 크고 억세며 투박했다. 외모도 아주 평범했다.

둘이 함께 서 있으면 겉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더없이 금실이 좋은 부부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정 부인이 눈물을 흘리자, 정 장군은 금세 얼굴빛이 변해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차마 앞에 나서서 정 부인의 말을 끊지도 못하고, 애처롭게 옆에 서서 무뚝뚝하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월령안의 생각에도,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가정이 화목해야만 정 낭자처럼 순수하고 솔직한 아가씨가 자라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 장군과 정 부인은 월령안이 성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월씨 저택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감사 인사를 한 다음 작별인사를 했다.

정 장군은 떠나기 전 한참 동안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한마디 하고 말았다.

“월 가주, 밖에서 듣기 거북한 풍문이 나돌고 있네. 방법이 있다면 해명하는 게 좋을 걸세. 나야 밖에 나도는 말들 사실이 아님을 알지만, 어떤 바보들은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가 월 가주에게 앙심을 품을 걸세.”

“당신, 그런 소리는 왜 해요. 월 낭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정 부인은 손을 뻗어 정 장군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월 낭자, 저이의 헛소리를 듣지 말게. 우린 낭자를 믿네.”

“음.”

정 장군은 아파서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꼼짝 못 하고 끙끙거리기만 했다.

정 부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었다. 얼굴의 미소는 여전히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흠칫 떨고 말았다

‘정 부인이야말로 진정한 여장부였구나. 절대 거스르지 말아야겠다. 밉보여서는 안 돼.’

월령안은 얼른 정 부인에게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정 장군, 혹시 저와 육 장군에 관한 유언비어를 말씀하신 건가요?”

그녀는 거리낌 없이 대담하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정 부인에게 자기는 정 장군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해 주려는 뜻이었다.

정 장군은 대답하지 않고 정 부인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의 허락을 받은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육 대장군은 젊고 유능해 그 사람을 노리는 자가 부지기수일세. 장 부승상 가문에서는 육 대장군과 혼약을 맺으려고 하네. 이런 때에 월 가주와 육 대장군의 애매한 풍문이 나돌면, 장씨 가문에서는 월 가주가 그들을 도발하고, 그들의 체면을 짓밟는다고 생각할걸세.

장씨 가문은 체면을 목숨보다 더 중요시하는데 월 가주가 그들의 체면을 뭉갰으니 그쪽에서는 월 가주에게 잘잘못을 따지려 할 거야. 하루라도 빨리 해명하고 괜한 골칫거리를 만들지 말게나.”

월령안은 깜짝 놀랐다.

“장씨 가문에서 육 대장군과 혼약을 맺으려고 한다고요? 전 전혀 몰랐어요.”

‘장씨 가문에서 이렇게 서둘러서 나를 공격하는 게 이것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겠지?’

월령안은 자신이 너무 억울하다고 느껴졌다.

그녀가 해명하려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육 대장군이 해명하지 못하게 했다.

“대가족끼리 혼약을 맺는 일인데 어찌 미리 소문이 나겠나. 일이 다 결정된 다음에야 조금씩 소문을 흘리겠지. 월 낭자가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세. 괜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게. 지금은 장씨 가문에서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뿐, 육 대장군 쪽에서는 승낙하지 않은 모양이야.”

정 부인은 월령안이 불쾌해할까 봐 얼른 해명을 덧붙였다.

전남편이 이혼한 지 한 달밖에 안 되어 새색시를 얻으려 한다면, 누가 들어도 불쾌할 것이다.

하지만 정 부인이 위로의 말을 끝내자마자, 정 대장군이 못내 화가 나서 한마디 덧붙였다.

“승낙하지 않았다니 무슨 말이오. 그 육가 놈이 장 노부인의 생신 잔치에 참석하겠다고 승낙하지 않았나?

육가 놈이 경성에 돌아온 다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초대를 했는데?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어. 오로지 장씨 가문의 초대만 받아들였지.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무슨 뜻인지 다 알 게 아닌가. 게다가 만약 육가 놈이 그럴 뜻이 없다면, 장씨 가문에서 소문을 낼…….”

“좀 그만 하면 안 되겠어요?”

정 부인은 화가 나서 월령안이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손을 내밀어 정 장군의 귀를 비틀었다.

“이 사람이 진짜. 이러니 평생 굴렀어도 아직도 삼품에서 전전하지. 당신이 평생 승진하지 못하고 공도 못 세우는 건 다 당신 탓이에요.”

“아이구, 아이구……, 부인, 살려 주시오. 부인 살려 주시오.”

정 장군은 오만상을 찡그리고 끝없이 용서를 빌었다.

“돌아가서 다시 얘기합시다.”

정 부인은 콧방귀를 뀌고는 손을 놓았다.

하지만 월령안을 향해 몸을 돌리자 또다시 따뜻한 미소를 띤 강남 여인으로 거듭나, 부드럽게 말했다.

“월 낭자, 우리 집 바깥사람의 허튼소리를 듣지 말게. 육 대장군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일세.

낭자에게 삼 년 동안 장가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약혼할 수는 있잖아.”

정 장군은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중얼거렸다.

이번엔 정 부인은 정 장군을 거들떠보지 않고 부드럽게 월령안만 다독거렸다.

“월 낭자, 우리 집 저이가 한 말이 귀에 거슬리겠지만, 악의가 있는 건 아닐세. 물론 저이가 말한 것은 모두 겉으로 보이는 일이고, 무슨 속사정이 있는지는 우리도 내막을 모르네. 월 낭자, 그래도 괜찮으면 확실히 물어보는 게 좋겠네. 괜히 장씨 가문의 미움을 사지는 말아야지.”

“부인의 깨우침에 감사드립니다. 알아볼게요.”

월령안은 정 장군과 정 부인이 자신과 교분이 깊은 사이가 아님에도 심각한 이야기를 해 주었음을 알았다. 만약 그녀가 정 낭자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정 장군과 정 부인도 절대 이런 말을 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생사가 정 장군, 정 부인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장씨 가문에게 미움을 살 것을 무릅쓰고 이렇게 귀띔해 주겠는가.

* * *

월령안은 그날 오후, 노인과 소육자, 그리고 정 낭자까지 별장에 데려갔다.

노인은 사전에 약속했던 환자였다. 당연히 손불사는 치료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소육자는 강호인이었다. 규칙대로 돈만 주면 역시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치료하러 온 거, 하나를 보든 둘을 보든 똑같았다. 또한 월령안은 통이 크니, 한 사람을 더 치료하는 게 힘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 낭자에 이르자, 손불사는 거만한 태도를 드러내며 한사코 치료해 주려 하지 않았다.

이유는 이미 갖춰져 있었다. 정 낭자는 관리 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원래 관리 집안의 사람들은 치료해 주지 않았다.

월령안은 조금 전 정 장군 부부가 베푼 큰 인정을 받은 터였다. 그러니 손불사의 거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약초밭 오백 묘, 천 묘 크기의 장원 세 개를 선물한 뒤에야 손불사는 금전의 매력에 무릎을 꿇고, 마지못해 정 낭자의 치료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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