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장 부승상의 수완이 대단하구나
육장봉은 눈을 치켜뜨고 미지근하게 물었다.
“아니에요. 장군께서 마침 잘 오셨어요.”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사뿐히 예를 올렸다
“장군께서 다른 일은 없으시죠? 없으면 전 이만 먼저 가 보겠습니다.”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유경장의 일에 대해서 말해 보시오.”
그는 청력이 매우 좋았다. 들어오기 전에 유경장이 울며불며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었다.
유경장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그리고 이 일은 유경장뿐만 아니라 월령안도 해결할 수 없었다.
“대장군, 감사합니다. 필요하다면 대장군께 꼭 도움을 청하도록 하지요.”
월령안의 마음속에는 이미 계획이 서 있었다. 그래도 여지는 남겨 두었다.
예전 같았으면 육장봉에게 이혼당했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앙금으로 남아, 그에게 숙이고 들어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지나갔다고 느껴졌다.
누구에게 부탁하더라도 다 똑같이 부탁하는 것이다. 어쨌든 육장봉과도 어지간히 교분을 쌓았으니 그에게 부탁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갑시다. 내가 집까지 바래다주지.”
육장봉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오지랖이 넓어서 좋은 것도 없었다. 게다가 유경장의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아니…….”
월령안이 거절한다는 말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육장봉이 말했다.
“나는 추밀원에 가야 하오. 마침 가는 길이오.”
“추밀원요?”
월령안은 어딘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물었다.
육장봉은 차분하면서도 신중하게 말했다.
“내가 새로 임명된 추밀사요.”
월령안은 서둘러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대장군, 승진을 축하드립니다.”
육장봉은 승진한 게 확실했다. 비록 관리로서의 등급은 여전히 일품이지만, 추밀사가 장악한 군사와 관련된 직무는 승상의 직무와 맞먹었다. 그래서 예전처럼 군사 방어 사무만 다루는 게 아니라,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주나라는 문과를 중요시했다. 모든 정무는 여전히 승상을 위주로 돌아갔다. 여전히 문관들이 주나라의 정치를 주도했다. 그럼에도 추밀사의 지위는 대단한 것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추밀원으로 찾아와도 좋소.”
월령안이 그에게 제일 먼저 축하를 해 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그녀의 축하가 가장 흡족하게 들렸다.
멀쩡히 잘 있었는데, 죽도록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도 못 듣는 추밀원이라는 이 골칫거리를 누구 때문에 맡았겠는가.
바로 월령안 때문이었다.
“장군께서 추밀원을 맡으시면 변경은 더욱 평안하고 안전해질 거라고 믿어요.”
월령안은 육장봉이라는 줄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만약 조계안이었다면 그녀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육장봉은 그녀에게 위험한 느낌을 주었다. 육장봉이 자기에게 이렇게 잘해 주는 걸 보니, 틀림없이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철광산보다 더 큰 비밀일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철광산의 비밀 말고 그녀에게 바랄 만한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육장봉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 일을 그냥 마음속에 담아 두기로 했다. 그리고 늘 육장봉을 경계해야 하며, 그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되뇌였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육 대장군이 가는 길에 데려다주는 거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변경의 백성들은 이런 광경을 보게 되었다.
육 대장군이 말을 타고 월씨 가문 마차 옆을 호위하며 함께 행화루에서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말해 줄 사람이 있나? 내가 눈이 침침한 건가?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던 대장군이 대낮에 기루를 다니다니? 그것도 어젯밤 내내 기루에 있다가 이제야 나온 건가?”
“무슨 기루를 돌아다녀? 그 동태 눈깔 똑바로 뜨고 보란 말이야. 대장군 옆에 있는 마차가 누구네 집 마차인지?”
“누구네 집인데?”
“월씨 가문!”
“월씨 가문? 내가 생각하는 그 월씨 가문인가?”
“변경에 월씨 가문이 몇이나 돼?”
“월씨 가문에는 어린 낭자가 가주로 있잖아? 저 마차 안에는 누가 타고 있지?”
“월씨 가문의 하인이 아닌 건 분명해.”
“맞아. 하인이라면 대장군의 호위를 받을 자격이 없지.”
“그럼 누구야?”
사람들은 여기까지 말하자, 저마다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머, 오늘 이 배 괜찮네. 열 근 주세요.”
“나도 두 근 주세요.”
“만두, 뜨끈뜨끈한 만두요!”
“소병(燒餠), 방금 구운 소병이요!”
마차 안의 월령안은 떠들썩한 소리를 들었다.
길에는 행인들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 호객 소리, 흥정하는 소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귓전에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그녀는 문득 바깥의 시끌벅적한 광경을 보고 싶어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눈을 들자마자, 육 대장군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월령안은 순간 멍해졌다. 육장봉이 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단 말인가.
‘대체 내가 뭘 본 거야?’
* * *
월령안은 변경에서 여러 해 동안 사업을 했다. 수완이 특별히 뛰어나다고는 못 하더라도, 각 부의 관리들과는 다소 교분을 쌓고 있었다.
조정의 기밀에 관한 일은 알아볼 수 없지만, 진사 몇 명의 소식을 알아보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집사에게 친한 관리를 찾아 당제와 초성의 일을 알아보라고 분부했다.
이튿날, 소식이 전해져 왔다.
“아가씨, 당제와 초성의 죄명은 과거에서의 부정행위입니다. 증거가 확실해서 이미 판결이 났습니다. 사건 관계자 말로는 장 부승상께서 엄격하게 조사해서 처리하라고 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집사는 이 소식 외에도 또 당제와 초성의 사건 기록을 한 부 베껴 왔다. 거기에는 사건의 상세한 경과와 증인, 증거에 관한 내용이 첨부되어 있었다.
증거는 매우 충분했다. 공문서만 보면 당제와 초성은 절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게 아닌 것 같았다.
“고작 사흘 사이에 절대 뒤집을 수 없는 사건으로 만들다니. 장 부승상의 수완이 대단하구나.”
월령안은 두어 장 넘겨보고는 싸늘하게 웃었다.
“작년 과거에서 있었던 사건까지 거론하다니. 아주 뻔뻔하기 짝이 없군.”
“아가씨, 이 사건은 뒤집을 수 없습니다. 과거 부정행위에 관련된 일이라서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합니다.”
집사가 무거운 말투로 일깨워 주었다.
그 때문에 유경장도 술에 취하기만 할 뿐, 감히 찾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증거가 충분했다. 게다가 선비들의 앞길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황제라도 뒤집기가 힘들었다.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겠지만, 사람에게 일이 생기면 안 된다. 형부에 손을 좀 써서 그들이 감옥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해 주게. 가능하다면 먼저 그들 식구부터 감옥에서 꺼내 잘 다독이고.”
월령안은 당제와 초성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두 사람의 됨됨이도 알지 못했고, 그들이 부정행위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사건은 이미 확정되어 뒤집을 수 없는 안건이 되었다. 부정행위를 했다는 꼬리표가 두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게 되었다.
손을 한 번 들어 두 가문의 앞길을 망쳤다. 장 부승상은 정말 악랄한 사람이었다.
월령안은 공문서를 뒤적거리다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사건은 아무 문제 없이 완벽하게 처리되었다. 모든 증인과 증거를 검증할 수 있었다.
“소인이 지금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집사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사건은 그들의 능력으로는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공문서를 덮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 노부인의 생신 예물을 삼 할 더 준비하게. 그리고 장씨 가문에서 갓 변경에 왔다고 하는 외사촌 아가씨가 도대체 무슨 내력이 있는지도 조사해 보게.”
장 부승상의 이번 계략은, 장씨 가문이 청주 쪽과도 관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게 했다.
장씨 가문은 대사족으로서 줄곧 그녀를 무시했다. 하지만 그녀는 장씨 가문에 밉보인 일이 없었고, 장씨 가문에서도 그녀를 괴롭힌 적이 없었다. 장씨 가문으로서는 그녀처럼 하찮은 인물은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장씨 가문에서 갑자기 유경장의 친구에게 손을 썼다. 그리고 그 사실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이를 보면 결코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었다.
“예, 아가씨.”
집사가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장군왕부에 명첩을 보내, 장군왕께 언제 시간이 되는지 여쭈고 내가 찾아가서 뵙고 싶다고 전하게.”
월령안은 장군왕과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장군왕부의 세력을 빌리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집사가 대답하고 물러가려는데 하인이 들어와서 보고했다.
“아가씨, 유 공자께서 왔습니다.”
“술은 깼더냐? 화청에 잠깐 앉아 있으시라고 해라.”
월령안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집사에게 물러가라고 눈짓했다. 잠깐 망설이다가 탁자 위의 공문서를 들고 갔다.
유경장은 술에서 깨고 나자, 자신이 술김에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부끄러운 나머지 월령안을 찾아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한 번은 했지만, 결국 오고 말았다.
월령안의 말이 맞았다. 회피는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벌어진 일을 마주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유경장은 심한 숙취 때문에 얼굴이 여전히 부어 있었다. 풍류가로서의 고고함과 고상함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부잣집 도련님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월령안은 들어와서 유경장의 이런 모습을 보자,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의기양양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방자하고, 자유분방하면서도 다정한 재자 유경장을 더 높이 샀다.
“령안…….”
월령안이 나타나자, 유경장이 쭈뼛쭈뼛 일어섰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더니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 못했다.
월령안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손에 든 공문서를 건네주었다.
“이것은 당제와 초성의 사건 공문서예요. 좀 보세요. 두 사람이 도대체 부정행위를 한 건가요, 안 한 건가요?”
“그 둘이 부정행위를 했을 리가 없소. 그들은 작년에 순위가 높지 않았소. 이갑(二甲 – 전시의 2등) 말미밖에 되지 않았지. 그 두 사람의 학식과 재능을 가지고도 그 정도 성적밖에 못 거뒀다는 것은 이미 낙방한 거나 다름없소. 그 정도 성적을 받을 거였으면 애초에 부정행위를 할 필요가 없었소.”
유경장은 거만하게 공문서를 탁상 위에 던져 놓고는 보기를 거절했다.
월령안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다시 공문서를 들어 유경장의 손에 쥐여 주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잘 보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빼놓지 말고요.”
“그래, 내가…… 보겠소.”
재자로서의 오기는 월령안 앞에서 일순간에 무너졌다.
그는 얌전히 앉아서 사건부를 펴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갔다. 보면 볼수록 표정이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그는 한참이 걸려 손에 든 얇은 사건부를 다 보았다. 그러고는 불안한 표정으로 월령안을 바라보며 떨면서 입을 열었다.
“이게, 이게 사실이오?”
“죄를 판결하려면 반드시 증거가 확실해야 해요. 여기에 있는 증인은 신문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예요. 증거도 분명히 존재하고요.”
월령안은 유경장의 ‘단순한’ 모습을 보자, 그가 과거시험에서 몇 차례 낙방하는 것도 결코 나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관료 사회에서는 재자의 오기와 고고함만 가지고는 멀리 갈 수가 없었다.
“그들과 만나 볼 수 있게 손을 써 볼게요. 사적으로 만나서 그들에게 자세한 경위를 물어보세요.”
월령안은 말만 이렇게 했을 뿐, 사실은 아무 기대도 하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