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찢어졌으면 꿰매면 된다
“야율제는 월령안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월령안은 황금당의 사람이 성공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 사람을 보내 북요 귀족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겁니다. 남원대왕을 바꾸기 위해서 두 가지 방면으로 준비를 한 셈입니다. 물론, 이번 행동에는 정치적인 고려도 들어가 있습니다. 상업계에서는 월령안의 이러한 행위를 정치 투자라고 하지요.”
만약 예전이었더라면 육장봉은 월령안의 실력을 감춰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황제가 월령안을 미워하는 이유는 그녀의 성품과는 상관이 없었다. 단순히 월령안이 상인 집안 출신이라, 무슨 일이든 이익을 기준으로 해서 처리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육장봉은 이 사실을 안 다음부터는 원래의 생각을 포기했다.
그로서는 월령안의 출신을 바꿀 수 없었다. 월령안도 상인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황제는 월령안에 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역효과가 나서 그녀를 더욱 싫어할 수도 있었다.
황제가 월령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는 황제에게 그녀의 능력을 보여줄 셈이었다. 그래서 황제에게 그녀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생각이었다.
그는 월령안을 잘만 이용한다면, 장군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할 거라고 황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월령안이 북요에서 한 일을 자신이 먼저 황제에게 알렸다. 그가 말하는 편이 다른 사람이 살을 붙여 가며 황제에게 알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육장봉의 포장을 거쳤다 해도, 황제는 월령안이 한 일을 듣자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치 투자라고? 간도 크구나.”
황제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미리 새 남원대왕에게 투자해서 등극하게 돕다니. 또 북요 귀족과의 사이도 돈독해지고. 이 장기 말이…… 참 행보가 거침없구나.”
만약 월령안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했다면 황제는 기뻐했을 것이다. 그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 참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
“홍려시(鴻臚寺 – 과거 외교, 조회 예절 등을 담당하는 관청)의 인간들은 다 허수아비라는 말이냐?”
‘이렇게 좋은 기회도 쥘 줄 모르다니.’
육장봉은 홍려시 사람들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때, 그래도 홍려시의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 했다.
“폐하, 홍려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습니다. 그러니 일 처리도 그렇게 편하게 하지는 못하지요. 폐하, 과연 주나라의 신하가 감히 북요 귀족의 뇌물을 쉬이 받겠습니까?”
황제는 침묵을 지켰다.
“그들도 같은 생각일 테니, 뇌물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적과 내통하는 것은 큰 죄이니까요. 하지만 상인이 준 돈은 다릅니다. 상인이 원하는 것은 이익일 뿐, 정치에 간섭하려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그리고 관리들에게 상인은 마치 손안에 든 개미처럼 언제든지 눌러 죽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월령안의 신분이라면 여러 나라에서 일을 처리하기 편리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월씨 가문이 각 나라에서 장사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월씨 가문의 사업은 천하에 널려 있으니, 각국에는 월씨 가문의 자금을 받는 관원이 있을 겁니다. 그 관원들은 월씨 가문의 돈으로 벼슬길을 뚫고, 월씨 가문을 보호합니다. 월씨 가문은 그 힘을 빌려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고요.
그들은 단순한 장사를 하는 것이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또 나랏일이나 정치 등에 참여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여러 나라가 모두 월씨 가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북요뿐만 아니라 월씨 가문은 서하(西夏), 금나라의 관원들과도 교류가 있었습니다.
월씨 가문이 망한 뒤, 이 교류는 비록 끊어졌지만, 월령안이 삼 년 전부터 그 관계를 조금씩 회복해왔습니다. 그 삼 년 동안, 월령안이 우리 전선에 보낸 병기 대다수가 모두 금나라 군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평생 그의 밥줄을 책임져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이렇게 여러번 그녀의 편을 들어 주는 말을 한 보람이 없을 것이다.
조정에서 육장봉은 그 누구를 위해서도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의 몸값은 대단히 비쌌다.
황제는 침묵을 지키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 병기들은 모두 금나라에서 나온 게 확실하냐? 개인 철광산과 관련이 없다는 말이지?”
“모릅니다.”
육장봉은 아주 총명했다.
“병기를 압송한 사람은 한 달 뒤에 도착합니다. 그때 폐하께서 사람을 보내 검사해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직접 보지 않으면 황제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황제는 직접 보아도 여전히 믿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황제는 월령안을 믿지 않았다.
“월령안은 도대체 무엇을 하느라 심복을 북요 변방으로 보낸 것이냐?”
황제의 질문이 끝났다. 그는 또 엄숙하게 육장봉이게 경고했다.
“월령안이 야율제를 상대하느라 심복을 변방에 보냈다는 말은 하지 마라. 심복을 사람을 보냈을 무렵, 야율제는 변경에 아직 오지도 않았다. 월령안에게 앞일을 알아낼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육장봉이 덤덤하게 말했다.
“폐하, 신은 월령안이 아닙니다.”
그라고 월령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 월령안의 의중을 분석해 봐라. 조계안 그 자식은 항상 월령안을 하늘만큼 칭찬하지. 말끝마다 월령안 편을 든다니까. 너는 매사를 공평하게 처리하니 월령안을 감싸지 않겠지. 짐은 네 의견을 듣고 싶구나.”
황제는 조계안 이야기가 나오자 또 불쾌해졌다.
육장봉은 시선을 내리깔고,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말했다.
“전쟁이 끝나고 양국이 화해했습니다. 상인으로서 이렇게 좋은 시기를 놓친다면, 제대로 된 상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단지 장사를 위해서 그랬다는 말이냐?”
황제는 아무래도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월령안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일도 있을 겁니다. 그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북요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월령안도 어려서 무얼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또 나중에 두 나라가 전쟁이 나면서 사람을 보내기도 불편했겠지요. 지금 두 나라가 평화 회담을 하고 있고, 우호 관계를 회복했으니, 북요에 사람을 보내는 것도 정상으로 보입니다. 물론, 어쩌면…….”
육장봉은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어 나갔다.
“어쩌면 월씨 가문에 정말 개인 철광산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바로 주나라와 북요의 변방 같은 곳에 말입니다.”
육장봉은 ‘공평’하다는 평가에 부응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말해 봐라. 만약 월령안에게 철광산이 있다면 왜 내놓지 않는 것이냐? 짐이 그녀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보장까지 하지 않았느냐? 전쟁도 끝났고 장봉이 너와 이혼도 하였는데 월령안은 또 뭘 하려는 것이냐? 우리 주나라에 지금 철이 부족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냐? 월령안은 개인의 이익이 그리도 중요하다는 말이냐?”
철광산 이야기가 나오자 월령안에 대한 황제의 불만은 한층 더 많아졌다.
육장봉은 침묵을 지켰다.
만약 한 달 전이었다면 그도 황제와 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월령안에게 왜 내놓지 않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월령안에 대한 황제의 태도를 알게 되었다. 그는 드디어 그녀가 왜 철광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죽어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지 알았다.
황제는 월령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 번도 숨긴 적이 없었다.
황제가 제아무리 여러 번 철광산 일을 가지고 월령안에게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믿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황제는 월령안을 믿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령안도 똑같이 황제와 황제의 승낙을 믿지 못했다.
만약 월령안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철광산을 내놓는다면, 단시간 내에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후환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황제는 계속해서 월령안을 의심할 것이다. 그녀에게 동광산, 철광산, 금광산 등등이 있다고 의심하리라.
그때가 되면, 월령안은 뭘 내놓아야 할까.
목숨을 내놓아야 할까? 아마 그녀 한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그의 처지도 똑같았다. 황제는 그를 믿고 있었고, 그도 황제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병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와 월령안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만 믿었다.
육장봉은 황제에게 북요의 일을 보고하느라 입궁했을 뿐이다. 월령안의 일은 잠시 그의 소관이 아니었다. 그래서 황제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황제도 육장봉의 입에서 대답을 얻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두어 마디 투덜거린 후 말을 멈췄다.
육장봉은 적당한 시기에 물러나 황궁을 나갔다. 그리고 추밀원으로 향했다.
추밀원의 관원들은 어젯밤 전부 추밀원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밤을 새운 끝에, 육장봉이 맡긴 임무를 날이 밝기 전에 완성했다.
육장봉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관원들은 일제히 피곤함을 무릅쓰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취합한 문서를 육장봉에게 바쳤다.
“대장군, 최근 삼 년간 추밀원의 모든 사무를 이 책자에 취합했습니다. 대장군께서 상세한 보고를 보시고 싶으시다면, 그것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육삼, 받아라.”
육장봉은 추밀원의 사무를 처리하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문서를 건네는 관원의 겨드랑이 쪽에 실밥이 튀어나온 것을 보자, 순간 공문을 보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관복이 찢어졌으면 꿰매면 된다. 그의 옷도 찢어졌으니 역시 꿰맬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왜 진작에 생각하지 못했지.’
“가자, 공문을 가지고 저택으로 돌아간다.”
육장봉은 추밀원에 들어서자마자 앉지도 않고 바람처럼 떠나갔다. 남겨진 관원들은 하나같이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 * *
육장봉은 말을 몰아서 자택으로 돌아왔다. 그는 말에서 내리면서 육삼을 비롯한 모두가 피곤한 기색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친위대가 그를 따라 꼬박 이틀 밤낮 동안 동분서주하면서 한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모두 가서 쉬어라. 오늘은 외출하지 않으니 당직을 설 필요가 없다.”
육장봉은 손을 들어 육삼에게 뒤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알렸다.
“장군, 곁에 시중들 사람이 없습니다.”
육삼은 그렇게 말하며 계속해서 육장봉을 뒤따라갔다.
“육일에게 돌아오라고 해라.”
육장봉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분부했다.
“예, 장군.”
육삼은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게는 그 어떤 불만도 없었다.
‘육일과 육이 둘 다 돌아왔으면 좋겠네.’
장군 곁에서 시중을 드는 일은 체면이 서긴 하지만, 부담도 컸다.
그는 이틀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무슨 실수라도 해서 육일과 육이의 전철을 밟게 될까 봐 정신이 바짝 긴장되어 있었다.
드디어 마음 편하게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을 맞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육삼과 다른 호위병들은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돌아갔다. 일행은 드러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모두 무척이나 피곤한 듯, 일 초도 되지 않아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장봉은 서재로 돌아와, 원래는 치우려고 연탑 위에 놓아두었던 옷을 꺼내 집사에게 맡겼다. 그리고 침모에게 맡겨 찢긴 곳을 잘 수선하라고 분부했다.
집사는 이 옷을 당연히 알아보았다. 월령안이 육장봉에게 손수 지어 준 이 옷은 그가 일부러 찾아낸 것이었다.
육장봉의 말을 듣자, 집사는 즉시 기쁜 마음으로 옷을 들고 저택에서 가장 솜씨 좋은 침모를 찾아갔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솜씨를 발휘해 꿰맨 흔적도 남지 않도록 수선해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