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육삼의 운
민병방이 청렴하지 못하다면, 그들이 관할하는 지역도 청렴하지 못하다는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끝장났다고 여기고 있을 때, 육장봉이 덤덤하게 말했다.
“지나간 일은 더 따지지 않겠다. 오늘부터, 오지랖 넓게 굴지 말고 각자의 업무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관원들은 육장봉의 말을 듣고 하나같이 새 생명을 얻은 듯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는데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육 대장군은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문서만 보고도 민병방의 교활한 계략을 쉽게 파악했다.
오늘부터 육 대장군이 뭘 하라고 하면, 그들은 절대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할 것이다.
“좋다!”
육장봉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나는 새로운 제안서를 보아야겠다.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때 못 한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로 부임한 관리는 횃불 세 개를 태우는 것처럼 기세등등한 법. 육장봉은 추밀원에서 횃불 세 개를 전부 불사르고 떠나갔다.
남은 관리들은 서로 마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운명을 받아들이듯 추밀원에 남아서, 내일 육 대장군에게 보고할 내용을 사실대로 정리했다.
* * *
육장봉은 추밀원을 떠난 다음, 조금도 쉬지 않고 월령안이 준비한 마차를 타고 군영으로 갔다.
“용로 대로로 가자.”
육장봉은 말을 타기 전에 육삼에게 말했다.
“어……. 네, 대장군.”
육삼은 이 시간에 용로 대로는 붐빌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월씨 저택이 용로 대로 부근에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육삼은 당장 입을 꾹 다물었다.
육삼은 마차를 몰고 용로 대로에 왔다. 이 무렵 거리의 행인들은 많지 않았다. 마차도 속도를 줄일 필요가 없었다.
앞이 바로 송취 골목 입구였다. 육삼은 일부러 속도를 늦추었다. 장군이 무슨 분부를 하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송취 골목 입구에 거의 도착할 때가 되어도 육 대장군은 입을 열지 않았다.
육삼이 넌지시 한마디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마침 ‘소부(蘇府)’라는 표지를 내건 마차가 송취 골목에서 나왔다.
육삼은 눈앞이 반짝해졌다.
‘이제 이유가 생겼네!’
육삼은 친위대 열두 명 중, 육일은 능력이 가장 좋고 전투력이 가장 강하며, 육이는 일을 가장 열심히 하고 뭐든 잘하였고, 육십이는 장군과 가장 가깝게 지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각 분야에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특출하지도 않았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만, 장군의 옆에서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예전에 육삼은 자신이 각 방면에서 더없이 평범한 수준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다른 것은 평범할지 몰라도, 운과 팔자를 따져 보면 친위대 열두 명 중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운이 따를 때는 뭐든지 잘 풀린다.
마치 지금처럼, 그가 장군에게 어떻게 티를 내지 않고 월 낭자네 저택 문어귀에 도착했다는 말을 할까 고민하는 순간, 소씨 가문의 마차가 송취 골목에서 나왔다.
‘눈앞까지 굴러온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육삼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속도를 늦추었다. 마차를 한쪽에 세웠더니 육장봉에게 말했다.
“장군, 소씨 가문의 마차가 송취 골목에서 나왔습니다.”
“소씨 가문?”
마차 안에 있던 육장봉은 송취 골목에 거의 도착했을 때가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월씨 저택에 갈 생각이 없었다. 이 길을 고른 이유는 한때 말을 타고 이 길을 자주 지나가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뒤에서 그를 몰래 훔쳐보았다. 용감한 여인은 그가 이곳을 지날 때면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그를 훔쳐보던 사람 중에 월령안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갑자기 이 길로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육삼의 말을 듣자, 망설여졌다.
소씨 가문은 이미 막다른 길에 몰렸다. 황제의 미움을 한껏 받는 상황이었다. 소 승상이 제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더는 어쩌지 못할 것이다.
월령안도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소씨 가문이 이런 시기에 찾아왔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억울함을 당할까 걱정되지는 않았다. 도리어 그녀가 욕심을 부려 소씨 가문을 짓밟으려 할까 봐 걱정되었다.
소씨 가문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소 승상, 그 늙은 여우는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시기에 월씨 저택에 온 것은 아마도 일부러 약한 척을 해서, 월령안이 손을 쓰도록 유도하려는 게 틀림없었다.
월령안이 손을 쓴다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소 승상에게 이용당할지도 몰랐다. 소 승상이 이 일로 황제 앞에서 동정을 살 수 있었다.
그는 월령안에게 몇 마디 충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아가씨는 워낙 간이 커서, 몰래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지 몰랐다.
육장봉은 눈 깜짝할 새에 결정을 내렸다.
“월씨 저택으로 가자.”
“네, 장군.”
육삼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예전의 장군은 일 년 내내 감정의 기복이 있을 때가 아주 드물었다. 그러나 요즘은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 기분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변덕스럽기 그지없었다.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장군의 감정 변화는 전부 월 낭자와 관련이 있었다.
월 낭자는 장군에게 남다른 존재인 것이 분명했다. 장군은 월 낭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중요하지 않더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육일, 육이와 육십이 모두 월 낭자의 일 때문에 봉변을 당한 거잖아.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벌을 받고, 새내기들과 함께 훈련하고 있다니. 참 창피한 노릇이야.’
육삼은 마차를 몰고 저물어가는 햇빛을 받으며 송취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월씨 저택으로 천천히 향했다.
소씨 가문의 사람은 마차를 타고 떠나고 있었다. 송취 골목을 나섰을 때, 뒤에서 기척이 들리자 창문을 열고 힐끔 내다보았다.
화려하고 커다란 마차가 송취 골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곧 얼굴을 폈다.
“저 마차에는 표지가 없군. 대단한 인물은 아니겠지. 송취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면 고귀한 집안이니까, 가끔 호화로운 마차가 드나드는 건 이상하지 않아.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그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름대로 품위 있는 척하는 모습이었다.
만약 그가 마차의 정면을 봤더라면, 마차를 모는 사람을 봤더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육 대장군과 월령안의 사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알 기회를 놓쳤다. 또 월령안을 계략에 빠트릴 기회도 놓쳤다.
소씨 가문의 사람은 송취 골목으로 들어간 마차에 탄 사람이 육 대장군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월령안의 이웃들은 마차가 송취 골목으로 들어온 순간, 바로 육 대장군이 또 온 것을 알았다.
“대장군이 점심에 저 마차를 타고 갔잖아. 지금 마차에 탄 사람도 틀림없이 대장군일 거야.”
“봤어? 봤어? 지금 마차를 모는 사람은 낮에 마차를 몰던 그 사람이 맞아. 내가 알아봤는데, 저 사람은 대장군의 호위병이래. 대장군의 호위병이 모는 마차를 탈 수 있는 사람이 대장군 말고 또 누가 있겠어?”
“대장군의 다른 호위병들은? 왜 안 보이지? 낮에는 호위병이 많이 뒤따르고 있었잖아? 지금은 왜 마차 하나밖에 없지?”
“그거야…….”
그 사람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마차를 몰던 육삼이 월씨 저택의 대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마차를 몰고 월씨 저택으로 들어갔다.
“봐봐. 마차가 월씨 저택으로 들어갔잖아. 그래도 대장군이 아니야?”
마차가 월씨 저택으로 들어가자, 하인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 밑도 끝도 없는 유언비어도 차단해 버렸다.
* * *
월령안은 면으로 지은 편안한 치마를 입고 식당에 앉아 있었다.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하인이 황급히 와서 보고했다.
“아가씨, 대장군께서 오셨습니다.”
“대장군이라고?”
젓가락을 쥔 월령안의 손이 멈칫했다.
“정말 대장군이 확실한가?”
‘육장봉은 하루 세끼 시간 맞춰서 오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대장군께서 이미 본채로 오고 계십니다.”
어린 하녀는 뛰어온 탓에 숨을 헐떡였다.
그녀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월씨 저택은 크지 않았다. 심지어 육 대장군은 다리가 길어 그의 한 걸음은 하녀의 두 걸음이었다. 필사적으로 뛰어오지 않았다면 육장봉보다 먼저 도착해 월령안에게 보고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밖에서 일부러 세게 내딛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월령안은 발걸음 소리를 듣자마자 육장봉이 왔음을 알아챘다.
월령안은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이 그녀 혼자 먹을 분량밖에 안 되는 것을 보았다. 쓴웃음을 지으며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일어서서 하녀에게 분부했다.
“주방에 가서 대장군이 좋아하시는 요리를 몇 가지 더 내오라고 해라.”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하녀가 물러가기도 전에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문 입구에서 육장봉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설령 진상 손님이라고 해도, 일단 찾아온 이상 주인 된 도리로서는 접대해야 했다.
육장봉은 걸음이 아주 빨랐다. 월령안이 막 병풍을 돌아서 나오자마자 그가 들어왔다.
다행히도 육장봉은 방 안에 들어선 다음에는 발걸음을 늦췄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월령안이 앞으로 나가다 그와 부딪혔을지도 모른다.
육장봉의 가슴팍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이미 겪어 봐서 알고 있었다. 다시는 부딪히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대장군.”
월령안은 걸음을 멈추고 바로 뒤로 물러서서 거리를 넓혔다. 그리고 육장봉에게 읍했다.
“내가 때를 잘못 맞춰 와서 당신의 식사를 방해한 거요?”
육장봉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월령안의 정수리를 넘어 탁자 위의 음식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월령안이 평상복으로 입은 소박한 치마를 보았다. 갈아입은 지 얼마 안 된 것이 분명했다.
소씨 가문 사람은 방금 떠났다. 이 양심 없는 아가씨의 성격대로라면, 손님을 만날 때는 절대로 이렇게 소박하고 편안한 옷을 입지 않을 것이다.
“장군께서는 저녁 식사를 하셨나요? 조금 드시겠어요?”
월령안은 육장봉이 참 얄밉게 느껴졌다.
‘이 시간에 찾아오다니. 육장봉은 눈치도 없나?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겠어?’
“그러지.”
육장봉은 월령안 얼굴에 걸린 환한 미소를 보자,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월령안은 환하게 웃는 만큼, 속으로는 그를 심하게 욕하고 있으리라.
그는 오늘 진상 손님이 되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월령안도 익숙해졌을 것이다.
주방 쪽에서는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월령안과 육장봉이 자리에 앉아 말을 시작하기 바쁘게 하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를 내왔다.
요리는 육장봉의 입맛에 맞는 것들이었다. 주방에서 대충 만들지 않고 열심히 준비한 게 분명했다.
물론, 주방의 일꾼들에게는 미래를 예측하는 재주가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육삼이 미리 언질을 줘서 사전에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는 너무 배부르게 먹지 않는 편이 좋았다. 월령안은 항상 칠할 정도만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했다.
그러나 육장봉과 함께 식사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많이 먹게 되었다. 체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조금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육장봉이 또 밖에서 산책하자고 할까 봐, 선수를 쳐서 그를 화청으로 인도했다.
육장봉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월령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꼬리를 미세하게 위로 올리며 그녀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