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283)화 (283/1,004)

283화 육 대장군도 참 힘들겠어

오늘의 월령안은 역시 다정했다.

그는 앞으로 월령안이 사고를 많이 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그가 나서서 뒤처리하면, 이렇게 친절한 월령안을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월령안이 지금 육장봉의 생각을 읽었다면, 틀림없이 펄쩍 뛰며 바로 따귀를 날려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육장봉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장군께서는 말을 타실 건가요, 아니면 마차를 타실 건가요?”

“말…… 마차를 타지.”

육장봉은 말을 타는 게 익숙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입은 치마를 힐끔 보고, 또 자기 몸에 걸친 꼭 맞는 옷을 보았다. 조금만 동작을 크게 해도 두루마기가 팽팽하게 조였다.

결국, 그는 말을 타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월령안과 함께 마차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장군, 화청에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바로 마차를 준비하라고 할게요.”

월령안은 육장봉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하인들에게 눈짓으로 분부하고, 자신은 육장봉과 함께 화청으로 돌아갔다.

약 일각 후, 하인이 와서 마차가 준비되었다고 보고했다.

두 사람은 화청에서 나와 뜰에 세워진 마차 두 대를 보았다.

앞뒤로 세워진 두 마차 중, 앞쪽의 마차는 크고 화려했다. 마차를 끄는 말도 더없이 훌륭했다. 그리고 마부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육삼이었다.

뒤쪽의 마차는 푸른 유포를 씌운 평범한 마차였다. 늙은 말 한 필이 마차를 끌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기운이 없어 보였다. 마부도 평범한 늙은 하인이었다.

이 마차 두 대는 그와 월령안 각자를 위해 준비한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대장군, 어서…….”

월령안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육장봉이 제자리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자, 한마디 덧붙였다.

“급한 나머지 제대로 준비를 못 했네요. 대장군께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대로 준비를 못 했다고?”

육장봉은 고개를 돌리고 월령안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보건대 준비를 아주 철저하게 한 것 같소.”

월씨 저택에는 작은 마차 한 대뿐이라는 사실은 육장봉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월씨 가문의 하인은 어디서 이토록 화려한 마차를 구해 왔을까. 정말 대단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능력을 제대로 된 곳에 쓰지 못했군.’

그가 보기에는 월씨 가문의 하인들은 제대로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월령안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육장봉이 성큼 마차에 올라타자,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두어 걸음 배웅한 다음, 육장봉이 마차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쪽의 마차로 돌아왔다.

월령안은 마차에 올라 자리에 앉자, 마부를 재촉했다.

“앞의 마차를 따라가라.”

“네, 아가씨.”

마부는 대답하고 채찍을 휘둘렀다. 그리고 육장봉의 마차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두 마차는 앞뒤로 문을 나섰다. 앞쪽의 마차 주변에는 육 대장군의 친위대가 보호하고 있었다. 앞서 육 대장군 일행이 월씨 저택에 들어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마차를 탄 사람이 육장봉임을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월씨 저택의 주변 이웃들은 부자이거나 지체 높은 집안이었다. 어제 귀족들 사이에 퍼진 소문은 그들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관아의 사람들이 찾아와 어젯밤의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그날 밤, 육 대장군이 월씨 저택에 온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월씨 저택에서 밤을 보내지는 않았다. 물론, 월령안을 지치게 해서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제 소문을 듣고도 육장봉과 월령안을 위해 해명을 해 주지 않았다. 단지 고상하게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마치 고주망태 가운데 홀로 말짱한 정신을 가지고 깨어 있는 자의 우월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나 오늘 육 대장군이 월씨 저택에서 몇 시진이나 보내고, 또 앞뒤로 마차를 타고 떠났다. 이제는 이웃들도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 말짱한 정신’으로 깨어 있다는 우월감이, 혹시 착각은 아니었을까?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 법. 월령안과 육 대장군의 소문이 어쩌면 진짜일 수도 있었다.

그럼 그날 밤은 둘째 치고, 오늘만 따져 보자. 육 대장군은 분명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고 왔다. 그런데 월씨 저택에서 몇 시진을 보낸 다음, 마차를 타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무슨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 소문이 사실일까, 아닐까?”

“당연히 사실이지!”

“그날 밤, 무슨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당연히 있었겠지! 잘 생각해 봐. 그날 우리에게 경고하러 온 사람들이 육 대장군의 호위병들이 아니었나? 난 그때부터 그날 밤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이제야 말이 되네. 그날 밤, 애초에 강도 따위는 없었어. 월씨 가문 사람과 육씨 가문 사람들이 싸운 거야.”

“그렇게 말하고 보니 내 생각도 그래. 그날 밤, 월 낭자가 기분이 안 좋았던 걸 수도 있어. 그래서 육 대장군을 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거고. 그런데 육 대장군은 또 반드시 들어가겠다고 한 거지. 그래서 두 사람의 수하들이 싸운 거야. 결국, 그 뭐야,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그러고 보니 내 생각도 그래. 그렇지 않고야 왜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났겠어?”

“육 대장군도 참 힘들겠어. 아내랑 잠자리하는데 일단 싸우고 이겨야만 들어갈 수가 있다니.”

“육 대장군이 뭐가 힘들어? 진짜 힘든 사람은 육 대장군의 수하들 아니겠어? 들어가려면 일단 싸우기부터 해야 하다니. 얼마나 심하게 싸웠는지는 모르겠네.”

문 안에 숨어 구경하던 이웃들은 어느새 한데 모여들었다.

몇몇이 모여 떠들다 보니 대화는 색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날 밤 육 대장군이 월 가주를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괴롭혔잖아? 오늘 월 가주가 보복을 한 것 아닐까? 육 대장군의 다리 힘을 쫙 빼서 말도 못 타게?”

“아이고,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 그렇게 생각하니 육 대장군이 좀 부실해 보이네그려.”

“우리 주인님들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 곧 단오인데 육씨 저택에 보내는 선물을 몸보신하는 것으로 바꾸라고 말이야. 어쩌면 육 대장군이 아주 만족스러워할 수도 있어.”

“좋은 생각이야. 지금 가서 어르신께 말씀드려야겠네.”

“나도 가야지…….”

육장봉과 월령안이 모르는 사이, 둘을 둘러싼 염문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게다가 제법 그럴듯해서 믿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앞서 육장봉을 본 사람들은 그가 월씨 저택에 다녀온 다음에 옷을 갈아입은 모습을 보았다. 그것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 차림새가 이 소문의 신빙성을 더욱 높여 주었고, 소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소문이라는 것은 일부러 조사하지 않는 이상, 당사자들은 늘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되는 법이다.

훗날, 육장봉도 자기가 월령안에게 시달리는 바람에 말도 타지 못하고 마차를 타고 월씨 저택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소문을 알았을 때는 이미 단오 무렵이었다.

왜냐하면, 올해 단오에 육장봉 앞으로 들어온 선물은 모조리 녹용 아니면 호편(虎鞭 – 호랑이 생식기)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황제마저도 이 분위기에 편승해, 육장봉에게 정력에 좋다는 식자재를 잔뜩 보내왔다.

쓸 일이 전혀 없는 약재가 무더기로 쌓인 것을 보며, 육장봉은 얼굴을 굳히는 것 말고는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마차에 앉아 있는 육장봉과 월령안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잠시 후에 수횡천을 만날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마차는 형부 대문 입구에서 멈춰 섰다. 육장봉과 월령안이 차례대로 마차에서 내렸다.

“나를 따라오시오.”

육장봉은 제자리에 잠시 멈춰 섰다. 월령안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형부의 감옥으로 들어갔다.

육장봉과 함께 가자, 형부의 감옥이라도 다가와 막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의 뒤를 따라 감옥 문을 하나하나 지났다. 그리고 형부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비밀 감옥에 도착했다.

형부의 비밀 감옥은 한 칸밖에 없었다. 비밀 감옥의 네 면은 모두 얼음같이 차가운 벽이었다.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월령안은 힐끔 보고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안달하지도 않았다.

“문을 열어라!”

육장봉은 월령안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바로 육삼을 한 번 쳐다보았다.

육삼이 옆으로 걸어가 작은 도장을 석벽의 오목한 부분에 대고 눌렀다. 그러자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만 한 석판이 벽면에서 올라왔다.

석판에는 빨간색 화살표가 있었다. 석판의 둘레에는 각각 갑, 을, 병, 정…… 등 열 개의 천간(天干)이 검은색 작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육삼은 힘껏 석판을 돌려 빨간색 화살표가 검은 글씨에 맞물리게 했다. 빨간색 화살표는 가끔 어떤 글씨에서 잠시 멈추기도 했다.

월령안은 무슨 규칙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또 신경 쓰지도 않았다.

육삼이 반복적으로 여러 번 돌리고 나자, 잠시 후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석문이 천천히 열렸다.

월령안은 육삼이 향 한 대 태울 만큼의 시간을 들이고 나서야 감옥 문을 여는 모습을 보았다. 또 방금 걸어온 길에 관문이 여러 군데 있던 것도 떠올렸다.

그제야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부탁했지만, 수횡천의 소식을 왜 알아내지 못했는지를 깨달았다.

형부 비밀 감옥은 너무 삼엄했다. 육장봉을 제외하면 누구도 드나들 수 없었다. 그러니 아무도 비밀 감옥의 소식을 알아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이렇게 삼엄한 감옥에 수횡천을 가둔 것으로 보아, 조정에서도 수횡천이라는 이 죄인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수 오라버니를 구출하기란,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밀 감옥에 갇혀 있는 수횡천은 쇠사슬로 벽에 꽁꽁 묶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월령안의 마음속에는 걱정이 더해졌다.

‘조정에서 수 오라버니를 범인들의 우두머리 취급을 하고, 이렇게 삼엄한 감옥에 가둔 것도 모자라, 꽁꽁 묶기까지 하다니……. 손 하나 까딱할 자유도 주지 않았네. 정말이지…… 아무리 범인을 학대해도 정도가 있지.’

“수 오라버니?”

월령안은 마음속의 울화를 짓누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불렀다.

이 비밀 감옥의 환경은 너무 지독했다. 도저히 사람이 지낼 만한 곳이 아니었다.

비밀 감옥은 사방이 모두 벽으로 되어 있었다. 추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공기가 통하는 작은 구멍 몇 개 말고는 조금의 빛도 들 만한 틈이 없었다.

감옥 문이 갑자기 열리자, 빛이 스며들어왔다. 줄곧 어두운 곳에 있었던 수횡천은 밖에서 쏟아져 들어온 빛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월령안의 목소리를 듣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령안아, 네가 어떻게 여길 온 거야?”

잠시 후, 눈이 빛에 적응된 수횡천은 그제야 문어귀에 서 있는 사람을 제대로 볼 수가 있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육장봉!”

“수 맹주, 또 만났군.”

육장봉은 수횡천에게 나름대로 인사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비겁한 자식!”

수횡천은 가래침을 뱉었다.

“보아하니, 수 맹주는 기운이 넘치는군.”

육장봉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육삼에게 몸을 돌려 명령을 내렸다.

“오늘치 물과 음식 중 수 맹주 몫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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