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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80)화 (280/1,004)

280화 인간만사 새옹지마

물론, 육장봉의 상황도 그리 좋지 못했다.

육장봉이 공격할 때는 조계안의 상처를 신경 썼다. 하지만 조계안이 육장봉을 때릴 때는 전혀 신경을 써 주지 않았다. 아플 만한 곳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육장봉은 말에 올라타며 조계안에게 맞은 곳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려졌다. 말에 올라탄 자세도 어딘지 어정쩡해 보였다.

말도 주인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불안정하게 뛰기 시작했다.

“장군, 괜찮으십니까?”

육삼이 이를 보고 신경을 쓰듯 물었다.

육장봉은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월씨 저택으로 가자.”

육삼은 잠시 멍해졌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육장봉의 말을 끌었다.

그는 육일, 육이만큼 듬직하거나 일을 잘하지는 못했다. 대신 말수가 적고, 호기심도 적었다.

그는 육 대장군에게 버림받아 군영에서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육십이를, 새내기들과 함께 훈련하러 간 육일을, 실컷 얻어맞고 아직 일어나지도 못하는 육이를 떠올렸다.

육삼은 이들을 떠올리며 적게 말하고, 많이 움직이자고 다짐했다. 절대로 그 세 사람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었다.

* * *

육장봉은 아침 일찍 입궁하여 황제에게 청희 장공주의 잘못을 고하는 ‘참언(讒言)’을 올렸다.

그때 월령안은 집에 있으면서도 한가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떠나간 뒤에는 장부를 볼 생각도 들지 않고, 그가 오기 전 낮에 내리 잤더니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차를 올리라고 한 뒤, 안 서재에서 잡문을 읽었다. 그러면서 월령안과 육장봉 사이에 생긴 유언비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육장봉이 직접 찾아온 것을 보니, 그 일은 사실인 데다가 그가 따질 이유가 있는 게 확실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강압적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일은 쉽지 않을 거야. 어휴, 내가 어쩌다 또 육장봉의 비위를 거스른 거야?’

서재에 처박혀 책을 들고는 있었지만, 도무지 책을 읽을 기분이 아니었다.

월령안은 날이 밝은 뒤, 하인이 일어날 때가 되어서야 안 서재에서 나왔다.

그녀는 하인들을 모아 놓고 심문하지 않았다. 대신 부집사를 찾았다. 그리고 각 저택에 답례 선물을 돌리면서 그녀와 육장봉에 관한 소문이 도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육장봉 말로는 소문이 그녀의 저택에서 흘러나왔다고 했다. 그러면 분명 어제 찾아온 손님들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어제 찾아온 사람들이 그 몇몇 집안뿐이야. 이 소식을 알아내기 힘들지는 않겠지.’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부집사가 장군왕부에서 정확한 소식을 가져왔다.

소문의 근원을 알아내기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쉬울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소문은 바로 육십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사실 육십이가 소문을 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육십이는 그녀와 육장봉이 무언가가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 앞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말을 한 것뿐이었다.

할 일 없는 어떤 사람들이 상상력을 지나치게 발휘했다. 그 결과, 육장봉이 밤새 월씨 저택에 묵으며 월령안을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정도로 괴롭힌 바람에, 그녀가 낮에 잠을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유명인들의 풍문에 열광했다. 특히 육장봉은 늘 몸가짐이 바르고, 한 번도 여인들과 엮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구체적인 정보가 흘러나오자, 그날 바로 귀족 사회에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육장봉이 어젯밤 찾아왔을 때만 해도 월령안은 뜻밖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일이 좀 크게 번진 듯했다.

“육십이!”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를 악물고 육십이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이 골칫덩어리가!’

그녀는 이제 육장봉이 육십이를 대할 때 느끼는 무력감을 알 것만 같았다.

“아, 아가씨…….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제 여러 집에서 찾아오셨어요. 소문도 많이 퍼졌고요. 아니면 그들을 만나 해명이라도 해야 할까요?”

부집사는 깜짝 놀라 몸을 덜덜 떨었다. 이 일은 월령안의 명성과 연관되어 있었다.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해명해? 해명한다고 해결이 되겠나?”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남녀에 관한 풍문이었다. 실체도 없는 일들을 살을 붙여 가며 이야기를 했다. 더구나 그녀가 어제 온종일 잠을 잔 것도 사실이었다. 또 육장봉이 밤에 그녀의 집에 온 것도 사실이었다.

‘참 빌어먹을 우연이네. 하필이면 육십이의 그 말이…… 망할.’

육십이에게 그럴 만한 주변머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그가 일부러 그녀를 골탕 먹이려고 그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육장봉이 육십이에게 그 말을 하게 시켰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육장봉이 자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육장봉은 그녀와 혼인한 적조차 없기를 바라는데 밖에서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리자 화가 나서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육장봉은 오히려 그들이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을 것이다.

그런 육장봉이 육십이에게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을 하게 할 리가 없었다.

‘이 일은 육십이 그 자식이 사고 친 거야!’

부집사는 두려워 어쩔 줄 몰랐다.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긴장해서 말했다.

“그, 그럼 어떡하죠? 아가씨의 명성이…….”

“무슨 명성? 나한테 명성이 어디 있어? 육 대장군이 내가 자기의 명성을 더럽혔다고 말하는 걸 못 들었나?”

월령안은 울화통이 터졌다.

자신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마음이 약해져서 육십이에게 설옥고를 줬단 말인가. 만약 설옥고를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보니, 만약 육십이에게 설옥고를 주지 않았더라면 그저께 밤에 육십이는 그녀의 호위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육십이가 없었다면 그녀가 아무리 준비가 되어 있었어도, 황성사에 의해 크게 봉변을 당했을 것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랬지. 됐어……. 생각하지 말자.”

월령안은 육십이의 톡톡 튀는 성격을 떠올리자,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는 무심결에 말한 게 틀림없었다. 단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과하게 해석했을 뿐이었다.

“그럼…… 우리는 소문이 퍼지는 동안 손을 놓고 있자는 말씀이신가요?”

월령안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어떡해야 할지 내가 좀 생각해 보겠네. 먼저 나가 일 보게.”

비록 육십이가 저지른 일이었지만, 육장봉의 기분이 상했다. 그러니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하지만 이 일을 육장봉에게 어떻게 대답하라는 말인가.

만약 그녀의 하인이 함부로 입을 놀린 것이라면 당사자를 넘겨 육장봉더러 처리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입을 잘못 놀린 사람은 육십이였다. 그녀가 육십이를 넘길 수는 없었다.

월령안은 머리가 아팠다. 그런데 그녀의 머리를 더욱 아프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직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도 못 했는데, 하인이 와서 육 대장군이 왔다고 보고했다.

“정말 조금도 기다리지 못하는구나. 대장군은 자기 결백이 아주 중요한 모양이네.”

월령안은 손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감히 육장봉더러 더 기다리라고 하지도 못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아침에 외출할 때 갈아입었던 옷이었다. 이 정도 차림새면 무난해 보였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육장봉을 만나러 화청으로 갔다.

“대장군, 안녕하세요.”

화청에 들어선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읍하는 것으로 예를 올렸다. 또 아주 화사하게 웃음을 지었다. 두 눈이 예쁜 곡선으로 휘어졌다.

“무슨 사고라도 쳤소?”

월령안의 이러한 모습에, 육장봉은 그녀에게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있음을 알아챘다.

월령안은 무언가 찔리는 게 있을 때만 그의 앞에서 이렇게 달콤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

“유언비어에 관한 일은…….”

월령안은 속으로 자신의 불운함을 한탄했다. 그래도 얼굴은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밝혀냈소?”

육장봉은 방금 들어 올렸던 찻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네.”

월령안이 대답했다. 그리고 예를 끝까지 올리고 간곡하게 말했다.

“제가 아랫사람들을 엄히 다스리지 못한 탓에 장군께 소란을 피웠습니다. 지금 바로 사람들을 보내 해명하라고 하겠습니다. 장군의 명예를 되찾아드리겠습니다.”

“이게 해명한다고 될 일이오?”

육장봉은 굽혀진 월령안의 등허리를 보면서 자신이 잘못 봤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월령안이 이렇게 쉽게 잘못을 인정한다고? 나더러 육십이를 내놓으라고도 하지 않고? 육십이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느냐고도 묻지 않고? 월령안의 마음속에서는 내가 그래도 정직한 사람인가? 내가 지시했다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은 모양이군.’

육장봉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이상하게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안목이 나쁘지 않아.’

“비록 큰 효과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장군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염치없이 장군께 들러붙었다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장군과 제 사이는 깨끗하다고, 제가 장군께 헛된 망상을 품고 하인을 시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말을 퍼트렸다고 말씀하세요.”

월령안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육장봉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육장봉이 기쁜지, 화가 났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저 제대로 예의를 갖추어 사과한다면 트집 잡히지 않으리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떨어트리는 불벼락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예상과 달리, 육장봉은 단지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다.

“됐소. 이 일은 이렇게 넘어갑시다. 다시는 꺼내지 마시오.”

그는 이 일을 빌미로 월령안에게서 양보를 얻어내고 싶기는 했었다. 그런데 막상 허리를 끝까지 숙이고 그의 앞에서 조심스럽게 굴며 고개도 못 드는 월령안을 보자, 마음이 이상하게 불편해졌다. 심지어 죄책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착했지?’

육장봉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틈타 월령안을 괴롭히는 일 따위는 결국 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이 이러자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는 이렇게 비굴해서는 안 되었다. 밝고 자신감이 넘쳐야 했다. 눈부시게 반짝거려야 했다.

정작 월령안은 육장봉의 말을 듣고, 잘못 들었나 싶었다.

자신이 충분히 ‘진실된’ 자세를 보이지 않았나 싶어 다시 한번 읍하며 사과했다. 육장봉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나서야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육장봉이 ‘이미 지난 일은 따지지 않겠다’라는 말까지 하자, 월령안은 기쁘기는커녕 놀랍기만 했다. 심지어 경계심이 더욱 들었다.

“장군, 정말…… 신경 안 쓰시는 건가요?”

월령안이 고개를 들어 의심하는 얼굴로 물었다.

육장봉은 ‘품위’ 있거나 ‘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젯밤 육장봉의 태도를 보면 이 일은 좋게 마무리될 수가 없었다. 예전에 그와 얽혔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이번에 크게 혼쭐이 나지 않고는 육장봉이 절대 곱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런데 육장봉이 갑자기 따지지 않겠다니, 그럼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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