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267)화 (267/1,004)

267화 드디어 사고를 쳤구나!

묘 포두는 속으로 월씨 가문을 잠시 동정했다. 그러나 문턱을 넘어 저택으로 들어갔더니, 격투를 벌인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깨끗이 정리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조금 전까지의 동정심을 당장 버리고 버럭 소리쳤다.

“여기가 현장이란 말이냐?”

이렇게 깨끗한 현장에서 뭘 조사하라는 말인가.

현장을 보존하는 것은 상식이었다. 월씨 가문 사람들은 이런 것도 모르는 걸까.

집사가 다치는 바람에, 월씨 저택에서 묘 포두를 상대할 만한 사람은 육십이밖에 없었다.

육십이가 훌쩍 뛰어오더니 묘 포두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그리고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문짝을 가리켰다.

“묘 포두, 어디 가는 겁니까? 현장은 여기인데요.”

“이게 현장이라고?”

묘 포두는 더욱 화가 났다.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그래요! 강도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 할 때 우리가 제때 막았거든요. 어때요? 우리 월씨 가문 호원들이 대단하죠?”

육십이는 우쭐거리며 말했다.

어젯밤 전투에서는 대승을 거두었다고 할 만했다.

그들 몇이서 황성사 육칠십 명을 섬멸했다. 이만한 전공은 군에서도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여기가 현장 전부란 말이오?”

묘 포두는 문어귀까지 걸어가 떨어질락 말락 한 문짝을 가리키며 울컥해서 소리쳤다.

“맞아요!”

육십이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미쳤다고 그 말을 믿겠나.”

묘 포두는 화가 나서 발길질을 했다.

퍽!

반쪽 남은 불쌍한 문짝이 드디어 버티지 못하고 떨어졌다.

“앗……. 묘 포두, 이, 이건 현장을 훼손하는 거잖아요!”

육십이는 재빠르게 뒤로 한 걸음 풀쩍 물러났다. 가까스로 문짝에 깔리는 것은 면했다.

묘 포두는 육십이를 무시하고 부하를 데리고 떠나 버렸다. 이 월씨 저택 현장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바보 취급을 당한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지만, 바보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월씨 가문과 영녕후부의 이 두 사건이 깊게 연관되어 있으리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육십이는 멀어져 가는 묘 포두를 보고 히죽 웃었다. 그러더니 어르신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반쯤 들어가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장군이 떠나기 전에 월씨 저택의 대문을 잘 지키라고, 아무도 월 낭자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분부했던 일이 떠올랐다.

육십이는 졸린 눈을 비볐다. 그래도 문어귀에 얌전히 쪼그리고 앉아 대문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 * *

장군왕은 아침 일찍 영녕후부에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폐하께서 영녕후부에 손을 대셨구나. 조금도 기다릴 수 없으셨던 게야.’

그나마 장군왕부는 월령안이 어제 한마디 귀띔해 주어 미리 준비했기에 망정이었다.

장군왕은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월씨 저택에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후한 예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세자에게 월씨 저택에 가서 살펴보되, 겸사겸사 이화백 천 동이에 대해서도 월령안에게 말해 두라고 했다.

선물을 가지고 온 장군왕 세자는 월씨 저택의 산산조각이 난 대문을 보고 탄식했다. 속으로는 묵묵히 월령안을 동정했다.

월씨 저택의 대문이 사라졌으니, 하인에게 문을 두드리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장군왕 세자는 직접 앞으로 나가 말했다.

“나는 장군왕 세자다. 월 낭자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육십이가 딱 잘랐다.

“월 낭자를 만나려고요? 안 돼요! 우리 장군께서 당부하셨습니다. 어제 월 낭자가 대단히 지치셨으니, 오늘은 누가 오더라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우리 장군님을 찾아가세요. 월 낭자의 일은 우리 장군부의 일입니다. 대장군께서 처리하실 겁니다.”

“자네는 누군가? 대장군이 또 있어? 혹시 육장봉, 육 대장군을 말하는 건가?”

장군왕 세자는 감탄한 나머지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육 대장군, 이건 너무 빠른 거 아냐? 어제저녁에 몰래 나에게서 술을 사 가더니, 어젯밤에는 사람까지…… 손에 넣었다고?’

“저는 육 대장군의 친위대, 육십이입니다! 대장군이 저희 대장군 말고 또 누가 있겠어요?”

육십이는 하품을 하더니 또 쭈그리고 앉았다.

그는 어제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러나 장군이 문을 지키라고 했으니 졸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했다.

“정말 육 대장군이라고! 어젯밤, 육 대장군께서 하룻밤 내내 월씨 저택에 있었는가? 월령안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고?”

장군왕 세자의 두 눈에는 흥분의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거 엄청난 소식인데! 게다가 내가 제일 먼저 안 건가?’

육십이는 망설이며 말했다.

“그건 아닐 거예요. 아주 늦게 오셨어요.”

육장봉은 여기에 왔다가 갔고, 갔다가 또 왔다.

그도 장군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있으니까 월씨 저택의 현장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장군은 그를 조금도 믿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니 심통이 났다.

“그럼 오래 계시다가 가셨는가?”

장군왕 세자는 육십이가 쪼그리고 앉은 모습을 보았다. 그는 가장 신선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몸가짐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고, 육십이처럼 문턱에 함께 쪼그리고 앉았다.

“네.”

육십이는 시무룩하게 목소리로 대답했다.

“월령안과 단둘이서 얼마나 보냈나?”

장군왕 세자는 손을 비비며 마음속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마 반 시진이 넘을걸요.”

육십이는 대충 얼버무렸다.

장군이 떠날 무렵, 그는 막 영녕후부에서 돌아왔다. 장군과 월 낭자가 얼마나 함께 있었는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반 시진이 넘었다고?”

‘역시 무술을 연마한 사람이라 그런지 체력이 정말 좋네. 아주 부러워.’

육십이는 장군왕 세자를 흘겨보며 말했다.

“뭘 그렇게 많이 물으세요? 무엇을 하시려고요?”

“헤헤, 나야 월령안이 걱정되어 그랬지.”

장군왕 세자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월 낭자와 잘 아시는 사이십니까?”

육십이는 퍼뜩 정신이 든 듯, 경계하는 시선으로 장군왕 세자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니다. 그저 같이 장사를 하는 사이지. 어제 월씨 저택에 강도가 들었다고 해서, 걱정되어 찾아왔다.”

장군왕 세자는 바로 일어서더니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자신의 처지를 확실히 했다. 육장봉에게 그의 여인을 노린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았다.

‘장군부의 사람은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지…….’

장군왕 세자는 문어귀에 쪼그리고 앉아, 육십이를 한참이나 붙들고 늘어졌다. 이리저리 빙빙 둘러서 육장봉과 월령안 사이의 일을 캐물을수록 확신이 들었다.

‘육장봉이랑 월령안, 이것들이…… 아니지, 선남선녀가 서로 눈이 맞아서 드디어 사고를 쳤구나! 흠흠…….’

물론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육장봉과 월령안의 사이가 분명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보라. 월령안이 그에게 이화백 천 동이를 팔자마자 육장봉은 호위병을 시켜 술을 사갔다. 그것도 꼭 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이었다. 그 이화백 천 동이에 비밀이 있는 게 분명했다. 처음 그가 예상했던 대로 월령안의 깊은 마음이 담긴 술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월령안과 육장봉, 이 한 쌍이 티격태격하는 일에 괜히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장군왕 세자는 묻고 싶은 것을 다 묻자, 만족하며 일어나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

“월령안에게 배첩을 전해줄 때 이 말도 전해라. 내가 따로 볼일이 있어 온 건 아니고, 그냥 만나러 온 것뿐이라고. 별일 없으면 됐다. 괜찮으면 됐어.”

‘흐흐…….’

장군왕 세자는 자신이야말로 육장봉과 월령안이 옛정이 불타올라 함께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안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아버지가 도박장을 닫아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월령안과 육장봉이 언제 아이를 낳을지를 걸고 도박판을 벌였을 것이다.

* * *

장군왕 세자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또 몇몇 집에서도 월씨 가문에 일이 생긴 것을 알고 집사를 보내 위문을 했다.

그리고 춘일연에서 만난 아가씨들도, 월씨 저택이 강도의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들도 시녀를 보내 상황을 확인하고, 또 도울 만한 일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 육십이에게 가로막혔다. 여전히 똑같은 말이었다.

“우리 장군께서 말씀하셨어요. 어제 월 낭자가 대단히 지치셨으니, 오늘은 누가 오더라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우리 장군님을 찾아가세요. 월 낭자의 일은 저희 장군부의 일입니다. 장군께서 처리하실 겁니다.”

물론 사람들은 월씨 가문에 어젯밤 큰 재난을 당했으니, 월령안이 오늘 사람을 만날 기분이 아니리라는 것쯤은 예상했다. 성의를 보이려고 집사를 보냈을 뿐, 월령안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육십이에게 가로막혀도 화를 내지 않았다.

단지, 육십이의 말은 곱씹어 볼수록 여운이 달라졌다.

그들 기억이 맞는다면, 이 사람이 방금 육 대장군의 호위병이라고 했다.

육 대장군의 호위병이 월령안 저택의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또 월씨 가문의 일은 육 대장군이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이건 한 가족이 되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게다가 월 낭자가 놀란 게 아니라, 지쳤다고 했다.

강도가 월씨 저택에 쳐들어갔는데 대문 입구에서 가로막혔다. 그러나 월씨 가문에는 그만한 무력이 없을 터였다.

‘혹시 어젯밤에 육 대장군이 줄곧 월씨 저택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강도들은 도망갔고, 월 낭자는, 흠흠…… 지친 것이고?’

각 가문의 집사와 시녀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육십이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들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간 뒤, 그들은 주인에게 육십이의 말을 고스란히 전했다.

“이, 이 일은…… 흠흠!”

그런 쪽으로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바로 뭔가를 알아채고,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육 대장군도 참…… 능력도 좋아.”

그런 쪽으로 눈치가 느린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얼굴을 확 붉혔다.

“육 대장군이 어쩌다 월씨 저택에 있었단 말이냐? 그리고…… 월씨 가문의 일을 왜 육 대장군이 처리하지?”

용감한 아가씨 하나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육 장군도 참 배려심이 없네! 했으면 한 거지, 사람들이 죄다 알게 떠벌리다니. 월 언니의 명예와 체면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잖아. 진짜 쓰레기였어!”

* * *

이 무렵, 모두에게 미움을 산 육 대장군은 아무것도 모른 채, 병사를 거느리고 황성사에 주둔하여 황성사의 모든 일을 도맡았다.

새로운 제점이 오기 전까지 그가 황성사의 모든 일을 주관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황제는 황성사라면 한 사람도 믿지 못했다. 선황의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제점 종육이 칠십여 명이나 되는 사위를 데리고 출동했다. 그만큼 큰 인원이 움직이는 걸 황성사의 나머지 사람들이 몰랐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황성사 아래위를 통틀어, 황제에게 이 일을 알린 사람은 누구 하나 없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이 사람을 죽이러 뽑혀 나갔는데, 제왕인 자신이 가장 나중에야 알았다.

황성사가 문무백관을 견제하는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황제는 황성사를 바로 폐지했을 것이다.

육장봉은 황제의 뜻을 알아차리고 황성사의 모두를 잡아들이더니 격리해서 가두었다.

심문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황성사에도 황제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제 와서는 소용없었다.

황제가 황성사에 불만을 품었다. 황성사의 모두에게 편견도 생겼다. 설령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더라도 다시는 기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육장봉이 해야 할 일은, 황성사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새 질서를 세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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