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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66)화 (266/1,004)

266화 제가 쓰면 왜 안 되나요?

영녕후는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앞뜰로 나가 직접 금군을 맞이했다.

“소관 두위가 후작 나리를 뵙습니다. 폐하께서 영녕후부가 악당들의 습격을 받은 걸 아시고는 특별히 저더러 병사를 데리고 후부를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두위는 병사를 거느리고 월씨 저택에 갔다가 육 대장군에게 곤장을 맞았다. 그리고 상처가 낫자마자 또다시 육 대장군에게 불려갔다.

육 대장군은 금군을 거느리고 영녕후부를 ‘보호’하는 이번 중임을 두위에게 맡겼다.

말을 마친 두위는 뒤에 있는 금군에게 영녕후부를 물샐틈없이 둘러싸라고 명령했다.

“오늘부터, 영녕후부에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오지 못합니다!”

“두위 장군, 이게 무슨 짓인가? 우리 영녕후부는 피해자일세.”

영녕후는 앞으로 한 발짝 나오며, 번뜩이는 눈으로 두위를 노려보았다.

두위는 깜짝 놀랐다. 눈빛에는 순간 당황이 스쳤다. 그러나 바로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는 황명을 받들고 왔다. 게다가 육 대장군이라는 뒷배도 있었다. 그러니 누구든 두렵지 않았다.

두위는 영녕후가 내뿜는 위압감을 무시했다. 단호한 눈빛으로 영녕후와 마주 보았다.

“영녕후부가 피해자인지 아닌지는 소인이 모릅니다. 소인이 아는 거라고는 황성사의 사위가 황제의 명령 없이 출동했다는 말을 들으신 폐하께서 분노하셨다는 것뿐입니다. 폐하께서는 형부, 순천부, 대리시(大理寺 - 형벌과 재판을 관장하는 기관)가 연합하여, 이 사건과 연관된 사람은 모두 구류하라고 특별히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두위는 냉소를 지었다.

“사위의 시체가 영녕후부에 던져졌다는 말에, 황제께서는 후부의 안위를 걱정하셨습니다. 특히 장공주 마마의 안위를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소인에게 장공주를 보호하라는 명령을 특별히 내리셨습니다.”

영녕후는 어리둥절했다.

“뭐라고? 황성사의 사람이 폐하의 명령을 받든 게 아니라니…….”

“폐하께서는 황성사를 움직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젯밤에 사위가 출동했다고 합니다. 이자들이 누구의 명령을 받고 출동한 걸까요? 시체가 왜 영녕후부에 나타난 걸까요? 나리, 이 일은 큰일이니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건은 비밀이 아니었다. 영녕후부가 사람을 시켜 조사하더라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영녕후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폐하를 제외하고, 누가 황성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인가? 두위 장군, 나를 속이려거든 머리를 좀 쓰게.”

‘황제가 움직인 게 아니면, 우리 영녕후부가 황성사를 움직였다는 건가? 정말 가소롭군!’

“어젯밤 사위를 지휘한 자는 제점 종육입니다. 그자는 아직 살아서 형부에 있습니다!”

육 대장군은 영녕후에게 이 말을 흘리라고 지시했다.

두위는 그 말을 마치고 영녕후에게 예를 올렸다.

“나리, 소인은 임무를 집행해야 합니다. 후부의 사람들이 협조하도록 단속해 주십시오.”

두위는 영녕후부의 정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한 손은 등 뒤에, 다른 한 손은 칼자루 위에 놓았다. 그 모습은 대단히 위엄이 넘쳤다.

그를 바라보는 영녕후의 시선에는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영녕후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그의 안색이 매우 나빠졌다.

그는 몸을 돌려 안뜰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가는 도중 하인을 마주치자, 그는 무거운 얼굴로 물었다.

“장공주 마마는 어디 있느냐?”

“마마께서는 화청에 계십니다.”

영녕후는 화청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상석에 앉아 있는 후부인을 무시하고, 시선을 장공주에게 떨구었다. 그리고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장공주 마마, 황성사의 사람은 장공주 마마가 움직인 겁니까?”

두위의 암시는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는 더 많은 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맞아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청희 장공주의 한쪽 손이 조금 굳는 듯했다. 그러나 얼굴에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순진한 얼굴로 영녕후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 걸 묻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장공주 마마가 움직였습니까?”

영녕후는 큰 화가 코앞에 닥친 것도 모른 채 천진한 그녀의 모습을 보자, 가슴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화를 낼 수도 없어 답답했다.

“아버님,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청희 장공주는 눈을 깜빡거리며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황성사의 사람이 왜 장공주의 말을 듣습니까?”

영녕후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명치를 억누르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청희 장공주는 겁을 먹은 듯이 불안하게 일어섰다.

“그, 그건 부황(父皇)께서 제게 주신 영패 덕분이에요. 누가 절 괴롭히면 황성사의 사람을 찾아가 분을 풀라고 하셨어요. 월령안이 절 형부 감옥에 들어가게 만들어서 화가 났거든요. 그래서 황성사의 사람에게 월령안을 잡으라고 했을 뿐이에요. 아버님, 그러면 안 되는 거였나요?”

“당연히 안 되지요! 황성사는 황제의 사람들인데 어찌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영녕후는 화가 나서 폭발할 것 같았다. 그는 청희 장공주가 단순하고 속셈이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협박을 조금 했다고 그렇게 순순히 말을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까지 순진할 줄은 몰랐다. 황성사를 움직인 여파조차 모르다니.

청희 장공주가 말했다.

“그렇지만 부황께서 제게 남겨 주신 사람들인걸요? 황성사의 사람을 폐하께서는 쓸 수 있는데, 저는 왜 안 되나요?”

그녀에게는 부황의 유언이 있었다. 황제 그 어린 녀석이 감히 그녀에게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설령 죄를 묻는다고 해도 그녀가 두려울 게 없었다.

“마마……. 됐습니다. 인제 와서 말해 봤자 늦었습니다. 어서 궁에 들어가 폐하께 사죄하십시오. 이 모든 것은 공주의 생각이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패도 폐하께 돌려 드리고요.

그리고 폐하께 다시는 황성사의 사람들을 움직이지 않겠다고 약속하십시오. 또 봉지와 병사도…… 그렇지, 이것들도 모두 폐하께 돌려 드리시오. 자진해서 돌려 드려, 폐하의 분노를 가라앉혀야 합니다.”

영녕후는 빠른 어조로 당부했다. 한마디씩 말할 때마다 이렇게 해서 황제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지 생각해야 했다.

이 사건은 너무나 심각했다. 반드시 청희 장공주가 홀로 책임을 져야 했다. 영녕후부는 조금도 연관되어서는 안 되었다.

“제가 왜 사죄를 하러 가야 하는데요? 저는 어엿한 장공주예요. 제가 제 사람을 쓰는 것조차 안 된다는 말씀이세요?”

청희 장공주는 눈을 내리깔고 예리한 눈빛을 감추었다. 그리고 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황성사는 원래 부황이 제게 남겨 주신 사람들이에요. 부황께서는 제가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 봉지, 제 병사도…… 전부 부황께서 제게 주신 거예요. 제가 쓰면 왜 안 되나요? 분명 폐하께서 절 괴롭히시는 건데 왜 제가 잘못한 게 되었나요?”

“천자가 바뀌면 신하도 바뀌는 법입니다, 공주!”

영녕후는 미칠 것 같았다. 그는 청희 장공주의 따귀를 치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이 멍청한 것 같으니라고!’

고종 황제의 유언이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현재 권력을 장악한 사람은 황제였다. 청희 장공주가 제멋대로 자기 사람을 부리는 꼴을 황제가 어떻게 두고 보겠는가.

이건 황제의 위엄을 짓밟는 일일 뿐만 아니라, 황제의 안위도 위협하는 일이었다.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고, 백성에게 임금이 둘일 수는 없는 법.

황성사는 천자의 손에 들린 검이자 천자의 심복이었다.

오늘 청희 장공주가 황성사를 움직여 월령안을 상대했다. 그럼 내일 황제가 그녀에게 밉보인다면, 청희 장공주가 또 황성사를 움직여 황제를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러한 사건을 겪은 이상, 황제는 청희 장공주가 황성사의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비장의 패도 있다고 여길 게 분명했다.

예를 들어 금군이라든가, 심지어 대군도 움직일 수 있는 영패 같은 것 말이다.

만약 청희 장공주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면, 그녀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청희 장공주가 말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제 것이에요. 전 황제 폐하의 것을 쓴 게 아니에요. 이건 모두 부황께서 제게 남겨 주신 거예요. 전 내놓지 않을 거예요.”

그녀도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태까지 꾹 참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광대처럼 변경에서 발버둥 치며, 답답함을 꾹 참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꾹 참고 이십여 년을 산 이유는 바로 아들을 주나라의 황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서러움도 참을 수 있었고, 그 어떤 치욕도 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아들은 죽었다. 그녀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었다. 그런데 신경 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청희 장공주는 고개를 떨구었다. 영녕후에게 자신의 섬뜩한 눈빛을 보이지 않을 셈이었다.

‘이 망할 영감탱이. 날 능욕할 때는 내가 장공주인 것을 신경도 쓰지 않더니! 인제 와서야 내가 장공주인 걸 알았나 보네? 나더러 혼자 다 떠안으라고? 꿈 깨시지!’

그녀가 월령안을 죽이려면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았다. 그런데 굳이 황성사를 선택한 이유는, 잘못되면 영녕후부를 끌어들여 그녀와 함께 죽게 만들 셈이었다.

이 역겨운 영녕후부에 불을 확 지르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영녕후부에 재앙이 닥쳤으니 기뻐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녀로서는 영녕후부와 선을 그어 줄 이유가 없었다.

그저 월령안이 황성사의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은 것만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 * *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도, 순천부에는 아침부터 큰 사건이 두 건이나 접수되었다.

웬 악당이 저택에 시체를 던졌다는 영녕후부의 신고에 이어, 월씨 가문에서도 사람을 보내서 신고했다. 야밤에 강도들이 월씨 가문에 쳐들어와 호원 열몇 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거들먹거리며 떠나갔다는 것이다.

월씨 가문에서 신고하러 나온 사람은 임시 호원인 육십이였다.

육십이는 어젯밤에 도망친 악당과 지난번 한밤중에 월씨 저택에 쳐들어온 강도들이 한패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순천부에 두 사건을 함께 조사해서 하루빨리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육십이가 전혀 상관없는 두 사건을 억지로 엮어 대는 헛소리를 듣자, 순천부윤 유칙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나를 멍청이로 아는 건가?’

영녕후부에서는 갑자기 육십, 칠십 구나 되는 시체가 나타났다지를 않나, 월씨 가문에서는 한밤중에 강도들에게 습격을 당했다지 않나, 게다가 범인들은 죄다 도망갔다고 했다.

 만약 이 두 사건이 아무 연관이 없다면, 유칙은 자기의 머리를 떼어내 이들에게 공놀이나 하라고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을 멍청이 취급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멍청이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황성사와 연관된 사건이니만큼 그 같은 일개 부윤이 어쩔 수는 없었다.

유 대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끼는 부하 묘(苗) 포두(捕頭 - 포졸의 우두머리)에게 월씨 저택의 현장을 살펴보라고 했다.

멍청이 취급을 당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약점이 잡히지 않는 게 중요했다. 특히 영녕후에게 트집이 잡히면 안 되었다. 그랬다가는 순천부윤 노릇도 끝날 것이다.

묘 포두는 관졸을 데리고 월씨 저택에 왔다. 월씨 저택의 대문은 문기둥에 삼 분의 일 정도만 붙어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언제라도 곧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주 처참하구먼.’

월씨 저택은 반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두 번이나 습격을 받았다.

‘월씨 가문은 도대체 누구를 건드렸기에 밤마다 악당의 습격을 받는 거지? 그 월 가주라는 사람은 밤에 잠이나 편하게 자는지도 모르겠군. 참 딱한 노릇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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