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하늘에서 떨어진 시체
육장봉과 조계안이 황궁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시위가 다가왔다. 그는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군, 대인……. 폐하께서 급히 부르십니다.”
“그래.”
두 사람은 대답하고 난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난각 안에서는 황제가 엄숙한 표정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최일은 한쪽에 예의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진노한 황제 폐하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태연해 보였다.
“폐하.”
육장봉과 조계안이 동시에 들어갔다.
“너희 둘 다 월씨 저택에 갔었느냐?”
황제가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계안이 대답하려는 순간, 육장봉이 선수를 쳤다.
“폐하, 황성사의 사람들입니다. 제점 종육이 직접 사위 칠십여 명을 이끌고 움직였습니다.”
“제점 종육이라고?”
황제는 순간 추궁하는 것도 잊었다. 이를 악문 채 말했다.
“그놈이…… 누구의 명령을 받았다더냐?”
주나라에서 자신 말고 황성사를 움직이는 사람이 존재하다니. 이는 황제인 자신의 머리 위에 기어오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예상대로라면 청희 장공주일 겁니다.”
육장봉이 또 말했다.
조계안은 고개를 돌려 육장봉을 힐끔 보았다. 그의 눈빛에 깊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육장봉은 도대체 무슨 뜻이지? 예전에는 이렇게 말이 많은 놈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황형의 물음에 대답한 적도 없었어.’
게다가 그의 대답을 듣고 있으려니 어딘지 이상하게 들렸다.
“청희 장공주라고?”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겼다. 곧 이 대답을 받아들였다.
“그렇군. 황성사는 황실의 것이지. 그리고 황성사는 황조부께서 계실 적의 영광을 다시 누리고 싶어 하고 있었어. 황조부께서는 청희 고모를 그토록 아끼셨으니, 고모에게 사람을 남겨 줬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
육장봉은 이 말을 듣고, 찌푸렸던 미간이 조금 풀렸다.
황제가 이 대답을 받아들였으니 나머지는 쉽게 풀릴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했느냐? 모두 잡아들였느냐?”
황성사는 황제의 심복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른 사람의 명령을 듣고 움직였다. 황제의 분노가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할 수 있었다.
지금, 황제의 분노를 잠재우려면 피를 봐야만 했다.
“황성사 놈들이 필사적으로 반항하였기에,, 신이 명령을 내려 사살했습니다.”
비록 월령안은 그의 뒤처리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육장봉은 모든 일을 자신이 뒤집어썼다.
월령안의 저택에 암기를 장착한 장치가 있다는 사실은 될수록 남들이 모르게 해야 했다. 그 암기는 월령안의 목숨을 살릴 무기였다.
특히, 황제가 알게 해서는 안 되었다. 황제는 월령안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월령안이 무슨 일을 해도 나쁜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황제가 월령안의 집에 금지된 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가 다른 마음을 품었다고 여길지도 몰랐다.
조계안은 육장봉의 말을 듣자, 하마터면 주먹을 휘둘러 그를 후려칠 뻔했다.
‘육장봉, 또 선수를 치다니!’
“모두 죽였다고?”
황제는 깜짝 놀랐다. 차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죽였습니다.”
황제는 아득해졌다.
“산 자가 하나도 없느냐?”
‘장봉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성급했지? 이건 전혀 장봉이답지 않은데.’
“하나도 없습니다.”
육장봉이 고개를 저었다.
황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다. 죽었으면 할 수 없지.”
산 사람이 없으니 증언할 자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미 죽었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이제는 청희 장공주를 심문할 방법이 없었다.
황제는 실망한 얼굴을 했다. 조계안은 험악하게 육장봉을 노려보고 말했다.
“황형, 이 일은…….”
“폐하, 신은 날이 밝기 전에 황성사 사위들의 시체를 모조리 영녕후부 안으로 던질 것입니다. 내일, 폐하께서는 병사를 보내 영녕후부를 둘러싸, 영녕후부의 안위를 보호하십시오.”
육장봉은 조계안의 말을 가로채고,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라고 했느냐?”
황제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크게 기뻐했다.
“좋다, 잘 생각했구나. 장봉이가 이 일은 아주 잘 처리했구나.”
“폐하의 근심을 나누는 것은 신의 영광입니다.”
육장봉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조계안은 육장봉을 흘겨보았다. 화가 나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저놈은 어쩜 저렇게 뻔뻔하지?’
* * *
쿵!
쿵!
“으악!”
무거운 물건이 잇달아 떨어지는 소리가 새벽녘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영녕후부의 사람들은 이 커다란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단잠에서 깨어났다.
“으악!”
“시체잖아. 시체가 이렇게나 많이 떨어졌어!”
“여봐라! 여봐라!”
“피 좀 봐. 죄다 피투성이야!”
“아아악! 시체다! 죄다 죽었어…….”
“어찌 된 일인지 어서 밖에 나가 봐라.”
영녕후부의 하인들은 기척을 듣자, 등롱(燈籠 - 촛불을 넣어서 달아 두기도 하고 들고 다니기도 하는 등)을 들고나와서 살펴보았다. 그러자 하늘에서 시체들이 떨어져 내리며 마당에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영녕후부 안으로 던져질 때, 운이 나쁜 시체는 머리가 바위에 부딪히기도 했다. 머리통이 으깨지면서 뇌수가 사방에 튀었다.
쿵쿵쿵…….
뒤로 갈수록 시체가 점점 더 많이 떨어졌다. 재수가 없는 하인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시체에 깔리기도 했다.
영녕후부의 하인들은 삽시간에 놀라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장 본채로 달려갔다.
“나리, 나리, 큰일 났습니다…….”
* * *
영녕후부 밖에서는 육장봉의 친위대가 시체들을 소갑이 개조한 달구지에 옮기고 있었다. 소갑이 조작하자, 시체가 영녕후부 안으로 던져졌다.
“소갑, 이 장치는 정말 편리한걸. 개조할 시간이 부족해 두 대밖에 없는 것이 아쉽군. 만약 두어 대 더 개조할 수 있었다면, 사방팔방에서 시체를 던질 수 있었을 텐데.”
달구지는 모두 두 대였다. 하나는 소갑이 조작했고, 다른 하나는 육십이가 조작하고 있었다.
“이건 저희 사부가 투석기를 보고 개조한 거예요. 개조한 다음에는 아주 적은 힘으로도 무거운 물건을 던질 수 있어요. 일은 절반만 해도 효율은 배로 높다고 할 수 있죠. 일 년 전, 우리 천궁각에서 현지의 현령에게 보고했어요. 전선에서는 사용한 적이 없나요?”
소갑은 시체를 던지면서 육십이와 잡담했다.
그는 육십이가 마음에 들었다. 육십이는 조금도 으스대지 않았다.
사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육십이는 장군부의 사람이었다. 소갑의 사형은 장군부에 잡혀 있었다. 만약 장군부의 사람과 사이가 좋아지면, 육십이에게 사형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는 성을 공격하지 않으니까, 투석기는 필요 없었어.”
육십이는 풀 한 가닥을 질겅거리며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육삼은 시체를 싣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물었다.
“어느 곳의 현령에게 보고했나?”
“정안현(定安縣)이요. 천궁각은 정안현에서 가장 가깝거든요.”
소갑도 생각이 깊지 않았다. 육삼이 묻자,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대답했다.
“이 투석기…… 아니, 투시기(投屍機)를 우리에게 주면 안 되겠나?”
육삼은 시체를 소갑의 달구지 위에 올려놓았다.
“이 달구지는 지금 월 낭자의 것이에요. 월 낭자에게 물어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소갑이 말했다.
“고맙네.”
육삼은 소갑에게 읍하더니, 고개를 돌려 육사에게 분부했다. 육사가 대답하더니 바로 말을 타고 떠나갔다.
소갑은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불안하게 물었다.
“제, 제가 혹시 말실수를 했나요?”
“아니. 오히려 공을 세울 말이었네.”
육삼은 소갑의 어깨를 다독이며 약속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들에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야. 그리고 자네 사형도 우리가 보살펴 주겠네. 비록 놓아줄 수는 없지만, 고생은 시키지 않으마.”
천궁각의 사람은 쓸모가 많았다.
이 시체를 던지는 달구지만 보아도 천궁각의 능력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끌어들일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소갑과 육삼은 잡담하면서도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각도 걸리지 않아, 둘은 시체를 모조리 영녕후부에 던졌다.
* * *
영녕후는 하인의 보고를 듣자, 서둘러 겉옷을 입고 재빨리 앞뜰로 나왔다. 땅에 온통 널브러진 시체를 보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황성사의 사람들이 아닌가?”
쿵!
쿵!
또 시체 두 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번에는 영녕후의 머리 위로 떨어질 뻔했다.
“나리, 조심하세요.”
하인이 다급히 다가가 영녕후를 밀쳤다.
“멍하니 뭣들 하느냐? 얼른 나가서 누가 이 시체를 던졌는지 살펴보지 않고!”
영녕후는 비틀거리더니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누가 영녕후부에게 시비를 거는 건가?’
“소인이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하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밖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맞아서 혼절하고 말았다. 영녕후가 이상함을 느끼고 또 다른 사람을 보내 상황을 살피게 했을 때는 소갑 일행이 이미 철수한 뒤였다. 땅에는 깊게 팬 흔적들만 남아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
영녕후부의 다른 주인들도 이 소란에 놀라서 일찍 깨어났다.
앞뜰에서 벌어진 일을 들은 영녕후 부인은 화난 얼굴로 말했다.
“무엄하구나! 우리 영녕후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게 아니냐!”
영녕후 부인은 쉰이 넘은 나이었다. 머리에는 보라색 말액(抹額 – 이마에 묶는 부녀자의 머리 장식)을 하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엄한 인상을 풍겼다. 척 보아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아 보였다.
청희 장공주는 그녀의 옆에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담담하지만 적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세자께서 가셨으니 곧 돌아오실 거예요.”
청희 장공주는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 하인의 보고를 듣고 어찌 된 일인지 어렴풋이 짐작했기에 기분이 좋지 못했다.
황성사의 사람들을 파견했는데도 월령안을 잡아들이지 못했다.
‘황성사 놈들은 뭐 하는 것들이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여인 하나를 해결하지 못해? 정말 쓸모없군.’
영녕후 세자가 왔을 때, 앞뜰은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시체가 여기저기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깜짝 놀란 그는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아, 아버지,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우리 집에 어쩌다 이렇게 많은 시체가 생겼단 말입니까?”
“누군가 복수하는 것 같다. 현장을 건드리지 말고, 순천부 사람을 불러와라.”
영녕후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두 눈은 섬뜩한 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의 집에 던져진 시체는 모두 황성사의 사람이었다.
‘이 일은 황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지? 이 시체들로 나에게 무슨 누명을 씌우려는 걸까? 내가 체포를 거부하고, 황성사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하려는 건가? 흥, 날 너무 우습게 보는군. 내가 이 몇 년간 조용히 지내긴 했지만,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다. 고작 시체 몇 구로 우리 영녕후부에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다니. 황제도 아직 너무 무르군.’
영녕후 세자는 깜짝 놀라 대답하고는, 날 듯이 밖으로 달려갔다.
관아에서는 영녕후의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 게다가 금군까지 거느리고 달려왔다.
금군이 왔다는 말을 듣자, 영녕후는 이 일이 황제와 연관이 있다는 확신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황제가 이 일을 어떻게 해명할지 한번 들어 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