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263)화 (263/1,004)

263화 꼭 버텨야 하오!

“좋아요, 월 낭자.”

소갑은 대답하더니 다시 한번 손에 든 나무판자를 눌렀다.

슉! 슉!

소갑이 나무판자를 누르자 긴 화살들의 사이를 촘촘한 바늘이 채웠다. 화살을 피해도 바늘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으악! 악!”

화살은 커서 방어하기에 좋았다. 그러나 바늘은 촘촘하고 개수도 많았다.

게다가 지금 하늘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황성사의 사람들이 많은 횃불을 가지고 와서 월씨 저택을 환하게 비추었지만, 촘촘한 바늘까지 비추지는 못했다.

바늘이 쏘아지자, 또 사위 한 무리가 쓰러졌다.

이쯤 되자, 줄곧 자신만만했던 종육도 당황했다. 사위의 뒤에 서서 월령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월령안, 당장 멈춰라. 우리는 황성사의 사람들이다. 감히 우리를 다치게 하다니. 조정에서 너희 월씨 가문의 구족(九族)을 멸할 것이다.”

“우리 월씨 가문에서 제대로 살아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어디 죽여 보시지!”

월령안에게는 제일 무섭지 않은 협박이 ‘구족을 멸하겠다’라는 말이었다.

“네게 가족, 친지가 없다면 친구라도 있을 게 아니냐. 조정은 네 십족(十族 – 구족에 제자까지 포함해 이르는 말)을 멸할 것이다!”

종육은 연신 뒷걸음질 쳤다. 이를 너무 꽉 문 탓에 피가 새어 나왔다. 그의 실책이었다.

“하!”

월령안은 가볍게 웃었다.

“만약 네가 황제 폐하의 명령을 받고 왔다면, 난 당연히 너를 건드리지 못했겠지. 종 제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게 됐군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더니 종육에게 예를 올렸다.

* * *

육장봉은 몸에서 술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는 낮에 술을 가지고 군영에 가서 군사들을 위로했다. 술자리는 깊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는 원래 군영에서 하룻밤을 묵으려고 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기 전, 생각이 바뀌었다. 친위대를 거느리고 밤새 성으로 돌아왔다.

그가 장군부 밖에 막 도착했을 때, 암위가 보낸 신호를 보았다. 그것도 최고 등급을 뜻하는 세 줄짜리 신호였다. 신호의 빛이 점점 더 진해졌다.

이 신호는 대단히 위험함을 뜻했다. 암위가 더는 버틸 수 없으며, 보호하는 사람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신호였다.

말에서 내린 육장봉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말에 올라탔다. 뒤따르는 사람들이 반응할 틈도 주지도 않고, 채찍질해 나는 듯이 달려 나갔다.

지금 그의 명으로 월령안을 지키고 있는 수하는 암위뿐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월령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월령안, 기다리시오. 내가 가기 전까지 꼭 버텨야 하오!’

육장봉은 미친 듯이 말을 채찍질했다. 말을 타고는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장군……! 어서, 쫓아가!”

육삼과 육사를 비롯한 사람들은 놀라서 안색이 변했다. 그들도 황급히 말에 올라타더니 제대로 앉기도 전에 채찍질하며 따라갔다. 다들 말에 똑바로 타지도 못해 흔들리다 떨어질 것만 같았다.

육장봉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월씨 저택에 도착했다. 말이 멈추기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바로 몸을 날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월씨 저택에서는 끔찍한 광경이 벌어졌고, 월령안도 위험에 처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월씨 저택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것은 땅바닥 곳곳에 널브러진 황성사 사위들의 시체였다. 하나하나 몸에 바늘과 화살이 빽빽하게 박힌 채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그리고 월령안과 육십이는 저택의 의원과 함께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대단히 평온했다. 치열한 전투를 치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장군?”

“대장군?”

월령안과 육십이는 밖에서 들리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뜰에 서 있는 육장봉이 보였다.

“누가 우리 월씨 저택에 쳐들어왔느냐!”

월씨 가문의 다친 호원이 육장봉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육장봉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낯선 사람이 나타나자 하나같이 경계심을 드러냈다. 다들 상처도 돌보지 않고, 몽둥이를 든 채 월령안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은 목숨으로 월 낭자를 보호하기로 맹세했다.

“육 대장군이시다. 그대들의 상처가 중하니 앉아 있어라.”

월령안은 다급히 호원들을 말렸다.

호원들은 얼굴을 붉히며 고분고분하게 몽둥이를 내려놓고 돌아가 앉았다. 하지만 움직인 탓에 상처가 또 벌어졌다. 다들 통증 때문에 이를 악물고 있었다.

노 의원은 화가 났지만, 그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호원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였더라도 월 낭자를 위해 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월 낭자는 사람이 참 좋다니까!’

월령안은 멀쩡한 모습으로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육장봉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신호를 본 그 순간, 얼마나 당황했는지는 하늘만이 알리라.

세 줄짜리 신호는 암위도 월령안을 보호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고작 일각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미친 듯이 달려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달려가는 사이에 월령안이 무슨 위험을 겪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타고 있는 말이 날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이제 월령안이 무사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육장봉의 마음도 드디어 가라앉았다.

이렇게 안심하는 것도, 육장봉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육장봉은 한시름을 덜고 나자 상황에 관해 물었다.

“누가 이 일을 설명할 거냐?”

그는 세 줄짜리 신호를 보고 조마조마해진 나머지, 말이 지쳐 쓰러질 지경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와 보니 수많은 황성사의 사위가 죽어 널브러져 있었다.

이들은 천자의 심복이었다. 이들을 죽이는 것은 황제의 체면을 깎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월령안, 뒷일은 어쩌려고…….’

육십이는 육장봉의 생각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나타나자, 잘난 척하며 자랑했다.

“장군, 늦으셨네요. 저희가 다 끝장냈습니다. 저희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몇몇만 가지고 거의 백 명이나 되는 사위를 전부 쓰러뜨렸어요. 그리고 우리 편에는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황성사의 사위들은 머릿수가 많았으며 잔인했고, 그들의 급소만 노려서 공격하기는 했다. 그러나 월씨 가문의 호원들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전에 야율제가 데려왔던 사사들처럼 전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공격을 막지는 못해도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땅에 쓰러진 호원들은 대부분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의 위험은 없었다.

월령안이 소갑에게 암기로 황성사의 사람들을 쓰러뜨리게 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노 의원을 불러와서 부상자들의 상처를 치료하게 한 것이었다.

월령안은 돈이 부족하지도 않았고, 자기 사람에게는 항상 후했다. 지금 쓰는 외상약은 천금이 나간다는 설옥고는 아니었지만, 밖에서는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좋은 것이었다. 또한 심각한 부상이라면 설옥고도 아낌없이 사용하게 했다.

호원 둘은 목을 다쳐 피가 멎지 않았다. 그들은 꼼짝없이 죽을 거라고 여겼다. 죽기는 싫었지만, 월씨 가문의 두둑한 보상금을 떠올리자 하나같이 만족했다. 이번 생에 더는 미련이 없었다.

뜻밖에도 아가씨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귀하다는 설옥고를 꺼냈다. 그러더니 노 의원에게 설옥고가 효과가 있을지 물었다.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자,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들에게 썼다.

그 순간, 몸이 허락했다면 아가씨에게 머리를 조아렸을 것이다.

그들이 죽더라도 위로금으로 은 천 냥만 주면 그만이었다. 그들 같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비싼 약을 쓸 가치가 있을까?

다른 호원들도 하나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월령안에게 목숨을 바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월씨 가문은 또 한 번 큰 재난을 겪었지만, 분위기는 아주 따스해서 조금의 비통함도 없었다.

육십이는 육장봉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월령안은 아니었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육장봉에게 예를 올렸다.

“대장군, 이 사람들은 황명을 위조해 저의 집에 쳐들어왔어요. 저는 제 몸을 지켰을 뿐입니다.”

월령안은 암위가 신호를 보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육장봉의 출현이 놀랍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그녀는 육장봉에게 무언가를 기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실상,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기대한 적이 없었다. 집사에게 추밀원에 가서 조계안을 찾으라고 한 것도 황제를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람들이 황명을 받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조계안도 필요하지 않았다.

“황명을 위조했다고?”

육장봉은 이번 일의 중점을 날카롭게 파악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자들은 폐하께서 절 잡아서 감옥에 넣으라고 했다고 거짓 명령을 전했어요. 게다가 황명을 위조하냐고 하니 그들이 침묵했어요.”

“죽은 자는 증언할 수가 없지.”

육장봉은 땅에 어수선하게 널브러진 사위들을 훑어보고, 이 중에 살아 있는 자가 없음을 확인했다.

만약 산 자가 있더라도, 그가 절대 산 채로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월령안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황성사의 사람을 죽인 여파가 너무 심각해서였다. 월령안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월령안이 말했다.

“만약 저자들이 황명을 받은 게 아니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제가 어찌 감히 죽였겠어요? 대장군, 천하에 황제의 땅이 아닌 곳 없고, 영토 안에 황제의 신하 아닌 사람이 없지요. 저는 제 살길을 제 손으로 끊지 않아요. 더군다나 월씨 가문을 가지고 장난칠 수도 없고요.”

그녀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확신이 없었더라면 죽이지도 않았다.

이 점은 육장봉도 잘 알았다.

“누가 보낸 사람인지는 물어보았소?”

육장봉은 생각을 바꾸자, 마음이 놓였다.

아마도 월령안에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고작 사위 몇십 명이 죽은 것뿐이다. 설령 황제가 보낸 사람이라고 해도 어쩌겠는가.

어차피 사람은 모조리 죽었으니, 정 안되면 육장봉이 죽였다고 하면 그만이다.

황제가 죄를 다스리겠다고 하면, 그를 처벌하라고 하면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일이 월령안과 연관이 없기만 하면 그만이다.

월령안은 이들에게 누가 보냈는지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묻더라도 이들은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말한다 해도, 사실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굳이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월령안이 말했다.

“주나라에서 황성사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황제 폐하가 아니라면, 황족이겠지요. 미치광이처럼 황성사를 동원해 저를 죽이려고 했고, 또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청희 장공주 말고 누가 있겠어요?”

청희 장공주는 지금 아들을 잃은 미친 여인이었다. 아들이 죽었으니, 어미로서 못 할 짓이 없었다.

“맞소.”

육장봉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월령안의 말에 동의했다.

황성사는 고종 황제가 중용했었다. 황성사의 사람 대다수는 고종 황제가 발탁했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다.

청희 장공주는 고종 황제가 가장 아낀 딸이었다. 청희 장공주가 그에게 황성사를 물려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육장봉이 말했다.

“이 시체들은 내가 가지고 가겠소. 집사가 묻거든 모른다고 하시오.”

월령안은 무사했지만, 오늘 밤 매우 놀랐을 게 뻔했다. 뒤처리는 그가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월령안은 거절했다.

“대장군께 감사드려요. 하지만 이 시체는…… 제가 처리할 거예요.”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뭘 하려는 거요?”

‘죽은 이들이 황성사 사람인데, 월령안은 혹시 이 시체들로 일을 꾸미려는 건가? 간이 너무 크군.’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지요.”

불빛 아래로 월령안의 숙연한 표정이 드러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