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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62)화 (262/1,004)

262화 황제 폐하의 명령이 아니야

월령안은 집사에게 밀쳐져 두어 걸음 비틀거렸다. 몸을 가누기도 전에, 사위 하나가 칼을 들고 집사를 베려는 모습이 보였다.

“유 집사, 조심하게!”

월령안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집사를 잡아당김과 동시에 암기를 발사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땅에 굴렀다. 칼을 휘둘러 집사를 베려던 사위도 땅에 넘어졌다.

“감히 황성사의 사람을 건드려? 월 가주……. 죽음을 자초하는군.”

황성사의 제점은 수하가 쓰러진 것을 보고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손을 들어 명령을 내렸다.

“체포해라! 생사 불문하고 체포해라.”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암위는 더는 지체하지 않았다. 당장 칼을 뽑아 들고 월령안의 앞을 막아섰다.

“월 낭자는 우리 대장군께서 보호하는 분이다. 종육(鍾毓), 지나치군.”

“황성사는 황명에만 따른다.”

황성사 제점 종육은 암위의 위협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황명이냐?”

황제가 이런 명령을 내릴 리가 없었다. 황제는 아직 월령안을 기용해야 하는데, 어찌 황성사에게 체포하라 명하겠는가.

종육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손을 들어 명령을 내렸다.

“함께 죽여라.”

육십이는 암위가 나타난 것을 보자, 화가 나서 욕을 했다.

“넌 왜 뛰어나왔어? 내가 있는데 누가 월 낭자를 다치게 하겠어? 넌 얼른 장군을 찾아가야지! 어서!”

암위는 대답하지 않고, 사위를 대적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리고 월령안의 앞을 막아섰다.

황성사에서 쳐들어오기 전에 이미 구원 요청을 했다고 말할 틈이 없었다.

월령안은 집사를 보호하느라 땅에 두 번 굴러서야 기어서 일어났다. 앞으로 다가가 집사를 부축해 일으키고 빠르게 말했다.

“어서 추밀원에 가서 알리게. 내가 조 대인을 만나야겠다고. 당장 뵈어야겠다고 하게.”

암위의 말이 월령안을 일깨워 주었다. 황성사의 사람이 출동했다고 해도, 꼭 황제의 명령을 받았다는 법이 없었다.

황제가 정말 황성사를 다시 쓰려 한다면, 월령안을 체포해서 위엄을 보이려고 한다면, 절대 이 시간을 선택할 리가 없었다. 가장 인파가 붐비는 때를 골라, 변경 사람들에게 제왕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결과를 똑똑히 보여주어야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황제가 황성사를 움직여 체포할 만큼의 권위가 없었다.

“아가씨…….”

집사는 망연하게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왜 아직도 그녀가 떠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제 폐하가 아니야! 난 폐하의 노여움을 산 적이 없네. 설령 그렇다 해도 폐하께서는 황성사를 동원해서 날 체포하실 필요가 없어. 황성사가 체포하는 사람은 모두 관원이야. 나는 그럴 자격이 안 되네.”

월령안은 냉정함을 되찾았다. 생각할수록 이 일에 허점이 많다고 느껴졌다.

아까는 ‘황성사’라는 세 글자에 눈이 가려졌다. 설마 누군가 감히 황제의 이름을 도용하여 황성사를 움직이겠는가. 당연하게도 황성사가 움직이려면 반드시 황제의 명령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사가 뭐라고 하려 했지만, 월령안은 듣고 싶지 않았다.

“내 말을 듣게. 추밀원에 가서 조 대인을 찾아. 그분이 오면 모든 게 확실해질 거야.”

황제가 그녀를 잡아들이려는 게 아니라면, 이자들은 끝장날 것이다.

반면, 정말 황제가 그녀를 잡아들이려 한다면, 주나라에서 도망치지 않는 한 어디로 도망간들 소용없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집사는 월령안의 확고한 표정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그는 호위의 엄호를 받으며 밖으로 비틀비틀 뛰어갔다.

하지만 그가 문어귀까지 뛰어갔을 때, 제점 종육이 음산하게 명령했다.

“저자를 죽이고 월씨 저택 대문을 닫아라! 월씨 저택에서 산 사람이 걸어 나가서는 안 된다.”

추측대로, 월령안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은 황제가 내린 게 아니었다. 황성사의 다른 주인이 내린 명령이었다.

황성사에게는 황제보다 더 큰 발언권을 가진 주인이 있었다. 그들이 황제 말고도 진실된 충성을 다하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그 주인이 유약하여, 황성사가 영영 다시 일어날 기회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주인이 유약하기는 해도,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대단히 과감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월령안은 자신을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린 사람은 십중팔구는 황제가 아니며, 다른 사람이 황명을 위조했다고 추측했다.

지금 종육의 말을 듣자, 그 추측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황제 폐하의 명령을 위조하다니. 반역이라도 할 셈이냐!”

황제가 내린 명령이 아닌 이상, 그녀도 봐줄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이 변경에서는 황제를 제외하면 아무도 두렵지 않았다.

월령안은 팔찌를 풀고 그 위의 보석을 꾹 눌렀다. 그러자 붉은빛이 하늘로 쏘아졌다.

‘황성사 놈들, 오늘 다 죽었어!’

“구원병을 부르게? 소용없다! 너를 제외하면 오늘 너희 월씨 가문에 발을 들인 모두가 다 죽을 테니까! 육장봉이 와도 살 수 없을 것이야.”

제점 종육은 음산하고 기괴하게 웃었다. 손을 들어 오른손 엄지로 입술을 쓱, 문질렀다.

* * *

한편 최일은 이쪽으로 다가오던 중이었다. 때마침 사람을 죽여 입을 막으라는 종육의 명령을 듣자, 바로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절대 황제 폐하의 명령이 아니야. 폐하가 월령안을 잡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월씨 가문 전체를 죽일 필요는 없어.’

그리고 제점 종육의 살벌한 말을 들은 월씨 가문의 집사는 문턱을 넘으려던 순간, 다리가 풀리며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푸슉!

사위의 칼이 집사의 등에 떨어졌다. 집사는 고개를 치켜들고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문밖에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난 게 보였다. 집사는 눈앞이 확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당장 큰 소리로 외쳤다.

“살려 주세요. 공자……. 살려 주세요! 공자, 제발 추밀원에 가서 조 대인을 찾아 주세요.”

집사는 손을 뻗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공자, 추밀원…….”

‘이런, 곤란하게 됐군. 하필이면……. 월령안은 아주 영리한데 그 하인은 멍청하기 그지없어.’

그가 돕기를 바란다면 차라리 다른 말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필이면 공자라고 부르다니, 황성사 사람들에게 밖에 누군가 있다고 알려주는 꼴이었다.

그는 유약한 서생이었다. 당연히 황성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최일은 사나운 운수를 탓하며 더는 앞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바로 몸을 돌려 말 한 필을 끌어내더니 훌쩍 올라타고 떠나갔다.

그는 황성사의 사람들을 저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할 수 있었다.

사위가 집사에게 칼을 한 번 더 휘두르려다, 그의 고함을 듣고는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살펴보았다.

“대장, 밖에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말을 훔쳐서 도망쳤습니다!”

“쫓아라!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

종육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사람의 목숨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태도였다.

“네, 대장.”

그 사위는 집사를 발로 걷어차고, 칼을 든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으악!”

집사는 발에 차여 날아갔다.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혼절해 버렸다.

그 시각, 월씨 가문의 호위와 하인은 전부 쓰러졌다. 암위와 육십이만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암위는 양측의 실력을 가늠해보고 딱 잘라 말했다.

“월 낭자, 제가 먼저 모시고 떠나겠습니다. 상대방의 머릿수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저놈들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괜찮아요, 구원병이 왔거든요.”

월령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갑이 커다란 나무판자를 짊어지고 어두운 곳에서 걸어 나왔다.

“월 낭자, 설치를 마쳤어요.”

“잘했어요!”

월령안은 활짝 웃으며 칭찬을 했다.

이미 야율제한테 호되게 한 번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아무 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어제 공숙무와 소갑을 월씨 저택으로 데리고 왔었다. 그들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방어와 공격을 할 수 있는 암기 장치를 설치하려는 목적이 더욱 컸다.

아쉽게도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라, 공숙무와 소갑은 가장 기초적인 것만 설치한 상태였다. 그래서 살상력은 평범했다.

아까 월령안이 장치를 사용하지 못했던 것은, 황성사가 도대체 누구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만약 상대가 황명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녀는 장치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대가 사적으로 움직인 것이고, 다른 누군가의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월령안은 이제 거리낄 게 없었다.

주나라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거리끼는 사람은 황제뿐이었다. 황제가 그녀를 죽이지 않고 이용하려 하는 한,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저런 놈이 무슨 도움이나 되겠어?”

종육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월령안이 구원병을 불렀다는 말에 황성사의 사위들은 깜짝 놀랐다. 심지어 공격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런데 나타난 사람이 소갑인 것을 보자, 너도나도 따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종육의 얼굴에는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월 가주, 겁을 먹어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군? 이런 쥐새끼 한 마리도 구원병이라고 하는 걸 보니.”

월령안이 구원병이라고 하자, 그 역시 깜짝 놀랐다. 그가 오기 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야율제가 죽자 황금당의 살수들은 이미 떠난 게 확실했다. 그리고 월씨 가문에 남은 그 몇몇 호원도 별로 쓸모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왜소한 체격의 소갑을 보자, 종육은 월령안이 겁에 질려 멍청하게 구는 것으로 여겼다.

“하.”

월령안은 굳이 설명해 주는 대신, 소갑에게 말했다.

“사정을 봐주지 마세요! 죽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요.”

“좋아요.”

그 말을 들은 소갑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등에 업은 나무판자를 꺼내 품에 안더니, 그것을 꾹 눌렀다.

“하하…….

사위의 웃음소리가 그치기도 전이었다. 월씨 저택의 벽 사이에서 갑자기 긴 화살들이 모습을 보였다.

슉!

좌우 양쪽 벽 틈에서 긴 화살이 날아왔다. 그 세차고 날카로운 기세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푸슉!

푸슉!

황성사의 사람들은 월씨 저택에 이런 무기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반응하는 것도 잊고 제자리에 멍하니 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화살에 맞아 비명을 질러서야 정신을 차렸다.

“어, 어서, 빨리 모여서 화살을 막아라.”

종육은 월씨 저택에 이런 암기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그나마 반응이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벽 틈에서 쏘아지는 화살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 최대한 빨리 피했지만, 화살이 스쳐 지나가며 팔에 상처가 났다.

종육은 크게 화가 났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팔에서 나는 피를 핥았다. 몸을 돌려 보니 그가 이끌고 온 사람이며 말이 잔뜩 쓰러져 있었다.

종육은 벌게진 눈을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월령안, 사사로이 병기를 제조한 것이 무슨 죄인지 아느냐!”

월령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종 제점, 낭패한 모습이 정말 보기 좋군.”

월령안은 지붕 아래에 서 있었다. 몸의 절반은 어둠에 묻혀 있었고, 절반은 횃불 빛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종육에게는 악귀처럼 느껴졌다.

월령안은 또 명령을 내렸다.

“소갑, 이 나리께 본때를 보여줘요. 황성사의 나리들에게 우리 월씨 가문의 능력을 좀 보여드려요.”

그들은 일찍 온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만약 며칠 뒤에 왔다면, 소갑과 공숙무가 모든 암기의 설치를 다 마쳤을 것이다.

그때는 몇이 쳐들어오든지 간에, 월령안은 그들을 깡그리 죽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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