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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61)화 (261/1,004)

261화 월씨 저택을 피로 물들여라

황성사를 이끄는 제점(提点 - 사법, 형옥 및 수로 등을 장관하는 직책)은 몸집이 건장했고 인상이 흉악했다. 꽉 끼는 주홍색 관복이 몸에 맞지 않는 게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의 얼굴은 횃불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자세히 보면 그의 관복은 낡아서 색이 바래 있었다. 그의 표정에도 우울함이 어렴풋이 어려 있었다.

황성사는 제왕의 사냥개였다. 제왕의 의지만을 집행하는 곳이다 보니, 황제가 중용해야만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반면, 황제가 중용하지 않으면 황성사에는 실권이 조금도 없었다.

고종 황제, 즉 현 황제의 조부가 집정할 때는 황성사가 크게 중용되었다. 그들은 한 손으로 황궁의 금군을 장악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문무백관을 감찰했다. 한마디로 말해,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의 황성사는 주나라 안에서 활개 치며 온갖 횡포를 다 부렸다. 조정의 관원을 잡아들일 때도 이유를 댈 필요 없이 바로 끌고 갔다. 또 끌려간 사람들은 죽지는 않더라도 반죽음이 되어야 나왔다.

그 시절에 문무백관은 황성사라는 말만 들어도 안색이 변했다. 조정은 혼란 그 자체였다. 황성사의 말단조차도 위세가 대단해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고종 황제가 붕어한 뒤, 현 황제의 부친이 등극했다. 신하들은 황성사를 폐지하라며 필사적으로 상소를 올렸다.

선황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하들을 다독이기 위해 황성사를 해체하고, 금군을 단독으로 분리했다. 또한, 과감하게 황성사의 쓰레기들을 처리하고, 다시 황성사를 중용하지 않았다. 그제야 신하들은 시름을 덜었다.

지금의 황제가 등극한 뒤, 대신들은 또 상소를 올려 황성사를 폐지하라고 간청하였다.

황제는 조상의 가법(家法)을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상소를 거절했다. 대신 황성사에 대한 선황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그들을 중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황성사는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최근 이 년 동안 조금 숨통이 트였다. 대부분의 일은 적국의 간첩을 상대하는 것뿐이다. 이토록 떠들썩하게 사람을 잡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래서 기척을 듣고 달려온 월씨 가문의 집사는 황성사의 사람을 보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월씨 가문의 호위도 바로 달려 나왔다. 하지만 관리들이 찾아온 것을 보자, 경거망동할 수가 없었다.

“나리, 이…….”

집사가 입을 열자마자, 황성사의 사위가 발로 그를 걷어차서 자빠뜨렸다.

“썩 꺼져라!”

“아이고…….”

집사는 미처 막지도 못하고 벌렁 넘어졌다. 월씨 가문의 하인들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그중 용감한 사람 하나가 앞으로 다가가 집사를 부축해 일으켰다.

“가서 죄인 월령안을 불러내라!”

황성사의 사람들은 수십 년을 억눌려 왔다. 드디어 전과 같이 쓰이는 날이 오자, 굶주린 늑대처럼 월씨 가문에게 손속의 자비를 두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손을 들어 올렸다. 뒤에 있던 부하들이 산에서 내려온 굶주린 늑대처럼 안뜰로 들이닥쳤다.

“멈춰라!”

월씨 가문의 호원은 들이닥친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필 겨를도 없이 몽둥이를 들고 막아섰다. 돈을 받았으니 일을 해야 했다.

“사람을 잡아가려면 공문을 보여라!”

“공문이라고?”

황성사의 제점(提点)은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황성사에서 사람을 잡아들일 때, 언제부터 공문이 필요했느냐? 감히 황성사의 공무 집행을 방해하다니, 모두 죽여라!”

황성사의 사람들은 너무 오래 참은 탓에 하나같이 독이 바싹 올라 있었다. 제점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그들은 칼을 휘두르며 호원에게 달려들었다.

황성사의 사위는 육칠십여 명이나 되었다. 반면 월씨 가문의 호원은 열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 애초에 황성사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황성사에서 나온 이들은 살기등등했다. 하나같이 칼을 들자 바로 상대의 급소를 베었다. 먼젓번, 야율제가 데려온 사람들보다 몇 배나 잔혹했다.

얼마 겨루지도 않았는데 월씨 가문의 호원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황성사의 사위에게 일방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뒤뜰에 있던 월령안은 하인보다 한걸음 늦게 도착했다. 때마침, 저녁 무렵에 건너온 육십이가 그녀의 주변을 보호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왔을 때는 이미 황성사의 사위들이 호원들을 적지 않게 쓰러트린 뒤였다.

“월 낭자, 황성사의 사람들이에요.”

육십이는 보자마자 그들의 신분을 알아차렸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월씨 가문의 호원들은 황성사의 사위들에게 잇달아 당하고 있었다. 땅에는 온통 선혈이 낭자했다.

이 광경을 본 월령안은 빠른 걸음으로 밝은 곳으로 가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멈춰라! 너희가 찾는 사람은 여기에 있다!”

한창 싸우던 쌍방은 월령안이 나타나자 동작을 멈췄다.

월씨 가문의 호위는 바로 뒤로 물러섰다. 마음도 조금이나마 안정되었다. 더는 황성사의 사람과 싸우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관리들이지 강도가 아니었다. 관리를 대적하려니 조마조마했다.

황성사의 사위들도 손을 멈추었다. 일제히 우두머리를 바라보며 명령을 기다렸다.

암위는 손을 쓰고 싶었지만, 상황을 보고 움츠러들었다.

월령안은 또 한 걸음 앞으로 나가, 황성사의 제점을 마주 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당황과 조급함이라고는 전혀 없이 침착했다. 마치 황성사가 그녀를 노리는 게 아닌 것처럼 굴었다.

“월 가주인가? 드디어 나타났군!”

황성사 제점의 시선이 월령안 얼굴에 닿았다. 먹잇감을 본 사냥개처럼 잔혹하고 탐욕스러운 눈빛이었다.

월령안은 울렁거리는 속을 꾹 참으며 그를 쏘아보았다.

“너희가 찾는 사람은 나다. 부하들에게 멈추라고 해라. 내가 따라가겠다.”

“멈추라고?”

제점은 음산하게 웃었다.

“황성사의 칼은 피를 보기 전에는 거두는 법이 없다. 우리 황성사는 월씨 가문의 가주도 데려가고, 이 사람들의 목숨도 가져갈 것이다!”

제점은 말을 마치고 월령안에게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어 보이더니, 바로 웃음을 거두고 음산하게 말했다.

“얘들아, 오늘 밤, 월씨 저택을 피로 물들여라!”

“월씨 저택을 피로 물들여라!”

황성사의 사위들은 이 말을 듣자, 마치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하나같이 눈에 불을 켜고 흥분에 찬 함성을 질렀다.

월령안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그녀는 당장 호통을 쳤다.

“여기는 천자께서 계신 수도다. 네놈들이 감히 그럴 수 있겠느냐!”

“우리는 바로 그 천자의 명령을 받고 왔다.”

황성사의 제점은 냉소를 짓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명령을 내렸다.

“얘들아, 시작해라.”

“네.”

황성사의 사위는 칼을 들고 앞으로 달려왔다.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암위는 손을 칼집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월령안은 뒤로 한걸음 물러나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십이, 저놈들을 막을 수 있어요?”

“막아?”

제점은 오만하게 비웃었다.

“우리 황성사의 사람들은 몇십 년이나 피를 보지 못했다. 오늘, 누가 와도 막지 못할 것이다.”

“나는 사품 호성(護城) 장군이다. 당장 그만둘 것을 명령한다!”

육십이가 뛰어나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러나 그의 신분도 소용이 없었다.

황성사의 사람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육십이가 나선 뒤, 그들의 살의는 더욱 짙어졌다. 하나같이 미치광이처럼 육십이에게 달려들었다.

황성사의 제점은 더욱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황성사는 황제 폐하의 명령만 듣는다!”

그는 사위들에게 둘러싸인 육십이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일개 사품 장군은커녕, 네 상전인 육장봉이 와도 소용이 없다. 우리 황성사가 하려고 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네 이놈들…… 빌어먹을!”

황성사의 사위가 너무 많았다. 육십이는 그들이 월령안을 다치게 할까 봐 그녀의 곁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들이 월씨 가문의 호원과 하인을 공격하는 모습을 뻔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육십이는 고개를 돌려 월령안에게 말했다.

“월 낭자, 빨리 대장군께 사람을 보내세요. 황성사 놈들은 황제 폐하의 명령만 들어요. 지금 대장군만이 우리를 구해 주실 수 있어요.”

황제가 월령안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육십이로서는 지금 월 낭자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대장군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육장봉? 아이고 무서워라. 우리 황성사도 상대가 안 되겠네.”

황성사의 제점은 음험하게 웃음을 지으며 괴상한 어조로 말했다.

“얘들아, 들었느냐? 육 대장군을 불러와서 우리를 혼내 주겠단다. 월 가주에게 우리 황성사의 능력을 보여주지 않고 뭣들 하느냐? 우리 황성사가 몇십 년 동안 조용했다고 우리의 칼까지 둔해진 줄 아느냐? 정신 바싹 차리게 해 줘라. 그깟 놈이 우리를 지휘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하지 마라!”

“네, 대인!”

황성사의 사위들은 높은 소리로 대답했다. 동시에 월씨 가문 호원의 머리를 겨냥해 칼을 휘둘렀다.

황성사는 거의 삼십 년이나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참을 만큼 참았다.

오늘 밤, 황성사는 월령안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고종 황제 시절 이후, 처음으로 본래 황성사의 임무를 받은 것이다.

황성사는 월령안을 잡아들임으로써 위신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월씨 가문을 피로 물들여 세상에 알릴 것이다.

문무백관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황성사가 돌아왔다.

“죽여라!”

황성사 사위들의 살기가 하늘을 찔렀다. 다들 흉폭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악……!”

털썩!

월씨 가문의 호원들은 필사적으로 막았다. 육십이도 평소의 발랄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용맹하기 그지없었다. 혼자의 힘으로 수십 명을 막아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적들의 머릿수는 월씨 가문 호원의 대여섯 배가 넘었다. 황성사의 사위들이 인정사정없이 공격하자, 월씨 가문의 호원들은 당해내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하인이 쓰러졌다.

게다가 황성사의 사위가 사용하는 무기는 철기여서 대단히 날카로웠다. 반면 월씨 가문 호원들의 손에 들린 것은 나무 몽둥이였다. 황성사의 칼을 받아내면 일격도 버티지 못하고 가볍게 부러졌다.

월령안은 잇달아 쓰러지는 호원들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은 울분과 슬픔으로 얼룩졌다.

그녀는 조정의 관리가 사람 목숨을 이토록 하찮게 여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법도, 하늘도 안중에 없는 태도였다.

월령안의 손은 암기 위에 올라가 있었지만, 한참이나 누르지 못했다.

그녀는 사전에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다. 암기도 빙침 몇 개가 전부였다. 지금 쓴다면, 고작해야 대여섯 명을 죽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나는 어떡해야 하지? 월씨 가문 사람들은 어떡해야 할까? 황성사의 사람은 황제의 명령을 받고 일을 한다. 그럼 내 목숨을 노리는 사람은…….’

월령안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어떡하지?’

이때 집사가 사위의 칼을 피해 비틀거리며 월령안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녀를 와락 밀쳤다.

“아가씨, 어, 얼른…… 어르신을 모시고 먼저 떠나세요. 이번은 심상치 않습니다. 변경에 있기는 글렀어요.”

무려 황성사였다.

황성사가 월령안을 잡아들인다는 것은 곧 황제가 그녀를 잡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그녀에게는 살길이라고는 도망밖에 없었다.

멀리 도망칠수록 좋다. 주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야만 살 수 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못 가!”

‘어디로 도망치라고? 주나라를 떠나면, 그 다음은? 내가 여기서 떠난들 어디로 갈 수 있겠어? 주나라가 내 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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