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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58)화 (258/1,004)

258화 이화백 천 동이를 파시죠

육십이는 천명사에서 벌어진 소탕 작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다. 월령안이 천명사에서 벌어진 일에 관해 묻는다면, 그는 단어 하나 중복하지 않고 온종일 떠벌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월령안이 수횡천에 관해서 묻자, 육십이로서는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월 낭자, 그건…… 저도 정말 몰라요.”

육십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켕겼는지, 떠보듯 물어보았다.

“아니면 제가 육이 형님께 물어볼까요?”

‘내가 이까짓 일도 알아내지 못한다면, 월 낭자가 날 아주 쓸모없다고 여기겠지? 그럼 나는 월씨 저택으로 와서 월 낭자의 호위가 될 기회가 없겠지? 으으으…….’

육십이는 돈을 모아서 어머니에게 보내고 싶었다.

그의 어머니는 북요에서 힘들게 지내고 있었지만, 그는 도와줄 수가 없었다. 만약 어머니에게 돈이 충분히 있다면, 조금이나마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육십이는 눈이 빠지게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이 머리를 끄덕이는 기색만 보여도 당장 달려가서 물어볼 기세였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에요. 나도 그냥 물어본 거예요.”

육이는 곰인 척하는 여우였다. 그녀는 육십이가 육이에게 무언가 알아낼 수 있으리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월령안은 육십이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화제를 돌렸다.

“육 장군께서는 제게 술을 전해 주라는 것 말고는 다른 말씀은 없었나요?”

육이가 여우라면, 육장봉은 늑대였다. 사람을 꿀꺽 삼키고 뼈조차 뱉지 않는 그런 늑대였다.

월령안은 육장봉이 아무 이유도 없이 선물을 보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술이었다. 자연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우연치고 너무 공교롭잖아.’

그녀는 장군왕부와 거래를 하고 나서야 자기 손에 술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육장봉이 바로 술 열 동이를 보내오다니.

육십이는 고개를 저었다.

“네.”

그는 장군을 보지도 못했다.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월령안이 또 물었다.

“그럼 장군께서는 오늘 입궁하셨나요? 아니면, 황궁에서 사람이 나와 장군을 찾아왔나요?”

육십이가 아는 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육십이는 단순하고 솔직해서 있는 그대로 말하고는 했다. 그래서 그녀는 육십이와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육십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왔었어요. 황궁에서 내관이 우리 장군님을 뵈러 왔어요. 하지만 그 내관이 뭘 하러 왔는지는 모르겠어요.”

‘역시 그랬구나!’

월령안은 눈을 내리깔아 눈망울에 담긴 비웃음을 감췄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궁에서 온 내관이 가자마자 장군께서 군사들을 위로하고 제게 술을 가져다주라고 하신 거죠?”

“월 낭자, 어떻게 아셨어요? 너무 똑똑하세요!”

육십이는 눈을 반짝이며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림 짐작한 거예요.”

보아하니 육장봉은 그녀가 죽엽청과 이화백을 준비한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이제 와 육장봉은 그 일을 신경 쓰지도, 진지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설옥고, 조야옥사자로 충분히 보여 주지 않았던가.

다만, 육십이를 시켜 술 열 단지를 보낸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내가 오지랖이 넓다고 나무라는 건까?’

아니면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당신이 한껏 정성을 쏟아 준비한 물건 따위, 내게는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것이오. 이런 것쯤은 내 눈에 차지 않소.’

“월 낭자, 저, 저, 별일 없으면…… 가 봐도 되죠?”

육십이는 월령안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입술을 앙다무는 모습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월 낭자는 왜 선물을 받고도 기분이 좋지 않은 걸까? 월 낭자가 기분이 좋지 않은데 심부름 값을 쥐여 줄까? 아무래도 안 주겠지?’

“잠시만요. 집사에게 답례를 준비하라고 할게요.”

월령안은 괴로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육장봉만 엮였다 하면, 자제하지 못하는 걸까. 남들 보는 앞에서 정신을 놓다니. 나도 참 못났구나.’

육십이는 어리둥절했다.

“답례요? 답례도 있어요?”

답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건 그가 꿀꺽할 수도 없는 것이라 번거롭기만 했다.

“그럼요!”

월령안은 마음속의 복잡한 기분을 억눌렀다.

그녀는 육장봉이 육십이를 시켜 술을 보낸 깊은 뜻이 무엇인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단순한 선물 주고받기로 여기기로 했다. 육장봉이 술을 선물했으니, 그녀는 비슷한 가격이 나가는 것을 답례로 보내면 될 것이다.

무엇을 답례로 보낼지는 월령안도 따로 묻지 않았다. 다만 집사에게 가격이 더욱 비싼 선물을 준비하라고만 일러두었다.

월령안은 문득, 육십이가 걸을 때 팔을 움직이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걱정스레 물었더니, 어제 다쳤다고 했다. 그녀는 집사에게 설옥고를 가져오게 하였다.

“자요, 이걸 줄게요.”

“저, 절 주시는 거예요?”

육십이는 조심스럽게 자기 병을 손에 받아 들었다. 방금 들은 말을 차마 믿을 수 없었다.

이건 천금이나 나가는 설옥고였다. 그런데 월 낭자는 선뜻 그에게 주었다. 행복이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러나 고작 손가락 길이만 한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자, 육십이는 얼굴을 붉혔다. 아쉬운 마음을 억지로 참으며 설옥고를 돌려주었다.

“월 낭자, 저는 아주 살짝 다친 것뿐이에요. 약을 조금 바르면 나을 거예요. 설옥고를 쓸 정도는 아니에요. 이건 너무 귀중해서 받을 수가 없어요.”

사실은 받아서 어머니에게 보내고 싶었다.

북요인이 그렇게 잔혹한데, 그의 어머니는 일개 하녀였다. 그것도 주나라 사람이니, 고달프게 지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육장봉을 통해 설옥고의 신기한 약효를 본 뒤로, 돈을 모아 한 병 사서 어머니에게 보내고 싶었다. 이걸로 결정적인 순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설옥고는 너무 비쌌다. 오랫동안 돈을 모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설옥고를 갖고 싶기는 했다. 그러나 월 낭자에게서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받을 수는 없었다.

월령안은 웃으며 말했다.

“받아요. 제게 설옥고 한 병 값이 없는 것도 아닌데요.”

육십이는 거절을 하면서도 뚫어지게 설옥고를 쳐다보고 있었다. 필요 없다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칼날에 피를 묻히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설옥고를 욕심내지 않을까.

설옥고는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귀한 약이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귀중한 건데요. 공이 없으면 상도 받지 말랬어요. 정말로 받을 수는 없어요.”

육십이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도 여전히 설옥고를 월령안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육십이의 시선은 설옥고 약병에 구멍을 낼 정도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전형적인, 입으로는 거절하면서도 몸은 솔직한 사람이었다.

월령안도 육십이에게 억지로 쥐여 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말을 돌려 했다.

“아니면 이럴까요? 매달 휴가 때마다 와서 제 호위가 되어 주세요. 그걸로 약값을 낸 셈으로 쳐요. 이러면 공을 세우는 거니까 상도 받을 수 있겠죠?”

그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늘 통이 컸다.

육십이는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다른 것 말고도, 오늘 그녀에게 알려 준 정보만으로도 이 약값은 충분했다.

“그래도 되나요?”

육십이는 눈을 반짝였다.

‘내게 월 낭자의 호위가 될 기회가 있다니?’

비록 한 달에 이틀뿐이지만, 만약 그가 월령안을 해치려는 자객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큰 공을 세우게 될 것이다.

“물론 되고말고요. 받아요.”

월령안이 말했다. 안 된다고 했다가 육십이가 울면서 집에 갈까 봐 두려웠다.

“고맙습니다, 월 낭자. 월 낭자, 저는 내일 휴가예요. 오늘 일을 마치는 대로 바로 월씨 저택으로 올게요. 월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누구도 낭자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공이 있는 자는 상을 받아도 된다. 육십이는 신이 나서 설옥고를 받았다. 상처의 아픔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 가슴팍을 세게 두드리며 큰소리를 쳤다.

“좋아요.”

월령안은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이며 거절하지 않았다. 날로 먹으려 하지 않는 육십이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육십이는 설옥고를 조심스럽게 품에 넣어 심장 부근에 두었다. 두어 번 거듭 만져보며 잘 있는지 확인하고서야 떠나갔다.

심지어 떠날 때도 오른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걸었다.

이 설옥고는 월령안에게는 그저 돈을 주면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육십이에게는 어머니에게 보낼 소중한 선물이었다.

* * *

육일의 생존 본능은 아주 강했다. 그날 오후, 그는 바로 장군왕 세자를 찾아갔다. 간단명료하게, 월령안이 장군왕부에 제공한 이화백 천 동이를 장군부에서 전부 사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군왕 세자가 거절하려 하자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세자께서는 거절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청주나 강남에서 변경까지 오는 도중에, 강도에게 강탈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소인은 장담 못 합니다. 만약 이 술 천 동이를 저희에게 파신다면, 장군부에서 사람을 시켜 직접 가져오겠습니다.”

장군왕 세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나 혼자만의 사업이 아니다. 월령안에게도 물어봐야 한다.”

‘장군부는 도대체 무슨 뜻이지? 술집은 아직 개업도 하지 않았는데 술을 전부 사들이겠다니, 나더러 장사를 하지 말라는 건가?’

“세자께서 이 독점 사업을 하기 싫으시다면, 저희 장군부는 월 낭자와 아주 기꺼이 손을 잡을 겁니다.”

육이는 읍을 하면서 큰절을 올렸다.

장군왕 세자는 안색이 변하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팔겠네. 팔면 될 게 아닌가. 고작 이화백 천 동이 아닌가. 일을 그렇게까지 크게 벌일 필요가 있겠나?”

‘협박하는 말은 잔뜩 쏟아 놓고, 심지어 장군부의 체면까지도 챙기지 않는군. 이 이화백 천 동이에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길래, 장군부에서 체면도 내던지고 팔라고 강요하는 거지?’

“세자께서는 이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도장을 찍어 주십시오.”

육일은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왔다. 똑같은 계약서 세 장을 꺼내 장군왕 세자에게 건네주었다.

장군왕 세자는 손에 든 계약서를 보자, 화가 가라앉았다.

계약서의 조항은 그에게 매우 유리했다. 만약 육일이 날강도 같은 기세로 아직 오지도 않은 술을 전부 사 가겠다고 하지만 않았다면, 이런 거래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만약 이 술 천 동이가 내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단, 마지막 조항은 이러했다. 만약 그가 계약을 어긴다면, 월령안이 그에게 판 모든 여아홍과 죽엽청을 내놓아야 했다.

“그건 세자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군부의 사람이 이미 강남으로 갔습니다. 만약 세자께서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돈을 받으신다면, 술은 저희가 알아서 가져올 겁니다. 세자께서는 이 술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겠다고만 보장하시면 됩니다.”

다시 말해, 장군왕 세자로서는 팔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군왕 세자는 이제 화도 나지 않았다. 사람도 거뜬히 죽일 것 같은 육일의 시선을 받으며 서명을 한 뒤, 개인 인장을 두 번 찍었다. 바로 계약서를 육일에게 던져 주었다.

“내가 전생에 너희 장군부에 빚을 진 게 확실하구나.”

육일은 듣지 못한 듯 계약서를 잘 접어 소매에 넣었다. 그리고 장군왕 세자에게 두 손을 모아 읍했다.

“세자, 서로 만족스러운 거래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을 마친 육일은 몸을 돌려 떠나갔다.

공교롭게도 조계안의 수하도 밤을 틈타 장군왕부에 찾아왔다. 그러나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육일이 장군왕부에서 훌쩍 뛰어나오는 모습을 보자 안색이 급변했다.

“아뿔싸, 한발 늦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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